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저가 이렇게 형편없이 찢어진 것은
차주인이 아까워서 부스러기 떨어진 것만 가지고 우렸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엽저 색이 굉장히 검습니다....
광동에서는 병차를 만들 때, 어디에 팔 것인가에 따라 잎의 구성을 달리 했습니다.
홍콩이나 마카오, 동남아 등지로 팔 차는 대엽종 잎을 썼고
일본사람들에게는 대엽종과 소엽종을 섞어서 만들어 주었다 합니다.
역시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었다 합니다.
광동 자체에서도 대량의 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그래서 후에는 광동에서 생산된 잎으로도 병차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광동병>이라고 불리웁니다....
당시 보이차 수요가 대단히 많았네요.
1965년에 수출한 것이 572톤, 74년에 1천톤, 75년 1235톤으로 늘어납니다.
1980년부터는 수공생산에서 기계생산으로 전환해 생산량이 더 늘어납니다.
83년에 수출량이 3858톤... 어마어마 합니다.
이 많은 차를 누가 다 마셨을까요?
하긴 홍콩 사람들은 우리가 김치 없으면 못 살듯이
보이차를 마셔야 산다고 하긴 하대요.....
1980년부터 90년 사이에 보이차 원료가 부족해서
베트남, 미얀마 등지의 차청을 가져다 가공해서 수출했다 하는데요,
아마도 이때부터 운남도 외국에 차를 수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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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숙차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인공발효 기술이 광동에서 먼저
개발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운남에서 나오는 어떤 자료에서도 이 이야기는 언급된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1974년도에 운남에서 숙차 개발에 성공했다.. 라고만 되어 있고,
광운공병은 변경차의 범주에 넣어서 가볍게 취급하고 있는 분위기인데요,,,
사정을 알고보니 운남사람들이 광운공병을 그렇게 홀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사람들 좀 배타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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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 위에 있는 60년대 광운공병은 생차 같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광동에서 주로 숙병차, 숙산차 외에도 청병도 만들었군요....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구름의 남쪽>
첫댓글 저도 홍콩에서 먼저 보이차를 마셔보았지요~~! 그땐 그저 몸에 좋은 차 정도로만 ~~^^
그리고 한중 수교 무렵 북경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인식한 것 같아요~~^^
경력이 오래 되셨으니 이해를 하시는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잡다한 상식 수준~~^^ 요즘 덕분에 많이 정리 정돈하고 있습니다~~!
겸손하십니다~^^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네요~
도움은 물론이고 잼나요~~!
다음 주 초에 부산 갈 일이 있는데 가능하면 죽로재(부산?)에 들려 볼 생각입니다만~~^^
2월 말 부터 3월 초에는 해외 출장이 열흘 정도 잡혀 있어서 자주 못 뵐 것 같습니다~~!!
그 사이 폭풍 업댓이 되어있으면 ~~!?!^^
죽로재가 오픈 된 공간인지요~~??
네, 죽로재는 일요일, 공휴일을 제외하고 가시면 된답니다.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요, 저녁 7시 정도에 닫는답니다.
오셔서 차도 드실 수 있고, 구입도 가능하고요...
매장에는 누나와 어머니가 계세요.
평소 차에 관해 궁금하셨던 내용이 있다면,
누나에게 물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ㅎㅎ
폭풍업뎃은 좀 무리일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
살살하세요~~^^
네, 슬슬 할께요 ㅎㅎㅎㅎ
월욜 27일 오전 9시 뱅기로 부산 갑니다. 마음은 일찍 일 보고 죽로재 가보려 합니다만~~
오후 5시 전에 일이 끝날 지는 미지수 입니다 ~~^^ 일단 죽로재 전번은 메모해서 갑니다~~!!
오후에 누님이 계실런지요~~!?
해운대에서 샵 까지 몇 분 정도 걸리는지 아시나요~~??
매장이 부산역과 가깝답니다.
해운대에서 오시려면 꽤 시간이 걸리시겠네요~
혹시 모르니 미리 전화를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