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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의 작사자로는 윤치호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렇다면 윤치호란 누구인가?
------1912년 총독부가 민족운동세력과 기독교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날조한 '105인사건'의 주모자로 검거되어 복역하다가 석방되었다. 출감 뒤 YMCA 총무·회장, 연희전문학교·기독연합재단법인·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 이사, 송도고등보통학교·연희전문학교 교장, 조선체육회·흥업구락부 회장 등을 역임하며 신교육운동과 기독교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전개된 독립운동에 대해 일본의 '독립불용인론'을 전제로 '자치능력결여론'도 주장했다.
조선의 당면문제는 유해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지적·경제적인 상태의 향상을 통하여 민족적 차별을 철폐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1920년대에는 교풍회(矯風會)·각도인민대표자대회·조선인산업대회 등 일제의 통치정책에 이용된 친일단체와 모임에 깊이 관여했다. 만주사변 직후 총독부 관료와 친일조선인 간의 친목단체인 토요회에 참여했으며,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해 일제가 전시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세운 '내선일체'의 실천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상무이사와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를 지내며 강연회에서 '반도민중의 협력'을 강조했다.
1941년에는 황국신민으로서의 충성과 협력에 대한 결의문을 낭독하고, 친일세력을 총망라한 조선임전보국단의 고문으로 일제의 징병에 협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