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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독사
몽천악은 번개처럼 하늘을 가르고 몸을 솟구쳐 오르더니 칠팔 장 밖의 소
자명을 향해서 덮쳐갔다.
그러나 그의 몸이 땅 위로 내려섰을 때는 어느새 수많은 군중들로 포위되
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도검이 어지러울 정도로 몽천악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몽천악은 미처
소자명을 공격할 여유가 없게 되었다.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몽천악은 결심하고 장검을 휘둘러 일
대 살육을 전개했다.
그의 장검이 스쳐 가는 곳마다 귀청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터졌다.
그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의 옷은 피로 물들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간 것일까?
그는 검을 계속해서 쳐 나갔으나 이번에는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몽천악이 사람을 죽일 힘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주위에 죽일 상대
가 한 명도 없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몽천악은 여전히 미친 듯이 장검을 휘둘러 대고 있었다.
그는 자기를 포위한 사람을 제거하는데 너무나 정신이 팔려 있었다. 거의
주위의 사람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검을 휘두른 것이다.
계속 십여 차례의 검이 허탕을 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사태를 깨달았
다.
몽천악은 길게 숨을 내쉬며 왼손에 쥐고 있던 장검을 천천히 내리고 주위
를 한 번 둘러보았다.
땅바닥에는 피가 흘러 작은 내를 이루고 있으며 죽어 나자빠진 시체가 작
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백여 구의 시체를 족히 될 것 같았다.
몽천악은 잠사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사람이 더 있을 탠데...... 그들은 다들 어디로 피신했을까?'
몽천악이 사람을 죽이는 데 혈안이 되었을 때 대부분이 황의의 위사들은
슬며시 사방으로 물러섰던 것이다.
"앗!" 몽천악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긴장하여 주위를 살폈다.
'그들은 전략을 바꿨구나.'
혼잣말이 채 끝나지도 않아 빗발같은 화살이 어둠속을 가르며 날아왔다.
"쏴! 쏴! 쏴!"
'예감이 이상하다. 여기 이렇게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
몽천악은 중얼거리면서 조급하게 달마강기신공을 몸에 운행하고 왼손의
장검으론 한 줄기 검막을 일으키며 전광 석화처럼 북쪽을 향해서 달려갔
다.
이 대전 광장의 십삼사 장의 주위는 대나무, 소나무, 고백나무 등으로 가
닥 차 있었으며 칠흑과 같은 암흑세계였다.
지금 몽천악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무아진교의 위사들은 모두 이 수림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먼 거리에서는 화살과 돌을 날리고 가까운 거리에서는 도림과 창
극(槍戟) 따위를 날려 야음(夜陰)을 이용하여 습격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몽천악이 이 수림속으로 들어왔을 때는 화살이
등 뒤로부터 수없이 날아들었고 좌우 양 옆의 나무 그늘로부터는 네 개의
표창이 찔러왔다.
몽천악은 깊은 심산의 폭포 밑에서 삼 년 동안 고련(苦練)한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바람 소리를 듣고 위치를 분간하여 고요함 속에서 움직임을 택
하고 움직임속에서 고요함을 취하는 최고의 내공 비법을 연성했던 것이
다.
아득한 옛날의 일이었으나 그 시절에 연마한 무공을 이제 아낌없이 실력
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네 개의 표창은 그의 장검에 남김없이 맞아떨어지고 등 뒤로부터 날아 들
어오는 화살은 그가 땅바닥에 엎드려 피하는 순간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
다.
"아악! 아악!" 두 차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몽천악의 장검이 또다시 위력을 발휘하자 나무 밑에 숨어 있던 두 명의
황의의 위사의 머리가 끊어진 것이다.
몽천악이 수림속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의 가슴속을 서늘케 하는
비명소리가 계속 일어났다.
숲의 대나무들이 몽천악의 검을 맞아 와르르 소리를 내며 쓰러지기도 했
다.
이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혈전은 그야말로 무림에서 보기 드문 것이었다.
