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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1.두려움,낙담,도피,패자,실망,실패,좌절,포기... 의 문제 2 (58P)
♥ 제68차 성령 컨퍼런스(conference) 안내 2021.4.5.월.오후2시-7.수.오후1시(2박 3일) ♥
*이 3일 간의 대성회는 너무나 좋은 것인데,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 오지 못합니다.
오시는 분들은 성령이 깊은 만지심으로 인하여,
그 신앙과 삶이 획기적으로 변합니다.
육적, 육신적인 신자가 아니라,
성령에 기초한 진정한 영적 신앙인으로 거듭 납니다.
성령과 은사에 정통하고, 靈界(영계)를 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삶과 은사의 맥을 관통해 줍니다.
특히 목사님들과
부흥강사의 길을 걷는 분은 필수 코스로 훈련 받을 기회입니다.
성회 진행 문의:강한나 부목사 010-2443-1272
장소:서울 노원구 노원로 26가길(상계동) 25
코롱A 상가 3층,
새성교회당
*네비로 ‘새성교회’ 치시면, 바로 나옵니다.
강사:배종부 지도목사
참가비:5만원
(성령의군대 배종부 농협 3560393-047263)
사전 등록자(통보자) 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 컨퍼런스>에 3일 간 전심으로 성령 훈련을 받을 사람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2박 3일 간의 계속되는 일정 도중에, 그만 둘 수 없습니다.
아래는 성령 컨퍼런스(conference)의 기본 성령 주제 강의와 워크숍 목차입니다.
강의안은 성령에 대한 깊고 주옥 같은 말씀들로, 일체 외부로 유출하지 않습니다.
*배종부 지도목사의 강의 중간 중간에 지부장급 이상 장군들의 5분 찬양과 10분 단상과 5분 통성기도 인도가 있습니다.
제1일:
1강.월 오후 2:00- 4:00 배종부 목사-성령 서론(聖靈 序論):
2강.월 오후 4:00- 6:00 배종부 목사-신유(神癒):
3강.월 저녁 7:00- 8:00 특강 박민 목사
4강.월 저녁 8:00-10:00 배종부 목사-예언(豫言):
제2일:
5강.화 오전 9:00-11:00 배종부 목사-영분별(靈分別):
6강.화 오전 11:00-13:00 배종부 목사-축사(逐邪):
7강.화 오후 2:00- 4:00 배종부 목사-영안(靈眼):
8강.화 오후 4:00- 6:00 배종부 목사-방언과 방언 통역(方言 通譯):
9강.화 저녁 7:00- 8:00 특강 방성용 지도목사
10강.화 저녁 8:00-10:00 배종부 목사-성령의 기름 부음:
제3일:
11강.수 오전 9:00-10:00 특강 배종부 목사
12강.수 오전 10:00-12:00 배종부 목사-생수(生水)의 강(江):
13강.수 오후 12:00-13:00 배종부 목사-100배 축복(祝福)의 원리:
시작하는 날 월 오후 1시 30분 - 2시까지,
서울 지하철 4호선 노원역 1번 출구에서,
3447 흰색 승용 차량으로 픽업합니다.
2시 이후에는 택시를 이용하여 코롱A로 오시거나,
1132번, 1154번 버스를 타시고,
두 정거장 지나 ‘상계중학교’ 에서 내리셔서 길을 건너 오시면,
코롱A 상가 3층에 새성교회가 보입니다.
차량 담당자 이사라 권사에게
필히 전화하세요.
010-4209-5869
차량을 갖고 오시는 분은 반드시 코롱A 지하 2층에 주차하시고,
'새성교회' 라고 메모하셔서, 차 안에 보이게 두셔야 합니다.
다른 장소는 스티커를 부착합니다.
宿食(숙식)은 ‘건영 스파벨리’ 사우나 티켓을 매일 개인당 드리며,
화, 수 아침은 禁食(금식)입니다.
새성교회당에서 여자 분들은 숙박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 문제로, 이번에 한하여 새성교회당(여)과 호텔(남, 4-5만, 개인 부담, 안내해 드림) 에 각각 주무셔야 합니다.)
뜨거운 찬양,
불 붙는 기도,
명쾌하고 폭발적인 성령과 悔心(회심)의 말씀 강의,
3일 간의 지속적인 성령에의 젖음,
은사와 능력의 폭발,
눈물의 통회,
생수의 강,
영적 새출발의 결단이 일어납니다.
성령 받고,
은혜 받은 종들 개개인에게,
각자 영권, 인권, 물권의 100배 축복이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 제68차 <성령 컨퍼런스> 개회에 즈음하여... ♥
여기 <성령의군대>가 ‘제68차 성령 컨퍼런스’ 로 대행진합니다.
성령을 받으십시다.
은사를 훈련하십시다.
능력을 받으십시다.
성령으로 떨치고 일어 서서 새출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 하십시다.
3일 간의 성령의 대축제가 여러분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이 힘든 위기의 시간들을 승리로 장식케 해 드릴 것입니다.
뜨거운 痛悔(통회)의 눈물이 살아 나고, 강력한 祈禱(기도)가 회복되고, 恩賜(은사)가 터지고, 성령의 能力(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성령의 영권, 인권, 물권이 회복되어, 이 고통의 시간들을 승리로 장식케 될 것입니다. 능히 성령의 비전으로, 앞으로 달려 갈 영적 底力(저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 같이 오셔서 함께 성령 받고, 은사 받고, 능력 받아, 능히 떨치고 이기고 승리하십시다.
환영합 니다. 어서 오십시오.
<성령의군대> 지도목사
서울 새성교회 담임목사
배종부 드림
♥ <성령 컨퍼런스>의 10가지 이상의 선물 ♥
<성령 컨퍼런스>에 오시면, 아래 10가지 이상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1.靈界(영계)를 돌파하는 성령 신앙의 마지막 봉우리가 점령됩니다.
2.성령 신앙과 은사와 능력의 세계 전반이 체계적으로 정리됩니다.
3.강한 영권이 주어져, 말씀과 기도의 권능이 강력해집니다.
4.幻想(환상)과 靈眼(영안), 각종 恩賜(은사)가 열립니다.
5.삶과 재정의 ‘100배 축복권’ 이 주어집니다.
6.성령 동행의 삶으로, 죄가 끊어지고, 인격이 변화됩니다.
7.영 혼 육이 그야말로 충만하게 행복해집니다.
8.말로만 듣던 ‘기적’ 과 ‘능력’ 이 실제로 기도 응답으로 주어집니다.
9.그냥 성령의 임재가 느껴지고, 내 몸으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체험합니다.
10.심령의 뿌리까지 깨어지는 폭발적인 ‘悔心(회심)의말씀’ 과 강의를 통해,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 2021년 <성령의군대> 정기집회 안내 ♥
담임 배종부 목 사 010-2940-1717
안내 강한나 부목사 010-2443-1272
사무 이사라 권 사 010-4209-5869
1.매주 월, 화, 수 오후 2시, 저녁 7시 <기적 기도대성회> 6회
*연중 중단 없이 언제나 상시적으로 개회
주소:서울 노원구 노원로 26가길 25, 코롱A 상가, 새성교회
매주 고정강사 새성교회 배종부 목사 3회 설교
매주 3명의 <성령의군대> 지부장 중심 부흥강사 교대 집회 인도
2.매월 첫주 월, 화, 수 <성령 컨퍼런스>
새성교회당,
2박 3일 숙식하며 연속 진행,
월 오후 2시 개회, 수 오후 1시 폐회
3.목요 산상기도교회
매주 배종부 지도목사 개인 전국 1,000m 고지 이상 순회 <산상기도교회> 운영
월 1회, 제 3주 목 오전 10시 <연합산상기도교회> 운영
4.토요 <성령사관학교>
새성교회당
매주 토 오전 10:00-오후 4:00
상시 등록 가능
♥ ‘殉命의사람’ 배종부 목사 13대 특별기도 ♥
사전 예약하는 분에 한하여,
1>.축복기도, 2>.신유(神癒)기도, 3>.예언기도, 4>.영분별기도, 5>.축사(逐邪)기도, 6>.방언통역기도, 7>.영적무장기도, 8>.십자가확인기도, 9>.문제해결기도, 10>.은사전이(轉移)기도, 11>.사명기도. 12>.사랑하는 사람의 중보기도 13).내적치유 기도 등등...
모든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두고, 충분히 개인기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피곤 없는 보람
폴 칼슨이라고 하는 의료 선교사는 아프리카의 콩고에 가서 많은 주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하루에도 100여 명씩이나 치료를 해주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칼슨 박사님, 당신은 피곤하지도 않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는, "나는 항상 하나님과 가까이 생활하기 때문에, 피곤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매 순간 보람을 느끼며 살아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며 의료봉사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반란군에게 피살되어 순교하였고, 그의 주머니 속에서는 포켓용 성경이 발견되었는데, 그 첫 장에는 "평화" 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더라는 것이다.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서 더위와 빈곤과 질병과 맞서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싸우던 선한 목자가 되심을 믿고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당신의 삶의 잔은 어떠한가? 넘치는가? 모자라는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도록 하자.
회전문이 늘어 놓은 푸념
온 종일 쉴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을 출입시키는 고층 건물의 회전문은 정신 없이 빙글 빙글 돌고 있는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휴, 나는 어쩌다 이런 운명을 갖고 태어 났는지... 사실 나처럼 고약한 운명도 없을 거야. 온 종일 두통과 어지러움이 끊이질 않고, 누구 하난 나를 돌리지 않고는 그냥 지나 갈 수 없으니 '빙빙' 어지러울 수 밖에... 아! 이젠 나의 이런 처지가 너무 지겨워 골치가 아프다구! 그냥 꼼짝 않고 있어 봤으면..."
그런데 그 때 커다란 짐을 실은 무거운 수레가 덜커덕 덜커덕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회전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회전문은, 끙끙거리며 지나 가는 수레바퀴를 물끄러미 바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레바퀴도 어지럽기는 매 한가지겠지? 게다가 그는 무거운 짐에 눌리기까지 했는 걸. 쯧쯧, 나보다 더 딱한 처지도 있구나. 그래! 수레바퀴의 처지에 비하면 나는 편한 위치에 있구나. 불평하지 말고 내 운명에 만족해야겠어."
