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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불매[因果不昧] - 초관 법등[草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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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이연기十二 緣起를 쉽게 설합니다. ──────────────────────
12연기緣起를 말하기 전에 교학敎學풀이의 한 구절을 인용引用해 보겠습니다.
『불법을 믿는 사람들 중에 의외로 전생, 내생, 업 등의 윤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12연기도 윤회輪廻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불법은 의존적 인과법이다. 자신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조건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조건의 형성이 지속될 때, 존재의 지속도 비로소 가능하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 지속성을 느끼는 것은 뇌의 기억이 지속성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 또한 조건에 의존한 것들이므로 자신의 존재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조건에 의존하여 비로소 존재할 뿐인 존재의 내생 미래 윤회를 관심가지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불법에는 윤회의 유有도 무無도 없다.』
어느 사람이 12연기緣起를 풀이한 전문 중 일부분입니다.
위에서 말하기를,
12연기를 윤회적 관점이 아니라 하면서 또 불법은 의존적依存的 인과법이라 했습니다.
연기, 윤회, 인과因果에 관심이 없고, 그런 것도 모르면서 불교를 논하다니 황당합니다.
연기緣起라는 말은 의존<緣>하여 일어나는 것을 말하고,
윤회輪廻는 이것이 돌고 도는 것을 말하며
인과因果란 이러한 조건의 원인이 인因이요,
조건의 결합이 연緣이요, 조건의 성취가 과果입니다.
또 '조건의 형성이 지속될 때' 라 했는데 지속持續이란 없습니다.
항상恒常 변變합니다.
고로 조건이 형성된 존재라는 것도 항상 변하고 있기에 형성된 존재라는 실체가 없습니다.
법法을 보지 못하고 글자해석을 하면 아무리 지혜가 출중해도 문자해석 하기도 어렵습니다.
또 불법佛法의 윤회는 유有도 무無도 없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해괴한 소리인가?
부처가 말하는 불법佛法이란 佛法이 아니고 시명불법是名佛法입니다.
불법佛法은 없습니다.
처음 글을 올릴 때 모든 사람들이 無, 無法. 空. 虛空. 를 이해하지 못한다 했습니다.
▷ 무無란 유有와 무無
비유非有와 비무非無 모든 단상이 없는 것을 무無라 합니다.
무안이비설신의 무무명 역무무명진 무노사
無眼耳鼻舌身意 無無明 亦無無明盡 無老死
▷ 법이 본래 무법無法이란 말은 정해진 모양이 없어서
무법無法 또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 하는 것이고
▷ 공空이란 모양의 성품<性質>이 비어 있어서
무엇으로도 나툴 수 있기에 空이라 하고
▷ 허공虛空이란 모양의 의지처로 실은 의지할 곳 없는 대상이 허공虛空입니다.
동서남북東西南北 불가사량不可思量
허공虛空을 잠시 가리킵니다.
허공은 만물萬物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언듯 보기에 만물이 땅을 의지한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만물이 모두 허공에 의지하고
매달려 있습니다. 사생육도, 지구, 태양, 삼천대천이 모두 허공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땅을 의지하지 말고 그대 몸을 허공에 맡겨라!!
땅 이란 지옥地獄<흙에 갇힌>생명을 말합니다.
아나함阿那含<不還>은 지구를 벗어나 천상에 낳기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다함斯陀含<一往來>은 한번 다시 옵니다.
오고간다는 말에 국집局執하면 안됩니다. 땅에 국집하기에 착각합니다.
육도중생六道衆生은 그렇게 옵니다.
즉 삼천대천 안에서 그렇게 옵니다<如來>, 지구地球로 오든, 다른 천계로 오든….
생각이 몸에 갇혀 옹색하고, 생각을 조금 넓혀 봐도 지구에 갇혀서 옹색합니다.
마음을 무량대천無量大千으로 넓혀야 합니다.
대적광은 무명無明도 아니요, 무명無明아님도 아닙니다.
허공이 끝이 없듯이 대적광도 끝이 없습니다.
허공虛空이 곧 적광寂光입니다.
고로 광光으로 비춰진 모습이 그대요
그대가 곧 허공이요 부처 입니다.<空卽色>
다함없는 우주의 변방에서도 한 물건<한 티끌>이 일어나면
곧바로 광光에 촉觸<부딪침>하게 됩니다.
대적광大寂光<허공>이 이러하기에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한 티끌도 피할 수 없습니다.
