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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회]
"여기가 도대체......"
홍염화는 지독한 두통에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무이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무이의 모습이 보였다.
"응! 넌 어디 다친 데 없어?"
"난 괜찮아요!"
"아이구, 머리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신가가하고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보다 중간에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겠어요. 조금 전에 정신을 차렸는데......"
무이가 말끝을 살짝 흐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상한 공간이었다. 분명 석실인 것 같았는데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때문에 무이는 홍염화가 깨어나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창피해서 어디다 말도 못하겠네. 그래도 명색이 무공을 익힌 고수인데 이렇게 아무 대책 없이 납치나 당하고......"
홍염화가 자신의 몸을 점검하며 중얼거렸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내력이......"
"저도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했는지 내력이 움직이지 않아요."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우선 이곳을 벗어나자."
"네!"
그래도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만약 이런 황량한 곳에 혼자 던져졌다면 정말 울었을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벽을 더듬으며 입구를 찾았다. 다행히 석실의 입구는 잠겨 있지 않았다.
비록 내공을 쓸 수 없었지만 두 사람 모두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안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별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석실을 나오자 어두운 복도가 그녀들을 맞았다.
홍염화가 무이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조심해!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언니도요."
두 사람은 그렇게 손을 마주 잡고 복도를 걸었다.
공기 중에 느껴지는 습한 기운, 그리고 은은하게 배어있는 비릿한 혈향. 그것은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두 사람의 피로 이런 혈향이 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내 그녀들이 복도를 벗어났을 때 그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들의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균열, 삼십여 장은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대지의 균열이 그녀들의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본래 양쪽을 이었던 동아줄은 끊어진 채 바람결에 덜렁거리고 있었다.
내력이 충만한 평소라도 뛰어넘기에 절대 불가능한 거리였다.
그러니 내력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지금은 당연히 꿈도 못 꿀 거리였다.
"어떻게 하죠?"
"하~아, 글쎄!"
무이의 말에 홍염화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전혀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주위를 둘러보자. 그러면 건너갈 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거야."
"네!"
그녀의 말에 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들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소용없다.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직 신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 이외의 어떤 통로도 없다. 내력을 움직일 수 없는 너희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나 차가운 목소리에 홍염화와 무이는 몸에 한기가 드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균열의 건너편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은색의 귀면탈을 걸친 남자 사우가 보였다. 그는 등을 보인 채 홍염화와 무이에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그곳에 있으면 된다.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당신, 무슨 목적으로 우리를 납치해온 것이죠?"
"명왕을 죽이기 위해... 너희들은 미끼일 뿐이다."
홍염화의 말에 사우는 차갑게 대답했다.
이곳에는 혈뢰옥에 남은 백무귀들 모두가 포진해 있었다. 신황이 은자들을 모두 뚫고 들어왔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반드시 신황 형제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래서 당신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죠? 신가가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요. 그러니 이곳을 피하는 게 당신들의 목숨에......"
"그렇겠지! 하지만 그가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 말을 끝으로 사우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 사우의 모습에 홍염화와 무이의 눈에 당혹스런 빛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들이 신황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죠? 저들을 보니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은데."
"그러게 말이다.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구나. 신가가라면 반드시 이곳으로 찾아올 거야."
"분명 설아가 백부님을 이곳으로 안내할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이는 신황과 설아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것은 홍염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우는 그런 홍염화와 무이를 살짝 곁눈질로 보며 중얼거렸다.
'과연 그가 자신과 너희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우의 눈썹이 찌푸려지며 눈이 떠졌다. 허공중에 느껴지는 지독한 혈향 때문이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혈향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으로 오는 자의 몸에 피비린내가 짙게 배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곳에 그 정도로 짙은 혈향을 풍길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신...황!"
그이 입이 열렸다.
그의 말처럼 혈뢰옥이란 공간속에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신황이었다. 그가 은자들과의 악전고투 이후 설아의 안내를 받아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의 몸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 피와 그의 손에 죽은 사람들의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백부님!"
무이가 신황을 보며 외쳤다. 무이의 눈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너무나 처참한 신황의 모습 때문이었다.
신황이 저리 된 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나는 무이였다.
신황이 무이와 홍염화를 보며 말했다.
"곧...가마."
나지막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무이는 신황의 목소리를 분명히 알아들었다. 때문에 눈물을 훔치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염화는 그런 무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지금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신황이 하는 일을 지켜볼 수밖에.
사우는 가부좌를 풀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그토록 주의하고 조심하라 일렀거늘."
신황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그를 막으러 갔던 파산인과 다른 은자들이 모두 몰살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그 정도의 인원이라면 충분히 신황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계산은 철저히 빗나가고 말았다. 그것은 그만큼 신황이 강하다는 말이 되기도 했다.
사우에게는 이제까지 은자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비장미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주위에 있는 백무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신황은 그에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베어야 할 적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신황이 사우를 보며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백무귀의 우두머리이냐?"
"사우라고 합니다. 당신 말대로 이들의 우두머리가 바로 저입니다."
"저들을 납치한 대가,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그 정도야 충분히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신을 유인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뭐?"
순간 사우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어렸다.
"이곳은 혈뢰옥, 당신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마음대로 해봐."