쓸모 없는 놈
비 오는 날, 어떤 사람이 훈장 집에 삿갓을 빌리러 갔다.
주인이 인색한 것을 잘 아는 심부름하는 아이가 삿갓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여, 그 사람을 내보냈다. 그 광경을 지켜 보던 훈장이 아이에게 말했다.
"이놈아, 그렇게 딱 잘라서 없다고 하면 어떡하느냐? 광 안에 두었더니, 쥐가 쓸고 짓밟아서 못 쓰게 되었다고 해야지."
다음 날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쥐를 잡으려고 하는데, 고양이를 하룻밤만 빌려 달라고 했다. 아이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고양이는 있기는 있지만 광 안에 넣어 두었더니, 쥐들이 쓸고 짓밟아서 못쓰게 되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훈장은 기가 막혀서 아이를 불러 야단을 쳤다.
"이놈아, 쥐가 어떻게 고양이를 쓸고 짓밟을 수가 있단 말이냐? 도대체 말이 되어야지. 그럴 때에는 '고양이는 있지만 감기가 들어서 콜록 콜록 거려 가져 가셔도 못 쓸 놈입니다.' 라고 해야지."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찾아 와서 말했다.
"훈장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제사가 있는데, 축문 좀 읽어 주십사고요."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훈장이 가르쳐 준대로 말했다.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감기가 들어서 기침을 하고 콜록 거려 가져 가셔도 못 쓸 놈입니다."
방안에서 아이 놈의 망칙스러운 말을 듣고 있던 훈장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당장 쫓아 나와 소리 소리 질렀다.
"너 이놈! 감히 누굴 보고 못 쓸 놈이라고 하는 게냐? 말을 새겨 들어 바로 전할 줄 모르고 엉뚱하게 말하는 네 놈이 참으로 못 쓸 놈이다. 이 천하에 못 쓸 놈 같으니라고..."
과연 쓸 모 없는 놈이로다.
무사고 기록이 곧 무사고 운전이란 생각은 엄청난 오해다. 비행기 조종사에게는 무사고 운행 기록이라는 게 있다. 무사고 8천 킬로미터 운행 기록자와 1만 2천킬로미터 기록자가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무조건 후자를 신뢰할 것이다. 그러나 전자가 1천 킬로미터를 80회 비행한 사람이고, 후자가 1만 킬로미터를 12회 운행한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작 중요한 것은 비행 거리라기 보다는 비행 횟수이기 때문이다. 개인택시 제도가 처음 실시 될 때 그 자격은 10년 무사고였다. 소정의 기간 동안 사고를 한 번도 내지 않은 사람에게만 개인택시를 몰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그 결과 운전 면허만 내놓고 별로 운전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개인택시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실패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우수한 운전자란 사고를 경험한 역전의 용사가 아니겠는가?
물론 상습 사고 운전자가 우수한 것은 결코 아니다. 포탄이 한 번 떨어진 자리에는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번도 포탄이 떨어지지 않은 자리가 더 위험하다.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라는 「조조」는 참모의 조언을 잘 들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대전략가였다. 손자병법을 보완한 사람이 조조라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흔히 하는 농담으로 “죽는 것이 조조 군사”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를 보면 조조 군사가 이긴 적은 별로 없다. 죽었다 하면 백만 명 단위였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조조가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의 쓴 맛을 본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영악한 조조가 실패할 때마다 얼마나 많이 반성하고 분석을 했겠는가?
때로는 성공한 사람 보다 실패한 사람에게서 큰 교훈을 얻는다. 실제로 전략가들은 전사(戰史)를 연구할 때 성공한 예보다는 실패한 예에 더 비중을 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유태인들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날 뿐만 아니라, 패배한 날과 굴욕스러운 날도 기념한다. 실패가 너무나 귀중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실패 만큼 좋은 스승, 학교도 없다. 유태인의 명절 중에서 가장 큰 명절이 유월절(패스 오버)이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홍해와 사막을 건너 이스라엘로 돌아 온 것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학대 받고 고난을 당하던 체험을 어제 일처럼 되새기려고 쓴 맛이 나는 잎을 먹고, 「맛소」라는 빵을 만들어 먹는다.
또한 단단하게 찐계란을 먹는다. 달걀은 찔수록 단단해지는데 고난과 패배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유태인 사업가 중에는 실패한 사업의 계약서를 일부러 사무실에 걸어 놓는 사람도 있다. 성공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지만, 실패는 긴장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앞수레가 뒤집어진 것을 뒷수레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前車覆 後車戒: 전차복 후차계)
한서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한(漢)나라의 학자 가의(賈誼)가 문제(文帝)에게 바친 글이다. 가의가 ‘앞수레’에 비유한 것은, 한나라 바로 앞의 왕조인 진(秦)나라를 두고 한 말이다. 진나라는 시황제에 의한 강권 정치로 인해 불과 2대 만에 멸망했다. 한나라 문제는 진나라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스스로 절제하여 정치에 임했다. 그 결과 훌륭한 치적을 이루어 명군으로 존경 받았다. 당나라 태종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명군으로 칭해진 것 역시, 바로 앞의 왕조인 수나라 양제가 저지른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렇게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앞 사람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당나라 태종의 이야기다. 재상 방현령이 말했다. “병기고를 점검해 보았더니, 수나라 때에 비해서 너무 부족합니다. 서둘러 보충하라 지시하옵소서.”
그러자 태종이 대답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병기고를 충실케 하는 것보다, 정치에 힘써 백성의 생활이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나의 무기니라. 수나라 양제가 망한 것은 무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인의(仁義)를 버려 백성의 원성을 샀기 때문이다. 수나라 양제의 실패를 두 번 다시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태종은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도 전해진다. “불로장수한다는 신선이란 애당초 사람들이 만들어 낸 얘기지, 세상에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다. 진나라 시황제는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신선에 정신이 팔려, 결국 방사(方士)들에게 희생되고 말았다.
한나라의 무제도 신선 사상에 빠져 자기 딸을 방사에게 시집 보냈다가, 훗날 방사의 도술에 전혀 효력이 없음을 깨닫고, 죽여 버렸다. 이 두 사람의 경우를 보아도 세상에 신선 따위가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과오를 되풀이 하면 안된다.”
당태종은 선인의 실패를 교훈 삼고, 훌륭한 정치를 했다.
어린이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녀가 어머니에게서 선물로 강아지를 한 마리 받았다. 너무 너무 귀여워서 밤에 같은 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소녀는 강아지를 좋아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보니 어쩐지 강아지가 코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개는 코가 촉촉하면 건강한 것인데, 그것을 모르는 소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일요일이라 동물병원도 쉬었다. 소녀는 엉겁결에 티슈로 강아지의 코를 계속 닦아 냈다. 그럴 때마다 강아지는 낑낑댔지만, 소녀는 울면서 그 짓을 계속했다. 몇 시간을 그러다 보니 강아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네 다리를 뻗고 죽고 말았다. 이윽고 외출했던 부모가 돌아 와 사태를 알게 되었다. 소녀는 강아지를 돕고 싶어 한 일이지만, 그게 오히려 강아지를 죽게 한 것이다.
중국 육조(六朝)시대 말엽에 안지추라는 사람이 「안씨 가훈」을 지어 그 방대한 지혜를 자손에게 전수했다. 그 안씨의 자손 가운데 한 명이 안지추에게 물었다.
“이 많은 훈계 가운데 꼭 하나만 지키라고 한다면, 어떤 훈계가 되겠습니까?”
이에 안지추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에 패사(敗事)가 있을 때 「성(省)․ 상(償)․ 약(躍)」하라.”
▲ 「성」(省)은 나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재빨리 반성하는 일이요,
▲ 「상」(償)이란 패함으로써 생긴 열등감을 보상하는 바탕을 마련하는 일이요,
▲ 「약」(躍)이란 그 바탕에서 힘을 얻어 도약하는 일이다.
이를 속칭 「안씨패훈」(安氏敗訓)이라고 하여, 우리 조상들은 패사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되뇌었던 교훈이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진지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 하라. 진지하면 비록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재기할 마음의 자세가 된 것이다.”
일본의 기업가 마쓰시다의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실패를 딛고 발판으로 삼아 승리한 사람들이다.
또 다른 일본의 기업가 혼다는 ‘피스톤 링’이라는 부품을 개발할 때, 연속으로 실패를 경험했다. 수리공으로 고생하며 벌어 놓은 돈이 바닥 나고, 그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지경이 되었다. 결국 그는 과학적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하마마쓰 공업전문학교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했다.
마침내 피 나는 노력 끝에 피스톤 링 제조에 성공했다. 실패를 쌓아 성공을 쟁취해 낸 것이다.
“실패는 실패하지 않은 것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
한비자(韓非子)가 했던 말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재미있는 개념을 강조한다. 공포심은 아이디어를 죽이는 주범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공포심을 없애 주어야 창의성이 살아 난다는 것이다. 비웃음을 당하거나 처벌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 창의성이 죽게 되고, 따라서 기술 혁신도 불가능하게 된다.
지금까지 기업에서는 직원의 과오를 줄이는 것을 주된 관제로 삼아 왔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실험적인 실패를 용인해 주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즉 하나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잡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하도록 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IBM에서 어느 임원이 500만 달러짜리 프로젝트를 실패한 적이 있다. 이 때 사람들은 그 임원이 해고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왓슨 회장은 “수업료 한 번 제대로 치렀군.” 하면서 불문에 부치고 말았다.
이런 사례가 알려지면서 직원들은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질책, 감원, 승진 탈락, 각종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막연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성이 살아 날 수 없다.
“성공을 뽐내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실패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은 더 위험하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케네(1694-1774)가 남긴 말이다.
사람은 살아 가면서 사업 혹은 시험 등 여러 가지로 실패를 겪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실패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숨기려 한다든가, 속이려고 해서는 결코 출세하지 못한다. 실패는 분명히 하지 않는 편이 낫지만, 인간이 하는 일에 실패가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실패를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다만 똑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한다면 분명히 부끄러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때에도 자기의 결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세상을 살면서 겪는 실패와 실패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지수로 나타내 발표한 적이 있다.
