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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베소서 5장 15절 - 18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 벤자민 프랭클린-“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사치의 극치다.”
1787년 미국의 헌법위원회는 작은 주들에게도 큰 주와 마찬가지로 대표권을 주느냐 여부의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때 벤자민 프랭클린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81세였다. 그는 먼저 시편 127: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를 읽었다. 이어서 그는 말했다.
“여러분, 저는 오랜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인간사의 모든 것을 지배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 주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그때부터 매일 아침마다 기도가 이루어졌다. 결국 좋은 결정이 나왔고, 그 법률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프랭클린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 기초위원에 임명될 정도로 인정받은 정치가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지진의 원인에 대해 발표했으며, 피뢰침을 비롯하여, 난로, 원 ․ 근시 안경, 굴뚝에 조절판을 다는 일, 콤바인들 체어와 가로등, 길 양변에 가로수를 심는 일, 화재 보험 회사 등을 발명 혹은 제안했다. 이런 그의 업적으로 인해 미국의 달러 지폐에도 그의 얼굴이 도안되어 있다.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던 그는 누구보다도 시간을 중요시했다. 그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다. 그가 책방을 경영하고 있을 때, 하루는 한 신사가 들어와서 책 한 권을 뽑고는 물었다. “이 책값이 얼마입니까?” “1달러입니다.” “좀 깎아 주실 수 없습니까?” “안됩니다. 정찰제이기 때문에 정가대로 해야 합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조금만 깎아 주십시오.” “…! 그럼, 1달러 25센트 내십시오.” “…? 농담하시는 겁니까?” “이제 1달러 50센트를 내셔야 합니다. 저에게는 시간이 돈입니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유명한 격언은 프랭클린이 한 말이다. 시간과 관련하여 그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사치의 극치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2. 시간을 아끼는 길
2.1. 직관적으로 살지 말라
우리는 직관과 자기 주관이라는 이 주관을 벗어나야 됩니다. 그리 하여야 신앙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신앙은 가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보는 것, 바로 느껴지는 것, 바로 접촉해지는 것 이것이 자기 환경이요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 안하면 이것만 상대해서 사는 자 되기 쉽습니다. 이것에게 피동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이용할 우리의 소유요 우리들의 주(主)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이것의 종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현실 자기주의라는 것이 이것이 다 자기의 주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는 직접 보이는 것 들려지는 것 접촉되는 것 느껴지는 것 이것에게 종이 되느냐 이것의 주인이 되느냐 하는 두 가지로 결말을 짓는 것입니다. 이것에게 종이 되면 첫째 아담이 사망하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걸음입니다. 이것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면 둘째 아담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다 이 두 길에서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고 하나는 실패하고 하나는 성공하는 이 두 갈림길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은 너무 큰일입니다. 너무 큰일이기 때문에 그저 얼핏 쉽게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가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평생 우리가 사는데 있어 나침반입니다. 이 두 가지 지식이 없으면 그 사람은 죽는 줄 모르고 죽었습니다. 이 두 지식이 현재에 자기와 함께 하여 이 두 갈림길 중에 어느 길을 택하느냐 하는 여기서부터 죽는 것과 사는 일은 시발됩니다. 성공과 실패는 시발됩니다.
둥치 잘린 나무는 죽은 나무와 같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사람은 이미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 두 갈림길을 생각할 때에 비로소 성경은 자기에게 필요 있게 되지 이것을 생각지 못하는 자에게는 성경도 하나님도 모든 것이 다 필요 없게 됩니다. 왜 그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죽은 자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고 자기를 담은 그릇 자기를 담은 기구 보자기 그것에게 죽은 시체가 담겨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기구에게 담겨진 그 기구의 움직이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과 꼭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의 생애에 중요한 법칙인 줄 알고 이 투쟁을 하는 사람이면 안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불쌍하고 가련하고 감옥에 갇힌 자니까 무슨 자유가 있겠습니까? 죽은 자니까 무슨 산 것이 있겠습니까? 소경이요 근시자니까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2.2. 기도로 성령의 도움을 받으라.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생각하라 너는 시간을 아끼라’ 왜 이 시간과 다음 시간이 다르다 전 시간과 이 시간이 다르다 전 시간이면 그 시간이 쭉 여전히 그 시간인 줄 아느냐, 아니다. 전 시간은 네가 현실을 종으로 삼았을지라도 이것으로 이 현실은 또 다르다 현실에 또 네가 종이 되느냐 네가 주인이 되느냐 현실을 사용하느냐 현실에게 네가 사용을 당하느냐 왜 이렇게 주의해야 될까? 왜 이렇게 시간마다 달라지는 이 시간 계산을 해야 되는가 때가 악하다 네 환경 전체가 다 피조물 중심이다.
