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낭송예술인협회 사단법인설립 총회를 준비하며
2013, 3, 9, 14시부터 前 “전국시낭송가협회”가 “한국시낭송예술인협회” 로 “예술인복지법”에 해당 되도록 비영리 사단법인설립을 위한 총회가 열린다.
시낭송은 악보에 없는 소리의 낭송으로 과연 예술로 태어나기 까지,
한국시낭송예술인협회 회장과 사)평생교육진흥연구원 시낭송전임교수인 박운초 시인의 노력이 컸으며 이를 뒷받침 해주시는 본회 이사님등의 공적이 있어 성공 할 것이리라 믿는다.
기예(技藝)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유형, 무형의 형상으로 이조야사에서 실례를 들어 말하고자 한다.
시낭송예술은 어떤 것인가는 모두 거론 할 수 없으나
우리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임금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다. 그리고 장수하신 분으로 당시, 몇 해 동안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냈을 것은 물론 몇 해 동안 잇단 가뭄으로 백성의 궁핍을 면케 하기 위해 곡식으로 술을 빚지 못하게 금주령(禁酒令)이 내려졌으나 지켜지지 않자 포도대장에게 ‘삼일간의 여유를 주고 잡아 내지 못하면 처벌할 것이다.’ 라는 명이 떨어졌다.
그러나, 잡아낼 방법 없이 이틀을 허송하고 마감일엔 머리를 싸매고 평소 찾아 다녔던 관기에 집에 틀어박혀 끙끙 앓게 되자 왜 그런가 걱정을 하며 묻는 정인은 “평소 먹던 술을 굶었더니 병이 생겨 죽을 지경이다.” 라고 말하자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며 술병을 치마 속에 감추고 나가는 것을 미행하였다.
남산골 초가집에 들어 간 뒤 술을 사서 들고 나오는 것을 본 포도대장은 칼을 빼들고 술을 판 집 앞 마당에서 큰 소리로 “상감마마의 금주령을 어긴 자는 당장 나와라!” 하고 소리를 지르자 부엌에 술을 빚던 아낙이 사태를 짐작하고 달려와 꿇어 엎드리고 “죽을죄를 졌으니 제 목을 치십시요!” 하고 목을 길게 빼어 내려치려는 순간이었다.
이 때, 70넘은 노파가 방에서 버선발로 뛰어나와 “아이고 나리님! 제가 먹고 살 수가 없어 술을 팔게 되었으니 저의 목을 처 주십시오!” 하고 가난이 죄로 며느리를 죽이게 되는 노파의 얼굴은 눈물이 범벅되었으며 누구의 목을 쳐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던 찰나에 사랑방에서 낭랑하게 글을 읽던 소리가 뚝 그치고 젊은 청년이 뛰어나와 석고대죄하며 목을 길게 빼고 “불초 소자가 불충하여 할머님과 어머님을 잘 모시지 못하여 임금님의 금주령을 어기게 되었으니 저에 목을 쳐 주십시요!” 하고 사시나무 떨 듯하며 통곡을 하여 온 집안 울음바다로 변하였다.
포도대장이 젊은이의 얼굴을 보니 수려하고 잠깐 들었던 책을 읽던 구음(口音) 또한 예사롭지 않아 빼든 칼을 칼집에 넣고 돌아서 세종대왕께 죄를 자청하자 대노한 세종은 과거 공적으로 보아 죽이지 못하고 귀양을 보냈다 한다.
그 후 십 여 년이 흘러 당시 과거를 급제한 어사가 세종의 명을 받아 민생 탐방에 나섰다가 하루는 어느 주막에서 잠을 청하는데 어디선가 구곡간장을 애이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닮은 피리 소리로 잠에 들 수 없어,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갔는데 희미한 등잔불의 초가집에서 나는 소리라 지나는 객임을 알리고 가슴을 에는 피리소리의 사연을 묻자 굳게 닫혔던 범상치 않은 노인이 지난 과거를 이야기 하는데, ‘금주령의 범인을 잡았으나 3대(三代)의 범인이 죄를 자청하여 차마 죽이지 못하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자기를 살려 둔 포도대장임을 알게 되었다.
일정을 마치고 세종대왕을 알현하여 피리소리의 있었던 일을 고하자 세종 임금은 크게 깨닫고 은원(恩怨)을 풀어 크게 상을 내림은 물론 복직 후 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까지 오르게 되었으며 두 사람 모두 대를 이어 벼슬에 올라 잘 살았다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다.
금주령을 어긴 집안에서 책을 읽던 젊은이와, 귀양살이에 삼라만상의 흥망성세의 한을 삭이는 피리 소리! 그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기쁨과 한탄의 관(管)과 현(絃)의 울림이 바로 예악(藝樂)으로 시의 정서에 맞는 시낭송이 아닐까 한다.
“한국시낭송예술인협회”는 박운초 교수(회장)의 문학에 대한 맑은 정신과 깊은 교감에 많은 문사님들과 사업가들의 후원으로 비영리 사단법인의 촛불을 당겼으며 한국시낭송분야를 정립할 수 있는 희망을 내포한 보람 된 행사가 되리라고 자부하는 바이다. 끝
2013. 3. 8
후기 글: 김응만 한국시낭송예술인협회 총무이사(한국문인협회 양천지부 회장)
(한국시낭송예술인협회 박운초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