좌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를 제로(0), 극심하게 느끼는 상태를 -10, 오히려 발전의 계기로서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상태를 +10으로 했다.
유태인이 +5, 영국이나 독일 등 게르만계 미국인이 +3, 라틴계 미국인이 –2로 나타 났다. 만약 우리 한국인의 패배 감각 지수를 측정한다면 아마도 마이너스 후반부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 초등학교의 지도 기본 방침은 주에 따라 다르지만, 일찍부터 패배를 잘 해 내는 데 버릇을 들여, 회복력이 왕성한 인간으로 육성하는 데 목적을 둔다. 청교도 전통이 있는 가문의 부모나 학교의 선생은 패배의 함정을 일부러 만들어, 시련을 가하기도 한다. 전투에서 지더라도 전쟁에만 이기면 되는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패자부활전이 왕성한 사회인데 반해, 우리 한국사회는 패자부활전이 용납되지 않는다. 인생의 출발 단계에서부터 일류 대학, 일류 기업, 일류 관청에 들어 가지 못하면 대세를 만회하기 어려워진다. 대기만성 할 인재가, 만성 이전에 딱지가 붙어 버려 빛을 보지 못하고, 패배 없이 승승장구한 극소수의 영웅 주변에 상처 입은 인생으로 남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벤저민 스타인은 영화배우이자 TV 연기자이며, 또한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 있는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증권법을 강의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실패한 사람들의 8가지 습관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자기 기만 :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2. 비생산적인 행동
3. 친구에 대한 홀대 : 실패자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감사해 하지만, 자신에게 잘 해 주는 사람들은 업신여기며,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습성이 있다.
4. 예의 없는 행동 : 실패자는 또 예의가 없게 마련이다.
5. 어울리지 않는 복장 : 실패자는 습관적으로 복장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취직 면접을 하러 가면서 넥타이를 매지 않거나, 운동화를 신고 나타 난다.
6. 부정적인 태도 : 실패자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7. 쓸 데 없는 논쟁 : 실패자는 순전히 논쟁을 위한 논쟁을 일삼음으로써, 분란을 일으킨다.
8. 본말 전도 : 실패자는 우선 순위를 정할 줄 모른다.
우리 나라 역사서에는 「자치통감」 「동국통감」 등 통감이라는 말이 자주 들어 간다. 통감(通鑑)이란 ‘거울에 비춰 본다.’는 뜻으로, 흔히 역사와 같은 말로 쓰인다. 그러나 통감이라는 말에는 역사보다 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역사란 지나 온 사실을 적어 놓은 것에 그치지만, 통감은 그 사실을 거울(鑑)로 반사(通)시켜 오늘의 지혜로 삼는다는 발전적이 뜻이 더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큰 일을 할 때나 난국을 타개해야 할 때, 시대 배경은 다르지만 옛사람의 시행착오를 참작함으로써, 실패를 줄이고 실마리를 푸는 좋은 단서를 얻었다. 그래서 나랏일을 보는 사람은 위로는 정승부터 아래로는 수령에 이르기까지 책상에 각종 통감이 반드시 놓여 있었다. 또한 나랏 일을 논할 때에도 “통감하시오.” “통감해 보았습니까?” 하고 통감 행위를 자주 거론하곤 했다.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는 고명한 물리학자가 있었다. 반 평생을 연구에 몰두하여 드디어 획기적인 학설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 학설은 여태 다른 학자들이 발견해 내지 못했던 미지의 분야였다. 학계와 언론에서는 학자의 노고와 연구 결과에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세월이 흘러 계속 연구에 정진하던 물리학자는 자신이 발표했던 학설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학설을 수정하여 발표했다. 그 때 어떤 기자가 학자를 찾아 왔다.
“선생님. 스스로 자신의 학설이 잘못되었다고 시인했으니, 지금까지 반 평생 연구하신 건 결국 헛수고였군요.”
그러자 물리학자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내가 정열을 쏟아 부은 반평생의 연구가 없었다면, 내 학설이 잘못되었다는 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거요. 당신이 말한 반평생의 헛수고가 없었다면, 오류를 찾아 수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겠지요.”
실패는 실패로 끝날 때 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동문학가 윤석중 시인의 「꽃밭에서」라는 동시이다.
아가가 꽃밭에서 넘어졌습니다.
일어나 보니,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참 울다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꽃잎이었습니다.
불행은 꼭 불행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보다 큰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 더 보람 있는 삶을 살아 가거나, 교도소에 다녀 와서 훌륭한 사람으로 변신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세상에서 해답 없는 문제는 없다. 어떤 문제라도 그 속에 해답이 있는 것이다. 큰 아픔은 새로운 축복이 될 수 있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유태인이 고명한 랍비를 찾아 갔다.
“매사에 바라는 것의 절반도 되는 일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지혜를 좀 내려 주세요.”
한참 생각 끝에 랍비는, “뉴욕타임스 연감 1970년판 930쪽을 찾아 보게. 지혜가 적혀 있을 걸세.”라고 대답했다. 집에 돌아 와 연감을 구해 찾아 보니 그 곳에는 유명한 야구선수들의 타율이 나열되어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자신의 고민을 타개해 줄 지혜가 되는지 알 수가 없어, 다시 랍비를 찾아 갔다. 랍비는 사상 최강의 타자로 기록된 선수의 타율을 보라고 했다. ‘타이콥 – 3할 6푼 7리’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바로 그걸세. 세계 최강의 타자도 3타석 1안타에 불과하다네. 한데 일마다 바라는 것의 절반 가까이 되었다면, 5할대의 타자가 아닌가? 만약 모든 야구선수들의 타율이 10할대라면, 무슨 재미로 야구 구경을 하겠나? 인생도 마찬가지일세. 모자람이 있어야 세상 사는 의욕과 재미가 생기는 거라네.”
전국적으로 행려병자는 4만 명을 헤아린다. 할 일도 없고 일할 의욕도 없다. 배가 고프면 구걸을 하고 동전 몇 푼 생기면 소주를 병째로 들이킨다. 가출, 이혼, 실직, 알코올 중독, 정신 질환, 치매…. 간혹 부랑인 복지시설로 옮겨져도 얼마 견디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뛰쳐 나온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다 보면, 몸이 만신창이가 돼 행려병동으로 실려 온다.
서울 용두동의 시립 동부병원 4개 병실에는 40여 명의 행려병자가 누워 있다. 행려 병동 입원자는 연고지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이름도 주소도 나이도 없다.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보면 이미 말소되어 신원을 파악할 수가 없다. 손도장을 찍어 봐도 지문이 사라진지 오래다. 한 번 입원하면 3~4주일 머물지만, 퇴원을 희망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병세가 호전돼 「세상 밖」에 나가도 받아 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입혀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니, 행려병동이 바로 집이다. 일부러 손목을 부러뜨리거나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걸어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 더 큰 병을 만들어, 철새처럼 되돌아 오는 것이다. 1주일에 3~4명은 죽어 나가는 병동. 그 곳에서는 죽음이 전혀 죽음 같지 않다. 죽는 것도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지토세 공항에서 일어난 일이다. 1998년 5월 3일 오후 나고야행 일본항공(JAL) 여객기 1편이 출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지 꿀벌 한 마리 때문이었다. 비행기 내부로 꿀벌이 날아 들었는데, 그것을 퇴치하지 못해 결항한 것이다. 공항사무소에 따르면 이 날 정비원들이 기내를 점검하던 중 꿀벌을 발견하고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항공사 측은 이륙한 후에 벌이 날아 다닐 경우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결항을 결정한 것이다. 손톱 만한 꿀벌이지만 거대한 비행기를 뜨지 못하게 하는 위력이 있다.
사람들은 “실패하면 끝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패하면 물러 설 데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로 끝인지 아닌지 실제로는 확인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실패해도 물러 설 데는 있다.”
몇 번 실패하더라도, 기회는 무한히 있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물러 설 데가 없다.
곤충이 거미 줄에 걸려 든다고 해서, 그것 만으로는 치명상을 입지는 않는다. 거미줄에서 버둥거리면 버둥거릴수록 더 단단하게 얽혀 들어 거미에게 잡아 먹히는 것이다. 나뭇잎은 거미줄에 휘감기지 않는다. 거미줄에 걸려도 버둥거리지 않기 때문이다. 거미줄로 묶는 것은, 거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인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나뭇잎처럼 바람을 타고 팔랑 팔랑 날아 가 보자. 그렇게 하면 실패라는 거미줄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다.
피그스 만(灣) 사건은 미국 외교 정책상 가장 중요한 실수로 꼽힌다. 케네디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고, 쿠바의 반체제 인사들을 몰래 지원하려 할 때였다. 쿠바의 피그스 만에서 시작된 짧은 공격 작전에서 쿠바의 내란 주동자들이나 그들을 지원한 미국 모두 이 전투가 어려울 게 없으며, 쿠바 민중이 들고 일어나 카스트로를 굴복시키는 데 협조할 것으로 기대했다. 따라서 카스트로 군대의 급속한 승리는 모든 사람을 경악시켰다. 반체제 인사들이 패배한 이유 중에는 그들이 형편없이 훈련이 안된 데다가 너무 오래된 낡은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있다. 케네디는 이 공격의 계획 수립과 실천 과정에서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실수에 관한 진리 한 마디를 내뱉었다.
“승리에게는 수 많은 아버지가 있지만, 패배는 아비 없는 고아다.”
사실 책임이 케네디 한 명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케네디가 밀어 붙인 것이고, 계획은 CIA가 세웠으며,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성공을 예언했던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광범위한 실패관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시도를 너무 빨리 실패로 규정한다.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긍정적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것을 그만 큰 실수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란 밖으로 드러나는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는 「내적 활동」이다.
토마스 에디슨은 언젠가 천연 고무를 찾아내는 실험을 했다. 그 연구를 하면서 50,000번의 실패를 맛보았다. 그의 조수가 말했다. “에디슨 선생님 50,000번이나 실험을 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조수는 이제 실험에서 손 뗄 준비를 다 갖추었다. 그는 외적으로 실패를 판단했다. 에디슨이 대답했다. “결과들이라고! 결과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미 놀라운 결과를 얻지 않았는가? 보세, 우리는 그 50,000가지 방법이 비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아 내지 않았는가?”
