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60)
그래, 굿 모닝
동네 하수도관 매설 공사장 부근, 포클레인 삽날에 뿌리 뭉텅 잘려 뒤집어지고, 산 같은 흙더미에 짓눌려 모가지만 빼꼼 허공에 삐져나온 들국화 한 줄기, 오늘 아침 쪼그맣고 노오란 꽃망울들을 내 눈앞에 불쑥 내밀며, “아저씨, 좋은 아침!” 한다
……
그래, 굿 모닝이다!
- 배창환(1955- ), 분단시대 동인 40주년 기념 시집 『가혹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걷는사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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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는 잡지와 단행본의 성격이 혼합된 부정기 간행물입니다. 이는 주로 시 분야이기는 하지만 특정 장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인들이 펴내는 동인지와는 부정기 간행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단행본의 성격보다는 잡지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는 그 특색에서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1980년대는 이런 동인지와 무크의 구분이 모호한 문학 활동이 중심이 된 시기였습니다. 논자에 따라 무크와 동인지를 확연하게 구분하기도 하지만, 1980년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의 『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등의 정기간행물 폐간에 따른 영향이었을까요, 많은 동인지가 장르 전문지가 아닌 종합 문예지로 분류할 수 있는 무크처럼 발간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대구경북과 청주의 시인들이 함께 동인을 꾸려 활동한 ‘분단시대 동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분단시대 동인’은 1984년 결성되어 4권의 동인지와 1권의 판화시집을 내고 1990년대 이후로는 한동안 각자 개인적인 문학과 실천 운동에 전념하다가 2014년에 3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을 발간하였고, 올해는 동인 결성 40주년으로 40주년 기념 시집 『가혹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40주년 기념 시집 발간과 더불어 분단시대 동인 40주년을 돌아보는 행사가 8월 24일 있었는데,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날과 겹쳐 저는 뒤늦게 행사에 참석해서 동인들의 그동안의 소회를 들으며 감회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감회 중에는 한 동인의 대담 중 나온, 첫 동인지가 모 대학의 운동권 교재로 사용되면서 판매 금지당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와 관계된 내용도 있었는데, 1980년대 초중반 이런 무크지들을 읽을거리로 늘 가방에 넣어서 갖고 다니다가 공무원 면접을 보기 위해 들른 정부 중앙청사 입구에서 공무원 면접 보러 온 사람이 맞냐고, 공무원 되려는 사람이 이런 책 읽느냐며, 한동안 조심하라는 면박(?)을 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엄혹한 시절이었지요. 오늘은 이 기념 시집에서 시 한 편을 골랐습니다. 포항의 모 고등학교에서도 재직한 적이 있는 배창환 시인의「그래, 굿 모닝」입니다. 1980년대와는 다르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도 지금의 시간은 또 다른 ‘가혹한 시간’입니다. 엄혹했어도 1980년대가 지나갔듯이 가혹해도 지금의 시간 역시 지나갈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다 알듯이 현재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갈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뿌리 뭉텅 잘려 뒤집어지고”“모가지만 빼꼼 허공에 삐져나”왔어도“아저씨, 좋은 아침!”하고 불쑥하는 “들국화”의 인사에 “그래, 굿 모닝이다!” 맞받아 인사할 수 있다면요. (20240904)
첫댓글 어린 왕자가 "아저씨, 좋은 아침!"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