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보다는 길도 훨씬 수월하고, 일정도 짧아서 점심시간 빼고 6시간 정도 걸릴거라 하니, 어젯밤 여유로운 맘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6시20분 아침식사에 7시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이윤즉은 밤새 배가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K2...발토르 빙하에서 알현해야만 하는 복통이 찾아온 것이다. 설사를 하는게 아니라, 마치 아이를 낳으려 비스르느것 처럼 온 배를 뒤틀며 아파왔다.
졸라에서 찬물에 탄 땡쥬스를 3잔이나 마시고도 설사를 하지 않는다고... 정수기를 빌려쓰기도 신경쓰이고 해서 그냥 뜨거운 물을 식혀서 마신것이 이제사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변비가 심한 후유증이 아닌가...
<우르투카스에 있는 메모리얼....분명 젊은날 운명을 달리했을 이들의 영혼이 가슴아프긴 해도...이렇듯 트랑고 산군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묻혀있으니...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행복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빗소리가 들리는 것 보니, 어젯밤 늦게부터 또 비가 왔나 보다. 복통이 심했지만, 딱히 화장실이 가고싶은 건 아니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서 그냥 누워 있었다. 어제 많이 피곤했었으므로 가능한 까지끝 쉬기 위해서다.
그런데 옆텐트에서 벌써 짐꾸리는 지퍼 소리가 들린다. 머릿속으로 시간 계산을 해가며 누워있다가 나도 준비를 시작했다.
드디어 화장실을 가기위해 밖으로 나가니 비는 그쳐 있었다. 기막힌 날씨운에 또 한번 스스로 탄복한다.
버럭이는 언제부터 일어나 짐을 꾸렸는 지, 벌써 바위에 올라 경치 삼매경에 빠져있다. 참으로 바지런한 사람이다. 그 모습을 보니 맘이 급해져 서둘러 짐을 꾸렸다.
일찍 준비를 마치고 '헤마옛'을 치료해 주기 위해 주방으로 갔다. 내가 준 비닐 장갑을 끼고 일을 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치료한 것을 떼어내니 아직도 상처가 심하다. 다시 소독을 하고, 연고 바르고, 멸균 거즈를 대고 반창고로 감아 치료해 주니, 얼마나 고마워 하는 지...ㅎㅎ
너무 밥을 많이 해서 늘 많이 남아 적게 하랬더니, 오늘은 밥이 너무 적었다. 우리야 충분했지만 아무래도 버럭이에겐 적은 양이라, 밥이 너무 적었다고 말을 했는데, 이내 에그 팬케?을 한 소쿠리 가져오는 것이다.
'에그~ 이거면 충분한데...괜히 말했다고...'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 사이에 가서 또 밥을 다시 해온것이다.
헐~~다음번에 좀 더 많이 하라는 말이었는데...ㅠㅠ 점심때 라면에 말아서 먹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이...너무 고맙다.
오늘은 크레바스가 쫙 쫙 벌어지고, 빙하계곡이 흐르는 그 길섶으로 많이 걷는게 아니라, 종일 직접 빙퇴석이 산처럼 쌓인 빙하 위를 걸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세찬 비바람이 저 바위산을 깍아 내리 쏟아 부었는 지,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의 빙하 위를 잔돌들이 온통 덮고 있다.
돌들이 얼음덩이 속으로 박혀 있어 아이젠을 신지 않고 걸을 수 있었지만, 그 위로 녹아서 흐르는 잔 물결들 하고.... 수없이 많은 크레바스들이 입을 쩍 쩍 벌리고 있어 어제와 마찬가지로 잠시도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되었다.
몇 번을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엉덩방아를 찧지는 않았다. 자칫 엉덩방아를 찧거나 손으로 땅을 짚으면 날카로운 바윗돌들 때문에 크게 다친다. 그래서 절대로 장갑을 벗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빠유에서 만난 안치영 대장이 얼마나 자상하게 우리에게 알려주던 지....
절대 모자를 벗어서도 안되고... 절대 과식하면 안되고... 절대 장갑도 벗어선 안되고... 잘때 텐트는 조금 열어두고 자라고 했던 말들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같은 발토르 빙하이건만... 빙하위를 직접 걸으니 어제와는 너무도 다른 풍광으로 다가온다.
어제는 깍아지른 수직 절벽 길과 엄청난 바윗 길을 걸으며 왼쪽으로 빙하를 두고 간간히 그 위를 걸으며 걸었지만, 오늘은 종일 빙하 한 가운데로 들어서서 그 위를 걸었다.