토마스 에디슨은 한 가지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하다가 중단해 버리는 그것임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지난 어느 날, 독일의 초등학교 역사 시간에 교사가 학생에게 질문했다.
“지난 전쟁에서 우리 독일이 패배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지?”
“독일군에 유태인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유태인들은 너무 겁쟁이기 때문에 도망치는 자가 많아서, 우리가 진 겁니다.”
교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른 학생에게 물었다.
“그 밖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병참부에도 유태인이 있었어요. 그들이 식량과 옷을 빼돌려서 우리가 진 거에요.”
“맞았어.”
교사는 또 다른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그 아이는 쭈뼛 쭈볏 일어나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유태인이 참모본부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유태인 따윈 참모본부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었어!”
“독일군 참모본부가 아니라, 프랑스 참모본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이 진 겁니다.”
패배자들은 힘없는 약자에게 실패의 원인을 덮어 씌우고 위안 받으려는 심리가 있다.
타이타닉을 제작한 화이트 스타 여객선 회사는, 타이타닉을 절대 가라 앉지 않는 배로 설계했다고 공언했다. 그 설계란 뱃머리에서 선미까지를 16개의 방수실로 나눈 것이었다. 만약 이 방에 물이 들오면 방수실 사이의 문을 닫는 전기스위치가 작동됨으로써 타이타닉 호를 계속 물 위에 뜨게 만드는 것이다. 이 이론에는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타이타닉 호는 이 방들 중 어떤 두 개에 물이 차도 가라 앉을 수 없게 설계됐다. 그러나 두 개 이상 물이 찼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설계자들은 두 칸 이상에 물이 찰 수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은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스페어 타이어를 두 개 준비하는 것과 같다. 두 개의 타이어가 동시에 터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시 세 번째나 네 번째 타이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각각의 방수실을 나눠 놓은 칸막이는 높이가 겨우 갑판 높이 정도였다. 만약에 물이 그 칸막이 꼭대기까지 올라 올 경우에는 옆방으로 쏟아져 들어 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열여섯 개의 방수실 중, 여섯 개가 얼음물로 가득 찼고, 수심 4㎞의 바닷물에 수직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빙산이 배 밑창을 찢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초였고, 그로부터 두 시간 남짓 지난 사이에 침몰한 것이었다.
‘완벽’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어느 파티에서 식사가 한참 진행 중일 때, 나이 지긋한 손님이 “우리의 소원을 이뤄 주시는 하나님은 또한 소원을 빼앗기도 하신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라고 주장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아, 그건 성경 말씀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말인데요?”라며 반박했다. 그러자 손님은 무안해서 얼굴이 달아 올랐다.
“그럴 리가 없어. 그건 분명히 성경 말씀이야.”
그러자 그 사람은 옆에 있는 친구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친구는 식탁 밑으로 친구의 발을 지그시 누르며, “글쎄. 내 생각에도 성경 말씀인 것 같은데?” 라고 했다. 파티가 끝나자 그 사람은 친구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친구는 셰익스피어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 성경에 나오는 말인가?”
친구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햄릿의 5막 2장에 나오는 말이지. 이 친구야. 남의 실수를 밝혀 내서 좋을 게 뭐가 있나?”
“가볍게 승낙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이 적다.” (輕諾者必寡信: 경낙자필과신)
노자에 나오는 말이다.
‘경낙’(輕諾)이란 ‘알겠습니다.’ 같은 대답을 가볍게 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즉 손쉽게 ‘떠맡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가볍게 승낙하는 것은 별로 믿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 중에 한 가지가 바로 가볍게 승낙하는 일이다. 앞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 장소의 분위기에 이끌리어 ‘알겠습니다. 어떻게 해 보지요.’ 라고 승낙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희망을 가지도록 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 결과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괴롭힐 뿐 아니라, 상대방의 불신까지 사고 만다. 깊이 생각해 보면 이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리더의 경우 이 ‘경낙’으로 인한 마이너스는 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함부로 ‘실언’(失言)을 했다가 취소를 하다가는 부하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위신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헤픈 웅변 보다는 과묵이 나을 때가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3천 여 년의 과학사는 오류로 점철돼 있다. 과학은 오류로부터 도약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계산상의 착오’ 때문이었다.
당시 지리학과 천문학 문야의 최고 권위자인 프톨레마이우스는 지구의 원주를 3만 3천㎞로 잘못 계산했다. 실제 그 거리는 19만 6천㎞로 당시 선박으로는 항해가 불가능한 거리였다.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콜럼부스는 항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페니실린이 발견된 것도 플레밍이 감기에 걸려 박테리아가 증식하는 슬라이드에 콧물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그의 콧물이 슬라이드에 떨어져 박테리아를 소멸시키지 않았다면, 항생물질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타이어의 재료로 쓰이는 경질 고무도 1844년 찰스 굿이어가 뜨거운 주철 냄비 위에 고무 조각을 떨어뜨려 발견된 ‘실수의 산물’이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발명하지도 않았고,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한 적도 없으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적도 없다.
다 전기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다.
프랑스 화학자 베르트로는 “과학에 더 이상 오류는 없다”고 했다. 오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게 19세기의 가장 심각한 오류였다.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장군이 거란족을 물리치고 돌아 와 현종 임금이 베푼 연회에 참석했다. 장군의 자리는 임금 바로 옆이었다. 산해진미를 가득 차려 놓고 연회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 장군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리고 내시를 향해 따라 오라는 눈짓을 했다.
“내가 조금 전에 밥을 먹으려고 주발을 열었더니 빈 그릇이더군. 아마도 자네들이 실수를 한 모양이야.”
그 순간 내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현종 임금은 몹시 급하고 까다로운 성미여서, 내시들의 실수를 쉽게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장군님.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내시는 벌벌 떨며 잘못을 빌었다.
“됐네, 그만 일어 서게. 내가 묘안이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하게나.”
강감찬 장군은 잠시 후 연회장으로 돌아 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 때 내시가 장군 옆으로 다가 와 말했다.
“장군님, 진지가 식은 듯 하오니, 바꿔 드리겠습니다.”
빈 밥그릇을 들고 물러 나온 내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거리는 소홀한 데서 생기고, 화는 사소한 일에서 일어 난다.”(患生于所忍 禍起于細微: 환생우소인 화기우세미) 설원(說苑)에 나오는 말이다.
자칫 긴장을 푼 것이 큰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인간이 실패하는 원인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어려운 일을 맡아 열중하고 있을 때는 긴장감을 풀 수가 없다.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은 오히려 일이 순조롭게 돌아 갈 때이다.
또 하나 인간이 범하기 쉬운 과오가 쉽게 눈을 감아 주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일어 났을 경우 ‘이건 사소한 문제니까….’라며 눈을 감아 버린다. 그 결과 문제를 더 엉클어뜨리고, 끝내는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고 만다.
호조(好調)인 때야 말로 더욱 마음을 긴장하고, 사소한 단계일 때에 화근을 없애는 것이 현명한 처세이다.
1670년 여름, 일본 요오미에서 시바다의 군대는 사사끼의 군대에 포위돼 있었다. 두 군대의 힘은 막상막하여서, 어느 쪽도 쉽게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사끼는 시바다의 군대의 수로(水路)를 막고, 지쳐 쓰러지기 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후 시바다의 군영에 사신을 파견했다. 사신은 시바다에게 물을 한 대야만 달라고 해서 그 물에 손을 씻었다. 그리고는 그 물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 물을 아낌없이 뜰에다 쏟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신의 보고를 들은 사사끼는 기가 막혔다.
“도대체 어디서 물이 나오는 거지? 아무래도 이 작전은 실패다.”
사사끼는 준비했던 총공격 태세를 풀어 버렸다. 그 때를 놓칠세라 시바다의 군대는 물밀 듯 쳐들어 왔고, 허를 찔린 사사끼 군대의 포위망은 뚫려 버렸다. 사실 성 안에는 물이 없었다. 병사들은 찌는 듯한 더위와 습기 때문에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시바다는 사신이 돌아 가고 나자 성 안에 남은 물을 전부 버리게 했다.
“이제 남은 물이라곤 한 방울도 없다!”
결국 병사들은 물을 먹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격했다. 적을 방심하게 만들고, 아군은 배수의 진을 치게 함으로써 승리를 거둔 것이다.
어느 소년이 나뭇가지에 나비의 고치 집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나뭇가지를 잘 떼어 내 집으로 가져 갔다. 그리고 주둥이가 넓은 유리병에 넣고 날마다 살펴 보았다. 일주일 쯤 지나자 명주실로 된 한쪽 끝이 조금씩 투명해지고 고치집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치집은 더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아직 나비가 고치집을 뚫고 나타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나비는 고치집에서 나오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듯이 보였다. 소년은 어린 나비가 뚫고 나오기엔 고치집이 너무 단단한 것 같았다. 잘못하면 나비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소년은 칼로 고치집 한 귀퉁이를 잘라 주었다. 나비는 그 구멍을 비집고 한쪽 날개를 내밀더니 뒤이어 다른 날개도 내밀었다. 드디어 자유를 얻은 나비는 유리병 주둥이를 타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소년은 나비가 날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비는 날아 오르지 않았다. 날개가 마르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잠시 책상 위를 기어 다니던 나비는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가늘게 몸을 떨다, 죽고 말았다. 나비는 고치집을 뚫고 나오는 힘든 과정을 통해 비로소 생존의 힘과 날개짓 할 힘도 얻는다. 나비가 자유를 획득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기다림의 순간을 이해하지 못한 성급함이 결국 나비를 죽게 한 것이다.
1밀리미터의 오차가 20억원의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울산시 당국은 울산의 어느 도로 양쪽에 서 있는 건물들이 도로선을 0.5미터에서 2.5미터까지 침범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건물을 지을 때 이용된 지적도 때문이었다. 1천 2백분의 1 축척으로 지적도를 작성할 때 계획선에서 1밀리미터씩 잘못 돌출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지적도상에서 1밀리미터가 잘못 그어진 것이 실제 건축에서는 1천2백 배인 1.2미터 내외까지 도로선을 침범한 것을 나중에야 밝혀낸 것이다. 이로 인해 7개 동의 건물이 철거되어야 했는데, 그 보상 비용이 20억원을 넘었다. 단 1밀리미터의 오차 때문에...
