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산의 추억일기 17
- 망우리 공원묘지 -
망우(忘憂)-
모든 근심을 잊고 편히 잠들어 쉴 수 있는 곳.
지명이 묘지 마을의 운명을 예견이나 했단 말인가.
많을 때는 3만여 기(基)의 영혼들이 누워있단다.
순환도로로 한 바퀴 거리가 5킬로,
관리사무소에 가서 묘지번호를 적어서 나왔지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이름들을 찾아내기가 너무 힘들다.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천재화가 대향 이중섭, 아동운동가 소파 방정환,
국어학자이며 현대의학의 선구자 지석영,
독립운동가인 호암 문일평과 위창 오세창.
이승만의 정치적 맞수였던 죽산 조봉암 등,
순환도로를 따라 4시간을 오르내리며 여덟 분을 찾아뵈었다.
예전엔 공동묘지라 했는데 요즘엔 공원묘지라고 부르던가.
이십 년도 훨씬 전에 갔을 땐 스산한 분위기의 공동묘지였으나
지금은 그런대로 단장한 흔적이 보이고
주말인 탓인지 산책 나온 이들이 많은 걸 보니
묘지가 주민들의 공원이 된 셈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 묘지는 국립현충원에 독립지사 묘역이 있는데도
여전히 망우리에 방치되어 있다.
후손이 번듯한 묘소들은 역사적 평가와 관계없이
큼직하게 단장도 잘하지만 만해 선생의 묘소는 아무리 봐도
너무 협소하고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돈 좀 있고 권세 나부랭이나 있으면
별 것도 아닌 저들 부모 묘 덩어리는 호화분묘 만들어 놓고
역사의 인물들은 후손이 변변치 못하다고
공동묘지에 방치한다더냐.
전에 남양주에 위치한 주시경 선생의 묘를 보고
제자의 호화분묘에 눌려있는 모습이
비감한 생각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게 했는데
오늘 또다시 같은 생각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