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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57) 시조깅고전답서(팔풍초<八風抄>) 상
사제(師弟)에 살아가는 ‘현인’의 길을
지금으로부터 32년전(1981년) 가을, 시코쿠연수원(가가와현 아지)에서 청년부 대표들과 간담했을 때 일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학회가(學會歌) 가사의 초안을 가져왔습니다. 밤새워 생각했는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일체의 선구자가 되겠다. 이런 깊은 결의에 불타는 청년들이 있으면 학회는 반석과 같이 든든하고 미래는 한없이 열려 있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알았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나도 돕겠습니다.”
그리하여 체류하는 수일동안, 20여 차례나 퇴고했습니다.
끊임없는 행사의 막간을 이용한 매우 진지한 승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도 열렬히 계승되고 있는 ‘태양의 노래’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 2절 원안에는 “훼예포폄(毁譽褒貶, 남을 헐뜯음과 칭찬)의 사람이 있지만” 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가사를 “훼예포폄의 사람을 항복시켜(한국어 가사 : 비평하는 자들아 물러나가라)”라고 고쳤습니다.
세간의 풍문 따윈 문제도 삼지 않고, 거친 세파를 의연하게 승리로 이끄는 ‘창가(創價)의 혼’을 가사에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자로서 당당히 살아라’
도다 선생님이 자주 청년들에게 말씀하신 지도가 있습니다.
“결코, 두려워하지 마라, 사자로서 당당히 살아라.”
이 말씀대로 학회도 그리고 학회원도 초창기 이래로 신념의 길을 관철했습니다. 어떠한 폭풍 속에서도 자신의 좌표축을 잃지 않고 내 사명의 인생 항로를 곧장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학회정신을 이어받는 청년들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 흐뭇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세계 곳곳에 지용의 청년들이 당당한 대열을 구축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등장한 크나큰 사명을 짊어진 청년들입니다.
그런 만큼 모두가 세간의 평판이나 비난에 일희일우(一喜一憂)하는 일없이 세계광선유포라는 커다란 낭만을 향해 자신의 놀랄만한 인간혁명의 투쟁에 승리하기 바랍니다.
정의롭고 알찬 인생을 보내기 위한 불법입니다.
행복과 승리의 일생을 구축하기 위한 신심입니다.
그래서 이번 달은 <팔풍초>라는 별명도 있는 <시조깅고전답서>를 배독하여 팔풍이라는 훼예포폄에 흔들리기 않는 ‘현인’의 길을 함께 배웁시다.
◇
<본문> (어서 1150쪽 5행~1151쪽 3행)
귀하(貴下) 자신(自身)에게나 부모(父母) 친족(親族)에게나 귀하의 집안을 가엾다고 말씀하셨던 대은(大恩)을 입은 주군(主君)인데다가
지난날에 니치렌(日蓮)이 감죄(勘罪)를 받았을 때 일본(日本) 일동(一同)이 미워하였으므로 제자(弟子)들도 혹(或)은 소령(所領)을 막부(幕府)에게 몰수당했기 때문에 또 그들의 주군(主君)들도 혹(或)은 가신(家臣)으로서 쫓아내고 혹(或)은 영지(領地)에서 쫓아냈는데 그 저내(邸內)에는 아무 일도 없었음은 귀하에게는 대단한 대은(大恩)이라고 생각되옵니다.
이제부터는 설사 일분(一分)의 은혜(恩惠)가 없다 해도 원망(怨望)할만 한 주군(主君)이 아니로다. 그런데 거듭해서 은혜를 바라고 소령을 싫어하신다면 잘못이 아니겠느뇨.
<현대어역>
자신에게도 부모나 친족들에게도 에마(江間) 가문 가신(家臣) 중에서도 남다른 대은을 베풀어준 주군이다.
게다가 지난날에 니치렌이 막부로부터 처벌을 받았을 때 일본 일동이 니치렌을 미워했으므로 제자들도 어떤 자는 소령을 몰수당했기 때문에 각각의 주군들도 자기 집에 있던 니치렌 문하를 가신에서 쫓아내거나 소령에서 쫓아냈는데 에마 가문에서 그대에게 아무 일도 없었음은 그대에게는 굉장한 대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설령 조금도 은혜가 없다 해도 원망하면 안 될 주군입니다. 그런데도 거듭 은혜를 바라고 이번에 말한 소령을 싫다고 하는 것은 그대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역경에 처한 시조깅고를 격려하다
시조깅고는 대성인 문하 중에서도 특히 성실하고 정직하게 스승에게 구도하며 용감하게 홍교에 힘쓴 제자였습니다.
