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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 17 강 메시지(강해_아산 UBF)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말씀 / 사도행전 18 : 1 - 23
요절 / 사도행전 18 :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고대 건축양식 중에서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세 가지가 있습니다. 현재의 영국 대영박물관이나 미국 링컨 기념관에도 이런 건축 양식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위 세 가지 건축양식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것이 코린트 양식입니다. 코린트 양식은 B.C 4~5세기부터 그리스 건축의 주된 흐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코린트 선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세계선교는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 전파와 선교 열매 맺는 일은 성령의 주관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1.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1-11)
1절을 보십시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로 갔습니다. 고린도는 육상교통으로는 발칸반도 남북이동의 중심이었고, 해상 교통 중심이기도 하였습니다. 고린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살았습니다. 교통과 상업이 번창하는 고린도는 영적으로는 아주 피폐한 곳이었습니다. 고린도에는 최소 12개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중 사랑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1천명 가량의 여사제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고린도 시민들은 우상 종교의식으로 음란의식을 행했습니다. 고린도는 음란과 방탕이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그렇지만 고린도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왕래하며 사는 대도시로, 예수님의 복음을 꼭 전해야 하는 곳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추방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소란을 많이 일으킨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에 따라 로마에 있는 유대인 3만 명 정도가 로마 밖으로 옮겨 나가야 했습니다. 추방된 유대인들이 고린도에도 들어왔는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부부와 함께 일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 랍비학교에서는 생도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한 가지씩 기술도 가르쳤습니다. 사람은 손수 일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위해서였습니다. 텐트 메이킹은 염소 털로 실을 짜고 그 실로 천을 만들어 제단하여 작업하는 것으로 정복사업이 활발하였던 로마 군단과 정복지 건설현장, 상업용으로 쓰임새가 많은 것이서 로마에서 텐트 메이커를 우대하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대단히 환영받는 실용적인 기술이었습니다. 미국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전공자를 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직접 일을 하며 개척역사를 섬겼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고린도 개척을 동역하러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왔습니다. 마게도냐에 데살로니가 교회와 빌립보 교회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루어지는 성령의 역사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실라는 빌립보 교회에서 보낸 개척지원 헌금도 전해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동안 주중에 많은 일을 하며 시간이 부족하였고 많은 환난 중에 있는 데살로니가 형제들에 대한 염려가 많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보내온 헌금 지원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들이 잘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물리적 시간측면에서나 심정적으로 말씀에 집중하고 복음전하는 일에 전력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사도 바울은 전해주는 말씀을 듣고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고 그들을 떠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본격적으로 이방인 중심의 선교역사를 섬깁니다. 복음을 영접하지 않고 대적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한 생명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말씀이 전해진 곳에서는 새롭고 역동적인 생명의 열매가 맺힙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헬라사람 디도 유스도의 집을 고린도 선교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디도 유스도의 집은 가정교회가 되어 고린도에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이 때 성령께서 말씀 위에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습니다.
9,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9절 말씀을 볼 때, 사도 바울이 큰 부담을 안고 고민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집이 온 집안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은 것 때문일 것으로 봅니다. 이방지역 유대인 커뮤니티는 회당 중심이었습니다. 회당장은 유대인 커뮤니티의 중심 회당에서 말씀 전할 사람을 세우며 영적으로나 실제적으로 회당을 관리하는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으니 유대인들이 얼마나 반발 하겠습니까? 90년대에 경상도 지역 어느 작은 절 주지가 예수님을 영접한 일이 있었는데, 그 절 신도들이 절에 와서 데모를 하고 반발이 컸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 첫 선교지 구브로에서 방해한 자는 유대인 박수였습니다. 다음 선교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유대인들이 방해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들이 방해하였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원정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바울은 죽은 자처럼 쓰러졌었습니다. 2차 선교여행에서도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은 아주 강력하게 바울을 핍박하고 방해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방해했습니다. 1차 선교여행에서는 유대인들이 그 곳 일부 사람들을 선동해서 방해하였다면 2차 선교지에서는 관청과 총독부에 고발하여 매를 때리고 감옥에 갇히게 하는 양상으로 핍박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극렬함 때문에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도 유대인들이라면 치를 떨고 로마에서 다 떠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이미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불신과 훼방을 경험하였습니다. 반발한 유대인들이 다시 로마 총독에게 고발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이제 유대인의 중심 회당장까지 예수를 믿었으므로 유대인들은 이를 갈며 덤빌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게다가 ‘코린티안’하면 당시 세계에서 알아주는 ‘난봉꾼’ ‘사기꾼’의 대명사입니다. 만약 고린도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선동에 말려들면 복음 역사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전략적으로 잠시 쉬어야 하는가?’ ‘소나기는 피해가라고 하였는데, 지금 소나기가 내리는 때가 아닌가?’ 사도 바울은 고민하여야 했습니다.
어려움 겪는 바울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는 한 누구도 바울을 해롭게 할 수 없습니다.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고린도에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영접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두려움과 절망을 마음에서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집요한 유대인들의 방해에 대한 피곤한 마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절망하고 상처받고 낙심하고 괴로운 우리의 영과 우리의 내면에 생명의 빛을 비추어 줍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의 방해로 인하여 상처받고 고난 받은 바울이 다시 일어나 복음을 힘있게 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죄악의 도성 고린도의 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작은 산과 큰 산을 거뜬히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곤란과 괴로움을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 듣기 싫어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것을 게을리 할 때,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절망과 근심에 무모하게 노출시키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괴로움에 눈물 흘리고 절망과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을 것입니다. 남의 탓을 하게 될 것이며 나를 욕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괴로운 밤을 보낼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분은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의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와 한계를 뛰어넘게 하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자기 문제를 극복하고 주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힘을 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유대인들의 훼방에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1년 6개월을 고린도에서 유하며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고난과 담대하게 맞서며 택하신 주님의 양들을 도왔습니다.
