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6일 올해 첫 인천 나들이를 하였어요.
첫 번째는 우리 어머니를 뵙는 일.
두 번째는,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에서 지난해 12월에 이어 우문국 예술인생 50년, 한 권의 책에 덧붙여
우문국 최분순의 결혼수첩을 1월에도 이어 전시하는 까닭에 곽현숙 선생님과 아벨서점이
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결혼수첩이야 저 개인은 익숙하니 결혼수첩 전시는 핑계인 셈이지요.
배다리 주변, 예전 다닌 길을 조금이라도 답사하고 싶었지만
지난번에는 어머니와 동행이었기에 못하였거든요.
전시장 결혼수첩은 대충 찍었습니다. ^^
결혼수첩의 종이는 아버지가 상해에서 들어오실 때 갖고 온 중국종이입니다.
책을 묶은 끈은 4개입니다.
4개가 우리 식인지, 5개가 우리 식인지- 들었는데 잊었네요. ㅠㅠ
김동리 소설가
서정주 시인
두 분은 설명이 필요 없을 거고요.
여기 잘 보이지 않는 쪽은
본래 여기 블로그에 있는 걸 오랜만에 이리로 도로 모셔와 봅니다.
가능하면 검색하여 설명도 하려 합니다.
이 아래는 두 분 서예가의 글씨입니다.
검여 유희강 [柳熙綱, 1911~1976] /한국의 서예가./호 검여·소완재주인 /출생지 인천/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서화가로 추앙 받음/
국전에서는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1962년에는 서울 관훈동에 검여서원을 열어 서예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쓰기도 하였다. 글씨는 전·예·해·행서에 두루 능했는데, 1968년 뇌출혈에 의한 오른쪽 마비의 반신불구로 한때 작품활동을 중단하였다가 이를 극복, 왼손으로 서예를 계속하여 인간승리의 일화를 남겼다.
검여 유희강, 검색하면 자료가 너무 많아 다 못 읽음----- ^^
동정(東庭) 박세림.1924∼1975/ 강화 출신. 국전 제2회부터 연속입선, 제7회 특선, 제8회(1960년) 「성교서절록(聖敎序節錄)」으로 문교부장관상을 받았으며 제14회부터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초기 국전출신의 대표적 작가이다(사진 오른쪽 글씨)
張仁植, , 우초(又樵), 1928년 1월 8일~1993년 12월 4일기관 경력 1956년-1957년 인천여자고등학교 교사 1961년-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198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인천시립도서관장, 인천시립박물관장 역임.
(조용하고 그윽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채동선 [蔡東鮮, 1901.6.11~1953]
작곡가 ·바이올린 연주자. /출생지 전남 보성(寶城)
주요작품 《고향》 《모란이 피기까지는》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베를린에 유학, 슈테른센 콘세르바토리움에서 리하르트 하르체에게 바이올린을, 빌헬름 클라테에게 작곡을 배운 뒤 1929년 귀국하였다....
8 ·15광복 직후 고려음악협회(高麗音樂協會)를 조직, 협회장에 선임되었으며, 이후 국립국악원 이사, 예술원 회원 등을 지냈다 ...
김송 [金松, 1909.7.10~1988.4.25]
극작가·소설가./ 호 범산/ 본명 현송 /출생지 함남 함주
주요저서 《남사당》 《청개구리》 《세월》
백영수(白榮洙)
출생 : 1922년 출생
직업 : 서양화가
박목월 [1916.1.6 ~ 1978.3.24]
한국의 시인. 본명 영종(泳鍾). 경북 경주(慶州)에서 태어났다. 1935년 대구 계성(啓聖)중학을 졸업하고 1939...
참조항목 : 나그네, 동인잡지, 문예수첩, 4월의 노래, 서정시
춘춘곡(春谷) 고희동(高熙東) [1886.3.11 ~ 1965.10.22]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가. 1886년 3월 11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관 제주(濟州), 호 춘곡(春谷)이다.
당시 결혼식 연회를 두 차례나 하였습니다. ^^
전란 중에 말이지요.
그래서 여기 날짜가 두 가지입니다.
아래는 단체 서명입니다.
김학성 외 여러 선생님
(전에 어머니가 다 알려주셨는데 지금은 다는 읽고 알 수가 없어요. 다 까먹었답니다. ㅠㅠ)
조병화 김용상 외 여러 선생님
김용상/김병상 신부님의 큰형님
조병화 시인-설명 필요없을 듯.
김영달-사진하시던 선생님, 대건고등학교 교사.