반 시간의 혈전을 치르고 나서야 몽천악은 비로소 수림속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달빛이 몽천악의 몸 위를 싸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완전히 혈인(血人)으로 변해 있었다. 머리털은 흩어지고 옷
은 갈가리 찢어졌으며 붉게 물든 장검에서는 아직도 선혈이 뚝뚝 떨어지
고 있었다.
몽천악이 이 칠흑 같은 수림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명을 상하게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투는 비록 잠시 멈춘 셈이었으나 몽천악의 호랑이 같은 눈속에서는 여
전히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살기가 번뜩이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악의 괴수인 소자명이 아직도 죽지 않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
다.
이때 몽천악은 마음 속이 또다시 서늘함을 느꼈다.
이곳은 틀림없는 무아진교의 소굴이다. 그런데 이처럼 오랫동안 소자명과
제육교주만으로 몽천악을 상대하도록 내버려 둘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면 제일총교주와 이교주 및 형중구 그들은 여기에 있지 않다는 말인가?
몽천악은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들 세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여기에 있었다면 오늘 밤 자
신은 더욱 불리한 처지에 빠졌을 것이다.
돌연 몽천악의 생각이 변화를 일으켰다. 만일 그렇다면 오늘 자기의 여력
으로 무아진교에 더 큰 치명상을 입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누각과 전우들이 달빛 아래 위용을 과시하며 우뚝 서 있었다.
그 외엔 어디나 다 마찬가지로 칠흑 일색이었고 불빛 한 점 찾아볼 수 없
었으며 또 사람의 그림자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주위는 쥐죽은 듯 깊은 적막에 싸여 불안과 공포가 깃들이고 있을 뿐이었
다.
몽천악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넓은 대전 어디에서 살육의 대상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서성거리던 그는 돌연 칠흑 같은 수림속을 향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소자명, 너는 왜 나오지 못하느냐? 두렵기라도 하단 말이냐? 소자명, 썩
나와서 내 일 검을 받아라!"
몽천악의 천지가 떠나갈 듯한 우렁찬 소리가 밤 하늘을 메아리쳤다.
소자명을 얼마든지 똑똑히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몽천악은 용맹과 무공이 그의 가슴을 싸늘하게 냉각시키기에 충분
하고 자신이 결코 몽천악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소자명은
대꾸가 없었다.
그토록 경비가 삼엄하던 무아진교 총단은 순간,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는 적막과 고요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마치 죽음의 바다로 변할 듯했다.
몽천악은 한참을 우뚝 서 있었다.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몰랐던 것
이다.
이때였다.
별안간 전면의 높은 누각 안으로부터 간담을 서늘케 하는 여인의 애절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극도의 놀라움에 떨며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에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부르짖음이었다.
순간 몽천악은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즉시 번개처럼 그 누각을 향해 달려갔다.
이때 여인의 부르짖음이 또다시 들려왔다.
"흐...... 악, 흐...... 악!"
소리는 뜯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골(毛骨)까지 송연케하여 뜨거운 피가 머
리로 치밀도록 했다.
애절한 여인의 절규는 잠시 멈춘 뒤 다시금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마치
창자를 잘라 버리는 듯 애달프게 들려왔다.
"차라리 나를 죽여다오...... 나는 애원한다...... 이처럼 나를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차라리 나를 죽여다오......."
그리고 또다시 일진의 애절한 울부짖음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흐흐...... 악, 흐흐...... 악악!"
몽천악은 어느새 누각 밑에 이르렀다.
그러나 순간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은 하나의 함정인지도 모른다.......'
몽천악은 정신을 가다듬고 누각 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주저했다.
'틀림없다. 하나의 함정이다. 악당들이 파 놓은 함정일 것이다. 그러나 저
여인이 그들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곳이 아
무리 험악하다 해도 나는 빨리 달려가서 그 여인을 구출해 주어야 한다...
...'
생각이 결정되기가 무섭게 몽천악은 누각 위로 훌쩍 날아올라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일 장으로 창문을 때려 부쉈다.
