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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최우수상
황사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원예린
상수리나무 갈라진 우듬지
붉은 격자무늬 허물 하나 붙어 있다
바늘구멍 송송 뚫린 껍데기
바람을 타고 멀리 쓸려 온 붉은 매미, 그는
목청 놓아 울음보따리 벗어두고 떠났다
그의 등에 돋아 있던 양귀비 망울
꽃 피우기 위해 갉아먹은 나무의 잔재들
잎이 닳을 수록 번져가는 고향 생각에
어쩌면 그는 목 놓아 울었을지도 모르리라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쓰디 쓴 독으로 삼켰을 그
여름의 끝, 축 늘어진 나뭇잎들이
하루하루 멍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등에 업은 꽃을 피울 수가 없다
잎새 사이로 잠깐 반짝하는 유충의 기억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나무꼭대기 붉은 양귀비 하나 넘실 거린다
우수상
바람
광주 살레시오여고
2학년 박성연
엄마의 형상을 한 바람 몇 조각이
거리를 배회하다 사라졌다
별 부스러기 밟히는 골목 안,
아이 하나 골목을 헤매이고 있다
길이 무럭무럭 자라날 동안에
아이의 사춘기는 그곳에서 방치되었다
아이에게 엄마란,
담벼락에 함부로 쓰여진
낙서같은 것이었으므로
온몸엔 그리움이 돋아있었다
애드벌룬을 타고 함께 여행을 가자했던
아이의 바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일까?
녹슨 대문짝은
매일 밤, 신음에 뒤척이던 엄마의
닳아진 연골처럼 위태롭다
눅눅한 그림자를 벗고 누우면
엄마 얼굴 자꾸 떠올랐던 아이.
달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알전구의 허름한 불빛이
달에게 옮아가는 밤이었다
우수상
바람을 모른다
성남 낙생고등학교
3학년 류시영
바람과 나는 모르는 사이다
언젠가 역전에서
노숙하던 바람 몇이 다가와
나뭇잎을 구걸하거나 지나던 행인의
옷자락 흔드는 것을 목격하였다
웅성대며 계절 곁으로 모여들어
꽃 이울도록 허공을 쓸기도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새들의 방언에 귀 기울이다
어느새 옆집 누나의 빨래를 걷어 입고는
이리저리 마당에 뒹구는 것이다
바람과 나는 모르는 사이다
그는 매우 탐구적이어서
여자애들의 치마를 슬쩍 들추고는
아무일 아닌 체 길바닥에 드러눕는다
어느 날은 역무원에게 쫓겨난 바람들이
시골집 텃밭의 배추잎을 매만지거나
고개 숙인 벼이삭이나 흔들고 있다는 소식을
방금 배달된 풍문으로 들었어도
바람과 나는
역시, 모르는 사이다
〈산문〉최우수상
바람
예산고등학교
1학년 손민제
가을이 왔다. 세상에 퍼져있던 화기가 금기가 되며 결실을 맺는 계절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가슴은 너무 허전했다. 발 밑의 풀들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나는 아무 것도 피우지 못했고 맺지도 못했다. 목적없는 공부는 망망대해의 뗏목과 같았고 늘어나는 학교 생활은 나를 묶는 족쇄가 되어 자유를 박탈해갔다. 그래서 난 나의 목표를 찾기위해 우선은 친구들에게 물어 보았다.
“야, 너는 왜 공부를 해?”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도 마찬가지였고 꿈이 있다는 친구들도 목표없이 희망만하고 있었다. 친구들 에게선 해답을 찾을수 없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포류자였다. 작은 뗏목 그 위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표류자,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사회의 족쇄가 나를 속아 오는 사회에서 이렇게 살면 가라 앉을게 분명했다. 여기서 벋어나고 싶었다. 자유로운 바람처럼 무거운 현실을 벋어나, 저높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장자를 만났다.
장자는 모든 것을 무위로서 표현했다. 그의 이야기는 부드럽고 포근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처럼 흥미넘쳤고 그어떤 이야기들보다 도교의 세계를 잘설명해주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양의 신비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도교의 시조인 노자를 만났고 동시대 사람이자 유교의 시조인 공자도 만났으며 비슷한 사상을 펼치는 석가세론도 만났다. 동양의 신비는 너무나 신비로웠다. 나의 지식은 지혜가 되었고 생활엔 행복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그걸로 되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속의 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탐욕스럽고 지저분한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건 금새였다. 문뜩이 깨달은 사실은 나를 슬프게했다.
“변한건 없구나.”
나직한 한숨속에 나의 생활이 비쳐졌다. 난 그저 남들을 비판하고 있었다. 나를 보지 않은채 그저 남들의 행동을 보고 비판하기만 하고 나의 행동을 고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부처가 말했다.