요 아래, 중매쟁이- 라고 적혀 있는데 누구신지는 모르겠네요. 다시 어머니에게 여쭤봐야 할 노릇.
최신해/ [崔臣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학 > 현대문학 1919∼1991. 수필가 겸 정신과 의사. [생애] 호는 삼락당(三樂堂)이다. 1919년 4월 경남 울산에서 한글학자 외솔최현배(崔鉉培)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중학을 거쳐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최영해(전 한국교과서출판협회장), 최신해(의학박사. 청량리뇌병원장), 최철해(도서출판 정음사사장)씨 등 3형제는 그의 아들들이다.
최영해, 김학성, 이하윤, 이진섭 선생님 외
이하윤 [異河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학 > 현대문학 1906∼1974. 시인·영문학자. [개설] 아명은 대벽(大闢), 후에 항렬을 따라 이하윤으로 개명하였다. 강원도 이천 출생. 중외일보 기자. 1921년 경성고보(京城高普)를 거쳐 1929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법학부를 졸업한~
이진섭 [李眞燮]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인문과학 > 문학 시나리오작가 · 방송작가 · 언론인 · 번역문학가. 서울 출생. 연속 방송극 《장미빛 인생》, 뮤지컬《사랑의 도표》등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은 방송작가 겸 저술가. 합동통신·서울 중앙방송국·서울신문·세계통신 등에서 활약하였다
출판인 崔暎海(최영해
출판인 崔暎海(최영해)선생 묘소에 국내서 처음으로 冊碑(책비)등장 1984.10.24. 경향신문 7면 생활/문화 기사(뉴스)출판인 崔暎海(최영해)선생 묘소에 국내서 처음으로 冊碑(책비)등장 詩碑(시비)·노래비에 이어 冊碑... 崔暎海(최영해)씨를 기념하기 위한것. 故人(고인)의 3주기를맞아 28일 京畿(경기)도 南楊州--
이인석 [李仁石] 현대시인. 황해도 해주(海州) 출생. 해주고보(海州高普) 졸업. 평남 도립도서관장(道立圖書館長)으로 있다가 해방 후 월남, 인천(仁川)에서 《노자공보》 편집국장, 《경인일보》 논설위원 등을 역임... 더보기 출생 1917년
김학성 [金學成] 두산백과 영화 및 연극 > 한국영화및연극 영화촬영기사.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영화 《생명》을 비롯해 《오발탄》, 《건너지 못하는 강》 등 많은 작품을 촬영하여 한국영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6 ·25전쟁 중 미국공보원 뉴스... 더보기 관련정보영화, 6·25전쟁, 한국영화- 최은희-. 촬영기사였던 김학성과 결혼하며 평탄한 배우 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이경성 [李慶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예술/체육 > 회화 1919~2009. 미술이론가·미술행정가. [개설] 인천 출신. 호는 석남(石南). 이학순과 진보배의 장남으로 태어나 인천 창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모윤숙 [毛允淑] 1909∼1990. 시인·친일반민족행위자. 전 국회의원] 190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했다. 1925년 함흥 영생보통학교(永生普通學校), 1927년 개성
다 찾아낼 수가 없어서 대략만~ ^^
축시
한상억/
한상억 [韓相億] 대한민국 시인. 《주간인천》주필, 《경기매일신문》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 《그리워라 두고 온 사람들》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호 이록(二綠). 인천 강화 출생.
년 〈자유문학(自由文學)〉에 시 《네거리에서》로 추천을 받고 그 뒤 《강(江)》 《의자(椅子)는 허허한... 더보기 출생 1915년
서글픈 둘러리 조병화^^
더 있지만 설명드릴 수 없어서 일단 여기서 그만~ ^^
이날은 마침 정상학 아저씨가 최분순 누님(우리 엄마)를 보러 왔기에
아벨서점에 같이 왔답니다.
저번 정춘길 도서각 전시회 블로그에 올렸었지요.
정춘길 아저씨는 가장 큰집, 정상학 아저씨는 둘째인가 세째인가 할아버지의 장남.
정춘길과 정상학은 사촌형제입니다.^^
위의 정상학 아저씨는 (흰 머리카락) 조카손자인 달 고양이의 첫 음반, 자켓과 속지, 당시의 로고 등을 모두 맡아 해주셨지요.
(진짜로 하면 엄청 비싼 분인데(정말이야요)------ㅎㅎㅎ 아직 은혜는 못 갚고 있음)
우리가 놓아버린 꿈을 환기시키는 음유시인 달 고양이(Moon Cat)의 정규1집 [시작]
https://blog.naver.com/yellowpeach9/140167299548
이렇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선덕이보다 나이는 아래지만,
나이 어린 우리 아저씨들은
나이 많은 조카의 아저씨 노릇을 언제나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선덕이의 첫 책인 <가브리엘의 침대>는 한종인 아저씨가 책표지를,
두 번째 책인 <서서 자는 나무들>은 여기 정상학 아저씨가 책표지를 해주었습니다.