과연 대정청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무 기둥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한 여인이 굵은 밧줄로 묶이어
있었다는데 여인의 몸은 새빨갛게 자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마루바닥에는 머리를 곧추세우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독사들이
수백 마리 꿈틀거리고 있는데 이미 두 마리가 나무기둥을 따라 그 벌거숭
이의 여인을 향해서 다가들고 있었다.
여인은 얼굴에 온통 공포의 빛을 띤 채 또다시 찢어질 듯이 절규하고 있
었다.
"흐...... 윽, 흐윽...... 윽!"
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던 여인은 문득 몽천악을 발견했다.
순간 여인은 도움을 애원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를 주시하고 있
었다.
몽천악이 갑자기 사납게 외쳤다.
"악한 무리들 같으니라구......!"
분노에 가득 찬 그는 다음 일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도 생각지 않고 곧장
나무기둥에 묶인 여인을 향해서 날아갔다.
"따악!"
순간 장검이 정확하게 나무기둥에 박혔다.
몽천악은 왼손으로 검자루를 잡아서 몸을 허공에 날린 후 오른쪽 소매자
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나 나무기둥 위로 기어오르던 두 마리의 독사는 일시에 그의 소매 속
에서 쏟아져 나오는 유경에 맞아 몇 동강이 나서 죽어 버렸다.
바로 이때였다.
나무기둥에 나신으로 묶여 있던 여인이 별안간 한 마리의 독사처럼 그의
몸에 휘감기는 것이 아닌가!
몽천악은 먼저 그 여인이 어떻게 그 밧줄을 풀었는지 생각할 틈이 없었
다. 더구나 여인의 손에는 한 마리의 검푸른 빛깔의 작은 독사가 움켜쥐
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단 말인가?
여인은 몽천악의 몸에 휘감기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독사로 그의 등을
물게 했던 것이다.
몽천악은 재빨리 오른발을 기둥 위에 대고 여인을 안아서 독사가 꿈틀거
리지 않는 곳을 살펴서 내려놓고는 일 장을 쳐냈다.
무형의 경풍이 스쳐갈 때마다 땅바닥의 독사들은 흰 배때기를 뒤척이면서
한 마리씩 죽어갔다.
이때 갑자기 음탕한 웃음 소리가 벌거숭이 여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호호호호홋...... 호호호호......."
몽천악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았다. 나녀(裸女)는
어느 틈엔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봉긋하게 부풀은 유방이며 자홍빛
의 국부가 엷은 치마 안으로 엿보이고 있었다.
이미 여인은 털끝 만한 괴로움이나 공포의 빛도 얼굴에 띠고 있지 않았
다.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여인의 오른 손안에 한 자 길이가 넘는 한 마리의
검푸른 독사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몽천악은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여인에게 농락을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여인은 매우 침착하게 대답했다.
"무아진교의 제사교주 흑사(黑蛇)여랑입니다."
이 말을 듣자 몽천악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또한 이제서야 비로소 조금 전부터 등 뒤가 흡사 송곳같은 것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오는 사실을 알았다.
몽천악의 얼굴이 별안간 사색으로 돌변했다.
그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는 정녕 죽기를 원하는 거냐?"
몽천악은 여인에게 맹렬히 쳐들어갔다.
그러나 흑사여랑은 꼼짝도 않고 피하지 않았다.
몽천악의 일 장은 여인의 복부를 정통으로 쳐서 맞힌 것이다.
몽천악의 공력으로 말하면 그 일 장이 넉넉히 산을 무너뜨리고 바위를 깨
부숴버릴만했다.
그러나 흑사여랑은 도리어 태연자약하게 코웃음을 치는 것이다.
"호호...... 당신이 나를 죽일 수가 있겠어요? 호호......."
몽천악은 잠자코 여인의 얼굴만을 무섭게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무릇 나의 이 흑록소사(黑綠小蛇)에 한 번 물린 사람이면 삼십 초안에
독성이 크게 발작을 해서 온몸이 힘을 상실하게 마련이오. 당신은 이미
사람을 다치게 할 힘이 없어요."