“나를 비워라”
장자가 말했다.
“무위 자연하라”
사회가 나쁜 것이 아니였다. 그저, 그저 나의 욕망되고 그릇된 행동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간다. 반성을 하길 시작했다. 그리고 난 지금도 자신을 반성했다. 난 바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그저 나를 다시본다.
우수상
깊은 뿌리를 내리고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3학년 김민경
몇날 며칠 비바람이 전국에 몰아쳤다. 기숙학교인 우리도 휴교령이 내려질 정도로 큰 태풍이 온다고 했다. 교실안 아이들은 얼마나 큰 태풍이 오겠냐며 저들끼리 떠들었다. 조회가 시작되고 선생님이 태풍이 오면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태풍이야기를 하는데, 사람이 날아갈 수도 있다니 밖에는 나가지 말아라 다시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자 모두 잠잠해졌다. 잠장한 적막 속에서 선생님은 유의사항을 말씀하셨고, 나는 우리가 봄부터 키어온 작물들을 걱정했다. 콩, 수수, 오이, 벼와 같은 약한 것들을 위해서라도 태풍이 우리학교를 빗겨나가 애써 키운 작물이 무사했으면 하고 바랐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태풍은 오후에 오니 오전수업은 한다고 학교에 가라는 기숙사장 목소리가 들렸다. 휴교라고 좋았다가 투덜거리며 학교에 갔다.
그때부터 하늘은 심상치 않은 빛을 띄고 있었다. 온통 회색인 하늘과 어디선가 느린바람이 불었다. 나무들은 슬렁슬렁 흔들리고 있었다.
한창 오전수업을 받는 중이었다. 창문이 덜컹거려 창 밖을 봤다. 하늘은 더 어두워졌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있었다. 학교 밖 버즘나무의 가지가 바람에 낭창낭창 흔들렸다. 그 때 하얀 비닐이 공중에 날리는 것이 보였다. 비닐하우스의 비닐이었다. 문뜩, 비닐하우스 안 수많은 작물들이 기억났다. 이 모진바람에 논과 하우스의 작물들은 잘있을까.
이미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 속에는 온통 한가지 생각 뿐이었다. 태풍이 지나가면 작물들은 어쩌나.
오후에는 수업을 하지 않았다. 태풍은 더욱 심해지고 학교 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다. 우리는 기숙사로 돌아가 어서 이 거센바람이 지나가길 기도했다.
다음날, 태풍은 지나갔고 길에는 미처 여물지 못하고 떨어진 은행과 푸른잎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그것들을 툭툭 밟으며 학교에 내려갔다. 밟히는 부러진 가지와 퍼런 은행이 터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조회시간 간밤에 태풍이 지나갔고 실습시간에는 학교정리를 한다고 선생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 표정이 지난밤에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아무도 태풍피해는 어떻냐고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실습복을 입고 노지로 갔다.
비닐은 다 뜯겨 너덜거리고 철근은 휘었다. 그 속은 물바다가 되어 곳곳에 물웅덩이가 고여있었다. 질척이는 땅바닥에는 오이, 호박 넝쿨이 뒹굴고, 토마토와가지는 꺽이거나 쓰러져 있었다. 지지대 역시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 암담한 심정으로 정리해 나갔다.
진흙 투성이가 된 손에 꺽인 작물들을 잔뜩 들었다. 옷이 눅눅히 젖었지만 신경쓰이지 않았다. 애써 키운 작물을 들고 터덜터덜 퇴비장으로 걸어갔다.
거름이 될 이것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나지 않은 하우스의 밭이 처참해보여 발걸음이 무거웠다. 퇴비장 근처에 도착해 주변 논을 둘러보았다.
아, 내가 보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단 하나도 쓰러지지 않고 서있는 벼들이 눈에 가득 찼다. 어디에서도 태풍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미처 떠나지 못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응어리진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벼들의 처연한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모진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은 이 벼들은 지난봄 직접 물을 대어 손모를 낸 것이다. 하루종일 논바닥에 허리굽혀 심었던 모들이 봄, 여름 바람, 비, 가뭄을 견뎌내고 자라 스스로 일어설 힘을 기른 것일거다. 하우스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란 작물은 그 뜨거운 가뭄 속 목마름을 세찬비의 따가움을 모른 채 여리게만 자라 고통을 이겨낼 힘이 없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없는 억세고 굳은 뿌리를 가지고 있을 저 논의 벼들. 그 벼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꺽인 작물을 버리고 논길로 걸으며 바람이 거세어도 이 벼들처럼 흔들리며, 흔들이며 옹골찬 뿌리를 내리리라 속으로 조용히 다짐하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돌려 어지러운 학교 하우스로 갔다. 저 벼들처럼, 저 벼처럼 뿌리를 내리리라.