피조물 중심은 환경에 종이 되지 안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자기 환경입니다. 오직 조물주 한 분에게 피동되는 이 자만 피조물 중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현실을 이용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 술 취하지 말아라는 것은 현실에 피동되지 말라 는 것입니다. 자기 주위 환경에 피동되지 말라 그 말입니다. 자기 형편 사정의 종이 되지 말라 그 말입니다. 자기 형편과 사정을 주께 복종하는 것으로 이용하라 그 말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말은 세상에 감염되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 믿음을 떠난 것들에게 피동되지 마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그 말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 도움을 받아라 네가 하나님이 피동될려고 애를 쓰고 해도 너 혼자 못 이기니까 애를 쓰면서 하나님이여 도와 주시옵소서 하는 그것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좁게 생각지 맙시다. 살 것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죽을 것도 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살 것과 죽을 것을 같은 중량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또 죽을 것만 생각해도 안됩니다. 부활도 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또 현재 수지 계산만 따질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 세상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무궁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발넓게 폭넓게 이 넓게 모든 것을 가지고 계산을 대라 그 말입니다. 편벽되게 치우쳐서 일방적으로 계산되지 말고 참 주관보다 불쌍한 자가 없습니다. 더 불쌍한 자가 없습니다. 자기가 있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현재가 있는 동시에 과거도 미래도 있었습니다. 과거도 잊어버리고 미래도 잊어버리고 현재만 가지고 말하는 사람을 접촉할 때에 소경이라 그렇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현실에 피동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일을 경험한 맥아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맥아더는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1950년 9월 28일은 맥아더 장군이 지휘 아래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이 있었던 날이다. 이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나라는 북한의 괴뢰정권에 완전히 점령당하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상륙작전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참모진 등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고 심지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까지도 이 작전이 실패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이를 시행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 이전에 역사상 500번의 상륙이 있었지만 성공한 것이라곤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이젠하워의 통솔 하에 시행된 노르망디 상륙뿐이었다. 확률은 1/500이었다. 맥아더는 후에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여 이 작전을 수행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작전에 성공한 후에 당시 시청 맞은편에 있었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내려 머리를 숙여 기도했다. “주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Thy will be done!) 뒤따르던 참모들도 함께 기도를 하고 있었다.
3. 현실의 종이 되지 말고 이용하는 자가 되라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는 자기의 현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접촉하는 대로의 것이 자기 현실인데 현실의 종이 되느냐 현실을 자기의 선물로 이용을 하느냐를 결정을 지워야 됩니다. 이 결정을 짓지 않고 사는 삶은 전부 술 취한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월을 허비하는 삶이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을 빼 먹어야 되느냐? 지켜야 하느냐? 성경 묵상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루 정한 기도 시간을 지키느냐? 마느냐? 전도를 하느냐? 마느냐? 공부와 가정 살림과 모든 일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느냐? 아니면 예수 믿기 전에 하던 것처럼 기도 없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느냐? 나의 취미는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취미를 그대로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따지고 또 따지고 구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멘!
이 전투가 없는 자는 믿을 수도 없고, 바랄 수도 없고, 약속을 맺을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고, 일을 맡길 수도 없습니다. 언제 무엇의 종이 될는지 모르니까 이 현실의 종은 안됐지만 그 다음에 어떤 현실의 종이 될는지 모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사치의 극치다.”라는 말을 남긴것처럼 사치스런 삶을 안 살아야 하겠습니다. 맥아더처럼 “주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Thy will be done!) 라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기 위해서 부르짖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종이 되느냐 현실을 선물로 이용하며 살아가느냐가 항상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구별의 싸움을 계속합시다.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시간을 아끼는 주인공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