사우의 말에도 신황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이 정도의 협박에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으면 사선을 넘어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우는 그런 신황을 잠시 바라보다 자신의 뒤를 보며 말했다.
"이곳에는 화맥(火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수백 근의 폭약이 묻혀 있습니다. 단지 수백 근의 폭약이지만 화맥의 중심을 건드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홍염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우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화맥을 건드린다면 이곳같은 거대한 지하공동이 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곳이 붕괴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은자들이 당신을 막지 못할 때를 대비한 최후의 안배입니다."
"그것이 백무광의 생각이냐?"
"백...무광, 아니 화천 그분께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신을 막으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화천이었던가?"
신황은 화천의 이름을 곱씹었다. 오늘에야 처음으로 그 이름을 알았다. 그러나다시 그 이름을 잊을 일은 없을 것이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저들을 구하지 못할 겁니다. 과연 당신이 저들을 구하는 게 빠를까요.
아니면 내 부하가 화맥을 건드리는 게 빠를까요? 비록 당신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하나...
인간의 몸으로 삼십여 장이 넘는 거리를 뛰어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어서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겁니다."
"한 가지만 물어보지. 화천이 노리는 게 무엇이지? 날 죽이는 게 그의 최종목적은 아닐 텐데."
"그것을 제가 말할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죽어야겠지."
사우의 말에 신황이 싸늘히 말했다.
"절 죽일 시간이 없을 텐데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부하들이 화맥을 건드리고 있을 테니."
"그건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야."
촤ㅡ아ㅡ앙!
신황의 팔에 월영인이 맺혔다.
후환을 없애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사우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사우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이런 반응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쿠쿠쿠쿠ㅡ!
순간 혈뢰옥 전체가 진동을 내기 시작했다.
사우의 부하가 화맥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나 신황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우를 향해 다가갔다.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신황의 모습엠 사우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쉭ㅡ!
순간 신황이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자 사우가 외쳤다.
"막아!"
그의 명령에 백무귀들이 신황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인간방패가 되어 신황을 막아갔다.
촤하학!
신황은 그들을 향해 팔을 종횡으로 그었다.
"크으으!"
"흐억!"
백무귀들이 추풍낙염처럼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신황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백무귀들이 벌어준 잠시의 시간, 사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휙ㅡ!
그는 길게 몸을 늘이며 신황이 들어왔던 복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수많은 백무귀들에 둘러싸였으면서도 신황은 그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기이잉!
그의 손바닥 위로 월영륜이 형성되었다. 그는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후 월영륜을 사우를 향해 던졌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던 터라 사우는 단지 팔 하나만을 바닥에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이렇게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신황은 마치 야수의 울음처럼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을 처리해야 할 때였다.
콰콰콰!
혈뢰옥의 진동은 더욱 거세졌다. 바위조각과 먼지가 떨어져 내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백무귀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쉬쉬쉭!
결국 신황이 월영인을 날리며 모두의 숨통을 끊은 후에야 그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신황은 백무귀들의 시체를 신경도 쓰지 않고 홍염화와 무이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얼핏 봐도 삼십 장(백미터)이 넘는 거리다.
제아무리 초절정의 무인일지라도 이 거리를 한 번에 뛰어넘는 것은 무리였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신황은 포기하지 않았다.
절벽 너머 자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여인들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이대로 잃을 수 없었다.
"신가가!"
"백부님!"
홍염화와 무이가 애타게 그를 불렀다. 이미 그녀들이 있는 곳은 급속도로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반드시 구해주마. 기다려라."
신황이 그녀들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설아 역시 신황과 마찬가지로 주위를 분주히 움직였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쿠쿠쿠ㅡ!
그 순간에도 혈뢰옥의 붕괴는 매우 급속하게 진행됐다. 이제 어느 순간 이곳이 완벽하게 무너진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신황은 곧 이를 악물었다.
비록 삼십 장이 먼 거리긴 하지만 모험을 걸기로 한 것이다. 그의 의도를 알았는지 홍염화와 무이가 소리쳤다.
"안 돼요! 백부님, 너무 멀어요."
"그래요! 위험해요. 신가가!"
그녀들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서 목숨을 건 모험을 하려는 신황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오기 때문이다.
콰ㅡ아ㅡ앙!
그때 석벽의 한쪽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며 신원이 나타났다.
"형!"
그가 소리쳤다.
신원의 모습 역시 별로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온통 혈인이 되다시피 한 그의 모습이 그가 얼마나 치열한 격전을 치렀는지 알 수 있었다.
신원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금세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신황이 하려는 일 역시.신원이 급히 절벽 앞으로 갔다. 그리고 신황에게 말했다.
"형, 어서!"
"음!"
신황은 그의 의도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뒤로 물러났다. 이어 맹렬한 속도로 신원을 향해 달려갔다.
신황과 신원이 부딪치기 직전 신원의 손이 깍지를 꼈다. 그리고 신황의 발이 신원의 깍지를 낀 손을 박찼다.
"이야아아아ㅡ!"
신원이 엄청난 기합과 함께 신황이 디딘 손을 힘껏 허공으로 휘저었다. 그러자 신황이 탄력을 받아 쏜살같이 절벽 반대편을 향해 날아갔다.
쉬이익!
