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신문 제173호 포덕162(2021)년 6월 10일
의암성사 99주기 추모식
-교단과 유족, 내빈 묘소 참례
제99주기 의암성사 추모식을 5월 19일(수)
교단 대표와 유족, 내빈 등이 참석하여
우이동 의암성사 묘소 참례식을 봉행하였다.
전명운 교무관장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병송, 헌화, 심고
폐식 순으로 추모식을 진행하였다.
헌화는 박인준 종무원장을 시작으로
정유헌, 임종선,
이기대 사단법인민족대표33인유족회장 및 부회장,
고영호 청와대사회통합비서관, 박겸수 강북구청장,
주선원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 고려대33동지회원들,
김혁태상주선도사, 최흥규종의원부의장,
염상철 감사원장대행, 장정희 방정환연구소 소장,
김재옥 (사)미족대표33인기념사업회장,
박충남 의창수도원장, 박차귀 여성회본부 회장,
이재선 청년회장 등이 분향하였다.
이어 박충남 의창수도원장은
내년 의암성사 환원 100주년을 맞아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고,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의암성사 추모 말씀으로
참례식을 마무리하였다.
의암성사는 포덕 2년(1861) 4월 8일
청주에서 태어나 포덕 23년(22세)에 입도하셨다.
성사는 해월신사의 명을 받아
교조 신원운동을 전개했고
광화문복합상소에도 참여했다.
동학혁명 때에는 북접통령으로
이인전투, 우금치전투, 내인 성황산전투,
보은전투 등을 치루며 항일구국전선에 나섰다.
이후 포덕 38년(1897) 12월 24일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으셨고
포덕 42년(1901) 국제정세를 살피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셨다.
일본 체류 중 일진회가 만들어지며
동학이 일제에 이용당하는 것을 막으려 귀국하여,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였다.
포덕 53년(1912) 우이동 봉황각을 건립하여
3년 동안 480여 명의 교인을 수련시켜
독립운동 지도자로 양성하여
3.1운동을 주도하였다.
성사는 3.1운동 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고문후유증으로 1922년 5월 19일 환원하셨다.
내년 의암성사 환원 100주년을 맞아
의암성사기념관 건립 등이 현재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