잡다한 문자이론 버리고 곧 바로 느낌의 세계로 들어갑시다.
□ 십이二十 연기緣起를 설합니다. ────────────────────────────
무명 행 식 명색 육처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無明 行 識 名色 六處 觸 受 愛 取 有 生 老死
12연기緣起는 한가지 씩 시간적 공간적으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世尊께서 범천梵天의 망상을 깨고자 자세하게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파하고 이어서
착각하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해 가는가를 확인시키는 말씀입니다.
즉, 앞뒤가 서로 연결되어 일어나는<緣起>변화의 과정을
12단계段階로 이해하기 쉽게 구분지어 설說하신 것입니다.
1. 無明 : 지식은 커녕 지혜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도 없는 곳. 작용 이전의
대적광大寂<光>무지가 무명입니다. 지혜가 없으니 당연히 무명이지요.
2. 行 : 거대한 풍륜<바람> 한 생각<번뇌> 노사나불의 작용. 움직임으로 물결이 일어남
조사祖師들의 착각 : ‘물위로 바람이 지나니 물결이 일어난다.’ 틀렸습니다.
물이 바람 불기 전에 존재한다는 착각입니다. 바람 없으면 물결이 없습니다.
연화장세계는 거대한 풍륜위에 수륜이 있고 그 위에 대연화大蓮華가 피어납니다.
물이란 지수화풍과 동일한 물질로 색色 입니다. 색은 바람 없으면 없습니다.
3. 識 : 바람은 볼 수가 없지만 느낌이 있기에 이것을 분석하려고 지혜가 발동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확인하는 식識. 업식業識의 분석分釋 <태란습화胎卵濕化
스스로 만든 대로 분류됨>
지혜智慧가 있기 전으로 상相이 먼저 생기고 相이 생긴 후에 智慧가 있다.
이 말은 대상對相이 있어야 지혜智慧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대상이 있어서 그것과 부딪쳐야 지혜가 발생하지
대상이 없는데 홀로 무슨 지혜가 있는가?
대적광大寂光은 무지무득無智無得 입니다.
적광寂光에 각자의 업식業識<한생각>이 부딪쳐야 문수文殊의 지혜가 일어납니다.
삼신불三身佛이 한 몸에 동시작용同時作用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십이연기요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구경각究竟覺 입니다.
아함경阿含經에서 붓다와 범천의 대화.
“먼저 상相이 있어 생긴 뒤에 지혜智慧가 있습니까?
지혜智慧가 생긴 뒤에 상相이 있습니까?
혹은 상相과 지혜智慧가 동시에 생깁니까?”
라고 범지梵志가 묻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먼저 相이 있어 생긴 뒤에 智慧가 있다.
상相으로 말미암아 지혜智慧가 있다.”
감각이 없어 인식하지도 못하는 죽은 자에게 어찌 지혜가 있을 것인가.
이 한마디를 이해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으니
천天인人아수라阿修羅를 조복調伏시키는 말입니다.
대천세계가 발생<기세계>하고 문수지혜가 발현하고 육도중생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글은 계속 연결성이 있어서 순서에 맞게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글자를 눈으로 보고 머리로 분석하면 설사 이해를 했다 해도 이미 늦습니다. 지식은
쌓이겠지요 눈으로 보고 몸으로 관통貫通시키면 마음이 밝아지고 환희심이 일어납니다.
문자가 통과通過되는 곳!
그곳이 언어 이전 느낌의 세계로 마음이 일어나기 전前이니
느낌을 지키고 살펴서 근원根源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한 생각 일어나면… <한 생각이 번뇌의 바람입니다>
바람이 일어 물결이 일어나니 물결이 곧 불이라, 불은 형상을 이루니 불이 곧 모양이요,
모양은 흙의 성분을 이루니 四大가 화합되면 그 순서가 먼저 닿고<촉>그 다음에 <수>느낌
이라는 언어 이전以前의 지혜가 먼저 일어나고 지혜가 일어난 다음에 이름<언어>이 생깁니다.
광光에 물체가 닿지도 않았는데 광光이 저 홀로 무엇을 비추겠는가?
광光은 지혜智慧도 물건도 없다.
비유합니다.
