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수 / University of Michigan 한국 불교
한국 비구니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미국 학계에서 한국 비구니 연구가 태동하고 있다는 소식, 한국의 비구니 연구소의 설립과 활동 소개, 그리고 불교학자로서의 저의 간단한 소견 등을 중심으로 이 글을 꾸려 가볼까 합니다.
한국 비구니 교단의 역사와 조직,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종교 수행의 전통은 중요한 연구 거리입니다. 일천 육백년이란 긴 역사와 생명력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또한 현대에 와서 불교의 청정한 종교 전통을 회복하고 불교의 대사회적 기능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소중한 존재입니다.
세계적으로 불교가 있는 곳이면 여성 성직자들의 집단이 있는 것이지만, 한국 불교의 비구니 교단처럼, 강원과 선방을 통한 교육 체계가 있고, 법맥과 계맥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오며, 조직적인 사원 생활을 통해 철저한 자기 극복의 수련을 쌓는 곳은 드뭅니다. 그 점에서 한국의 비구니 교단은 종교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문화사적으로도 주목을 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수행 전통이 외부에 감춰져 이삼십년 전까지만 해도 비구니 스님의 활동과 교육은 전통 비구니 강원과 선방 안에서 만으로 제한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비구니 전통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도 이쯤해서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 도서관에 가서 비구니 연구에 대한 자료를 검색을 하면, 어떤 것은 몇천개 자료가 줄줄이 따라 나오는데, “비구니” 이렇게 치면 단 네 개가 나옵니다. 그것도 두개는 비구니 강원의 식단에 대한 연구, 이런 것에 관한 것들입니다.

한국의 비구니에 대한 연구가 없는 것은 비구니에 대한 사료를 거의 찾을 수 없다는 데에도 탓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를 통해 유학자들이 일단 불교를 억압하면서 비구니 승단은 이중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조선시대를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불교의 활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선 내당의 부인들이 전부 불교 신자 였고요. 그 당시는 다른 신앙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당시 유교는 남성 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이지 여성의 신앙생활의 근거는 아니였지요. 또한 정계에서 은퇴한 남성들이 개인적 신앙으로 승려들과 교류를 하고, 절에 참배하러 가고 그런 기록 들은 무척 많습니다. 예를들어 잘 아시는 금강산의 ‘유점사’는 그 당시 식자들의 대안적인 종교 안식처였다고 보여 집니다. 이율곡도 어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인생에 서글픔을 느끼고 그곳에 가서 몇 년간 도를 닦았다고 하고, 그것 때문에 죽고 나서 한동안 문묘에도 못 묻혔다니까요. 하여간 불교는 개인의 공간 안에서는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강력한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비구니 승단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그분들의 신도 층이 오직 여성 뿐이었고, 그 여성들이 고급 집안의 내당 부인이었지만, 그 패트론들의 남편들의 성향이 어떠냐, 남편과 관련된 정치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비구니 절의 운명이 많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유명한 유학자의 부인이 남편이 죽자 출가를 해서 비구니가 되었는데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 그 절이 문을 닫아 버렸다는 등 등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연산군이 자기 아버지의 후궁들이 비구니가 되었다고 아예 그 절의 모든 비구니를 노비로 만들어 버렸다는 둥의 역사 말입니다. 그렇지만 불교는 그런 속에서도, 또 끊임 없이 일어나는 유학자들의 사상적 전쟁속에서도, 불교 수행과 수행의 근거지인 사찰들은 계속 지탱이 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려 불교가 너무 퇴폐해서 조선 불교는 성리학자들이 불교를 비판해서 다 죽어 버렸다고 배웠던 것은 실은 일제 관학자 출신들의 식민지성 이론의 일부 입니다.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의 불교 비판, 즉 이전 왕조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을 비판한 그 논리를 그대로 일제 사학자들이 이어 받아, 그래서 고려는 망했다 하고, 그 같은 칼의 다른 날을 써서, 조선은 그런 유교 이데올로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어 사회 발전이 없고 망했다고 하던 그 논리 말입니다.