여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몽천악은 자기의 온몸에서 이미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아진교 제사교주 흑사여랑이란 몽천악에게는 너무나 낯선 이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은 암산에 말려든 것이다.
몽천악은 조금 전 누각 위로 날아올라 여인을 구출하려고 했을 때 웬일인
지 마음 한구석이 께름칙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역시 예감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임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현재의 이런 고통이야말로 너무나 부당한 것이 아닌가...... 공연히 지
나친 자비심을 가지는 것도 잘못이 아닐까?'
몽천악은 쓸쓸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몽천악은 한때의 자비심이 이처럼 큰 잘못을 초래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소. 으음, 이제 당신의 손 안에 떨어졌으니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
대로 하시오."
흑사여랑은 흩어진 머리카락을 가만히 매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살결은 백옥 같으며 보름달처럼 둥그스름한 얼굴은 아름답기가 선
녀와 같았다. 나이는 잘해야 이십사 세 전후로 보였다.
문득 흑사여랑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호, 당신이 내게 자비심을 베풀었다고요?"
몽천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흑사여랑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무아진교의 이백여 제자가 한 시간 동안 모두 당신에게 참혹한 죽음
을 당했어요. 죽인 사람은 당신임이 분명해요. 그와 같은 살인마가 자비
운운하는 게 하늘이 부끄럽지 않나요?"
몽천악은 흑사여랑의 책망하는 소리를 듣자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졌
다.
"당신은 마음대로 손을 쓰시오."
흑사여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을 그처럼 쉽게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몽천악은 이 말을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면 대체 당신은 나를 어떻게 할 셈이오?"
"이미 당신은 무공을 상실하였으니 도망칠 염려가 없어요. 그렇게 때문에
나는 천천히 당신을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 볼 참이에요."
정말 거만한 말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몽천악은 가만히 체력과 진기를 모아보았다.
그러나 몸안의 기혈이 어떤 압력에 완전히 막혀 버린 것 같았다. 한 오라
기의 기력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몽천악은 다시금 쓸쓸하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독사는 이름이 뭐요? 그처럼 무서운 줄은 몰랐소."
그러자 흑사여랑은 독의한 듯 말했다.
"그것은 진짜 독사가 아니고 하나의 무기예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몽천악의 눈길은 여랑의 오른 손에 들린 검푸른 빛깔
의 소사에게로 옮겨졌다. 그 소사는 미동도 하지를 않았다.
그것은 살아 있는 뱀이 아니며 정교하게 뱀을 위장한 하나의 무기였던 것
이다.
몽천악은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라고 부르오?"
흑사여랑이 대답했다.
"흑록영사라 해요."
몽천악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극독(劇毒)을 뱀의 혓바닥 속에 숨겨둔 거요?"
"그래요. 당신의 등뒤가 아팠던 것은 뱀의 입속에 만들어 넣은 혓바닥의
농간이며 이빨은 아니에요."
몽천악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한 후에 물었다.
"당신은 이제 나를 처치할 방법을 생각해냈소?"
흑사여랑은 머리를 내저었다.
"아직도 생각해내지 못했어요."
"지금 나는 비록 무공이 없는 무력한 사람으로 변했으나 누구의 지배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두시오."
"당신은 무공이 폐쇄되었으나 아직도 목숨은 붙어 있어요. 당신이 나의
누각을 한걸음이라도 도망한다면 곧 소사에게 죽음을 당할 거예요."
몽천악은 이 말을 듣자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내가 여기에 머물러 있지만 하면 당신이나 소자명이 나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단 말이오?"
흑사여랑은 냉랭히 웃었다.
"소자명은 감히 내가 하는 일에 간섭을 하지 못해요. 오로지 지금 당신이
두려워할 것은 내가 당신의 목숨을 뺏는 거예요."
몽천악은 눈이 번쩍 뜨이는 듯했다. 그러나 조금도 내색을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다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소. 다만 죽어도 이대로 죽어서는 너무
나 보람없다는 것을 원통하게 생각할 뿐이오."
흑사여랑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죽어도 보람이 없다는 거예요?"