남녀男女가 한 방에 있어도 둘이 한 몸이 안 되면 느낌도 없고 느낌이 없으니 느낌을
분석할 지혜도 없는 것과 같으며 천년만년 같이 있어도 아이<果>는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相<대상> 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시이래無始以來 저장된 업력<習>이 자연히 발현되니 가르치지 않아도 때가되면 자동으로 교합하고 과果를 잉태시키는 것이 신身<行>業으로 교합의 절정은 지식知識으로 오는 것도 아니요 지혜智慧로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느낌은 생각과 말이 있기 전에 존재하는 마음이 발생의 근원根源입니다.
쾌감도 문자文字요, 어떠한 수식어修飾語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즉 맛을 봐야 안다! 확인!. 간장醬이 짜다 한들 글자字가 짠 것도 아니며,
모양과 색깔이 짠 것도 아닙니다.
다시 비유합니다.
덜 익은 살구를 어느 때 먹어본 사람은 살구를 생각하면 혀끝으로 신酸맛을 떠올리고 입안에서 신맛이 발생하여 침이 고입니다. 이것이 지혜에서 나오는 신酸맛으로, 한 생각이 신맛을 만들고 있습니다. 즉 과거의 습習으로부터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의업意業 입니다.
현존現存하지 않은 과거에 집착하여 그리워할 때는 눈물짓고, 원망할 때는 과거와 똑같은 마음작용으로 적개심에 분노하여 혈압도 올라갑니다. 실체實體하지 않는 것이 실존實存하는 현재
의 몸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금생에 못다 푼 한恨이 다음 생으로 전이되어 빚을 갚고 또 다른
빚을 집니다.
이것이 인因·연緣·과果의 연결 작용 입니다.
고故로,
허공은 본래 무엇도 없으면서 무엇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삼업三業<習>의 기억記憶입니다.
이것을 취착取着하기 때문에 허공에서 신맛을 일으키는 겁니다.
습習<기억>에 끌려가지 않는 것<不入流 수다원>부터 습習의 욕망慾望을 알고
욕망에서 벗어나는 이욕자離慾者 아라한阿羅漢까지 가르친 것이 금강경입니다.
십지보살이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 동안 이욕離慾<아란나>行을 하면서 욕망이 일어나는
근본을 찾고, 근본 번뇌를 끊어 성불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 일승불一乘佛의 가르침입니다.
다시,
상相이 있고 지혜智慧가 있다는 말은,
간장醬이 상相이요 짠맛을 보는 느낌이 지혜입니다.
부처<허공 = 대적광大寂光>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대가 말하면 듣고, 보여주면 보고 알 뿐,
이것이 무지무득無智無得이라는 반야지혜입니다.
기억이 만물萬物을 만들고 그것을 집착하는 습習이 생사유전됩니다.
교합交合은 무엇이던 느낌을 발생시킵니다. 에너지라 하고 파동波動,
기氣 라는 문자文字가 발생生합니다.
◇ 사랑 ───────────────────────────────────
천 마디 언어보다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어야 만족하는 느낌은 언어 이전의 지혜智慧입니다.
모든 중생들은 자식子息을 쓰다듬고, 자기 짝을 쓰다듬고 이렇게 교합交合하며 살아갑니다.
흙, 물, 바람, 불 모든 것이 서로 交合되는 순간을 서로 닿는다 해서 닿을 촉觸 입니다.
촉觸, 부딪치면 느낌은 자연히 일어납니다. 느낌을 감지感知하는 것을 수受라 합니다.
남녀男女가 닿는 것이 촉觸이요, 접촉하면 느낌을<受>받습니다. 짜릿함을 집착해서
반복하여 교합하려고 사랑<愛>합니다. 사랑의 대상을 취取하려 합니다.
갈애渴愛가 취取를 반복하여 <習>을 낳습니다.
취取하면 자동으로 생명이 나오니,
나오는 생명은 그대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자연自然으로 태어날 것이고, 만들어낸
사람도 그들이 뜻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오는 사람도 모두 각각의 업력業力으로
나타나고 일단 나타난 생명은 늙고 병들게 되니 태어난 생명은 고苦, 집集, 멸滅이라는
생사生死의 고통이 저절로 따릅니다.
여기서 조사언구祖師言句를 비유해 봅시다.[婆子燒庵]
노파가 암자庵子를 짓고 수행자를 이십 년年 동안 공양하고 어느 날 밤 딸을 들여보냅니다.
가서 스님을 안아보라 합니다. 선객禪客이 한다는 말이
고목이 의한암하니 삼동에 무난기로다.
枯木 倚寒巖 三冬 無暖氣
고목이 찬 바위를 안은듯 하니 한겨울인데 따뜻한 기운이 하나도 없구나!