소화장비를 생산하는 동방전자는 ‘우수 실수상’ 제도를 실시한다. 실수했을 때 문책하는 대신, 오히려 상을 주는 제도이다.
“실수는 기업의 자산이다. 실수를 숨기면, 기술 축적이 되지 않는다.”는 경영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1992년 11월 25일 분말소화설비 사용설명회에서 사전에 압력을 체크하지 않고 시범을 보이다가 분말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대실수를 저질렀다. 이 때 담당 대리는 오히려 백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고객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은 가슴 아프지만,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개발, 생산, 구매, 영업 모든 업무 분야를 대상으로 실패 사례를 공모한다. 내용에 따라 대상에게는 5백만 원의 상금을 준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자료로 만들어 그 경험을 공유한다면, 회사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더욱 빨리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아시아나 항공도 안전에 관한 위반사항을 즉각 보고할 경우, 보고자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는 처벌 지양 제도, 즉 Penalty Free를 94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일벌 백계’ ‘엄중 문책’ ‘신상 불벌’ 등은 순기능도 있지만, 실수나 실패를 은폐하게 만드는 역기능이 나타 난다. 결국 잘못을 반복하게 하고 대형사고의 원인이 된다.
제나라 환공이 술에 취해 임금의 관(冠)을 잃어 버렸다. 그는 부끄러워 3일 동안이나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재상 관중이 조용히 말했다.
“그런 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임금께서 진정으로 그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신다면 선한 정치를 베풀어서 수치를 만회하십시오.”
“옳지, 그렇구나.”
환공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고의 곡식을 풀어서 가난한 백성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죄가 가벼운 죄수 들을 석방했다. 이런 일이 있고 3일이 지나자, 온 나라 안의 백성들이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임금님이 주신 곡식 주린 배를 되살렸네/ 가난 땜에 갇혀 있던 개똥 아범 돌아 왔네/ 아! 우리 임금님. 그 관 한 번 다시 잃으시지...
관을 잃고 나서야 베푼 임금의 얄팍한 인심을 비꼰 것이다.
영국을 정복하고 왕국의 기초를 튼튼히 다진 잉글랜드 왕 윌리암 1세(William I, the Conqueror)가 알비온(Albion: Great Britain의 옛 이름으로 하얀 언덕이라는 뜻)에 도착했을 때 자갈 밭에서 그만 실족하여 넘어졌다.
“땅에 넘어 지다니, 아무래도 불길한 일이야...”
이 모습을 본 부하들은 놀라 수군거렸다. 부하들이 당황해 하는 가운데 서서히 땅을 짚고 일어선 윌리엄 1세는 극히 태연한 표정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는 이 영국을 나의 두 손으로 붙들었다. 이제 영국은 나의 것이다. 나의 것은 즉 제군의 것이다!”
윌리암 1세의 이 신념에 찬 한 마디에 부하들은 잠시 흉조로 여겼던 일을 순간 길조로 바꿔 환호성을 쳤다.
강오전 성균관대 통계학과 교수의 회고담이다. 일본 유학 시절, 한 친구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해 왔다.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홀딱 반해 버렸다는 것이다. 연애편지를 써야겠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끙끙 앓고 있었다. 며칠을 궁리하던 친구는 마침내 편지를 완성하고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보여 주었다.
“저는 지금 대학 졸업반입니다. 졸업만 하면 곧 훌륭한 회사에 취직하여 성실한 모범 사원이 될 것입니다. 저의 각오는 분명합니다. 저를 믿으셔도 좋습니다.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떻게나 열에 들떠 덤벙댔던지 연애편지를 봉투에 넣는다는 게, 그만 이력서와 바꿔 넣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훌륭한 회사’의 사장에겐 연애편지를 보냈고, 연인에게는 이력서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잘 풀렸다. 이력서를 받아 본 여인과 아버지는 이 만한 신원이면 신랑감으로 충분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연애편지의 굳센 모범사원에의 결심과 정열을 읽은 회사 사장은 사원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는 결혼했고, 회사의 모범사원이 되었다. 지금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기업가로 성장해, 그들 부부가 처음 만난 바닷가에 별장을 짓고 산다.
고개 한 번 옆으로 흔든 것으로, 세계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사나이가 있다. 「라코스트」라는 농부로, 나폴레옹과 웰링턴의 대결전장인 워털루 인근에 살고 있었다. 그는 나폴레옹 주력부대의 길 안내인으로 징발되어 있었다. 결전장인 몽상장 고지(高地)의 이쪽 저쪽 지형을 훤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안경으로 고지의 능선을 훑어 보던 나폴레옹이 라코스트에게 작은 소리로 뭐라고 물어 보았다. 이에 라코스트는 옆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몇 분 후 나폴레옹은 정예부대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정상으로 몰려 간 이 대부대는 반대 편의 수십 미터나 되는 벼랑에 추락, 몰사해 버렸다. 달려 가던 말의 여세를 멈추기에는 너무 갑작스런 낭떠러지였던 것이다.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나폴레옹은 웰링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 작전만 성공했어도 나폴레옹은 유럽의 황제로 군림했을 것이다. 라코스트라는 농부의 고갯짓 한 번이 세계사를 뒤바꿔 놓은 것이다. 나폴레옹이 물은 것은 고지 저편의 지세가 어떠한가였다. 라코스트는 ‘노’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돌격해서는 안된다는 ‘노’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장애가 없다는 ‘노’로 받아 들였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은 실수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렇게 작은 실수로 큰 일을 망치는 것을 농부의 이름을 따서 「라코스티즘」이라고 한다.
데일 카네기는 ‘내가 한 어리석은 행동(Fool Things I Have Done)’이란 말의 약자를 따서 ‘FTD’라고 이름 붙인 서류함을 캐비넷에 보관하고 있다. 그 속에는 자기가 죄책감을 느끼는 어리석은 짓들을 기록한 문서가 들어 있다. 때로는 비서에게 정리해 달라고 지시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너무나 어리석어서 남에게 보여 주기도 수치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직접 정서를 해 넣기도 한다. 15년 전에 넣어 둔 자기에 대한 비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있다. 만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말로 솔직했다면 캐비넷은 FTD에 관한 메모로 가득 차있을 것이라고 한다. 자기 손으로 직접 쓴 자신에 대한 비판인 FTD를 다시 꺼내 읽으면, 자기가 마주하게 될 혹독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불행한 일의 대부분이 자기 탓으로 벌어진 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뿌린 것은 반드시 거두어야 한다
설교가 끝나자 나이 많은 집사가 목사를 찾아 와 "뿌린 것은 반드시 거두어야 한다."라는 설교를 듣고 깊이 절망했다고 말했다.
집사는 지금은 그리스도를 믿으며 모범적으로 살고 있지만, 젊어서 한 때는 외도까지 하면서 죄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거두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 즉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위해 대신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 때문에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하셨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죄도 마찬가지로 사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마침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뿌린 대로 거두기 -마이크 부에텔
내가 중학교 다닐 때 2학년 깡패가 내 배에 주먹을 날렸다. 나는 아프기도 하고 화가 났을 뿐 아니라 당혹감과 수치심을 참을 수 없었다. 난 복수심에 불탔다. 그래서 다음날 잠자기 전에 기습을 해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어떡하다가 내 계획을 할머니에게 말하게 되었다.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할머니는 한 시간이 넘게 설교를 늘어 놓으셨다. 설교는 끝없이 지루하게 이어졌는데, 그 중에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내가 그 녀석에 대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좋은 행동은 좋은 결과를 가져 오고, 나쁜 행동은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돼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 애써 공손한 말투로,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지금까지 좋은 일만 해 왔는데 그 보상으로 내가 받은 것은 '개똥 밖에 없다고 말씀드렸다.(물론 '개똥' 이란 말을 직접 사용하진 않았지만)
할머니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다. "모든 좋은 행위는 어느 날인가 네게 돌아 올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나쁜 행위도 어느 날인가 돌아 올 것이다."
할머니의 말씀에 담긴 지혜를 이해하는 ,30년이 걸렸다. 할머니는 캘리포니아 라구나 힐즈에 있는 시설 좋은 양로원에서 생활하셨다.
매주 화요일이면 난 할머니를 모시고 저녁을 사 드렸다. 할머니는 언제나 단정히 옷을 입으시고서 현관 앞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셨다. 나는 할머니가 노인 요양소로 옮겨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함께 저녁을 먹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가족이 운영하는 근처 작은 레스토랑으로 갔다.
나는 할머니를 위해 쇠고기 요리를 시키고, 나 자신은 햄버거를 주문했다. 음식이 도착해 내가 먹기 시작했는데도 할머니는 드시지 않고, 가만히 앉아 계셨다. 접시에 놓인 음식을 물끄러미 쳐다 보기만 하실 뿐이었다.
내 접시를 치우고 나는 할머니의 접시를 내 앞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 고기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 드렸다. 그런 다음 접시를 할머니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할머니는 이제 많이 노쇠하셔서 고기 자를 힘이 없으셨던 것이다. 내가 잘라 드린 고기를 할머니는 천천히 입으로 가져 가셨다.
그것을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코 끝이 시큰거렸다. 40년 전, 한 어린 소년이 식탁에 앉을 때면 할머니는 언제나 내 접시를 끌어 당겨 내가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작게 잘라 주셨었다. 이제 40년이 흘렀는데, 그 좋은 행동이 보상을 받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우리는 뿌린 대로 정확히 거두게 되어 있다.
"네가 하는 좋은 행동은 언젠가는 너에게 돌아 올 것이다."
그러면 그 중학교 2학년 깡패는 어떻게 됐는가?
일년 뒤 그는 3학년 깡패가 되었다.