크레바스 사이로 흐르는 물들은 수정 처럼 맑았다. 끓여 식힌 물을 담아 온 물을 따라 버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빙하 물을 병에 담아 마시고 담아왔으니까... 흐리고 탁한 잿빛 물을 보다가 이처럼 깨끗한 물을 보니, 설사에 대한 염려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온 몸이 상큼해지는 느낌이다.
또 잠시 흥분에 휩쌓여 장갑을 벗고 손이 끊어질 듯 차가운 빙하물에 손을 담그었다. 그러면 신선이 되지 않을까 해서...ㅋㅋ
내려올땐 또 전혀 다른 풍광으로 변해 있겠지?? 그래서 수없이 오늘도 또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실 내 손에 카메라가 주어졌었다면 걸어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힘든 여정에 임티아스를 카메라 포터로 썼기에 그나마 정말 자제를 많이 하게 된것이다.
가이드 겸용이라 나를 앞서 가기도 하고... 또 다른 일행들과의 거리감을 벌리지 않기 위해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쳐 놓쳐버리는 포커스가 많아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나마 자제할 수 있었느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ㅎㅎ
사진을 찍다보면 그 잠깐 동안 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가는 지...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뛰게 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엄청나게 큰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다른 패키지 여행에서는 거의 뛰어 다닌것 같다.ㅎㅎ 무거운 카메라 들고 매 순간 뛰면서도 다음 날 너무나 좋은 컨디션으로 나서는 걸 보고는 모두들 '뭘 먹는거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ㅋ~~
그런데 이곳 해발고도가 4,000m가 넘는 곳에서 그리 뛰었다가는... 뛰지도 못하겠지만... 고산증으로 죽는다. ㅠㅠ
어제 기인 일정때문이었는 지... 날아갈듯 가벼웠던 (기인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와는 달리 힘이 든다. 고도가 4,000m가 넘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아!! 그러고 보니, 밤새 복통때문에 제대로 잠을 못잤잖아~ 잠을 잘 잤어도 피곤이 풀리지 않았을 상황에 복통에 설사가 염려되어 잠까지 못잤으니....ㅠㅠ
그래도 환상적인 풍광에 사로잡혀 견뎌낸다. 간간히 사진 찍으며 쉬기도 하고... 파워 에너지젤과 에너지 바로 영양도 보충하면서...
먼발치로 가셔브룸 산군들이 보일텐데, 운무에 가려져서 언뜻 언뜻 설산의 모습을 비칠뿐, 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래도 그 아쉬움보다는 환타지와도 같은 지금의 매혹적 풍광에 더 열광하며 걸었다.
해가 쨍쨍 비추이고 모든게 너무나 선명해도 믿기 힘든 카라코람인데, 운무가 이리 저리 휩쓸며 카라코람의 위용에 더해져 얼마나 매혹적인 지.... 그저 모든게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그저 꿈속을 헤메이는 것 같아 다른 생각은 찾아낼 여지도 없다.
매혹적인 에메랄드 빛 빙하 크레바스 밭을 지나 다시 거대한 돌무더기 빙하로 들어섰다. 수많은 설산의 봉우리들이 구름을 벗어내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 준다.
운무에 휩쌓인 가셔브룸 산군이 밑둥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지나는 이를 만나면 내가 KKH에서 사람만 보면 흥분되어 셔터를 눌렀던것 처럼 마치 외계에서 사람을 만난것 처럼 흥분과 감동으로 기념 촬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ㅎㅎ 세상 그 어디에 이런 일이 있을까... 만나는 이가 다 동료이고 친구이고 진한 감동이 공유되는...
그 잠깐의 만남에 마치 연인이라도 된 양 헤어지기가 이리도 섭할까.... 사진을 찍고.... 발걸음을 쉬이 떼지를 못한다. 혹시 전생에 인연이 있었을까?? ㅎㅎ
Schindler`s List(쉰들러 리스트) ---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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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날들 원문보기 글쓴이: 베가
첫댓글 6월 우리팀은 우르두카스에서 부터 눈이 내려 고로2까지 가는동안 춥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6월이면 시기가 좀 빠른가요??
저희도 비가 간간히 오고 날씨도 흐려서 쨍한 가셔브룸 산군이 좀 안타깝긴 했어도
반면 환상적인 느낌이기도 했지요.
날씨도 그리 춥지는 않았구요~
운이 좋았던것 같아요.
사진을 너무 잘 찍으셔서
순간,
여기 이 멋진 모습들 사진발 아닐까? ^ ^;;
감사~~
의심의 여지없이 가셔도 됩니다.ㅎㅎ
단, 네팔 히말라야 생각하고 가시면 죽습니다. ㅠㅠ
준비를 철저히 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