그러나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던 신황이 이십여 장쯤 날아갔을 때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원이 근처에 뒹굴고 있는 죽은 백무귀의 다리를 붙잡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맹렬히 회전을 하다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신원이 시신의 발을 놓았다. 그러자 신황이 떨어지는 발밑으로 백무귀의 시신이 날아왔다.
탁!
신황은 신원이 던져준 백무귀의 시신을 발판으로 추진력을 얻어 절벽 반대편으로 날아올 수 있었다.
"백부님!"
도착하자마자 무이가 와락 안겨왔다. 신황은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홍염화에게 말했다.
"다치지 않았느냐?"
"예!"
홍염화가 눈물을 훔치며 간신히 대답했다.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여자라도 이렇게 남자가 목숨을 걸고 도와주러 왔다면 감동을 받을 것이다.
부글부글!
그러나 재회의 감격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절벽의 균열 사이로 시뻘건 고열의 용암이 점점 올라왔기 때문이다.
"형, 빨리!"
신원이 급히 소리쳤다. 그에 신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포의 허리띠를 풀며 무이를 업었다. 그리고 히리띠로 무이와 자신의 몸을 단단히 묶었다. 그런 연후에 홍염화를 안았다.
"준비됐지?"
"네!"
"네!"
신황의 등과 품에 안긴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세 사람은 단호한 표정으로 반대편 절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신황이 맹렬한 속도로 다시 반대편 절벽을 향해 뛰었다.
휘익!
신황의 몸이 길게 포물선을 그렸다. 그러나 채 십오 장도 못가서 그이 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치잇!"
신황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 그의 몸은 올 때보다 최소 두 배는 무게가 늘어나 있는 상태였으니까.
더구나 내력까지 거의 고갈되어 몸을 운신하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몸은 하염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형ㅡ!"
그때 신원이 크게 외치며 근처에 있던 어린 아이 머리통만 한 돌덩이를 던졌다. 또다시 백무귀의 시신을 던지기엔 너무나 거리가 멀기에 생각해낸 호구지책이었다.
팟!
신황은 용암으로 떨어지기 직전 신원이 던진 돌을 박차면서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오 장 여를 날아오르자 신원이 다시 돌을 던졌다.
그렇게 신황은 신원이 던져준 돌을 디딤으로 해서 겨우 신원이 있는 곳을 향해 도착할 수 있었다.
"허ㅡ억, 크허ㅡ억!"
겨우 바닥에 도착한 신황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에 격렬하게 호흡을 토해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동작에 엄청난 혈류를 소화해낸 심장이 지독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서 나가야 해. 용암이 곧 이곳까지 넘쳐흐를 거야."
신원이 신황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신황은 호흡을 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어느새 절벽은 끓어오른 용암으로 가득 넘쳐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암은 어느새 그들의 코앞에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쿠쿠쿠ㅡ!
집채만 한 바위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신황과 일행은 그 사이로 몸을 움직였다.
챙챙챙!
"이야아~!"
"크악!"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 기합소리와 비명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적엽진인은 태극혜검(太極慧劍)을 풀어내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전장의 상황은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주위에 있는 자는 무당의 제자들과 청성 점창파 등의 생존자들과 남루한 옷차림의 개방제자들뿐이었다.
그나마 교수광이 제때 들어와 그들을 안내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대연회장에 갇혀있을 뻔했다.
대연회장에서의 싸움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래서 더 이상 퇴로를 확보하지 못했을 때 교수광이 대연회장의 한쪽 벽을 허물며 나타났다.
그곳은 신황과 공조를 통해 무림맹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그가 비상시를 대비해 확보해놓은 비밀통로였다.
덕분에 그들은 대연회장을 간신히 빠져나와 무림맹의 금지 쪽으로 물러설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의 추적자들이 이곳까지 추적해옴으로써 또다시 격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다시 수많은 제자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적엽진인에게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 세 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비록 태극혜검이 강호의 일절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검공임이 분명했지만, 노인들 역시 범상치 않은 절학으로 대등하게 그와 맞서고 있었다.
"이것이 중원의 일절이라는 태극혜검인가? 과연 신묘하군."
"우리가 적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구려!"
노인들은 적엽진인과 검을 섞으면서 그리 말했다.
그들의 억양에서 적엽진인은 그들이 중원인이 아님을 눈치 챘다. 그러나 그것을 따지기에는 눈앞의 상황이 너무나 급박했다.
우선 이들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적엽진인은 태극혜검의 절초중 하나인 무량겁등(無量怯騰)을 풀어냈다. 이미 살심을 먹었기에 그의 검은 날카로웠고, 또한 독랄했다.
촤촤ㅡ촹!
연신 검이 부딪치면서 노인들이 점점 뒤로 밀렸다. 그만큼 적엽진인의 검에서 줄기줄기 뻗쳐 나오는 검기는 사납기 이를 데 없었다.
순간 적엽진인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내 오늘의 일로 선계에 영원히 들지 못한다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태극검우(太極劍雨)!"
순간 적엽진인의 검이 빙글빙글 돌며 마치 분신인 듯 허공에 자신의 모습을 늘려갔다.
이어 어느 순간, 수많은 은빛의 빛 무리를 만들어내며 노인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마치 검의 비가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
그 모습에 누군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생과 사가 달린 치열한 순간이란 것을 잊게 할 만큼 장관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노인들은 이것이 바로 승부의 분수령임을 알았다. 때문에 그들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자신들의 절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펼쳐냈다.