12-17절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훼방하고자 로마총독에게 형사고소를 하지만,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가 위치한 그리스 남부지역을 아가야지역이라 하는데 교통과 무역으로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AD27년부터 로마에서는 총독을 파견하여 직접 다스렸습니다. 아가야 총독 갈리오는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의 동생이었습니다. 세네카는 자기 동생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총독 갈리오는 형의 평가대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겉으로 형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실상 유대교인들의 종교적 반목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목과 반대를 형사소송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를 파악한 갈리오 총독은 유대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았습니다. 갈리오는 유대인들을 소송 제기를 기각하였으며 유대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냈습니다. 여기서 갈리오 총독의 판례는 세계선교를 위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로마제국은 제국 내 백성들에게 황제숭배를 요구하였습니다. 이 요구가 다른 민족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제국 내 여러 민족들의 우상은 다신교이거나 다신교를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속주인 유대에 대해서는 유대인들의 유일신 신앙을 인정하고 유대교 유대인들에게만큼은 황제숭배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갈리오 총독이 ‘유대교 계통 내에서의 갈등이라 단정’ 한 것이 판례가 되어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같은 문제에 이것이 적용됨으로써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황제숭배를 요구받지 않을 수 있었고, 기독교 선교 역사는 네로의 박해가 시작되기 전까지 로마법 제지를 받지 않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하신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대적하는 자와 해롭게 하는 자를 무력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린도에서 많은 택한 자들이 구원받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18-2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와 에베소를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함께 합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세계선교를 위하여 사도 바울과 함께 고난 받고 함께 헌신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2차 선교여행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2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와 안디옥교회에 있던 사도 바울은 다시 안디옥교회를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로 나갔습니다.
그동안 아산과 천안지역에 다른 지역 목자들이 개척 시도했다가 물러간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가장 많이 개척 시도를 받은 곳은 순천향대입니다. 공주대 앞에 어느 날 가보니 크게 ‘대학생성경읽기 선교회’가 써져 있는 2층 빈 상가가 있었습니다. 상명대에 왔다가 물러간 분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으로부터 ‘남서울대는 도저히 개척하기 어려운 캠퍼스’라고 하는 말을 직접 들었습니다. 남서울대에 도전해봤다는 이야기지요. 코리아텍에도 개척하겠다고 왔다 간 목자가 있습니다. 센터도 있습니다.
그 분들 중에 (상명대에 와서) ‘내가 3년 내에 12제자와 12마리아를 세우겠다’ 포부를 공개적으로 밝힌 사례가 있었습니다. ‘내가 큰 역사를 이루어보겠다’ ‘내가 해보겠다’ 들어보고 보아온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목자들이 도전했다가 조용히 물러간 이 캠퍼스에 우리를 쓰셔서 믿음의 조상을 세우시고 믿음의 가정을 세우시고 선교사가 배출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내가 이 캠퍼스를 개척하겠다’ 한 적 없습니다. 단지 한 영혼이 귀한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구원 얻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성령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친히 감동시켜 세우셨습니다. 저는 ‘내가 많은 제자를 세워보겠다’ 한 적 없습니다. 성령께서 보내주신 사람을 예수님 이름으로 영접하고 아끼고 귀하게 여겼을 뿐인데, 성령께서 이 사람들을 순종하는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집요하게 반복되는 유대인의 방해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의 강하고 극성맞은 훼방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는 잠잠하게 지내보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사도 바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게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선교 역사를 지켜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보호하셔서 고린도에서 생명살리는 일이 힘차게 진행되도록 해주셨습니다. 선교 역사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역사입니다. 선교 역사는 예수님께서 지켜주시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예수님의 사람들을 영접하고 사랑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쓰시는 자들을 강하게 하시고 용기를 주셔서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역사가 세계선교 역사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 받고 예수님을 믿고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서 가라고 하는 곳에 순종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서 예수님 이름으로 말씀 전하고 겸손히 섬기고 열심히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변화는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내가 개척해보겠습니다” 하기 보다는 예수님 말씀의 능력을 믿고 겸손하게 “주의 말씀이 드러나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라며 소원하면, 개척은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내가 양들을 도와 보겠습니다” 하기 보다는 예수님 이름으로 예수님의 양들을 귀하게 여기고 주 예수님의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다 보면, 양들의 구원과 변화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내가 도와보겠습니다’ ‘내가 큰 역사 이루어보겠습니다’ 이런 말들 무척 많이 들었는데, 그런 말들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내가 좋은 동역자가 되겠습니다’ 이런 말도 많이 들어 보았는데, 그것 보다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수고하는 주님의 종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존중하고 배우고자 하면’ 동역의 열매는 예수님께서 맺게 하여 주십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장래문제도 동일합니다. 내가 나의 장래를 책임지려 하는 사람은 큰 인물 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눈을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 갖고 들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열심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도전하면 장래문제는 예수님께서 친히 해결해주십니다. 자기가 자기 문제 해결하려는 사람은 겨우 자기 문제 하나에 매여서 사느라 삶을 소비하지만, 믿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은 직장문제는 가벼운 문제요 능히 다른 사람을 섬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며 열매 맺는 삶을 삽니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힘주십니다. 우리는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며 사는 일을 하면 됩니다. 우리 학생들이나 목자님들이나 이런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 UBF
아산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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