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면 문암리門岩里 유래
일월면에서 수비면으로 넘어가는 길목 양쪽으로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문방우 더러는 문암(門岩)이라고도 부른다. 문고개를 넘으면 영양읍과 수비와 봉화로 갈라지는 세 갈래 길이 있다. 비교적 논이 많이 있는 곳이다.본래 영양군 북초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문상동과 문하동(門下洞)을 합하고 문암리라고 하여 일월면에 들게 되었다.
[마을의 특징]
마을에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단나무와 문바위가 있다. 단나무는 홈거리 입구에 있는 소나무인데 둘레가 두 아름이나 된다. 줄기가 비틀려서 하늘로 향한 모양이 두드러진다. 마을에서 동나무를 위하여 해마다 정원 보름이면 고사를 올린다. 문바위는 마을의 남쪽에 있는 바위 이름인데 바위 가운데가 문처럼 뚫어져 있으며 영양읍과 수비면과 봉화군 재산면으로 이어지는 세 갈래 길이 나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개건너ㆍ아릇개건너ㆍ웃개건너
문방우 서쪽에 있는 반변천을 건너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반변천 건너 아래에 있는 마을, 즉 당수구가 있는 곳이 아릇개, 장군천 건너 위에 과수원이 있는 위의 마을을 웃개라고 부른다(조유석(70) 제보). 아릇개건너와 윗개건너는 개건너의 아래 쪽과 위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개는 옛말로 갈-걸이었다 다시 '갈'에 접미사 '이'가 붙어 갈이-가리가 되었다가 소리가 약해지고 떨어져 가리- 가이-개가 되기에 이른다.
*문방우ㆍ문암(門岩)ㆍ문상(門上)ㆍ문상동(門上洞)
1600년 경에 강(姜)씨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가 문처럼 생겼다고 문방우로 이름지었다가, 1800년 무렵 문상동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문암으로 개칭되었다(안진찬(65) 제보). 방우라 함은 이 지역의 말로서 바위를 이름이다.
*삼거리
문방우 남쪽에 있는 마을로 문고개를 넘어서면 영양읍ㆍ수비면ㆍ봉화군으로 갈라지는 세 갈래 길이 있기 때문에 삼거리라고 부르고 있다(조유석(65) 제보).
*홈거리ㆍ홍꺼리(洪溪)ㆍ문하(門下)ㆍ문하동(門下洞)
약 300년 전, 노(盧)씨 일가가 처음으로 이 마을에 들어 와 자리를 잡았으며 마을 앞에 큰 내가 흐르는 것을 보고 홍거리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하천을 좌우로 하여 산기슭에 위치하기 때문에 논물을 대지 못하여 홈을 길게 판 통나무를 설치하여 물길을 끌었다. 이러한 나무 홈통으로 만든 수로가 많아짐에 따라 이것이 마을의 명물이며 특색을 이루어 홈거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문방우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며 문하동으로도 불렀다(장숙환(55) 제보).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홈걸-홈거리-홍걸로 된 게 아닌가 한다. 홈이란 명사에 끝소리 기역(ㄱ)이 붙는 것을 고려하면 기역 앞에서 홈의 미음(ㅁ)이 이응(ㅇ)으로 소리가 바뀐다. 또 거리의 기본형은 걸-갈에서 갈라져 나온 형으로서 거리라고 본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웃문방우
문방우의 위쪽에 위치한 마을인데, 원래 이 마을에 한정해서 불리던 문하리란 명칭이 행정개편 때 홍꺼리ㆍ문방우 등과 통합되면서 문암리에 해당되는 문방우와 함께 문상리라고 불리게 되고, 문하에 해당하는 홍꺼리와 구별하였다. 그러나 점차 문상리는 오히려 문방우에 한정하는 이름이 되고, 이 마을은 웃문방우라고만 불리고 있다(조유석(65) 제보).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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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돌빵구, 엄체, 그랑, 맹글때, 알개, 시갈래, 통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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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마실소개 /145, 224) 일월면 문암리(門岩里)가 궁금니껴?
문암(門岩)은 일월서 수비로 가는 길목 양짝에
문가꺼러 생긴 큰 돌빵구가 있었따꼬
문방우 혹은 문암(門岩)이라 카니더.
카지만 이 큰돌빵구는
국도(31번)가 확장될때 마카 훼손되어
옛모습은 사라졌니더.
본래 북초면(조선시대 1895년) 땅으로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
문상(문방우)캉 문하(홈꺼리)을 엄체가꼬
문암이라 카고
일월면에 속하게 된니더.
(개건너)
문방우 서쪽에 있는 그랑을 건네야 있는
마실이 있니더.
개울(그랑) 건네가 있는 마실이꼬
개건너라꼬 카니더.
(문방우ㆍ문암ㆍ문상)
문암리 중심지 마실로
마을회관이 있는 마실이시더.
1600년경 강(姜)씨 들이 마실을 맹글때
마실 입구에 큰 돌빵구가 양짝에
문가꺼러 서 있따꼬 문방우라 카니더.
1800년경에는
문방우 우(위)쪽에 있는 마실이라꼬
문상(門上)이라 카게된니더.
문암(門岩)은 문방우를 한자로 쓴거시더.
(삼거리)
문방우 알개(아래)있는 마실로
칠성리, 용화리, 수비면으로 농갈라지는
시 갈래 길이 있따꼬 삼거리라 카니더.
1970년경 31번 국도가 확장될때
집들이 없는 500m 알게에
새로운 삼거리가 맹글어 졌니더.
(홈꺼리ㆍ홍거리ㆍ홍꺼리ㆍ문하)
홈거리경노당이 있는 마실로
조선후기 노씨(盧氏)들이 마실을 맹글때
마실 앞에 큰 그랑이 흐른다꼬
홍거리(洪溪)라 카게 된니더.
그후 그랑 좌우의 논에 물을 델라꼬
통낭게 홈을 길게 파가 물낄을 끌어 왔따꼬
홈꺼리라 카게 됬니더.
글꼬, 문방우 알게(아래) 있는 마실이라꼬
문하(門下)라꼬도 카니더.
(웃문방우)
1914면 행정구역 바낄때
홈꺼리캉 문방우을 엄체가 문암이라 칼때
문하(門下)지역인 홈꺼리캉 구별할라꼬
문방우 우(위)쪽에 있는 마실이라꼬
웃문방우라 카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