대성인이 사도에서 돌아오신 1274년 9월, 깅고는 아버지 대(代)부터 섬겨온 주군 에마(江間) 씨①를 절복했습니다.
에마 씨는 호조(北條) 씨 일족 중에서도 명문입니다. 그러나 1272년에 일어난 2월 소동 때 처분을 받은 나고에(名越) 씨의 일문이기도 합니다.②
몽고내습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깅고는 어떻게 해서라도 대은이 있는 주군의 평안 무사함을 위해 정법에 눈을 뜨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마 씨는 고쿠라쿠사 료칸(極樂寺 良觀)③의 신봉자였습니다. 이때 절복이 발단이 되어 점차 에마 씨는 깅고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본디 에마 씨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던 깅고를 시기하는 동료들이 이를 계기로 하여 갖가지 모략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깅고를 둘러싼 상황은 악화되어 1276년에는 현재 가지고 있는 영지를 에치고(현 니이가타현)로 바꾸라는 내명(內命)이 내려졌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대성인은 깅고에게 소령 따위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군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섬기도록 가르치셨습니다.④
깅고도 대성인의 지도대로 망설이지 않고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소령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주군을 지키려는 깅고의 성심어린 모습을 보고 심한 질투를 느낀 가신들이 왜곡시켜 나갑니다.
“주군의 명령을 거역했다.”라는 등 참언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고지식한 성격의 깅고는 자신의 결백과 진의를 전하기 위함이었는지 소령문제로 주군을 소송하려는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런 보고를 들은 뒤에 쓰신 답변이 이 어서입니다.
주군에게서 받은 서신과 깅고가 보낸 편지를 대조해 본 대성인은 “받기 전에 짐작하였소.”(어서 1150쪽)라고 이미 이런 사태를 짐작하여 걱정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깅고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그리고 이번 소령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꼼꼼하게 지도, 격려합니다.
즉 “소령을 싫어하고 주군을 깔보고 있습니다.” “잠시 은총을 거두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참언으로 압박을 가하는 자들은 깅고의 존재를 시기하는 측근 가신이자 동료들이라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정의로운 사람을 악질적인 중상모략이나 참언으로 계략에 빠뜨린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박해의 구도입니다. 그 모략에 농락당하여 기를 쓰고 덤비다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적의 술수에 넘어가게 됩니다.
어서에도 “다만 세간(世間)의 유난(留難)이 닥치더라도 문제(問題) 삼지 말지어다. 현인(賢人), 성인(聖人)도 이 일은 피할 수가 없다.”(어서 1143쪽)라고 씌어 있습니다. 본질을 냉철하게 꿰뚫어볼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깅고에게 “미리 알고 조심할지어다.”(어서 1150족)라고 바짝 정신 차리고 잘 생각하도록 이야기하십니다.
불법(佛法)은 ‘사람의 행동’을 존중
대성인은 차근차근 타이릅니다.
깅고에게 또 부모나 친족들에게도 남다른 총애를 베풀어준 대은(大恩)이 있는 주군이 아닌가.
대성인이 막부에게 박해를 받아 사도에 유죄 당했을 때, 많은 문하가 탄압받는 가운데 에마 가문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엄청난 대은이 아닌가.
그러므로 아무런 은상(恩賞)이 없어도 주군을 원망하면 안 된다고 대성인은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더한 은상을 바라고 이번 소령을 언짢게 생각하는 것은 깅고의 잘못이라고 엄애(嚴愛)의 지도를 하십니다.
대성인은 이전에도 깅고에게 여러 번에 걸쳐 은혜를 입은 주군을 섬기는 불법자로서 자세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깅고가 무사를 그만두고 입도(入道)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에도 주군의 은혜를 이야기하여 “어떠한 목숨이 위험한 일이 닥쳐도 버리지 마시라.”(어서 1147쪽)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주군을 버리면 안 된다고 깅고의 생각을 반대하셨습니다.