우수상
몽골의 바람
보평고등학교
2학년 강지예
“이 시에서 바람은 시련과 고난을 의미하는 건데 ......”
학교 문학 수업 시간,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린다. 점심시간 직후인 5교시 수업은 항상 조용하다. 꾸벅꾸벅 졸거나 심지어는 아예 엎드려서 잠을 청하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교실에는 서걱거리는 펜 소리와 선생님의 설명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바람이 선선히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쓸어주고는 쑥스러운 듯 도망가 버린다. 창가에서 떨어진 자리인데도 바람은 섬세하게 한 명 한 명을 스쳐 지나간다. 어느새 내 귀에는 바람 소리만이 들려온다. 귀를 기울여 속삭임을 듣는다. 자신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는듯하다.
그 바람은 당연히 잊을 수가 없다. 나를 그렇게 따갑게 때리는 모래 바람은 처음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나를 덮쳤던 모래 바람과는 비교할 수 없다. 몽골은 규모부터가 달랐다. 낯선 타국과의 첫 만남을 그렇게 시작하다니, 당황스러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몽골에는 학교에서 해비타트 봉사활동을 하러 간 거였다. 우린 그곳에서 집을 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을 지을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정해진 공간의 흙을 퍼 내는 게 첫 번째였다. 우리는 목장갑과 마스크, 보안경을 받았다. 작년과는 다른 장비에 무슨일인가 싶었다. 인도네시아에 갔던 작년에는 목장갑만 받았다. 우리는 머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바퀴 밑에서부터 먼지가 풀풀 휘날렸다. 우리가 있는 쪽까지 날아오지는 않았지만, 입이 떠억 벌어졌다. 땅은 건조하게 메말라서 발만 굴러도 모래가 튀고 먼지가 일었다. 나는 서둘러 장비를 착용했다. 얼굴이 조이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우리는 일하러 가기 위해 삽이며 곡괭이를 집어들었다. 차가운 무언가가 팔에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윽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비는 내리고 멈추기를 그 뒤에도 반복했다. 몽골은 제법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땅은 항상 부슬부슬한 모래를 잔뜩 안고 있었다.
바람도 시도때도 없이 불어대기는 마찬가지였다. 작업장에는 바람을 막아줄 건물도, 나무도 없어서 나는 그 모래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왜 국어시간에 시에서 바람만 나오면 고난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고난에 맞서 싸우며 땅을 파고 돌을 골라냈지만, 반나절이 자나 식사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파인 깊이는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점심은 심한 모래바람 때문에 차 안에서 먹어야 했다. 비좁은 차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양고기가 들어간 몽골전통 음식을 먹었다. 밥을 먹고 힘이 났는지 오후 작업은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목이며 등 뒤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한 차례 더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비록 모래가 섞이긴 했지만 바람은 시원하게 목덜미를 간질이고 지나갔다.
그날, 몸에서 나온 모래는 족히 신발한 짝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물티슈로 돌아오는 길에 손이며 얼굴 등을 닦아냈지만 그 정도로는 택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우리는 휴식도 취하고 관광도 할 겸으로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시내에 나갔다. 바람은 어김없이 나를 쫒아왔다. 이번에는 꽤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옷자락이 펄럭이고 머리카락이 엉키는 게 거슬리기는 했지만, 바람은 비눗방울을 한들한들 실어날랐다. 그 순간만큼은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비눗방울을 실은 바람을 따라다녔다.
마지막 날이 되었다. 우리는 어린 고등학생들이 가장 힘든 작업을 잘 해내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집의 기초를 닦은 것을 생각했다. 땅을 파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무언가 차가운 게 볼에 와 닿았다. 또 비인가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하늘은 비 올 기색도 없이 높고 푸르렀다. 비눗방울 몇 개가 넘실대며 시야에 들어왔다. 홈파트너의 막내딸이 내가 놔둔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바람은 모래가 아닌 비눗방울을 안고 광활한 초원을 내달렸다.
바람이라고 해서 꼭 시련과 고난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어지는 문학선생님의 말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바람이 바라다의 명사형으로 쓰였다고 보기도 한다.
바람이, 바람을 품고 날아온다.
첫댓글 그 사이 이렇게 타이핑을 하셨네요 수고 하셨어요
보고 또 보아도 우수했던 창작..
다시한번 박수와 노고를 보내며 옹골찬 시인의 탄생을 기대합니다..
지부장님 국장님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