"낙산월(落山月)."
"법륜천하(法輪天下)."
"해우령(解宇靈)."
노인들이 도도하게 외치며 자신들의 절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펼쳐냈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서 마치 장강의 물결 같은 도도한 기운이 터져 나오면서 적엽진인의 절기와 부딪쳐갔다.
콰콰콰ㅡ!
순간 그들의 기운이 격돌하며 대기가 일그러졌다.
"크헉!"
"으아악!"
이어 답답한 신음과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털썩!
적엽진인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어 격렬하게 각혈을 했다.
"크헉! 우웨엑!"
"사조님!"
"사숙!"
부상을 당한 듯한 적엽진인의 모습에 백우진인과 초풍영이 달려왔다.
적엽진인은 한동안 격렬하게 피를 토한 후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내부가 흔들리는 것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고개를 드니 노인 중 한 명이 매우 슬픈 눈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보고 있었다.
"허허... 이 먼 이국땅에 와서 이리 허무하게 가시다니. 좋은 곳으로 가시구려."
그는 이미 생기가 사라진 자신의 친우들을 보며 허무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적엽진인을 보며 말했다.
"미안하오! 진인. 이럴 수밖에 없구려. 이해해 달란 말은 하지 않겠소."
자신에게 검을 들이대며 말을 하는 자의 눈이 왜 이리 슬프단 말인가? 적엽진인은 검을 들고 다가오은 노인의 눈이 무척이나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
적엽진인은 자신을 부축하는 백우진인과 초풍영의 팔을 뿌리치며 자신의 검을 지팡이 삼아 힘들게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검을 들며 말했다.
"조선에서 오시었소?"
"그렇소이다."
"역시, 명불허전이구려. 그래도 중원 땅에서는 당할 자가 없다고 자부했는데."
"셋이라서 간신히 평수를 유지할 수 있었소. 정말 부끄럽구려."
노인의 얼굴에는 진정 부끄러운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럴 수밖에 없는 자신과, 이런 상황을 거부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그는 정말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고 있었다.
"내 조선으로 돌아가면 오늘의 일을 평생 부끄러워하고 참회할 것이오."
"그 전에 마지막 승부는 가려야 하지 않겠소. 난 아직 죽지 않았소이다."
"그래야지요."
노인은 오직 수도에만 열중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수도하고 있던 산 전체가 이 일에 참여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것은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은자들이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수도를 하고 싶었지만, 몇몇 은자들의 욕심이 이런 최악의 상황에까지 오게 만들었다.
'허! 명왕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인가?'
명왕과 자신들은 태생부터가 다르다. 자신들이 수도를 목적으로 무예를 닦는다면 명왕은 파괴를 목적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명왕이 태어나도록 방조를 한 것은 은자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책임이었다. 결국 모든 일의 원인은 자신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른 은자들은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위치가 흔들린다는 생각 때문에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는 귀원사와 손을 잡았다.
그래도 명색이 수도를 한다는 사람들이 한순간 질투심에 눈이 멀어 이런 환란을 불러일으켰으니, 아무리 수도를 한다 하더라도 선계로 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노인을 슬프게 했다.
다시 두 사람이 검을 마주하고 섰다. 그들의 몸에서는 비장미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카콰콰쾅ㅡ!
그때 그들의 뒤쪽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격렬하게 대지가 진동했다. 진동이 어찌나 거센지 치열하게 격전을 벌이던 사람들은 잠시 싸움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거대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며 대지가 붕괴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이 그 모습을 보며 처연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마지막 수를 쓸 수밖에 없었던가? 잘들 가시게나."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폭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국 혈뢰옥에 있는 은자들로도 명왕을 막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혈뢰옥을 붕괴시킨 것이다.
'이것으로 명왕 가의 핏줄도 완벽하게 끊겼구나.'
그 역시 혈뢰옥의 지하에 화맥이 지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맥이 폭발했다면 그 안에서 살아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명왕의 핏줄이 살아나올 한 가닥 확률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꾸욱!
그는 검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어차피 명왕의 핏줄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면 미련마저 버려야했다. 그의 공력이 그의 검에 도도하게 흘러들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적엽진인은 남아있는 공력을 모두 검에 집중했다.
웅ㅡ! 웅ㅡ! 웅ㅡ!
적엽진인의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그의 검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검의 감촉을 즐기던 적엽진인은 눈을 빛냈다.
쉬ㅡ익!
그가 검을 앞세워 노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자 노인 역시 적엽진인을 향해 마주 몸을 날렸다.
촤촤촤촹!
검 끝과 검 끝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마치 활처럼 휘어지는 검신, 점 하나에 불과한 검 끝을 통해 서로의 공력이 느껴졌다.
투ㅡ웅!
어느 순간 두 사람이 뒤로 물러났다. 최후의 절초를 펼치려는 것이다.
"챠핫! 태극운해(太極雲海)."
"월령천하(月靈天下)."
동시에 그들의 손에서 절초가 펼쳐졌다.
순간 노인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토록 사납게 펼쳐지던 그의 검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에 적엽진인이 흠칫 놀랐으나 이미 공력을 거두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적엽진인의 검초가 노인의 몸에 작렬했다.