이 말을 듣고 노파는 여태껏 사기꾼을 시봉侍奉했구나 하고 암자를 불태우고
선객을 쫓아냅니다. 스스로 죽은 송장이라고 하니 몽둥이로 때려도 됩니다.
어떻게 하면 안 쫓겨날까요?
수십 년 공부를 했어도 12연기緣起의 글자도 이해를 못한 겁니다.
세존께서 아주 쉽게 설명했어도 전도몽상 때문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느낌이 일어나는 대로 말하면 됩니다.
수행이 잘됐다면
‘참으로 신묘 하구나! 죽은 가지도 살아나는구나!’ 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면 무식하게 죽은 ○을 살리는구나! 음담淫談같지만 쉽게 이해될 겁니다.
상相이 먼저 있고 지혜智慧가 있는 도리 입니다.
대상對相이 없으면 죽은 가지枝<寂滅> 입니다.
이런 문자 풀어봤자 소용 없으니 실상實相을 관觀해야 합니다.
관觀하면 당연히 보여 지는 것….
법法이 이러하건만 어설픈 선객들이 제 발로 찾아다니며
먹고, 마시고 여색女色을 취取하며 과果가 없다고 합니다.
8지 보살八地菩薩이라는 원효元曉스님을 보십시오.
관음보살을 몰라보고, 머슴 사복蛇福을 몰라보고,
혜공스님이 원효에게 오어사吾魚寺 계곡에서 “너는 똥을 싸고 나는 고기를 싼다”
십지보살十地菩薩<아라한>이 한량없는 세월동안 무욕행無慾行<아란나행>을 하면서
보살도를 닦아야 부처를 이룰 수 있건만 겨우 한두 소식으로 막행막식莫行莫食하는 자,
석가釋迦를 외면한 외도外道입니다.
다시 설說합니다.
죽은 나무 가지도 살아나면 당연히 잎이 피고 꽃과 열매 <自然成>저절로 열립니다.
과果는 그대가 원하던 말던 자동自動입니다. 향기도둑이 果를 면치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
적멸<光>이 무엇에 부딪치면 자동으로 천백억 화신불이 나타나는 것이 과果입니다.
꽃밭을 지나다 묻혀온 향기香氣는 그대가 훔치지 않았어도 그대 온몸을 감싸고 있으니
숨 쉴 때마다 입과 코는 물론 온몸에서 향내가 나는데 어찌 취取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는가…?
향기 자체에는 호好 불호不好가 없으니, 그것이 분뇨였다면….
비유합니다.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잘 뛰려고 약을 마십니다. 위원회 측에서 도핑검사를 합니다.
머리카락 한 올에도 혈액 속에도, 세포 속에도, 발톱에도 그대 전신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단 한 방울의 효과가 온 누리에 온 법계에 골고루 평등히 퍼져있습니다.
집중集中!
술, 담배, 음식, 모든 것들이 그렇게 작용합니다.
온갖 음식을 먹습니다.
위胃로 들어간 여러 가지 음식물이 위액으로 소화되어 하나의 물로 변합니다. 그러나 그 물이
곧 바로 피와 살이 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형태로 각각의 기관器官들로 보내
집니다. 각각의 장기臟器들은 혼합된 기운氣運에서 자기가 필요한 원료로 자기 능력대로 물질
을 재생산 합니다.
보살菩薩은 보살을 모릅니다.
또 보살은 부처를 모릅니다.
보살이 무엇을 안다하면 이미 보살은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 무중생상無衆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이 아닙니다.
보살은 남을 시비是非 않고 자기 일만 충실히 합니다.
다시,
그리고 혈액과 진액津液이 인체 여러곳에 순환합니다. 자동입니다.
이것을 지식知識이나 지혜智慧로 알 수 있습니까? 무지無智입니다.
여래는 모공毛孔마다 관觀하고 삼천대천을 관觀하고
제보살마하살을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합니다.
모두 혼합混合된 듯하지만, 각각의 성분은 자기 성품을 잃지 않기에, 체액, 혈관, 세포 등을
살펴보면 담배의 성품 니코틴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약痲藥은 물론이요, 소 돼지의 성품도
전이轉移됩니다. 고로 육식을 하면 성품이 급해지고 다혈질이 됩니다.
흥거興渠를 먹으면 폐肺를 해害하고 마늘大蒜을 먹으면 심장을 해害하는 작용을 합니다.
