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글 시/ 김영욱 작품조명
난, 기꼬아리가 먹었다 외 4편
김영욱
할아부지는 팔십 줄에 가는기꼬아리 먹었고
아부지는 칠십 줄에 가는기꼬아리 먹었다
난, 육십 줄에 가는기꼬아리가 먹어서
예배시간에 목사님께서
“찬송가 씹구멍을 부르겠습니다” 해서
아니, 그게 목사님이 할 소리냐고 껌쩍 놀라니
옆떼기 붙어있던 내 안덜 한복수 권사가
가는기꼬아리가 먹어서 찬송가 “십구장(十九章)”을
기맥힌 쌍욕지거리 “씹구멍”으로 들었으니
멀지 않아 기먹젱이, 전베기. 먹초가 되어
베락으 쳐두 못 듣는 베람빡이 될까
걱정이라고 쎄싸리를 끌끌 차면서
보청기나 빨리 사서 기꼬아리에 꽂으라고, 그러네
젠장!
*가는기꼬아리-가는귀
*껌쩍-깜짝
*옆떼기-옆
*안덜-아내
*기맥힌-기막힌
*기먹젱이, 전베기, 먹초-귀머거리를 나타내는 강릉사투리 말들이다.
*베락으 쳐두-벼락을 쳐도
*베람빡-벽
*쎄싸리-혓바닥
육춘 누나 옥냄이
수터골 마갈 곹짜구니 어귀에 살던
육춘 누나 옥냄(玉南)이, 나보다 한 살 많은데
고작 스물 살도 안 돼 연애질해서 시집간다는 게
같은 마슬의 수터골 골짜구니 안에 사는
차씨(車氏)네 아들로 마지인데
그 차씨네 고모가 우리 작은 할아부지에게 시집오니
차씨네와 우리네 집안과 사둔이 되었고
그런데 그 차씨네 여동생이 우리 왕고모네
둘째 아들에게 시집갔으니 겹사둔이 되었고
육춘 누나 옥냄이가 차씨네로 시집가므로 겹겹사둔이라
그러고 보니 완전 마카 개판이네
아 그렇구나 족보라는 게
진돗개냐, 풍산개냐, 똥개냐, 스피츠냐,
불독이냐, 발바리냐, 세빠트냐,
뭐냐 ... ... ... .... ... ... ...?
알고 보면 족보라는 게 다 그런 거고,
그런데 육춘 누나 옥냄이 시어머이 살아있을 때
시집살이 고초당초보다 더 매웁게 했다나
그래도 서방 차씨(車氏)는 가방끈이 짧아서
주민등록증을 ‘주민동녹증’이라고 쓰지만
민사무소 드나드는 이장이라는 벼슬아치도 했으니
모강지에 심줄 세우는 대견한 인물이 나왔다네
산꼴 촌놈들이 산다고 얍잡아 보았던
수터골 마갈 골짜구니 안에서.
*육춘-육촌
*골짜구니-골짜기
*마갈-산골
*마슬-마을[洞]
*마지-맏이
*사둔-사돈
*마카-모두
*매웁게-맵게
*가방끈이 짧아서-별로 배우지 않아서
*민사무소-면사무소
*모강지-목
*심줄-힘줄
*마갈-산골
고무질빵 큰 외삼춘 한성만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부산 구포와 경남 김해를 잇는
구포다리빠리가 아스라이 보이고
경부선 철길이 지나가는 개밭에 깻잎농사 짓던
큰 외삼춘 한성만(韓成萬)은 시상없이 바빠도
낮잠을 퍼드러지게 자고서야
개밭에 어슬렁거리며 나가는 꼴을
차마 눈알탱이가 시려 몬보던 외숙모는
시아비가 훈장질하면서 글께나 하는 얭반이랍시고
비가와도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을 꺼들이지 않았다는데
영판 지 애비 쏙빼논 갑다 라고 뒷통수에 대고 뭐라해도
니따구 아모리 좃퉁소를 불지라도 개밭에 깻잎은 자라는 기라
그런데 깻잎 따서 구포장에 팔고 오면서
말걸리 주전자 꼭지를 빨고 또 빨아
거나하게 술기가 오르면 왜성(倭城) 산 밑 돌아오면서
6.25 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도 아니면서
불렀다 하면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하셔요/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그래도 슬피우는 이북고향 언제 가려나//고향길이 틀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담배장수 하더라도 살아보셔요/정이들면 부산항도 내가살든 정든산천/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그래도 눈물만 흘러젖는 이북고향 언제가려라//영도다리 난간위에 조각달이 뜨거든/안타까운 고향얘기 들려주셔요/복사꽃이 피던날밤 옷소매를 끌어잡는/경상도 아가씨가 안타까워 우는구나/그래도 잊지못할 내고장이 이북고향 언제가려나”
삼절까지
애처러이 뽑아대던 젊은 시절이 엊그젠데
아덜딸네들 마카 시집보내고 장가들이고
편안하게 살만 싶더니 시상버리고 저승가는 길도
개밭에 가듯이 어슬렁 어슬렁 고무질빵 걸음으로 갔을까.
