典故(전고)란
우선 전고라는 설명이 구체적이기 이전에 이음절복합어와 이음절단어를 알아보자.
이음절단어는.
한자는 대부분이 독립된 一音節 문자이지만, 이음절로만 쓰이는 한자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蟋蟀(실솔 : 귀뚜라미), 蝙蝠(편복: 박쥐) 등등이 있다.
蟋蟀은 ‘귀뚜라미 실’ 과 ‘귀뚜라미 솔’, 蝙蝠은 ‘박쥐 편’과 ‘박쥐 복’으로 구성된 이음절 단어이다. 두 단어가 하나의 의미로 고정된 글자를 의미한 것이므로 따로 따로 떼어서 ‘蟋鳴 (실명 : 귀뚜라미가 운다)’라든가 ‘飛蝠(비복 : 날고 있는 박쥐)'’하는 식으로 이음절복합어로는 造語가 될 수 없다.
이런 경우는 ‘蟋蟀鳴(실솔명 : 뀌뚜라미가 울다)’ 또는 ‘飛蝙蝠(비편복 : 날고 있는 박쥐)이라 해야 한다.
실솔, 편복, 優雅(우아), 葡萄(포도) 등의 경우는 作詩에 頻繁하게 사용된다.
이음절복합어는
先(먼저 선)과 生(날 생)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복합해서 ‘先生’이라는 단어가 되는데 직역하면 ‘먼저 태어난 사람’이지만 복합어의 구성 성분이 분리되어 각각 제 홀로 의미도 갖는다는 점에서.이음절복합어는 이음절 단어와 다르다.
복합어의 의미는 명백하지 않더라도 대개 그 구성 성분을 보고 짐작할 수 있다.
‘선생’이 가리키는 선생(Sir), 신사(Gentleman), 교사(Teacher)의 의미는 ‘선’과 ‘생’의 문자 그대로의 관념으로부터 추출된다. 먼저 태어났으므로 연장자이고 존경받을 수 있다는 등등이다.
典故는
『引喩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끌어당겨서 깨우쳐 주다>라는 의미이다.
끌어다가 비유하는 걸 인유라 하는데, 인유를 갖고 있는 복합어에 관해서는 특례가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복합어의 의미는 함께 쓰이는 글자들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직역)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서 ‘志學(지학)’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서 ‘志學’은 문자 그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所望’인데 이는 ‘15세에 공부에 뜻을 두었다’는 孔子의 말*에 의한 比喩的인 複合語이고 중국에는 이런 類의 複合語가 수 없이 많으며 이를 특별히 典故라고도 한다.
즉 인유해서 갖는 복합어를 전고라 할 수 있다. * <論語 『吾十有五而志于學』
典故는 詩에 있어서 그 제약을 逆으로 표현상의 효과를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 근본은 한자의 연결에 의하여 하나의 의미가 고정되는 경우 그것이 발생했을 때의 사용방법에 영향되어 구속되고 있는 데 있다.
예를 들어보자.
『揭竿(게간)』
『揭竿』이라는 말을 “장대를 높이 들다.”의 의미에는 틀림없으나 세탁물을 널기 위한 것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고, “돛을 든다, 깃발을 들다.”라는 의미에 한정을 두는 것은 그 역사적 사건의 유래가 있다.
초한이 생기기 이전 秦나라 말기에 最初로 반란의 點火線에 불을 붙인 사람은 陳勝(진승)과 吳廣(오광) 2인이었으며 土木工事에 徵發된 農民을 煽動하여 叛亂軍을 組織하였다. 그러나 正規軍이 아니므로 무기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 나무를 끊어 무기로 삼고 장대를 들고 깃발로 삼았다.”라고 『漢書』의 「陳勝傳」에전해지고 있다.
『揭竿』의 말은 여기서부터 발생하였으며, 그리고 發生時의 사정을 그대로 감안하여 거병한다든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의미에 한정하여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타 ‘晩成’도 그런 類이다.
이와 같이 사실 또는 고서적에 뿌리가 있는 말이며 원래의 사실을 알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충분한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수사로서 사용되는 하나의 典故이다.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는 독서량의 차이요 교양의 차이다.
典故를 사용한 문장은 널리 만인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작자와 동등한 또는 그에 버금가는 교양을 가진 사람을 독자로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전문학을 소수의 지식계급의 독점물로 하기 위하여 사용한 유효한 수단의 하나이며 시에서 아주 많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典故가 가지는 효과는 하나의 일을 말하는데 사실 도는 고전의 이미지와 이중으로 독자에게 인상을 주고자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시중의 몽타쥬적 수법은 어느 쪽인가 하면 산문보다 운문에 있어서 용도가 넓다. 唐 의 古文 이후 산문에 典故를 사용한 것은 많지 않은 데 반하여 시에서는 종종 사용된다고 하는 것보다 시 한 수 중에 하나나 둘의 典故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전고의 사용은 杜甫詩에서 많이 발견된다. < 하영섭, 황필홍 공저 한시작법의 정석 p45~47>』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글 꽤나 공부했다는 지식인들이 자신의 독점물로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어려운 詩作의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배운 사람들이나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거죠!