이날, 1월 6일 토요일엔
서울 인사동 유수한 화랑들이 울 만큼,
관람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늘 이날 같다면 좋겠습니다. 늘 이날보다 많았는지도 모르지만요. ^^
끊이지 않습니다.
아래층 서점도(서점 1호점이 저쪽에 또 있답니다.) 호황이었는데요.
book적 book적
헌 책방에서 진지하게 책을 고르는 안쪽 분들, 분위기가 남다릅니다.
book적 book적(아줌개그)
우리도 책 구경에 시간 가는지 모르다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아벨서점을 나왔습니다.
헌 책방이란 마법의 성, 마술단지 같은 곳이지요.
인천에 산다면 문 닫는 시간까지 만이라도 책을 보고 고르기도 했을 텐데 정말 아쉬웠어요.
나와서는 지난번보다 조금 밝아서 근처를 휘리릭 폰카로 눌러보았습니다.
하얀차 꽁무니 쪽이 아벨서점입니다. 이층이 전시실입니다. 여기가 헌 책방이 많은 거리입니다.
저기 배다리 철교가 보입니다. 저리로 죽 올라가면 싸리재입니다.
여중 3학년 때 저기 웅변학원이 있어서 좀 들락거렸던 생각이 나네요.
이렇게 찍으니 이 길이 넓어보이기도 합니다. ^^
우리는 창영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쪽으로 가보기로 하였어요.
창영국민학교는 선덕이가 1학년까지 다니고 2학년 때 숭의국민학교로 전학하였습니다.
배다리에서 창영국민학교 쪽으로 가는 초입에
공사가 한창입니다. 웬 한옥이 있었던가 봅니다.
우리는- 오빠, 아저씨, 여동생 우미령, 나-
저기쯤이 옛날에 창영당 아이스케키 집이 있지 않았을까, 의견을 주고받았고요.
전도관 쪽으로 올라가다가 (지금은 전도관이 아니라네요- 게다가 전도관은 천부교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으로 바꿨지요)
아벨서점 쪽으로 도로 내려어요.
이 길이 7살 선덕이가 창영국민학교 다닐 때 걸은 길이고,
오른쪽이 창영국민학교(초등)입니다.
옛날엔 정문이 길 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샛길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서 정문이 있더군요.
여기 전봇대 저 뒤쪽으로는- 그러니까 창영국민학교 옆에는 영화학교가 있었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일제강점기에는 영화소학교, 우리어머니와 이모가 다닌 학교입니다.
우리가 다닐 때도 영화학교는 있었고요.
소설가 유재용 선생님도 창영국민학교를 다녔다고 해요.
소설가 오정희 선생님은 피란 시절엔가 신흥국민학교를 다녔다고 들었어요. 4학년까지?
뭐 아무튼요.
오빠가 묻습니다. 오빠와 같이 다녔거든요.
너, 조 앞 꿀꿀이죽 팔던 데 아니?
아니, 나는 꿀꿀이죽은 잘 몰랐어(모를 만큼 어렸습니다).
옛날 창영국민학교 정문이 있던 자리예요.
이곳이 인천의 3.1운동 발상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뒤 벽에 당시 풍경과 지금의 풍경을 대비해놓은 것 같지요? 아마도.
몇 발짝 내려오자
이런 사진관도 있네요.
마을사진관- 다행.
꽃그늘 아래.
또, 아마도^^
이 부지가 큰 도로가 될 뻔했던가 봐요. 그다음 이 관통도로를 위시하여 우후죽순,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작정이었고, 도로를 만들겠다고 우측 집들은 아주 많이 없어졌습니다.
이미 아파트는 들어선 데가 있지만 더는 안 된다며 주민들이 저지하는 중.
주민의 승리를 기원하며 이 어려운 일에 발 담근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복 받으세요!
이상
2018년 1월 06일 토요일 일기 끝이어요.^^
(기네~~~~)
인천에 사시거나
인천에 가실 일이 있거나
가실 일이 없지만 일부러라도~
1950년 전란 중의 결혼식과^^
결혼식에 참석한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껴보세요.
인천 배다리 헌 책방 거리-- 아벨서점
1월 28일까지, 금, 토, 일. 12시에서 5시까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9&aid=0002441696&sid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