또 영지 교체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는 “입도전(入道殿)의 어전(御前)에서 목숨을 버리려고 생각하나이다.”(어서 1150쪽)라고 목숨을 걸어서 주군을 섬기겠다는 각오를 말하도록 지도하십니다.
불법에서는 ‘사람의 행동’이라는 궁극의 도리를 설합니다.
다른 문하들이 주군으로부터 신앙 때문에 압박을 받을 때 깅고는 에마 씨의 보호를 받아왔습니다.
즉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에마 씨는 광선유포의 한 부분을 떠받쳐준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깅고로서는 은혜를 입은 주군을 끝까지 섬기는 것이 인간으로서 옳은 행동이라는 것을 설하십니다.
① 에마(江間) 씨 : 호조 씨의 유력한 일족, 제2대 싯켄 호조 요시토키의 아들인 나고에 도모토키의 장남이 에마 미쓰토키. 그 미쓰토키의 아들이 차카토키. 시조깅고는 아버지와 2대에 걸쳐 에마 씨를 섬겼다.
② 2월 소동(호조 도키스케의 난) 때, 미쓰토키의 동생인 나고에 도키아키라와 노리토키가 역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모살되었다.
③ 고쿠라쿠사 료칸(極樂寺 良觀) : 1217년~1303년. 진언율종(眞言律宗)의 중. 료칸보닌쇼를 말함. 1267년 가마쿠라의 고쿠라쿠사(極樂寺)에 들어가서 고쿠라쿠사 료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권력에 아첨해서 각종 이권을 취득하는 한편, 니치렌대성인에게 적대(敵對)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대성인과 문하에게 많은 박해를 가하게 만드는 막후 인물이었다.
④ 대성인은 주군에 대해 “지금의 심정은 어떠한 일이 생기면 입도전의 어전에서 목숨을 버리려고 생각하나이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에치고에서 급히 달려오려면 너무나 먼데다가 부정(不定)하나이다. 따라서 설사 소령을 몰수하신다 해도 금년은 주군을 절대로 떠나지 않겠나이다.”(어서 1150쪽) 하고 이야기하도록 지도하셨다.
◇
<본문> (어서 1151쪽 3행~5행)
현인(賢人)은 팔풍(八風)이라 해서 팔종(八種)의 바람에 침해(侵害)당하지 않음을 현인(賢人)이라 하느니라. 이(利)• 쇠(衰)• 훼(毁)• 예(譽)• 칭(稱)• 기(譏)• 고(苦)• 낙(樂)이니라.
대강의 뜻은 이(利)가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쇠퇴(衰退)함을 한탄(恨歎)하지 않는 것 등(等)의 일이니라,
이 팔풍(八風)에 침해(侵害)당하지 않는 사람을 반드시 천(天)은 수호(守護)하실 것이로다.
그러한데 비리(非理)로 주군(主君)을 원망(怨望)한다면 아무리 기원(祈願)한다 할지라도 천(天)은 수호(守護)하는 일이 없느니라.
<현대어역>
현인은 팔풍이라 해서 여덟 가지 바람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팔풍은 이• 쇠• 훼• 예• 칭• 기• 고• 낙이다.
대강의 뜻은 이익이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쇠퇴함을 한탄하지 않는 등의 일이다.
이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반드시 제천은 수호한다.
그런데 도리에 배반하여 주군을 원망한다면 아무리 기원한다 할지라도 제천(諸天)의 수호를 받을 수 없다.
‘팔풍’에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지금 있는 사명의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하기 바랍니다.
대성인은 깅고에게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현인’이라고 가르치십니다.
‘팔풍’이란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작용인데 ‘이(利)’ ‘예(譽)’ ‘칭(稱)’ ‘낙(樂)’의 사순(四順)과 ‘쇠(衰)’ ‘훼(毁)’ ‘기(譏)’ ‘고(苦)’의 사위(四違)가 있습니다.
각각을 간결하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이익을 얻어 윤택한 것.
‘예’는 세간에서 칭찬을 받는 것.
‘칭’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것.
‘낙’은 몸과 마음이 즐거운 것.
‘쇠’는 여러가지로 손해를 보는 것.
‘훼’는 세간에서 경멸당하는 것.
‘기’는 사람들에게 욕을 듣는 것.
‘고’는 몸과 마음이 괴로운 것.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사순이고, 싫어하고 피하는 일이 사위입니다.