비관 보다 낙관하는 정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정신과와 심리과 공동 연구팀은 최근 미국의 건강의학 전문지 '성격과 사회심리' 최근호에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중년을 상대로 조사한 이 팀의 결론은 '걱정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하게 살려면 비관적 생각을 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
낙천성과 비관성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도 비관적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무조건 잘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기 보다는 사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줄이는 게 건강에 이르는 길이라는 얘기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관적인 정신을 떨쳐 버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긍정적인 정신을 가질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의 자녀 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할 때에 가능하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또한 그의 자녀 된 우리를 부모가 부족한 자식을 사랑하듯, 부모 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4장 8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앞으로 점점 나아갈 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확실히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 갈 때에 많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긍정적인 정신을 형성해 줄 것이고,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긍정적인 정신을 통하여 참된 행복도 누리게 될 것이다.
비관자와 낙관자의 차이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눅9:35)
들으라!
비관자와 낙관자의 차이는 가문이 아니라, 정신이다. 낙관자는 듣고 이해하는 자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소리를, 가족들의 소리를, 친구들이 소리를, 동료들의 소리를,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해하라.
그들은 적극적인 소리는 듣고, 소극적인 소리는 듣고 그냥 흘려 버린다.
당신은 지금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가?
하루 24시간을 당신은 어떤 소리를 듣는지 소극적인 소리와 적극적인 소리들을 구분하여 적어 보라. 그리하면 당신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 특별히 들려 주시는 적극적인 소리만을 공급해 주시므로, 당신은 소극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일 틈이 없어진다.
무너진 우물에서 살아남
1912년 경상도 함안군 덕산교회에 김성협이라는 영수가 있었다. 언젠가 대단한 가뭄이 들어 먹을 물이 부족하여 우물을 파기로 했는데, 깊이가 세 길이나 되는 우물을 파고 아들 김일용으로 하여금 우물에 내려 가 수축하라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따라 우물에 내려 갔는데, 갑자기 우물이 무너지고 말았다. 세 길 깊이 속에 있던 아들은 졸지에 봉분 없는 무덤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 김성협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슬픔에 싸였다.
마을 사람들은 힘을 모아 두 시간 동안 다시 우물을 팠다. 우물을 파 보니 아들이 살아 있었다. 돌무더기가 무너진 중에서도 조금도 상한 곳이 없이 살아 났으니, 영수의 기쁨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바벨탑이 무너지던 날 -박혜하
갓 태어난 경환이, 큰 아이, 남편과 저는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내 인생의 왕좌에는 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을 모르는 채 교만했습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모든 종교는 다 같다."라고 생각하여 구원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먹고 잘 자며 아주 순했던 경환이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가슴과 넓적다리에 하루 아침에 멍울이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종합 병원을 찾아 갔더니 배에 큰 종양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살아 날 확률이 40% 밖에 안 되는 4기 말인 신생아 세포 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저는 너무 어이가 없고 믿을 수가 없어서 웃고 서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줌마, 정신차리세요. 아이가 암에 걸렸어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진 채 항암제를 맞고 있는 파리한 얼굴의 다른 아이들을 보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선 결혼 전 주일 학교 교사 때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예수님의 기적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니야, 경환이는 우리 예수님께서 고쳐 주실 꺼야!'
그래서 사람들에게 우리 경환이를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다고 자랑하며 다니겠다는 소망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곧 서울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배를 열어 보니 주먹만한 암 덩어리 2개가 포도송이처럼 퍼져 있어 5시간 동안 수술했습니다. 생후 6개월 된 어린 아이가 독한 항암제를 맞자 3분 간격으로 8시간 이상 토해 내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독한 항암제를 맞아도 종양은 날이 갈수록 배와 다리로 튀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치료를 받던 아이들도 하나 둘씩 죽어 갔습니다. 저의 가슴은 바위로 누르는 듯한 암울함과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참으로 인간이 아무 것도 아닌 풀과 같은 존재임이 깨달아졌습니다. 고통 중에 신음하는 경환이를 위해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강팍해질 때면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더독한 항암제로 바꾸어 가며 1년반 가량 치료하였으나 암은 온 몸에 퍼지고 골반뼈와 어깨뼈에 까맣게 전이되어 두 달 밖에 살지 못하는 5기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절망하여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환이의 소문을 들으시고 기도해 주기 위해 어떤 집사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분은 "먼저 온 가족이 회개해야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늘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었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이시지만,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 가셨음을 믿지 못했었습니다.
"하나님, 회개하겠습니다. 저의 죄를 깨닫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강한 자존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기 보다는 나 자신과 남편을 더 사랑하고 의지했던 것, 시부모 공경하기를 싫어하며 어머니를 미워했던 것, 음란한 생각들 등이 너무나 더럽게 느껴졌습니다.
아! 이 악한 죄로 인해 내가 죽어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멸시와 고통의 십자가에 돌아가셨구나! 나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피가 저의 온몸에 전율로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삼 일 만에 부활하셨듯이 저의 무겁고 얽매였던 죄악들이 다 벗어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이 된 기쁨으로 솟아올랐습니다. 남편도 "경환이는 나 때문에 병났어.하며 회개했습니다. 얼마 후 서울대학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습니다.
아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겠습니까?
까맣던 뼈가 정상적인 하얀 뼈로 되돌아 온 것입니다.
우리 경환이를 죽음에서 살려 주실 분은 의사 선생님도, 항암제도 아닌 우리 예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의 기도도 크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분명히 들으시고 응답해 주심을 깨닫고, 뜨겁게 잠자면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3개월 밖에 살지 못할 경환이가 지금은 씩씩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경환이를 통해 회개케 하시고 보혈의 피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망해도 멋있게 망해야 합니다
지난 해 늦가을, 우리 나라 기독교 출판. 음반. 교회용품 유통업계는 한 바탕 큰 소용돌이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큰 도시의 모 기독교 서점이 엄청난 금액의 부도를 냈기 때문입니다. 그 여파가 워낙 엄청나 그 서점에 대량으로 납품했던 몇몇 영세업체의 연쇄적인 도산이 이어졌고, 여타 거래처들도 작게는 수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대금을 떼이는 손해를 보고 휘청거렸습니다. 흔히 부도가 나게 되면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돌연 잠적해 버립니다. 일단 구속되는 것이나 빚장이들로부터 피하고 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악한 사업가들은 부도라는 것을 악용하기도 합니다. 부도가 날 줄 뻔히 알면서도 부도 전날까지도 거래처로부터 최대한 납품을 받아 부도 후를 대비하기도 합니다. 부도가 나면 수습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그 책임자가 돌연 잠적하여 오랫 동안 나타 나지 않으면 사태는 심각해집니다.
기독교인들도 부도를 낼 수 있습니까?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기독교인들도 기업을 경영하다 경기 (景氣)를 비롯한 제반 여건이나 피할 수 없는 금융상황에 따라 부도를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도 낸다는 것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부도 그 자체가 죽일 죄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부도 사태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도를 당해도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도란 최소한 수일 전에는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재앙입니다. 그러면 최악의 상황 앞에서 거래처 대표들을 초청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최선의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 상식적인 예의입니다. 서로 경영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업주들끼리 얼마든지 뒷수습에 협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만 살겠다고 도망을 쳐버리면, 뒤에 남은 이웃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기독교인 사업주들이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은 방법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장사를 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아니 하나님께서 욕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젊은이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따리 장사를 해도 멋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큰 기업도 멋있게 하십시오. 그러다 정말 너무나 어려워, 파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비굴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에게 끼친 손해는 목숨을 걸고 다 갚으십시오. 평생 동안이라도!
예수의 사람들은 망해도 떳떳하고 멋있게 망해야 합니다.†
망했다고 생각될 때
야간 열차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정장을 한 신부님 한 분이 차장을 불러서 당부한다. 지금 잠을 좀 자야겠는데 새벽 2시 대전역에서 내려 호남선 열차로 갈아타야 하니, 대전이 가까워지면 자기를 깨워서 꼭 그 곳에 내리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어서 자기의 잠버릇이 대단히 고약해서 자다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상관하지 말고 반드시 대전역에 내려 주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당부를 한다.
차장도 카톨릭 신자다. 신부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깨워서 대전역에 내리도록 해 줄 것이니, 안심하고 푹 주무시라고 호언장담한다.
모든 문제를 차장에게 떠넘긴 신부님이 숙면에서 깨어나 보니, 날은 이미 밝았고 기차는 종착역인 부산에 도착되어 있다. 기가 막힐 지경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신부님은 마침 자기 곁을 지나가는 차장을 붙들고 온갖 행패를 다 부린다.
"야 이 맹추 같은 차장 녀석아. 왜 대전역에서 내려 준다는 약속을 지키질 않았어? 머저리 같은 네 놈 때문에 내 일이 얼마나 망쳐졌는지 알아!"
이렇게 한참을 호통치던 그가 제 풀에 지쳐서 등을 보이며 개찰구 쪽으로 향한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승무원 한 사람이 차장에게 말한다. 어떻게 그런 모욕을 참고 견디느냐고. 이 말을 들은 차장은 씽긋 웃으며 "요즘 신부님들은 다 저러신가 보지 뭐.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오늘 새벽 2시에 대전역에서 억지로 내려 드린 신부님의 욕설이나 행패에 비하면 이건 약과야. 암 약과고 말고..."
바로 그 날.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부산에서 대전 가는 기차를 타고 가던 예의 그 신부님은 자기가 예정대로 대전역에서 내렸으면 반드시 타야만 했던 바로 그 호남선 열차가 큰 사고를 내어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심하게 다쳤다는 신문 호외 기사를 읽는다.
때로 우리들은 대전에서 내려야 할 분이 본의 아니게 부산까지 가게 되는 것과 같이, 인생살이를 하다 보면 미처 상상 조차 못했던 낭패를 경험하는 수가 있다.
이런 일 중에서도 심한 경우를 당하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완전히 망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마이너스 감도
장점이나 성공 요인 보다 단점이나 실패 요인에 비중을 더 두는 의식구조를 '마이너스 감도'라 하는데 이를 이론화 한 학자는 미국의 훼스팅거이다.
훼스팅거는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의 합격 여부를 그 학생의 마이너스 감도와 비교 측정하여 정확히 알아 맞힌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출제를 하여 모의시험을 치른 다음, 학생들을 불러 놓고 "이번 시험 얼마나 잘 보았느냐?"고 묻는다.