이렇게 조선시대를 통해 비구니 스님들은 불교 박해와 남존 여비사상의 이중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비구니 스님들은, 은둔성 그것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전통을 보존하겠다는 일념 뿐 외부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꺼리는 습관을 몸에 익히게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의 산중 곳곳에 존재하는 비구니 강원이나 선방의 생활은 완전히 외부에게 차단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비구니 교단의 성격과 그 사회학에 대해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연구가 아직 나온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이 변해 현재 조계종단의 출가승의 반이 비구니이고, 교육의 측면에서 보아도, 이제는 비구니 스님들도 비구 스님들과 똑같이 대학에서 현대식으로 교육 받고, 연구하고, 수행하고, 그러면서도 중생 교화에 힘쓰시고 있습니다. 여성 뿐 아니라 남성 신도, 연로하신 분, 젊은이 등의 모든 신도 층에 걸쳐 어필하는 포교사, 다정한 신식 선생님, 좋은 사찰 운영자, 그리고 뛰어난 수행자로서의 여러 역활을 수행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리고 몇 년전 실천 승가회등에서 불교개혁운동 할 때 여성 신도들과 함께 나가 최일선에 서서 거칠게 싸우던 분들도 바로 그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사회의 각 구석에서 큰 저항들이 가끔 들어옵니다. 그 중 한가지가 기성 종단에 기둥 역활을 하시는 비구 스님들에게서 옵니다. 본각 스님이 교수회의에서 “한국 비구니 연구소”를 학교 내에 설립하도록 허가해 달랬더니 어떤 비구스님이 “우리 학교에 아직 한국 비구 연구소가 없는데 어찌 비구니 연구소를 하겠느냐”고 한마디로 거절했다지 않습니까. 한국 불교 교단사가 온통 비구의 역사 뿐인데, 그것 밖에 안 남아 있는데, 그리고 현재 한국 불교 종단의 모든 세력을 비구 스님들이 가지고 있으면서 또 비구 스님 따로 운운한다는 것이 변명거리라고 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한국 비구니의 법맥 이라는 것이 얼마나 세계적인 것인지 아마 아시는 분 몇 안되실 겁니다. 비구니 승단은 부처님 당시 기원전 6세기 인도에 비구승단과 같이 생겼습니다. 물론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비구 승단을 조직하여 가르침을 내리고 있을 무렵,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부처님을 직접 키운 그 이모이자 유모이기도 하신 마하프라자파티가 다른 여러 수백명의 여성들과 같이 찾아 와서 읍소를 했는데도 거절을 하셨다가 가장 아끼던 제자인 아난다가 호소하자, 결국 부처님이 승인하셨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아닙니까? 부처님이 그 청원에 대해 고심을 하신 이유로는 여러가지를 들수 있겠지만, 부처님이 새로운 종교 단체를 세우는 마당에 여염집 부인들과 처녀들을 모아 승단을 조직케 한 다면 인도와 같은 봉건 사회에서 얼마나 반발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니 망설이셨겠지요. 하여간 부처님이 승락을 하시고, 인도 불교가 스리랑카로 전래될 때 거기서도 비구와 마찬가지로 비구니 교단이 성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인도의 불교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도착하게 되고 거의 동시에 한국에 까지 와서 모례네가 최초의 한국 비구니라고 안 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스리랑카의 비구니는 그 승단의 맥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여성성직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같은 비구니가 아니라 평복 비슷한 것을 입고 다니는 반 승려 반 신도 같은 존재입니다. 비구니 수계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말하면 여성 수행자들인 것이지요. 비구들은 그분들과는 같은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여간 계맥이 끊어졌기때문에 그 맥을 부활 시키기 위해, 1996년에 용감한 스리랑카 여자분 열분이 인도 사르나트에 와서 인도의 마하보리 소사이어티 소속 한국 비구 스님에게서 비구니 계를 받아간 일도 있다지요. 요즘은 중국의 큰 사찰들 예를 들면 불광사 등이 스폰서가 되어 수계식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주도권을 쥐는 길이거든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오직 중국과 한국에만 비구니 승단이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도 없습니다. 일본의 nun이라는 것은 생활 속의 minister와 같은 것이지 우리의 비구니 스님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중국은 대륙의 불교 전통은 이미 끊어진 것과 진배없고, 대만의 비구니 승단이라는 것은 대륙의 전통에 맥을 갖다 대는 것인데, 그 대륙의 전통이라는 것이 사실 희미한 것이거든요. 따라서 죽으나 사나, 비구니 승단이 승단으로서의 형식을 지니고, 규범을 갖추고, 정식 출가 수계의 절차를 지키고, 자신의 삶을 오랜 역사 속에서 거의 이천년을 지켜온 나라는 바로 조선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비구니 전통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료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엔가 있겠지요. 아마 비구니 승방 등에 전해오는 사찰 역사나 그 외 전기등에 기록이 좀 남아 있겠지요. 또한 구전으로 내려오는 비구니 큰 스님 들의 이야기를 더 늦기 전에 모아 담는 것이 큰 과제 입니다. 일제 시대를 겪으면서, 오랜 세월을 수행의 한 길로 살아 오신 연로하신 비구니 스님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인터뷰 등을 통해 그분들의 삶과 수행의 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고, 또 영상 기록도 확보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인듯 싶습니다.
