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목: 농담
2.쟝르: 소설
3.저자: 밀란 쿤데라
4.출판사: 민음사 2004년판
5.독서기간: 2007.1.28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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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소설 작법(作法) 중의 하나가 의식의 흐름을 쫓아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인데, 이 책‘농담’이 바로 그런 류의 작품이다. 이런 작법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등장인물 간에 대화가 많이 없다는 점이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 이미 시간적으로 많이 지나온,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하게 실낱처럼 남아 있는, 그러나 지금의 나(작품 속의 화자나 주인공)를 존재케 하거나 삶을 이어오게 한 아주 중요한 실마리들을 현재의 일상생활과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리며 마치 실을 뽑듯 한 올 그리고 또 한 올씩 아주 천천히 풀어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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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루드빅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러시아 및 유럽의 동구권을 질풍노도처럼 장악하며 과거의 오랜 왕조 체제를 무너뜨리고 전혀 새로운 체제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나라 중 하나인 체코 프라하에서 기존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학습을 받으며 자라난 일세대 청년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 있던 나라들이 별안간 그 특성적인 원칙들을 무시하거나 깨뜨리며 여태껏 한 번도 있어보지 않아 생소하기만 한 사회주의 원리 속으로 편입되며 삶의 전반적인 질과 양이 급격하게 변화된 체제에서 마치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듯(실제 왕조 체제에서 근대적 사회로 넘어오며 사회주의 노선을 취하게 된 것은 당시로서나 지금으로 보아도 과히 혁명적인, 혹은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상생활의 전반에서 새로운 관습과 규정으로, 아주 얼떨떨한 분위기를 내포한 채 체코 사회는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한 때 루드빅이라는 청년은 아마 잠시 몽환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는 당시 체코 사회를 얼어붙게 했던 사회주의 생활방식에서 일탈하여 서구 부르조아적인 향수를 그리워하며 일부 그 체제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편지에 담아 그의 여자 친구에게 보냈다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대학 인민 재판소에 회부되어 자아 비판을 집중으로 받게 된다. 그 후 그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와서 그로 하여금 훗날 당시를 쓸슬히 반추하게 하는 동시에 당시의 그의 발언들을 농담으로 가볍게 치부하는 모습들을 책의 전반에서 가볍게 터치하듯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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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매사에 진지한 사람은 평생 함께 삶을 살아가기에는 별로 재미가 없다. 서양에서 쓰는 언어 중 위트나 유머가 생겨난 배경에는 아마 방금 전 앞에서 언급한 삶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서 연유할 것이다. 실제 우리네 삶이 매사에 진지해야만 제대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국에 갖은 양념이 들어갈 때 그 국물 맛이 감칠 맛으로 둔갑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아도 가파른 생의 능선에서 농담 몇 마디쯤은 들어가서, 그래서 잠시 하늘이 휘청거릴 정도로 개인의 삶에 변화가 온다고 한다면 그 변화에서 파장되는 갖가지 뉘앙스나 느낌의 폭은 그 전보다 훨씬 윤택하리라 여겨지는 것은 어리석은, 아직 채 겪어보지 않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애송이만의 짧은 견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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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옹호성 편지로 다니던 대학에서 쫒겨나 평범한 일상이 흐트러지며 심지어 그가 사랑하는 여자와의 관계까지 단절되는 우여곡절이, 자본주의식으로 표현하자면 파란만장한 삶이 전개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주의를 채택한 탓에 흔히 현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보여지는 집단적 광기를 제외하고는 경쟁이나 과열, 열정 등과 같이 무한대를 향해 질주하는 듯한 의미의 말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주의에도 어느 선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과거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유산처럼 전해져 오는 가족과 그 울타리의 생활은 이 체제 안에서는 개념의 변화나 변형이 불가피해진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적부터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의식주) 다음인 욕심이-오욕칠정-부정되는 까닭에 생활의 기본 정서가 메말라지기 쉽고 그래서 건조해지고 마침내는 거칠어지게 된다. 거대한 이념이나 주의 앞에 인간으로서 개인이 부정될 때 초래되는 결과다. 즉, 루드빅은 사회주의 완성을 위한 희생 외에는 아무 것도 인정되지 않는 사회 구조 속에서 굳이 민주주의다, 부르조아다, 왕정복고다 하는 차별을 두지 않고도 인간 본연의 가능성을 위한 갖가지 시도에서 차단되고 단절되며 자신의 인생 전체가 회복되기 어려운 구조의 틀 속으로 내던져진 채, 자본주의 사회라면 회복이 상대적으로 빨랐을지도 모르는, 오랜 시간 겉돌다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오긴 하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나이와 철저히 변화된 환경밖에는 스스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 절망적인 세계로 편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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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또 한 가지의 새롭고도 특이한 서술법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소설들에서 서술되어지는 관점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데 전지적 작가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등이 그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 3명이 동시에 등장하여 기존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회고적 서술 방법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 아주 이채롭다.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작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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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간의 사랑은 국경과 시간과 이념을 초월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하의 경직되고 통제가 강한 환경에서, 그리고 삶의 가치체계가 판이하게 다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남녀간의 사랑은 어떻게 전개되어 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보여주는 소비적이고 퇴폐적이며 즉물적인 입장이나 태도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그곳에서는 다소 왜곡되긴 했지만 아직 남녀간의 사랑이 이념의 순수성과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 어느 한 편을 두둔하기 보다는, 남녀간 사랑의 본질에 있어서는 같겠지만, 그 동안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방법과 행위들에 식상해 있다면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전개되는 남녀간의 사랑은 그 희소성으로 해서 음식으로 치면 정갈하고 특이한 소스처럼 전혀 남다르며 순수한 사랑을 목도하게 해준다. 궁핍한 물질로 인해 남녀가 만나서 오붓한 시간을 가지기에도, 같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예술적인 공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그 사랑에 대한 목마름과 갈증은 지극히 순수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끝-(2007.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