*구포다리빠리-일제강점기 때 놓은 구포교(龜浦橋)
*시상없이-세상없이
*개밭-낙동가 가의 개흙으로 이루어진 갯밭
*눈알탱이-눈알
*몬보던-못 보던
*시아비-시아버지
*쏙빼논 갑다-꼭 닮았다
*얭반-양반
*뒷통수-뒷머리
*니따구-네가
*아모리-아무리
*아덜딸네들-아들딸들
*마카-모두, 전부
*고무질빵-느림보
민경 속에 아부지가 서 있네
워느 날 베람빡에 걸린 민경 앞에 섰다가
거기 늘구스레한 아부지가 서 있어
깜짝 놀라 나가 자빠져 디통셍이가 깨질 뻔 했어
내 늘구스레한 상판데기와 몸뚱아리가
어쩜 아부지와 얭판 아조 같는 지 말이야
그만 아부지 생각에 울컥 했장가.
*민경-거울
*워느-어느
*베람빡-벽
*늘구스레한-늙은
*디통셍이-뒤통수
*상판데기-얼굴
*몸뚱아리-몸
*얭판-영판
*아조-아주
양구 고모
주문진 최씨 집에 시집갔으나
아덜 하나 남겨놓고 사내가
먼저 시상 가삐리니 살아갈 길 아득해서
얻은 새 사내는 서너 명의 어린새끼를 데리고
별로 가진 것 없는 삼팔따라지로
고작 비얄밭을 일구는 농새꾼으로
입주둥이에 풀칠만 했지 샐림새리 엉망이라
그래서 양구 남면 가오작리에서
휴전선이 멀지 않는 전방 가는 길목에
장시라도 해서 돈 좀 만져 보려고
번듯한 음식점이 아니고
가정집에서 영업허가도 없이
좆뺑이치듯 군바리들에게 메물국시 해서 팔고
옥시끼 막걸리도 담궈 팔다가
까마구가 오거나 바각지를 쓴 군인이
단속과 순찰을 한답시고 오면
술대접하고 옆구리에 며 푼 찔려주면서
근근득신 어렵사리 살아야 했던 양구 고모는
큰댁 큰할아부지 맏딸로 늘그막에
또 사내 먼저 보내고 홀로 지내다가
한 많은 시상 버렸으니
아츰에 피어나는 닭의밑씻개 꽃처럼 고작 한나절
팰짜가 그러코롬 기구(崎嶇) 했구만.
*사내-남편
*어린새끼-어린자식
*삼팔따라지-삼팔선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던 말
*비얄밭-비탈밭
*입주둥이-입
*샐림새리-살림살이
*농새꾼-농사꾼
*장시-장사
*좆뺑이치듯-눈코뜰새없이 바쁘게
*군바리-군인. 군바리는 국어사전에 ‘군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말이다. 군바리의 ‘바리’의 뜻은 ‘많다’는 뜻이다. 즉 ‘군바리’는 ‘많은 군인’ 이다. 제주도에서 나온 말이다. 6.25전쟁 때 제주도 대정읍 모슬포 지역에는 육군훈련소, 공군사관학교, 해군 수송지원단, 모슬포 공군기지 등이 있어 많은 군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많은 군인을 제주도 사람들이 ‘군바리’라고 불렀다. 예를 들면 비바리는 해녀 한사람, 또는 여럿 사람의 해녀들이고, 제주도에서 많이 잡히는 농엇과 바닷물고기 ‘다금바리’는 ‘다금’이라는 고기가 많이 떼를 지어 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메물국시-메밀국수
*옥시끼-옥수수
*까마구-까마귀. 양구 고모는 순경을 비하해서 ‘까마구’라고 불렀다.
*바각지-바가지. 헌병이라 써 붙인 헬멧을 쓴 군 헌병을 양구 고모는 바각지라고 불렀다.
*꽁짜-공짜
*팰짜-팔자(八字). 사람이 타고난 운수나 분수. 사람이 태어난 년(年), 월(月), 일(日), 시(時)를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를 가지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데서 나온 말이 ‘팔자’이다.
*아츰-아침
*닭의밑씻개-닭의장풀, 달개비
*그러코롬-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