그러나 설령 사순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 상대적인 행복에 불과합니다.
체면이나 모양새, 형식에 치우쳐서 내실을 소홀히 하거나 세간의 훼예포폄이나 눈앞의 이해관계에 바람에 구름 가듯이 흘러간다면 커다란 시대변동의 광풍 앞에서는 잠시도 버티지 못하게 됩니다.
팔풍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성인은 이익이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손해를 봐도 한탄하지 않는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제천이 반드시 수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배독하신 어서에는 이 부분이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당당히 참된 현인의 삶을
또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렇게 지도하십니다.
“어서에도 ‘우인(遇人)에게 칭찬(稱讚)받음은 제일(第一)의 수치(羞恥)이니라.’(어서 237쪽)라고 있으며, 불법을 신앙하는 사람은 사물의 근본, 가치관을 판단할 때 어디까지나 불법에서 설하는 엄한 인과관계를 기준으로 삼아야만 한다.
세간의 훼예포폄에 좌지우지되면 대선인(大善人)이 될 수 없다.”
도다 선생님도 <청년훈>에서 “우인(遇人)에게 칭찬받음은 지자(智者)의 치욕이다. 대성(大聖)에게 칭찬받음은 일생의 명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의 사제(師弟)에 일관된 학회정신입니다.
“‘설마’가 실현”이라는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한 저 1956년의 오사카 투쟁 직후에도 도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신문에서 칭찬받았다고 기뻐할 것도 없다. 욕을 들었다고 해서 놀랄 일도 없고, 우리의 신앙은 다만 외골수의 신앙이어야 한다.”
바야흐로 학회의 존재가 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가운데 학회원은 외곬으로 똑바른 신심을 관철하여 절복행을 힘써 나가도록 지도하셨습니다.
법화경에 설한 대로 악구매리를 받아야 올바른 신앙자의 증명입니다.
광선유포의 불요불굴의 투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어본불(御本佛)이 조람(照覽)하십니다. 이 이상의 영예는 없습니다.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 즉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절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바로 ‘현인’입니다.
참된 신앙자의 궁극적인 모습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똑바로 스승에게 구도하고 광선유포의 투쟁에 도전한 깅고에게 대성인은 왜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현인의 길’을 가르치신 걸까요.
그것은 깅고 자신의 인간혁명, 인간으로서 성장을 통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다고 생각됩니다.
‘현인’은 일반적으로도 정사(正邪)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힘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본질을 파악하는 힘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풍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자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사를 구별하고 행불행의 인과(因果)를 설하는 ‘법’과 ‘스승’의 존재가 불가결합니다.
올바른 법에 설한 대로 그리고 올바른 스승의 지도대로 실천에 힘쓴다. 그 ‘현인의 길’을 관철하고, 묘법을 근본으로 한 삶에 철저했을 때 비로소 제천선신도 수호한다고 대성인은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비리’, 도리어 어긋난 자는 제천의 수호를 받지 못합니다. 불법은 법에 바탕을 둔 도리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불굴의 의지 명랑하게’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현인’의 삶을 다른 말로 바꾸면 ‘지지 않는 사람’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회가 대난의 연속 속에서 왜 이만큼 대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존귀한 우리 학회원 여러분이 팔풍에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신심을 관철하여 절대 지지 않는 인생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천도 엄연히 수호해 주었습니다.
‘불굴의 의지’입니다.
지지 않는 것이 인생 승리의 가장 큰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중에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주저앉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끈질기게 걸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에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대성인도 깅고의 인품을 “지극히 불굴의 의지의 사람으로서 동지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어서 986쪽, 통해)라고 최대로 찬탄하십니다.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사람은 결코 비창감(悲愴感)이 없습니다.
‘불굴의 의지 명랑하게’입니다.
늘 고개를 들고 앞을 보고 가슴을 펴서 명랑하고 당당히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는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의 대불법을 수지하고 있습니다.
“고락(苦樂)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계시라.”(어서 1143쪽)입니다.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한 걸음 한걸음 신심에 면려하면 됩니다. 세계는 더욱더 깊이 불법을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다시 태어난 활기로 용감하게 즐겁고 현명하게 광선유포 대투쟁을 전개합시다.
그것이 바로 어떠한 훼예포폄의 팔풍에도 미동하지 않는 ‘현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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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