콰ㅡ앙!
태극운해의 거대한 힘에 노인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십여 장을 날아가고 말았다.
적엽진인은 검을 거두고 바닥에 누운 채 거친 숨을 쉬고 있는 노인에게 힘겹게 다가갔다.
"...왜?"
그러자 노인이 힘엇는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조...선의 은자들이 모두 자신의 의지로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니라오. 나 역시 그렇고...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오."
"노인장!"
"허...허! 이제야 마음이 편...하구려."
노인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은 정말 편안해 보였다.
적엽진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잘 가시구려."
만약 노인이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면 죽는 것은 노인이 아닌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 대신 죽음을 택했다.
사실 그가 본 은자라고는 눈앞의 세 명밖에 없었기에 그들에게 커다란 악감정은 없었다. 때문에 아까운 검호의 죽음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죽은 노인에게 신경을 쓸 수만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격전이 너무나 험악했기 때문이다.
적엽진인이 세 명의 은자들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사이 어느새 무림맹의 무인들이 다시 그들을 포위했다.
다행히 개방의 제자들은 음식을 먹지 않아 산공독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때문에 아직까지 대등하게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결국 당하는 것은 이쪽이었다. 적엽진인은 침중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다 초풍영에게 말했다.
"몸은 어떠하냐?"
"이제 공력이 어느 정도 돌아오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완전하게 공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구나!"
적엽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곳곳에 처절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만일 이곳에 온 무림인들이 모두 전멸을 당한다면 무림은 심각한 전력의 공백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림의 암흑기뿐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무림을 지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갈문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일 터.'
어떻게 하든 오늘 이곳을 빠져 나가서 전력을 보존해야 했다.
그래서 무림맹을 응징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림의 미래는 없었다.
"힘을 내라. 이들만 뚫는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는 고군분투하는 무인들을 독려하며 검을 휘둘렀다.
"흐흐~ 정말 눈물 나는 광경이군."
그때 무인들의 귀로 매우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왠지 불길한 음성에 무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검을 멈추고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제...갈문."
"이놈!"
무인들의 입에서 절로 이 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을 보며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남자, 그는 다름 아닌 모든 일의 원흉 중 하나인 제갈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인들은 그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분통을 터트렸다.
"네놈이 죽고 싶어 여기까지 왔구나."
"오냐! 네놈을 죽여주마."
무인들이 거친 살기를 터트렸다. 그러나 제갈문의 모습은 너무나 여유로웠다. 마치 유람 나온 문사처럼......
제갈문의 자신감의 근거는 곧 밝혀졌다. 그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복장의 남자들 때문이다.
무림인들과 달리 중갑주로 몸을 감싼 채 말을 타고 있는 남자들.
그들은 바로 이제까지 제갈문이 그토록 자신만만해하던 백팔철기군(百八鐵騎軍)으로 무림맹의 모든 힘이 집약된 결정체였다.
비록 개개인의 능력은 무림의 초절정 고수들에 비해 떨어질지 모르나 이들이 펼치는 집단전은 무림의 고수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백팔철기군이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이상, 이미 지치고 부상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자신하는 제갈문이었다.
초풍영이 제갈문의 얼굴을 경멸스러운 듯 바라보다 이내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쳤다.
"안은 어덯게 되었느냐? 그는......"
백용후를 말함이다. 안에 있어야 할 제갈문이 이곳에 나왔다는 것은 대연회장이 어떤 형식으로든 정리되었다는 이야기다.
"후후! 글쎄 어떻게 되었을까?"
"...설마?"
"모두 정리되었다. 애초에 그렇게 정해진 운명이다 마치 장기판의 졸처럼 그들에게는 애당초 선택권이 없었다. 그것이 화천님의 뜻이었다."
마치 운명의 신처럼 백용후와 마교의 운명을 저울질한 화천. 이미 마교의 허실은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제갈문조차 마교의 일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그리고 일이 터지기 직전에야 겨우 귀띔을 받았다. 스스로 충실한 심복이라고 생각한 제갈문에게조차 비밀을 유지할 정도로 그는 치밀했다.
"이런 짓을 해서 네가 얻는 게 무엇이냐? 이것은 중원의 정기를 훼손하는 것밖에 안된다. "
"후후! 정기는 무슨 얼어 죽을 정기. 하지만 너희들이 모두 몰살을 당한다면, 당분간 무림에서 무림맹의 행사에 감히 대항할 자들은 나타나지 않겠지. 그정도면 족해."
"화천의 개로서 무림을 얻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어리석은 놈!"
분기탱천한 무인의 말에도 제갈문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후후. 그분은 이미 자신이 태어난 땅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이제부터 나의 땅이다."
"뭐라고?"
"애초의 약속이 그랬다. 난 그분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무림맹을 받기로 했지. 그분은 애초에 이곳에 욕심이 없었다."
제갈문의 얼굴에 득의의 빛이 어렸다.
그의 평생 숙원이 이루어졌다.
제갈세가(諸葛世家). 말이 좋아 세가라고 불리지 다른 세가들에게 얼마나 업신여김을 당했는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같은 오대세가에 속하지만 다른 가문들은 무공이 약한 제갈세가를 은근히 무시해왔다.
제갈세가의 뛰어난 두뇌를 인정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은근슬쩍 따돌려온 것이다.