술은 간과 뇌腦를 해害 합니다.
중생심衆生心은 자신을 위한다고 착각하여 온갖 것을 마시고 먹습니다.
심지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술 담배 하는 것이 좋다고 자기 합리화 시킵니다.
전도顚倒된<뒤집힌> 생각이 자기自己 것도 아닌 몸을 지배支配합니다.
다시 비유합니다.
제 것도 아닌 겉모양의 몸뚱이를 위爲한다고 스트레스 때문에 술 담배를 핀다 합시다.
그대는 졸리면 잠도 자고 쉬지만, 장기臟器들은 부처<그대>에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하느라 쉴 때가 없습니다. 해로운 것을 줘도 묵묵히 보살행을 합니다. 독이 있는 것을 줘도
독毒을 걸러내고 이로운 것만 취하여 몸이라는 부처를 위하여 무주상보시 하고 있습니다.
폐肺, 간肝, 위胃, 심心臟, 신腎臟, 모두가 항순중생恒順衆生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공덕을 모르고 자신이 부처인줄 모르는 중생심은 제보살마하살을
보호하지 못해서 장기臟器에 병이 듭니다. 장기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부처님은 보살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잘 하라고 부탁하지도 않는구나.”
실망합니다. 장기들이 실망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땅한 결과結果가 오겠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肝에, 심장心臟에, 폐肺에, 신장腎臟등 내 몸에서
나아가 가족은 물론 일체중생에게 참회懺悔해야합니다.
한량없는 참회의 눈물을 쏟아 낼 때 장기臟器들은 다시 생각합니다.
“아~!! 내가 착각 했구나. 주인은 아직 나를 보호 하는구나”
다시 일을 하자. 보살행菩薩行을 하자!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식과 지혜로 고칠 수 없는 병을 지혜 이전의 느낌으로 되살려냅니다.
참회懺悔시간이 너무 늦어 돌이킬 수 없다면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果라도 피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길들인 습習을 참회하라!
거짓<허상>의 몸뚱이로 온갖 죄를 범犯하는 습習을 고쳐야 합니다.
병자病者가 3천拜하고 병이 나을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합니다.
인과因果를 똑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당연한 원인과 결과結果입니다.
똑바로 가르치지 못하기에 설득력이 없어 믿지도 않고, 믿지 않으니 확신도 없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외도에게는 비아냥거리요, 속인俗人에게는 미신처럼 보여 집니다.
겉 몸뚱이는 물로 씻어야 깨끗하고 속 몸뚱이는
뼛속까지 짜내는 눈물로 씻어야 때가 벗습니다.
여래도 색신色身은 업의 고집체입니다. 참회 없이 고집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원한의 눈물은 골수로 맺혀들고 참회의 눈물은 골수에 맺힌 죄업을 녹여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달마의 게송을 다시 봅시다.
일화개오엽 결과자연성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
한 꽃에 다섯 잎이 피어나니
과果는 자연히 이루어지니라.
일화一花란 각각의 몸을 말합니다.
즉 사대四大가 화합되면 오엽五葉<안이비설신>이 열리고,
결과結果<마음>는 자연히 이루어진다.
색色<四大>이 있으면 수상행식은 자동自動으로 따라온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이 말을 달마의 법이 혜능을 통해서 중원으로 퍼진다고 해석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지요.
입이 닳도록 연꽃을 가르쳐도 일화一花가 연꽃을 가리키는 줄 모르니 문자지식文字知識의
한계입니다.
법신法身<光>이 무엇에 닿으면, 노사나불의 法門으로
천백억 화신불化身佛은 자동自動으로 생生합니다.
◇ 이제부터 나머지 연기법緣起法이 이해가 쉽게 될 것입니다. ───────────
4. 名色 : 결합結合하고 보니 이름이 존재하기 전前에 물질이 있도다.
지수화풍 사대四大가 물질로 나타나고 보여진 후 이름이 지어집니다.
5. 六處 : 사대가 화합되면 육입六入은 자연히 발생하는데 이 현상은 앞에서 말했듯이
화합<결합>의 受<느낌>을 확인하려는 희망<염원>때문에 점차 진화하여
육입이 자연스럽게 발생됩니다.
고로 여섯 감각기관은 분별하기 전의 허공의 성품으로
대상對相이 없으면 실체實體하지 않습니다.