"그런 대로 보았다." "웬 만큼 보았다." 하며 자신의 잘못 본 문제에 대해 기억이나 집념이 없는 학생은 일단 불합격 확률이 높은 반면, 3번 문제의 A와 5번 문제의 D가 틀렸다고 자신의 실패를 자인하고 표출하는 학생은 합격 확률이 높다.
곧 실패를 염두에 둔 마이너스 감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행동학자 스키너도 50명씩 두 그룹을 나누어 한 그룹에서 먹고, 입고, 놀고, 사는 데 무제한의 혜택과 자유를 주고, 다른 그룹은 궁핍과 역경과 부자유를 주어, 6개월 후에 행동을 비교해 보았다.
활력이나 의욕의 발전율에 있어 전자에 0에서 마이너스 5로 떨어지고, 후자는 0에서 8로 상승했다고 한다. 마이너스 감도, 즉 실패에 대한 경험은 이처럼 성공의 어머니요 성공의 자원인 것이다.
되는 대로...
한 젊은 크리스천이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하는 일에 너무 게을렀다.
그는 매일 아침에 성경책을 되는대로 펼쳐, 맨 처음 눈에 잡히는 구절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날의 말씀으로 받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그는 조심스럽게 성경을 펼쳤다.
그의 시야에 들어 온 첫 번 구절은 "유다는…… 물러 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 27:5)였다. 이 말씀이 그날 그를 위해 주시는 말씀으로 여길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펼치기로 했다.
이번에 그의 눈에 마주친 성경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였다.
그러자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성경을 열기로 했다.
성경의 페이지에서 맨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 13:27)였다.
도피 성도
교회에는 도피하기를 좋아하는 도피 성도들이 더러 있다.
도피 성도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도이다. 그들은 교회를 나가도 뒤 자석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살짝 빠져 나가곤 한다. 그들은 구역예배를 참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성도들끼리 다니는 일에는 전혀 나타 나지 않는다.
그들은 길에서 목사나 성도들을 만나기를 꺼리며, 또한 집으로 심방 하는 것까지도 꺼린다. 애초 교회에 처음 올 당시부터 그들은 소개 받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조용히 은둔의 생활을 하는 수도승처럼 말도 없이 살아 간다.
K라는 성도도 도피 성도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낮 예배 후 도망 가다시피 줄행랑치는 그의 뒤를 따라 가 그와 악수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성도님, 뭐가 그리도 바쁘십니까? 잠시만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부엌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던 중에 들킨 생쥐 마냥 겁에 질린 모습으로 나의 입술을 주시하고 있었다.
"성도님! 이름 없이 하나님을 섬기려는 성도님의 뜻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한 형제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서로 얼굴을 돌리며 살아 간다면, 형제로서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서로 도우며 격려하며 책망하는 관계를 원하지 않을까요?"
도피성을 지으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 가서 도피성을 지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도피성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는 고의적인 범죄자가 아닌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이다. 이는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를 막기 위함이다.
이처럼 도피성을 마련토록 하신 이유는,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심이며, 무죄한 자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은 외적 결과만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나무를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옆 사람을 죽게 한 사건을 들어 보자. 이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나 결과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외모나 결과로 사실을 판단하고 행동하여 무죄한 자가 피를 흘리게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방법이 아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존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생명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결과 보다는 원인을, 외모 보다는 중심을 살피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런 지혜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도피성이 잘 닦여진 이유
도피성은 사회에 속한 자들 중에서 약자나 곤경에 처한 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법적 장치였다.
공동체 구성원 간에 보복심에 불타,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지 않게 하려는 제도이기도 했다(민 35:6-12). 여섯 개의 도피성은 각 지파가 사는 지역의 중앙에 위치했는데, 죄인들이 어디서나 가까운 곳으로 빨리 피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역시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높은 산지에 있었던 도피성까지의 길은 잘 닦여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누구나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잘 알 수 있어야 하고, 피하기에 좋은 길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신 19:3).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넓이가 14m나 되었으며, 길에는 표지판을 크게 세워 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도피성을 통해 실수로 살인한 죄인을 그 죄대로 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또 도피성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께 피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잘 닦여진 길이고 안내표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완성해 놓은 예수님의 구원의 길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도피형 학생
기독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보면 도피형이 많다.
이는 외골수적인 신앙 스타일로, 학교생활이나 친구 사이에서 일부러 떨어져 나와 있는 유형이다. 자기 딴에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식인 것 같다.
그는 혼자 고고하다. 그러나 매사에 소극적이고 도피적이다. 학교에서는 숨어 있으므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구석에서 살아 간다.
도망 가지 말 것
윈스턴 처칠은 "위험이 있을 때, 도망치지 말라"는 표어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위험이 닥쳤을 때는 절대로 뒤로 도망쳐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위험이 두 배로 되는 법이다. 반대로 단호하게 거기에 맞서면, 위험은 반감된다. 결코 도망쳐서는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고 항상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런던 신문 모닝 포스트사의 전신 통신원으로 일할 때 때, 비오듯 퍼붓는 탄환을 무릎 쓰고 장갑차를 몰며 기사를 보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포로가 되기도 하여, 자신이 아예 최고의 뉴스거리가 되었던 인물이다.
도망 가지 못하게 붙드시는 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한 사람에게 한 친구가 물었다.
"자네는 왜 이러한 비인간적인 고통으로 깨어지기 전에 여기서 벗어 나지 않았는가?"
"나도 때로 도망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이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붙드셨다네."
도망 간 암닭 한 마리
사랑하는 처가 시장에서 암탉을 두 마리 샀습니다. 제가 가끔 비실대니까 몸 보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두 마리를 사서 한 마리는 끈으로 묶어 놓고, 한 마리는 푹 고아서 아이들도 주지 않고 제게만 기름이 동동 뜨는 닭국을 가져 왔습니다. 그 때 그만 끈으로 묶어 두었던 닭이 끈을 풀고 담을 넘어 뒷편에 있는 수렁을 지나 건너 집 지붕으로 올라 가고 말았습니다.
그 닭을 잡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촌닭은 어찌 그리도 잘 날으는지!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종횡무진 도망을 쳤습니다. 몇 시간을 따라 다니며 저는 마음 속으로 "주님! 저 닭을 잡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주님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므로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4-7).
저는 문득 저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이 곳에 이사 와서 천하 보다 귀한 잃은 영혼들을 찾으려고는 이렇게 열심히 이 집 저 집을 다니지 아니했는데, 고작 암탉 한 마리 잡으려고 이런 열심을 가지다니, 나도 별 수 없는 속물에 불과하구나.
저는 닭을 따라 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을 발견했습니다.
"주님 잃은 영혼들을 찾으러, 이와 같은 열심을 가지고 이 집 저 집을 다니게 하옵소서. 종에게 믿음과 지혜를 주옵소서."
도망치는 배
바다에서 적의 배가 전속력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은 발견했을 때, 처음에는 도망치는 배를 멈추게 하기 위하여 화약으로 장전한 총들 만을 사용하여 쏜다. 그래도 그 배가 멈추려 하지 않을 경우 포탄을 대포에 장전하여 그 배를 향해 발사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 배를 파괴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로 하여금 돛을 내리고 항복하게끔 위협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배가 도주를 멈추려 하지 않을 때에, 아군의 선장은 도망치는 배의 정면을 향해 직접 총과 대포를 쏘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면 그 배는 수 많은 포탄을 맞아 선체와 배의 장비들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서야, 도주를 멈추게 될 것이다.
잃은 것과 가진 것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 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됩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 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탑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 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 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 받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 곳에는 오직 절망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 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값진 희생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간호원 한 분이 있다. 후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그 분은 이탈리아의 부유하고 문화적인 교육을 받은 가정에서 자라 났다. 부모는 그 딸에게 좋은 가정을 갖도록 행복한 결혼을 권유했지만, 나이팅게일은 다 거부했다. 그는 31세 때 허무감에 젖어 일기에, “살아 갈 의욕이 없다. 텅 빈 공허감,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다.” 라고 썼다.
삶의 가능성이 무엇인가?
공허 속에 살던 그는 31세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31세에 간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만류도 뿌리치고 이 젊은 여인은 전쟁터를 찾아 갔다. 피 흘리며 쓰러지는 전상자들을 붕대로 싸매어 주고 닦아 주고 붙들어 주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며 3년 동안을 도왔다. 외로운 군인들은 나이팅게일만 지나 가게 되면, 마치 예수님이 지나 가시는 것처럼 인사하고 경배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희생을 거쳐서 그는 현대 간호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 후 병원마다 간호원이 없어서는 안되도록 제도화 시켰다.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에 그의 시체를 영국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모시려 하자, 나이팅게일은 그런 자격이 없으니, 가족묘에 묻어 달라고 했다.
31세 때 더 나갈 수 없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였던 나이팅게일은 새로운 가능성과 삶의 의미를 찾고야 말았다.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참고 견디어 우리의 인생 경주장에서 승리를 하여야겠다.
좌절을 이기는 힘
고아의 아버지 조지 물러는 믿음과 사랑을 지닌 위대한 인물이었다. 조지 물러에 대해 깊이 연구하던 아더 피어슨 박사(1837-1911.미국 장로교회목사.저술가)가 조지 물러의 성경을 조사하게 되었는데 시편 37편 23절 말씀 옆에 고인의 친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리고 또한 멈춤까지도 우리는 살아 가면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멈춰 서성대고 좌절할 때가 있다. 그 때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행을 살피시고 힘을 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시편 34:21)
불가능의 가능
1985년 5월 15일,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학위 수여식에 낯선 동양인 한 사람이 감격적인 눈물을 흘리며 참석하고 있었다. 이름은 전재경, 나이는 50세. 특별히 눈길은 끈 것은 그가 여느 사람과 달리 맹인아라는 사실이었다.
전박사는 충남 부여에서 목수였던 아버지의 2남 5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으로 자랐으나, 7살 되던 해 당시의 유행병인 안질을 앓다가 실명하게 되고, 그 때부터 고통과 불행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서울맹아학교에 입학한 그는 좌절과 고통을 견뎌 내며 열심히 공부했으므로, 드디어 건국대 역사지리학과에 입학할 수 있엇다.