때문에 이제까지 수백 년 동안 제갈세가는 자괴감을 가지고 지내왔다.
제갈문 역시 다른 오대세가에 모멸감을 가지고 지내왔다 그가 아무리 지모로써 무림맹의 어려운 일을 처리하더라도 그들은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무림이란 곳은 오직 무공으로 말하는 곳. 때문에 그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앓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당시의 무림맹은 지금에 비할 수 없이 힘이 약했다. 그때 무림맹주에 등극한 자가 백무광이었다.
아니, 백무광의 탈을 뒤집어 쓴 화천이었다.
그의 유혹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자신의 일만 도와주면 무림맹을 고스란히 물려주겠다는데 누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제갈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화천을 도왔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비록 오늘의 일을 다른 문파들이 알아도 당분간 내부를 추스르기도 바쁠 것이다.
"이제 내 세상이다. 제갈가를 무시하던 모든 문파들은 그날의 일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게 될 것이다. 크하하핫!"
제갈문이 광소를 터트렸다.
"철저하게 미쳤군!"
초풍영이 그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긋지긋한 신황도 없고, 이젠 누가 나를 막을쏘냐?"
"그게 무슨 말이냐?"
"아직 몰랐느냐? 저기 너희들의 등 뒤에 보이는 거대한 구덩이가 바로 신황의 무덤이다. 혈뢰옥이 있던 자리로 신황을 유인해 화맥을 폭발시켰지. 그러니 당연히 녀석이 죽었지."
"그럴 리가 없다. 형님이 겨우 그 정도로 죽을 리가 없다."
제갈문의 말에 초풍영이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그러나 제갈문은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마음껏 비웃었다.
"흐흐, 마음대로 생각하거라. 하지만 녀석이 살아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저나 너무 시간을 지체했군. 벌써 하루가 지났으니......"
쿠ㅡ웅!
제갈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팔철기군이 앞으로 나섰다.
검은색의 중갑주를 차려입은 채 커다란 말 위에 올라앉은 그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었다.
제갈문이 외쳤다.
"정리해!"
격전이 벌어졌다.
무림인들과 무림맹의 무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격돌했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것은 이곳에 초청된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연이은 격전으로 지쳐 있었고, 부상 또한 심했다.
그에 비해 백팔철기군은 강력한 무력을 소유했으며 또한 무자비했다. 때문에 쓰러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청받은 무인들이었다.
"크악!"
젊은 도사 하나가 목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순간 초풍영의 눈이 뒤집혔다. 죽어가는 도사는 평소 그하고 친하게 지내던 사제였기 때문이다.
"이놈!"
쉬쉬쉭!
초풍영은 내력이 딸린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곧장 사제를 죽인 백팔철기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야!"
초풍영은 이를 악물며 창을 들고 서있는 백팔철기군에게 두 개의 검을 휘둘렀다.
채채채챙!
그들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마치 미친개처럼 달려드는 초풍영의 공격에 백팔철기군의 무인 역시 적잖게 놀랐는지, 일시지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뒤로 밀렸다.
그러나 이내 초풍영의 공격에 실린 힘이 많이 모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산공독이 풀린 게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흐흐! 죽어랏."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창을 초풍영의 가슴을 향해 맹렬히 찔러갔다. 그 속에 담긴 힘은 내력이 모자란 초풍영이 막기에는 너무나 거셌다.
그러나 초풍영은 그에 상관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카카카캉!
세 개의 검 중, 두 개가 가위자로 교차되며 창을 막았다. 그러나 백팔철기군의 창에 실린 힘은 너무나 거세 그런 초풍영의 검을 튕겨내며 노도처럼 밀려왔다.
"죽는 건 너다. 이 개새끼야!"
순간 초풍영이 욕을 하며 두 개의 검을 비틀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그의 몸부림에 백팔철기군의 창의 궤도가 흐트러지며 그의 옆구리를 핥고 지나갔다.
푸화학!
창이 긁고 지나간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었다.
그러나 초풍영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불같은 통증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까지 전혀 뽑지 않았던 빙아(氷牙)를 벼락같이 뽑아 백팔철기군의 목을 찔렀다.
푸욱!
"큭!"
백팔철기군의 눈이 부릅떠졌다. 초풍영의 검이 찌른 부분은 두터운 중갑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쿵!
그의 시신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허억, 허억!"
초풍영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공력이 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무공을 펼쳤더니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파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기에는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 급박했다.
"젠장, 빌어먹을!"
초풍영은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다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점점 군웅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갔다. 군웅들은 방진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절정고수의 수가 모자랐다.
적엽진인을 비롯해 절정 무인들은 이미 다른 무인들에게 손발이 묶여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초풍영의 눈에 웃음을 짓고 있는 제갈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 새끼."
제갈문을 보자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일의 원흉이 저리 편하게 웃고 떠들다니.
쉬익!
초풍영이 제갈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안 된다, 이놈아!"
등 뒤에서 초관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초풍영은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제갈문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야아아ㅡ!"
초풍영이 거칠게 고함을 터트리며 제갈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이제까지 한꺼번에 들린 적이 없던 세 개의 검이 한꺼번에 들려 있었다.
"용호빙설아(龍虎氷雪牙)."