** 촉觸 하는 대상이 없으면 육근六根자체가 허공입니다. ***
6. 觸 : 무엇에 부딪쳐 맞닿는 현상,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前五識>이 대상對相에
접촉하는 찰라 달마의 게송처럼 오엽五葉이 生하니 결과는 자연성自然成이라.
과果는 자동으로 돌아갑니다.
** 무엇이던 닿으면 과果는 자동自動으로 생겨난다. ***
촉觸하지 마라 촉觸하면 과果를 피할 수 없다!
여래如來도 색신色身으로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촉觸하게 되지만 여래如來는
촉觸후에 갈애渴愛가 없어 수受<느낌>하고, 애愛하여 취取하지 않으니 번뇌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10지十地 보살이 부처가 되려면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이 걸리니 이유는
삼독심三毒心이 아직 미세하게 남았기 때문에 보살만행菩薩萬行을 해야 합니다.
7. 受 : 오근五根이 대상에 부딪쳐서 받아들이는 느낌 작용.
촉觸하면 당연히 느낌<受>이 있겠지요.
8. 愛 : 느낌, 쾌감 등을 사랑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만물은 잉태孕胎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존재합니다.
9. 取 : 애愛의 느낌을 소유하려하는 욕망.
색욕<愛慾>대상을 취取하려는 작용.
10.有 : 취하려는 대상, 대상이 있다는 견해.
욕망의 대상이 변치 않고 영원하다는 착각錯覺.
11.生 : 대상과 교합交合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물질<生命>의 발생.
12.老死: 물질로 나타난 것은 무엇이던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면할 수 없다.
물질은 성주괴공[成住壞空]
살아있는 것은 생노병사[生老病死] 마음은 생주이멸[生住離滅]
12연기緣起를 보여 지는 대로 느낌이 일어나는 대로 바로 즉설주왈했습니다.
즉설卽見하면 순차에 오차가 안 생깁니다.
법문法門이란 법法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門입니다.
생각하고 들어가는 문門이 아닙니다.
그냥 열린 대로 들어가면 됩니다.
나의 글을 머리로 분석하면 법法의 문門은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글자가 통과하듯, 눈으로 보고 곧바로 몸<느낌>이 통과돼야 합니다.
몸이란 느낌을 아는 허상입니다.
아상我相을 버리고 몸의 감각<느낌>으로 통과하면
개대환희皆大歡喜 신수봉행信受奉行하는 그대가 곧 성문聲聞입니다.
◇ 후기 後記 ───────────────────────────────────
책을 본 적이 없어 12연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설명했는가를 살펴보고 곧바로 일어나는
연기緣起를 설파했습니다. 조계종 교학풀이를 봐도 어려워서 나도 모르겠습니다.
간장을 먹어보지 않고 짠맛의 느낌과 모양을 설명하니 간장 맛을 누가 알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일어나는 느낌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몸과
마음에 때가 많아서 느낌을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으로 풀어서 어려운 겁니다.
현상계의 실상을 관觀하고 실상을 바로 전하면 연기緣起가 되며
연기緣起란 잠시도 쉬지 않고 지금도 연기緣起되고 있습니다.
과학도 지금은 우주를 다중차원多衆次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욕계는 집착의 세계요 색계는 물질의 집착을 벗어난 세계입니다.
수미산須彌山 정상은 항상 고요합니다.
그곳을 밝혀야 합니다.
집착의 실체를 설명합니다.
죽은 자는 죽기 전 몸뚱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 죽은 자리를 홀로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이역異域 멀리서 죽으면 오지 못하는 한恨이 인연자에 영향을 줍니다.
하물며 지구<地獄: 흙의 감옥>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想像도 못합니다.
또 “죽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다 산해진미山海珍味도 살아서 먹어라” 하면서
죽고 나면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면서도 정작 죽은 후에는 제사상 받으려 하고,
잘 못차리면 행패를 부립니다. 이러한 중생심의 착심着心은 정말로 질기도 질깁니다.
마음이 허공보다 크다고 말은 하면서 썩은 몸뚱이도 못 벗어나는 마음을 갖는다면
불자佛子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더구나 수행 한다는 사람으로서 가련하지요.
불법佛法이란 정해진 법法<모양>이 없어서 무유정법無有定法입니다.
왜냐하면 연기緣起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무엇으로 연緣하느냐에
따라서 기起하기 때문에 정定해지지 않았습니다.
고故로 무법無法 입니다.
이는 보여지는 모든 현상계가 무상無常하기 때문입니다.
────────────────────────── 不得一法 卽涅槃樂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