그래서 본문에 <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는 독서량의 차이요 교양의 차이다.> 라고 못을 박은 건 이런 의미이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전고를 사용할 줄 알고, 열심히 학문을 닦은 사람만이 전고가 실린 시를 이해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인데, 하기사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시답찮게 공부하고서 나도 시를 쓰고 전고를 씁네하고 우쭐대는 사람들 보면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지식인의 독점물이라기보다는 배운 결과를 나타내는 배운 자만의 가질 수 있는 권리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漢詩는 열심히 공부하는 자만이 作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틀린 말은 아니네요.
< 2013. 07. 16 孤松 筆 >
[ 추가 내용 }
중국 시문에서는 기꺼이 고사내력이 있는 字句를 쓴다. 그것이 典故이다.
예를 들어 ‘陽關曲’이란 말이 있다. 陽關이란 곳에서 불리어졌던 가요 등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양관곡은 전고가 있는 말로 지금까지 자주 인용되었던 王維의 「送元二使安西」를 근거로 하고 있다.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에 아침비 내려 먼지를 적시고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객사는 푸르러 버들 빛 새로워라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에게 권하노니, 다시 한 잔 술 다 마시게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친구 없으리니
특히 이 시의 제4구에 ‘陽關’이란 말이 나옴으로써 이 시 전체를 가리켜 ‘陽關曲’이라 불리우는 까닭인즉 가령 송별시에 양관곡을 사용함으로써 겨우 세 자로 王維가 시에 붙였던 이별의 생각 이나 정경의 모든 것을 함축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하면 편리한 기법이다. 詩의 讀者도 ‘陽關曲’이라고 하면 당연히 현재 읽고 있는 시 위에 王維의 「送元二使安西」를 중복하여 생각하니 그 시가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써 전고의 특이한 효과를 낳게 한다.
한시를 거듭 공부하여 전고의 효용을 알게 되면 자기도 전고를 쓰고 싶어진다. 그러나 독서의 쌓이고 쌓인 것으로 인하여 자연히 몸에 밴 지식을 전고로 허여 쓴다면 모르되 단지 전고를 사용해보고 싶다고 하는 그것만의 이유로 어설프게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난하다. 전고를 잘못 써서 뜻하지 않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거소다도 더 주의를 요하는 것은 자기 자신은 전혀 전고를 쓸 생각은 없고 보통의 말을 늘어놓은 것일 뿐이나 실은 그 말은 전고가 있어 딴 의미로 받아지게 될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치자나무(山枹子) 꽃을 읊으려고 생각해서 ‘暗香’이라는 말을 찾았다. 밤에 어딘지 모르게 풍겨오는 치자나무 꽃의 향기가 ‘바로 이 것이다’라고 하여 暗香을 썼다 하자. 그러나 이 暗香은 宋代 林逋의 매화를 읊은 ‘ 暗香浮動月黃昏’이라는 유명한 한 구가 있어 香氣는 향기인데 먼저 제일로 梅香으로 생각하는 것이 시의 독자의 생각인 것이다. 그것을 이해한 뒤에 매향으로 생각하고 읽고 나간다면 무슨 딴 꽃이든 간에 조립하는 것은 각 자의 기교일 것이다. 어쨌든 暗香이란 梅花가 그려진다고 알고 있어야 한다.
君主라 할까 하다가 國王을 쓸 생각으로 주군이라고 썼다 하자. 그런데 주군이라고 하면 그것은 신하에게 나라에서 추방당하여 여행지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는 군주를 말하고 있다.『春秋左傳』에 魯나라 昭公이라는 君이 조국에서 추방되어 망명선에서 제후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주군으로 불리어서 수모를 당했다는 고사기 기록되어 있어 주군이란 그것을 전고의 근거로 한 말이 되고 말았다.
많은 독서에 준해서 잘 쓰이는 전고는 차차 알게 되며 “독서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시는 얕다.”라고 할 수 있으니 많이 읽는 것이 전제되어야한다.
< 하영섭, 황필홍 공저 한시작법의 정석 p263~265>』
부언
한마디로 배우고 독서를 하지 않으면 비록 자신은 시를 짓는 과정에 전고로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알게 모르게 전고가 되는 경우도 있어서 비록 자신이 지은 시라도 남에게는 전고로 인하여 해석이 달리된다는 이야기이죠.
함부로 전고를 사용할 일도 아니거니와 시를 짓는데 사용된 詩語가 혹시 典故로 사용된 적이 있는지의 유무도 파악해야 하는데 어찌 그런 것까지 파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사전에 많이 독서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2013. 07. 19 孤松 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