순간 초풍영의 외침과 함께 세 개의 검이 동시에 그의 손을 떠났다.
천지인(天地人)의 방위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날아가는 세 개의 검, 검과 검 사이에 미세한 검기가 연결돼 있어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순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용아, 호아, 빙아, 세 개의 검을 보는 제갈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세상에 알려진 제갈문은 지모는 출중하지만 그렇게 무공에 빼어난 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갈세가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했다.
때문에 초풍영은 자신의 공격이 성공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죽어랏!"
"후후! 재미있군. 내가 언제까지나 예전의 제갈문인 줄로 아는 모양이군."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제갈문이 손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순간 그의 오른손이 황금빛으로 빛이 났다. 이어 거대한 황금빛 손바닥이 형성되며 초풍영의 검에 부딪쳤다.
콰ㅡ아ㅡ앙!
이어 터져 나오는 엄청난 굉음, 뒤이어 초풍영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흐흐... 황금제마수(黃金制魔手)라고 불리는 절기다. 화천님이 내게 특별히 전수해주신 절기지.
이것만 있으면 중원에서 누가 날 당하겠느냐? 이제 제갈세가를 우습게본 모든 녁석들이 후회할 차례다."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황금제마수, 호노인의 절기군."
"뭐?"
제갈문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순간 그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그의 얼굴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신...황, 신...원, 네놈들이 어떻게......?"
그의 등 뒤에 나타난 사람들, 그들은 다름 아닌 신황 형제와 홍염화, 무이였다.
비록 혈인이 된 채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무척 추레한 몰골이긴 했지만 그들은 신황 일행이 분명했다.
신황이 입을 열었다.
"호노인?"
"금강산 쪽의 대표 중 하나야. 무척이나 패도적인 인물이지."
"그래?"
신원의 말에 신황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살아나온 것이냐? 어떻게 그 죽음의 함정에서......"
"아직 널 죽이지 못했으니까. 아직 죽일 놈이 있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지독한 놈!"
제갈문이 이를 바득 갈았다.
어떻게 된 놈이 죽음의 함정에 몰아넣고, 사지에 몰아넣어도 그때마다 이렇게 살아나온단 말인가? 저놈은 죽지도 않는 불사신이란 말인가?
신황이 자신의 일에 관계된 이후로 제대로 풀린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하나뿐인 딸마저 신황에게 죽은 이후로 와신상담 했는데 신황은 또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정말 지독한 악연이었다.
"오냐! 이리 된 이상 내 손으로 직접 네놈을 죽여주마. 내 손으로 직접......"
제갈문의 눈에 노화가 피어올랐다. 이어 그의 손에 다시 황금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신황은 잠시 그런 제갈문을 무심한 눈으로 보다 신원에게 말했다.
"저 녀석들은 네가 맡아라. 잠시 후에 합류하마."
"형이 합류할 것 없어. 모두 내 몫이니까."
신원이 그렇게 말한 후 군웅들을 공격하고 있는 백팔철기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피투성이가 됬어도,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신황의 눈은 전혀 죽지 않았다.
분명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이 들어 보이는데 그의 몸에서는 지독할 정도의 한기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신황은 제갈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겨우 뒷구멍으로 꾸민 짓이 이것이었느냐?"
"네...놈, 정말 네놈은 내 필생의 걸림돌이구나. 오늘 내 네놈을 직접 죽여 질기디질긴 악연의 끈을 끊겠다.
"넌 쉽게 죽지 않을 거야. 약속하지!"
"이...놈이!"
너무나 무시한 신황의 말에 제갈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신황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이 지난 자리에 핏물이 배어들었다. 그 모습에 제갈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 놈, 멀쩡한 듯 허세를 부리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었구나. 하긴 그 죽음의 함정에서 어떻게 멀쩡히 벗어날 수 있겠느냐? 하늘이 나의 편을 들어주는구나.'
제갈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예의 황금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황금제마수였다.
제갈문이 손을 허공중으로 뿌리며 소리쳤다.
"황금제마수는 무적이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거라. 신황!"
츄화학!
찬연한 황금빛이 허공을 환하게 물들이며 신황을 향해 밀려왔다.
황금제마수는 세상의 모든 마를 제압하기 위해 금강산에 있던 한 선인이 만든 수법이다.
본래 자비로써 마를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수법이 악인의 손에서 펼쳐지자 그야말고 경천동지할 위력의 파괴력을 손보였다.
콰콰콰!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황금빛의 폭풍을 신황은 무심히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 차가워 만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가 움직인 것은 황금제마수의 기운에 숨조차 쉬기 어려워졌을 때였다.
"이야아아ㅡ!"
쩌ㅡ어ㅡ엉!
커다란 기합소리와 함께 신황의 주먹이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황금제마수의 기운에 작렬했다.
찌지직!
순간 신황의 소매부분이 가루가 되며 허공으로 흩날려 사라졌다.
꿈틀!
신황의 미간이 자신도 모르게 지렁이처럼 움직였다.
생각보다 더 황금제마수의 기운이 거세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자신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반대쪽 손이 다시 휘둘러졌다.
콰ㅡ아ㅡ앙!
이어지는 폭음.
"크윽!"
제갈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신황의 손에서 이어진 충격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밀려왔기 때문이다.
기기긱!
