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인년엔 봄이 없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4월 말까지 오들오들 떨다 보니 어느새
초여름 날씨. 개나리, 목련, 진달래, 철쭉 등 봄꽃만이 머쓱하게 피었을 뿐, 4월 말까지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종종걸음을 걷다가 이달 들어 갑자기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어
야 할 지경이다.
조상들은 요즘처럼 날씨가 더워지면 산으로 향했다. 특히 졸졸 흐르는 계곡 물에 발을 담
그는 탁족은 훌륭한 건강법이자 피서법이었다. 조선 중기 귀족화가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와 같이 탁족을 표현한 그림도 숱하게 많다. 특히 <고사탁족도>는 선비가 바위에 걸터앉
아 탁족을 하고, 옆에서는 동자가 술시중을 하는 풍경을 그렸는데 선비의 기개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명화다.
선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까운 산에서 탁족을 하면 몸에서 기운이 돋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굳이 기 얘기를 하지 않아도 산에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그 여유로운 마
음이 굳었던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줄 것이다.
탁족은 과학적으로도 그럴듯하다. 짧은 시간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난 뒤 오랫동안 이완시
키면 면역력이 활성화되는데, 탁족은 그런 작용을 하기에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방
에서는 발에 온갖 경혈이 몰려 있기 때문에 이를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서양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발에 주목하고 있다. 발반사요법이 대표적이
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 이비인후과 의사 윌리엄 피츠제럴드가 발반사요법의 효과에 대
해 주장했고, 1989년 발반사요법 학회가 창설돼 수많은 반사요법사가 배출되고 있다. 미
국 어니스 잉검은 <발은 말한다>라는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며 반사요법을 보급했고 독
일, 영국, 스위스 등에서도 반사요법이 유행했다.
이들에 따르면, 발은 인체에서 가장 푸대접받는 부위지만 제2의 심장이라고 할 만큼 중요
한 부위이며 인체의 온갖 장기와 맞물리는 반사점이 몰려 있는 곳이다. 따라서 발을 귀하
게 해서 주무르고 자극하면 건강에 좋고 병을 예방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굳이 반사점을
외우지 않더라도 발을 주무르고 꾹꾹 눌러주면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사
실이다. 탁족과 발 마사지는 발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둘을 병행하면 시
너지 효과가 기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탁족이나 발 마사지를 꼭 계곡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일 집에서 샤워나 발 마
사지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난 뒤나 밤에 자기 전 샤워할 때 ‘개량
형 탁족’ 또는 ‘발마사지’를 하는 것이다.
피로도 풀고 사랑도 키우기
샤워를 할 때는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물줄기로 발바닥을 자극
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으면 좋다. 방법은 간단하다. 샤워에서 나오는 물줄기로 발바닥을
골고루 자극한 뒤 수압을 높여 발바닥의 오목한 부분인 ‘용천혈’과 발등에서 첫째, 둘
째 발가락이 만나는 부위의 바로 위인 ‘태형혈’을 집중적으로 자극하는 것이다. 한방의
경혈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발바닥을 자극하면 혈액 흐름에 도움이 되고 발의 피로
를 풀 수 있어 몸이 상쾌해지게 마련이다.
특히 가족이나 연인끼리 찬물로 상대방의 발을 씻으면서 주무르고 발바닥을 두드려주면
하루 종일 시달린 발의 피로가 풀릴 것이다. 또 발 자극을 통해 면역력을 키울 수 있을
뿐더러 서로 존중하는 참사랑까지 키울 수 있다. 배우자나 연인이 요즘 무기력해 보인다
면 오늘 저녁에는 함께 욕실로 향하자. 발을 씻겨주고 정성껏 자극하면서 사랑과 건강을
함께 챙기도록!
이성주_ 건강의료 포털사이트 코메디닷컴(www.kormedi.com)의 대표입니다. 동아일보 의
학기자 출신으로 아침마다 30만 명에게 ‘이성주의 건강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황우
석의 나라> <행복한 버핏 꿈꾸는 샤넬> 등의 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