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춤사위의 원형과 변형사이에서 무용계를 걱정하던 이매방 명인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전통춤의 원형을 변질시켜 놓고, 문화재 지정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있으니 주무 관청에서는 더욱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 후보자의 선정방식이나 전수조교 지정절차에서도 해당 종목의 보유자 의견은 무시될 수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통보절차에 관한 상의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최윤희는 2012년, 대전시 무형문화재 <입춤>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고 활동을 하게 된다. <입춤>이란 어떤 춤인가?
<입춤>이란 발 디딤, 곧 서서 추는 모든 춤의 포괄적 이름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4발 동물들과 달리, 양발을 땅에 디디고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발 디딤이란 춤 동작의 기본 틀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 동작은 어쩌면 춤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입춤은 특별히 복장을 갖추지 않은 채, 서서 추는 춤, 입으로 구음(口音)을 하면서 추는 모든 춤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충청권에서 추는 입춤으로는 김숙자의 입춤이 최윤희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우리춤 담론》의 저자, 양종승 박사는 입춤을 일러 자기표현의 춤, 또는 즉흥성이 동반된 춤, 멋과 흥의 춤 등, 인위적이기보다는 발 디딤을 기본으로 하는 자연적인 곡선의 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입춤은 한국전통춤의 발 디딤 기법을 기본으로 하여 손놀림이나 몸 굴림의 기법을 골고루 아우르는 전통춤의 총체이고, 요체로 군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입춤은 모든 춤의 기본 틀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전통무용에 입문하고자 하는 지망생들은 반드시 입춤을 익혀야만,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춤을 학습할 수 있다고 조언하는 전문가가 대부분이다.
입춤은 그 이름 또한 다양하다. 가령 교방(敎坊)의 기녀 학습에서 전승된 춤이고 보면, <교방무>이거나 <교방춤>이라고 부르고, 춤과 음악의 기본 장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4박의 굿거리장단에 맞추는 춤이라면 장단 명칭을 붙여 <굿거리 춤>, 수건이나 부채ㆍ소고, 등 소도구를 들고 춘다면 각각 <수건춤>, <부채춤>, <소고춤> 등으로 불러 왔다. 그밖에도 흐드러지게 추는 춤이라는 뜻에서 <헛튼 춤>, 장단이나 춤사위가 순서대로 짜여진 춤이 아닌, 춤꾼의 즉흥적 감정에 의한다고 해서 <즉흥무>, 흥이 나는 춤이라는 뜻에서 <흥춤>, 기본 동작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기본춤> <기본무>란 이름으로도 불러왔다.
이렇듯 입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고 중요함에도 무용계는 과거 입춤의 가치를 낮춰서 평가해 온 인상이 짙다. 춤 형태를 지닌 반듯한 춤이라기보다는 이리저리 흔하게 굴러다니는 춤으로만 생각해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입춤이 지역을 막론하고 통일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충청, 경기지역의 입춤으로 분류되는 김숙자류 입춤 형태와 호남권이나 영남권과는 구별된다고 말하고 있다.
입춤의 명무 김숙자(1926-1991)는 발걸음을 떼면서부터 아버지 김덕순(?-1961)으로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외 판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소리와 가야금과 같은 악기 등을 배웠다고 한다. 김숙자는 입춤뿐 아니라 경기도당굿 의례들을 <시나위춤>이라는 이름으로 무대화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예술성을 인정받기도 하는 등, 그는 경기 충청지역의 전통춤과 무속춤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살풀이춤>은 1990년에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고, 김숙자는 동 종목의 예능보유자에 올랐으나 그 이듬해에 병사하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된다. 별안간 스승을 잃게 된 최윤희의 허탈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의 회고담 일부에 그의 심정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김숙자 선생님은 제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공부보다는 춤이 좋아 무조건 춤만 추며 살고 싶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저는 지금도 진정한 춤꾼은 오직 춤으로만 살 뿐이라는 생각으로 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춥고 힘든 그 시절에, 선생님 댁에 살면서 선생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고, 즐겁게 해드리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였습니다. 때로는 저에게 ‘너는 내 딸이다!’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해 주셨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 너무 힘드신 듯, 제 앞에서 가끔 흘리시던 선생님의 눈물, 바싹 여위었던 손등, 등이 너무나 슬픈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원하시던 예능보유자가 되시고 나서 너무나 짧은 시간, 그 어떤 춤보다 깊은 멋과 정중동(靜中動)의 극치를 표현하시면서도 무거움을 아름답게 표현하셨던 선생님의 <도살풀이춤>이 그리워집니다. 선생님과 이 세상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이토록 애절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천국에서 평화롭게 그 춤을 추고 계실 선생님을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최윤희의 사연 하나하나가 구구절절해서 사제 간의 깊은 정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