"무아진교 사람들은 잔인하고 인정이 없소. 아까 내가 당신의 부르짖음을
들었을 때, 나는 무아진교의 사람에게 누군가가 참혹한 형벌을 당하는 것
으로 알았기 때문에 급하게 달려왔던 것이오."
"......."
몽천악은 잠자코 있는 여랑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말했다.
"음...... 세상은 참으로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소, 나는 당신도
무아진교 원수의 한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소."
몽천악의 말을 듣고 있던 흑사여랑은 별안간 차갑게 웃더니 외쳤다.
"소자명, 당신이 만일 나의 누각을 한걸음이라도 함부로 뛰어든다면 나는
곧 당신을 뱀에게 물려 죽게 만들겠소."
몽천악은 이 소리를 듣자 곧 고개를 돌려서 누각 밖을 내다 보았다.
누각 밑으로 횃불이 움직이고 있었고 소자명이 한 떼의 황의의 위사들을
거느리고 누각을 포위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소자명은 여전히 검은 흑건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있었
다.
이때 소자명이 머리를 쳐들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사교주의 승낙없이 소자명이 마음대로 어떻게 함부로 규방을 범하겠습니
까?"
몽천악은 이때 공력이 완전히 없어져서 힘은 물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머리속이 어지러웠다.
흑사여랑은 한옆에 선 채 곰곰이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몽천악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연장되면 공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를 보자.'
흑사여랑이 차갑게 냉소를 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이 못마땅하여 사람을 데리고 와서 누각을 포위하
는 거요?"
그러자 소자명은 껄껄 웃더니 대답했다.
"나는 사교주께서 잔결서생을 제거하지 못할까 걱정하기 때문이오."
흑사여랑은 차갑게 호통을 쳤다.
"내가 그를 제거할 수 없다 해도 절대 그를 당신으로 하여금 제거케는 하
지 않겠어요."
그 말을 듣자 소자명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언을 던졌다.
"사교주, 소자명이 오늘 밤 당신에게 공을 세워 속죄할 기회를 주겠으니
당신은 이와 같은 좋은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시오."
흑사여랑은 냉랭히 웃었다.
"당신은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이오?"
"사교주께서 잔결서생을 붙잡았다면 빨리 나에게 넘겨주어야 마땅하오."
흑사여랑은 냉소를 쳤다.
"한 번 이 독사한테 물리면 십 년 동안은 천정의 새끼줄도 두려워한다고
했소. 나는 이 공로를 까닭없이 당신한테 넘겨줄 필요가 없는 것이오."
소자명이 냉랭하게 내뱉었다.
"사교주, 당신이 만일 또다시 잘못을 범한다면 본교의 엄격한 규율은 당
신을 용서치 않을 것이오."
"당신은 안심은 해도 좋아요. 나는 총교주가 돌아올 때까지 이 사람을 감
시할 거예요."
소자명이 굽히지 않고 항의를 했다.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은 사교주께서 끝까지 그를 소모에게 넘겨주기가 싫
다는 거군요?"
흑사여랑은 발끈 화를 내었다.
"당신의 그처럼 간교한 마음씨는 이미 훤히 짐작하고 있어요. 그래요, 잔
결서생을 넘겨주지 않겠어요. 자, 이젠 어쩌겠어요?"
소자명은 냉랭하게 비웃음을 흘렀다.
"사교주는 내가 부하에게 명령을 내려서 누각 안으로 쳐들어가는 걸 두려
워하지 않는 단 말이오?"
흑사여랑은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누각 안에 천백 마리의 독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만일 당신이 독사에게 물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시험을
해 보세요."
소자명은 냉소를 쳤다.
"뱀은 불을 가장 두려워하오. 나는 불을 질러서 이 누각을 태워 버리겠
소."
흑사여랑은 갑자기 가슴이 섬뜩해졌다.
"내가 기르는 독사는 특수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한번 피리를 불
기만 하면 천백 마리의 독사들이 일제히 몰려나가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면 나는 당신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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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하여튼 어디가나 야비한 놈들은 있기 마련이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보고 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