4년의 과정을 무사히 마친 그에게는 여러 가지 장애 요소가 많았지만,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미국 연수 1년 예정으로 도미하여 장학금까지 받는 행운도 얻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로, 뉴욕의 복잡한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 타고 가야 하는 맹인 전용 도서관을 20년이나 왕복했고, 50세가 되는 해인 1985년 드디어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공부하던 중 그의 아내 에드나와 결혼했는데, 신앙적인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학문 연구는 전혀 불가눙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역사상 승리의 월계관을 쓴 인물들은 모두가 자기의 운명을 저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평정으로 대처하였던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태어났다.(엡2:10)
우리를 안으시는 분
매우 단련된 신앙인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헨리 무어하우스에게 닥쳤다. 그가 낙망해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어린 딸을 통하여 확신을 주셨다.
어느 날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 뜨린 채 들어 오는 그를 응접실에서 놀고 있는 어린 딸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아빠가 들고 들어오는 꾸러미를 보자 휄체어에서 일어 나며, "아빠 그거 뭐예요?" "엄마에게 줄 거란다. 엄마 어디 계시니?" "2층에 계셔요. 아빠 그것 이리 주세요. 내가 들고 갈께요."
"아니, 너는 제대로 걸을 수 없으면서, 어떻게 2층에 계시는 엄마에게 이것을 가져다 준다고 그러니?"
그런데 그 아이가 "나는 꾸러미를 들고, 아빠는 나를 안으면 되잖아요." 라고 하였다.
참으로 옳은 말이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이와 같이 안고 계시는데, 왜 내가 그토록 좌절했던가?"
이 확신을 가지고 승리자가 되었다.
절망은 무서운 병
창경원의 동물원이었던 시절 한 수의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 난다.
언젠가 새끼 세 마리를 낳은 원숭이가 있었는데, 그 중 두 마리를 다른 동물원에 옮긴 지 한 달 남짓 후에 남은 마지막 새끼까지 옮기려 들자, 어미가 죽자 하고 놓아 주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어미 원숭이에 마취제를 놓고 격리 시켰는데, 마취에서 깨어난 이 어미는 그 시간부터 식음을 전폐, 장(腸) 활동이 멎고 끝내는 장폐색증(腸閉塞症)에 걸려 죽어 가고 있었다. 이에 정신과 의사와 상의하여 정신 안정제를 먹여 살려 냈다는 것이다.
진(晋)나라 환공(桓公)이 삼협(三峽)을 배 타고 내려 가는데, 하인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아 왔다. 그 어미가 이를 알고 뱃길 따라 백리길을 울부짖으며 뒤쫓아 와서 끝내는 뱃전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배를 갈라 보았더니 창자가 갈기 갈기 촌단돼 있었다 한다.
너무 슬프거나 지나치게 마음이 아프면 이처럼 장폐색증에 걸리고, 심화되면 창자가 끊어 진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사람도 의존할 대상을 상실하거나 기대와 희망을 잃으면, 죽음을 재촉하는 단장의 생리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테레사 수녀의 수기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생각 난다. 고아원에서 시름 시름 앓는 아이가 생기면 병원에 보내기 전에 기도를 먼저 시킨다는 것이다.
내가 나쁜 짓을 해서 엄마가 나를 버렸지만, 이제 착한 아이가 될 터이니 돌아 와 주십사고 며칠 동안 기도를 시키면 앓는 열 아이 가운데 여섯 아이는 건강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곧 기대를 주어 병을 낫게 하는 희망 치료인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 사회학 교실이 조사 연구한 바로 남자들은 자기 생일 직전에 죽는 율이 높은데 비해, 여자들은 자기 생일 직후에 죽는 율이 두드러지게 높다는 사실을 방대한 통계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로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삶을 둔 희망의 농도나 절망의 희망 전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 했다. 곧, “생일은 넘겨 살아야지...” 하는 기대심리와 “생일까지 살아 뭣해...” 하는 기대 상실이 죽음을 좌우한다는 것이 된다.
희망과 기대, 그리고 절망과 고독이 인간의 생사를 좌우한다는 또 하나의 소명 자료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험 위주의 교육이며, 어깃장만 놓는 통일이며, 적자에 실업만 가중시키는 경제며, 당리당략에 지새우는 정치 등등... 돌아 가는 꼬락서니로 희망과 기대와는 동떨어진 현실이고 보면, 우리 한국 사람들의 창자가 날로 가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 된다.
정신들 차렸으면 좋겠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유명한 강철 왕 카네기의 사무실 한 가운데 벽에는 낡은 커다란 그림 하나가 그의 일생 동안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거나 골동품적인 가치가 있는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그림 내용은 커다란 나룻배 하나와 배를 젓는 노가 썰물 때에 밀려서 모래 사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것으로, 무척 절망스럽고 처절하게 까지 보이는 그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사람이 카네기에게 어째서 이 그림을 그렇게 사랑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가 청년 시절에 세일즈맨으로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물건을 팔았는데, 어느 노인 댁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 그림이 퍽 인상적이었고, 특히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라는 글귀는 오랫 동안 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8세 되던 해에 기어코 그 노인을 찾아 가, 용기를 내어 청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이 그림을 자기에게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노인은 그의 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카네기는 이 그림을 일생 동안 소중하게 보관했고,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라는 말을 그의 생활 신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집념의 모델
최정상급 모델 아이비 군터 양은 암으로 오른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잘라야 했다. 아이비는 밤새껏 울었다. (15살 때부터 약 10년째 모델 생활을 해 온 내 인생도 끝나는구나).
다리가 잘린지 10일째 되던 날, 전속회사 사람이 찾아 와 쓰지 않겠다고 매정하게 통지했다. 아이비는 오기가 나서 기어코 모델로 재기하리라고 다짐했다. 아이비는 6개월 만에 머리가 다 빠지는 화학치료를 받으면서도 전속 모델회사를 찾아 나섰다. 대머리에 한 쪽 다리 없는 아이비를 보고 멍한 표정으로 바라 봤다. 아이비는 "어떤 머리의 색깔을 원하시나요?" 라고 묻고, 여섯 종류의 가발을 쓰곤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활동 목적을 따라 갈아 끼울 수 있는 정교한 의족 4개와 신발의 굽의 높이를 스포츠, 활동에 알맞게 붙였다 떼었다 하는 인조 발이 13 개나 있다. 이것들 때문에 걷거나 운동하는데, 지장을 느끼지 않는다.
전 미국 장애자 스키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테니스, 수상스키도 한다. 모델의 최고 영예인 국제 모델 전당에 모셔지는 인물이 됐다. 올 봄부터는 "고통을 딛고 일어 선 사람들"이란 방송의 진행자로 활약한다. 그녀는 "현재의 인생이 다리를 잃기 전 보다 더 충만하다" 고 고백한다.
역경을 이기고...
나다나엘 호손은 어려서 다리를 저는 불구자였다. 그래서 밖에 나가 마음대로 놀 수도 없는 몸이었지만, 그는 영문학의 대가가 되었다. 또 피아노 음악의 천재인 프레드릭 쇼팡은 평생에 약한 몸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고되고 힘든 작업에 자신을 뜨겁게 헌신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40세가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음악 역사에 빛나는 거성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고난에 감사로 분발했던 사람들인 것이다.
젊은 병사의 서원
미국 남북전쟁의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아틀란타 근처 산악지대에서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밤에 연합군 소속인 스물 한 살의 젊은 장교가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위생병들이 이 장교를 쳐다 보고는, “죽었어. 숨을 쉬지 않는 걸...” 하고 말하면서 돌아 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성격은 너무 과격해서 대학 시절에 항상 그는 종교적인 문제 밖에 있었으며, 무신론자로 자처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젊은 장교는 누운 채로 의식을 회복하고, 양친들의 믿음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만일에 나를 살게 해 준다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닥쳐서야 비로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위생병이 다시 그 곳을 지나다가, 아직 살아 있는 그 장교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군목을 불러 그리스도인이 되려 했던 얘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무엇이 전장에서 부상당하고 쓰러진 젊은이를 위생병이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겠습니까?
위생병들도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청년에게 손을 뻗치시고 다시 고쳐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기로 서약했던 그의 남은 삶에서 무슨 일이 나타났습니까?
그는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와 세 개의 종합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침례교회도 그의 헌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20여 권의 저서를 내었고, 수천명의 영혼을 구원 시켰습니다. 그 청년이 곧 미국이 배출한 가장 기적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러셀 콘웰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셔뜨리고 나서, 그에게 봉사하는 적절한 그릇으로 다시 고쳐 만드셨습니다.
분발은 「자극」서 나온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영리했으나, 공부는 잘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뉴턴이 물레방아를 만들어 아이들 앞에서 자랑했을 때 몸집이 큰 한 아이가 『만들 줄만 알았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이치도 모르면서 무슨 자랑이냐?』 고 조롱했고, 화가 난 뉴턴은 그 아이에게 대들었으나, 오히려 흠씬 두들겨 맞았다. 뉴턴은 절망이나 낙심하지 않고, 「분투」를 삼키며 공부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성공한 후, 이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 때 발길에 차이고 조롱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문호가 된 「소년 벽돌공」
유복자로 출생한 아주 못 생긴 소년이 있었다. 모친이 벽돌공과 재혼했을 때, 소년은 벽돌을 쌓으며 지냈다. 학교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소년은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책을 읽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영국에서 갈채와 존경을 받는 극작가요 시인이 되어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영예를 받았으며, 제임스 국왕으로부터는 훈장을 수여받기에 이르렀다.
이 소년이 「10인 10색」, 「시제이너스」의 작가 벤 존슨이다.
기회는 낙심될 때 온다
토머스 칼라일은 런던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ㅡ 1837년 「프랑스혁명사」를 집필, 세계적인 역사학자가 되었다. 본래 이 원고는 칼라일이 수년의 각고 끝에 1834년에 썼는데, 그가 잠시 외출한 사이 하녀가 못 쓰는 원고인 줄 알고 난로에 집어 넣어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다.
며칠 동안 음식을 못 먹고 낙심하던 칼라일은 문득 『더 좋은 원고를 쓰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다시 용기를 내어 집필, 불후의 명저를 내놓게 된 것이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브리서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