이러한 여러 조바심의 첫 걸음으로 올해 사월 워싱턴 디시에서 열린, 아시아학 연구자들의 가장 큰 모임인 미국 아시아 학회 연례 컨퍼런스에서 한국 비구니에 대한 연구 패널이 처음이므로 열렸습니다. 그 패널에서 토론자를 맡았던 UCLA의 로버트 버스웰교수의 말처럼, 미국이나 한국을 통틀어 한국비구니에 관한 이런 학술 발표회는 처음으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까지 하고,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였습니다. 이 패널을 조직한 분은 조지아 대학에 계시는 이향순 교수로, 본인은 현대 한국 문학과 영화 속에 나타나는 비구니 상에 대해 발표하셨고, 동국대학교 선학과에 계시는 강 혜원교수 스님께서 현재 한국 비구니 승단의 조직과 교육제도에 대하여, 밴더빌트 대학에 있는파울라 아라이 교수가 비구니 승단 연구에 있어서의 방법론에 대해, 그리고 서울대학교 미술사학과 강사 강 희정 박사는 조선 시대의 미술품 중에서 사대부집 부인들이 화주 기록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발표하였습니다. 사회와 토론은 저와 버스웰교수가 각각 맡았습니다. 이 연구를 발판으로 하여, 앞으로 여러 학자들의 더 논문을 모아 영어로 된 책을 하나 내는 것이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이 같은 여성과 여성 성직자의 사회적 역활에 대한 시대적 자각 속에서, 한국의 비구니, 즉 한국 비구니 승단의 역사와 조직, 그리고 그 수행전통 또한 그분들의 삶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한국 비구니 연구소"를 설립하려는 의욕이 젊은 비구니 학인들 사이에서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수행전통과 역사를 정립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에 계속 나오실 다른 젊은 비구니 수행인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하자는 것 입니다. 중앙승가대의 교수이신 본각 스님이 소장으로 본 학교에 설립 신청 중인 한국 비구니 연구소가 이러한 활동의 진원지입니다.
그곳 연구소 사무실에 가면 비구니 스님들이 새벽 같이 모여 회의를 합니다. 지난 번 맡았던 과제를 점검하고, 그날 할 일을 정합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서로 역할을 나누어 각 학교 도서관이나 사찰, 아니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마다 않고 흩어져 달려갑니다. 이렇게 꿀벌과 같이 자료를 모아 오시는, 승가대학에 재학 중인 젊은 비구니 스님들이 바로 그 주역 들입니다.--그 젊은 학인 스님들의 하루 일과가 어떠신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대학교 다니며 강의 듣고 보고서 쓰랴, 비구니 연구소의 자료 수집하러 다니랴, 또 스님으로 그분들을 필요로 하는 중생들의 아픔을 달래주시랴 각종 모임에 참석하시랴, 또 그러면서도 또한 자신의 수행은 게을리 할 수 없는 필수 아니겠습니까.
이분들이 현재 목표로 하는 일은 이전에 먼저 가신 분들의 삶과 수행을 기록으로 정리하여 “한국 비구니사”를 편찬하는 사업입니다. 지금까지 과거의 큰 비구니 스님들의 행적에 대해 적어 놓은 자료가 다 흩어져 있고 또 없어지고 있는 것을 이제라도 한번 모아보자는 생각입니다. 사찰에 깊숙이 묻혀있는 寺誌를 찾아 뒤져보면 기록이 나올 것입니다. 각종 사료를 뒤져서 비구니를 언급한 것이면 무엇이든 다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이 비구니사 편찬이 완성될 때까지, 중간 과제로 “비구니 역사 연구 자료집”을 우선 발간할 예정이고요.
또한 2004년에 샤카디타 ( 부처님의 딸 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라는 세계 여성 불교인 연합회의 회장 렉세 쪼모 스님이 팔차 대회를 한국에서 맡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 비구니회 (회장, 광우 스님)가 주최가 되어 서울서 개최하기로 최종 결정이 되었습니다. 올 여름 대만에서 열리는 제 칠차 대회에서 한국측의 수락 연설이 있을 예정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불교 학자들 중심으로 “한국비구니 연구소” 지지 성명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수한 불교학자들이 찬성의 뜻을 전하고, 자신들이 회원이 되겠다고 회답을 해 왔습니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소개하기에 이만큼 의의있고 보람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2002년 5월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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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좋은 정보 잘 보았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대자대비관세음보살...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