신황의 발이 뒤로 밀리며 깊게 고랑이 파였다. 그러나 신황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챠하핫!"
그의 입에서 거친 기합이 터지며서 그의 두 손이 십자로 합쳐졌다. 이어 월영인이 중첩되며 십자모양으로 제갈문의 황금제마수기운을 가르며 거칠게 날아갔다.
이어 신황은 온힘을 다하여 몇 개의 십자 월영인을 더 날렸다.
콰콰콰콰!
거칠게 일어나는 기의 폭풍, 제갈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자신의 황금제마수가 십자로 갈라지면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거걱!
십자의 기운은 제갈문의 몸을 스치며 지났다.
제갈문의 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응당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황이 멍하니 서있는 그를 지나가며 차갑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콰직!
"큭!"
다리에 느껴지는 충격, 그제야 제갈문의 몸이 휘청거리며 그의 몸에서 양손이 떨어져 내렸다.
"어...어!"
갑자기 느껴지는 허전함에 제갈문이 말을 더듬었다. 분명히 잘린 것은 자신의 손인데 아무런 고통도 없다보니 마치 남의 일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엄청난 고통, 제갈문이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으아아아! 내 손, 내 손이......"
그가 불같은 고통에 미친 듯이 나뒹굴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게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신황이 그의 한쪽 다리마저 부러트렸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친 듯이 나뒹구는 것뿐이었다.
신황은 자신의 등 뒤에서 절규를 하는 제갈문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무당파의 사람들과 대결을 벌이고 있는 백팔철기군을 향해 다가갔다.
푸르르!
히히힝~!
말들이 먼저 신황의 거대한 살기를 느꼈는지 투레질을 거칠게 했다.
전마(戰馬)로 키워졌기에 어지간한 소음과 살기에는 반응을 하지 못하도록 훈련이 되어있는데도 말들은 자신들을 엄습하는 엄청난 살기에 그만 미친 듯이 날뛰고 말았다.
"워어어~!"
"왜 이래?"
백팔철기군이 당황하여 말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말들은 이미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형님!"
"신 대협!"
초풍영과 무당파의 백우진인이 그를 반겼다. 신황은 그들을 바라보다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쉬이ㅡ익!
"큭!"
"허ㅡ억!"
말과 함께 그가 손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자 두 명의 백팔철기군이 목을 부여잡고 말에서 떨어졌다.
단 두 명의 합류였다.
신황과 신원. 그러나 단 두명의 합류로 전장의 흐름이 바뀌고 말았다.
백팔철기군과 무림맹의 무인들은 자신들을 지휘할 제갈문이 두 팔이 잘린 채 바닥에 나뒹굴면서 구심점을 잃었다.
또한 두 팔이 잘린 그의 모습은 자신들도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에 비해 군웅들은 신황 형제의 합류로 용기백배하여 무기를 휘둘렀다.
'바람이 바뀌었다, 허~어!'
적엽진인은 자신을 상대하던 무인들을 베어 넘기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무력으로 따지자면 자신이나 신황이나 그리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군웅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신황의 존재감이었다.
단지 그 하나의 있고 없고의 차이인데도 군웅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것은 그만큼 신황의 존재감이 그들의 마음속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미 승부의 저울추는 군웅들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초관염은 겨우 숨통이 트이자 한쪽에 서있는 무이와 홍염화에게 다가갔다.
"괜찮으냐? 어찌된 게냐? 갑자기 없어져서 걱정을 많이 했단다."
"네! 괜찮아요. 그런데... 기가 꼼짝을 하지 않아요."
"어디보자!"
무이의 말에 초관염이 손목을 잡으며 진맥을 했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다! 산공독에 당한 것뿐이다. 아마 내일쯤이면 공력이 회복될 것이다."
"정말요? 다행이다."
무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제갈문을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저 아저씨, 그냥 저렇게 놔두어도 되요? 지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네 백부가 한 일이다. 괜히 이 늙은이가 끼어들었다가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불쌍하잖아요."
두 팔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제갈문의 모습에 금방 눈물이 글썽이는 무이를 보며 초관염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럼 내가 지혈을 할 테니 네 백부가 뭐라고 하면 네가 말려야 한다."
"넷! 알았어요. 백부님한텐 제가 말할게요."
그제야 무이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캬우웅!
설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울음을 터트렸지만 무이는 상관하지 않았다.
초관염은 고개를 흔들며 제갈문에게 다가갔다.
"악인아! 너는 정말 큰 죄를 지었으나, 저 꼬마 아가씨 하나만큼은 너를 가엾게 여기는구나.
네가 지옥에 가더라도 단 한 사람의 동정이라도 얻었으니 네 인생이 그리 불쌍하다고는 볼 수가 없구나."
그는 제갈문의 어깨에 침을 꽂아 지혈을 시키면서 중얼거렸다.
이미 제갈문은 과다출혈로 인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때문에 초관염이 어깨에 침을 꽂아도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그의 정신은 깨어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초관염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두 팔이 잘리고,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로 뭘 어쩌겠는가? 그저 신황의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지독히도 어두웠던 어둠이 걷히고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형제가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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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요
재미가 있네예. 감사...
감사합니다~~~
즐독이야요~~~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너무나 통쾌한 시간이었읍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고 갑니다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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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하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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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하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