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에리자베스 태일러의 미모와 폴 뉴만의 연기만 감상할 영화가 아니다.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을 감상할 영화다. 테네시 월리암스는 1944년에 '유리 동물원'으로 뉴욕 극비평가상을 수상하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로 퓰리처상과 뉴욕 극비평가상을 수상하고, 1955년에 발표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로 퓰리처상과 뉴욕 극비평가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우선 제목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누군가? 언뜻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 에리자베스 태일러로 한정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면 거기 등장한 중요 인물 여섯명 모두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모두 탐욕과 위선, 불신과 좌절 그 어느 하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테네시 월리암스는 우리 모두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영화의 시작은 미시시피 남부에 엄청난 농장과 천만불 현금을 가진 65세 할아버지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자식들 만나러 오는 데서 시작된다. 큰아들 구바는 멤피스 시 변호사로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소원, 비행기가 도착하자 디룩디룩 살찐 귀염성 없는 손자 다섯을 데리고 등장한다. 손자들은 환영음악을 연주한답시고 악기를 시끄럽게 불면서 이리저리 귀찮게 할아버지 앞에 나타난다. 큰아들 부부는 항상 동생 부부를 몰래 미행하고 관찰하며 약점을 캐내려 한다. 그런 뚱뚱이 큰 아들과 손자들을 코치하는 며느리 모습은 뭔가 확실히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는 욕심에 눈 멀어 속이 뻔히 보이는 아첨을 해대는 군상이 있다. 그들이 그런 사람이다. 충분히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는 의미에서 조역 캐스팅은 잘 된 것 같다.
주연 캐스팅도 훌륭하다. 둘째아들 브리크 역 폴 뉴만과 아내 마가렛 역 에리자베스 태일러는 둘 다 세기의 명배우다. 영화 첫장면이 술에 취한채 밤에 운동장에서 달리다 장애물에 다리를 다치는 장면이 나온다. 브리크는 풋볼선수였다. 아버지 재산도 관심 없고 내일 아버지가 온다는 소식에도 냉소적이다. 그는 자기와 가장 절친하던 같은 팀의 스킷바와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다. 원본에는 브릭과 스킷바는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자포자기 알콜중독자는 아내를 철저히 외면한다. 주변 모두를 허위와 위선으로 본다. 영화 진행 내내 폴뉴만은 잔을 입에서 떼지 않는다.
아내 마가렛은 대표적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임신 못한 마가렛은 사랑해 주지도 않는 남편의 사랑을 회복하려고 시합에서 완패하여 선수로서 자신감을 잃은 남편 친구 스킷바를 위로하려고 호텔에서 만났다. 그후 스킷바는 자살하고 브리크는 아내를 의심한다. 마가렛은 남편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고, 형님 부부에게 넘어갈 것 같은 시아버지 유산도 받고싶다. 둘 다 희망이 없고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 그래 한 여름 온도가 올라갈 대로 올라간 뜨거운 양철지붕 위로 올라가서 안절부절하는 이쁜 암코양이 연기를 한다.
Big Daddy 역시 양철지붕 위 고양이이긴 마찬가지. 그는 떠돌이 집안 출신으로 미시시피 남부에 대농장을 건설했지만 암에 걸려 죽음에 임박해 있다. 큰아들은 유산상속에만 몰두해있는 얄미운 존재. 둘째 아들은 알콜중독자고, 며느리 둘은 상속재산 놓고 암투를 벌인다. Big Mama로 불리는 아내 역시 마찬가지. 평생 같이 살아 남편을 누구보다 이 세상에서 잘 안다고 떠들지만 실제 남편 맘을 전혀 모른다. 보석 치장과 재산만 즐기는 속물이다. Big Daddy는 이 모든 속사정을 환히 꿰뚫고 있다. 잘 알면서 참고 살아간다. 철저한 현실주의자 거부지만. 그 역시 어떤 면에선 인생 실패자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미시시피 남부에 대농장을 가진 거부의 가정사가 그 내용인데 별다른 스토리는 없다. Big Daddy는 65세 생일을 맞아 자가용 비행기로 자식들 만나러 온다. 그는 불치의 암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의사가 위로 말로 걱정 말라고 한 것임을 본인과 Big Mama만 모른다. 비행장엔 큰아들 식구들이 환영식 한답시고 쇼를 벌인다. 둘째 아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Big Daddy는 큰아들을 무시하고 둘째 며느리 차를 탄다. 저택에서 생일 파티 즐기던 사람들은 번개와 비 때문에 모두 흩어지고 가족들은 실내로 들어간다. Big Daddy는 모든 현실을 외면하고 술에 의지하는 브릭을 보자 충고한다.
'인생은 때론 감추어야 하고, 때론 필요 이상으로 오버도 해야하며, 때론 무슨무슨 '척'도 해야만 하는... 그래야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고, 또 그래야만이 인간관계가 유지가 되며, 또 그래야만이 뭐 하나라도 건질수가 있다'. '진실을 지키는 힘을 허위라고 치부해 마냥 부정할 것이 아니라, 당장 견디기엔 뜨겁지만, 현실을 인정함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는 남들의 시선이 두렵고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어서, 진실을 왜곡하느라 온갖 허위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원래 역사는 덮는 일이 역사를 다시 쓰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Big Daddy의 잔소리에 흥분한 부릭크는 아버지에게 이것은 마지막 파티가 될지도 모른다고 폭로한다. 지금까지 고생하며 재산을 일구고 인생의 쾌락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했던 Big Daddy는 그 말을 듣고 깨닫는다. 절망하여 혼자 지하실로 내려가 고통에 일그러진 아버지를 찾아 브릭이 지하실로 내려간다. 거기에는 Big Mama가 유럽 여행에서 가져온 엄청난 골동품들이 있다. 브릭은 그걸 사정없이 박살내면서 이런 것보다 진실한 사랑을 원한다고 웨친다. 이 모습을 보고 Big Daddy는 유산을 차남에게 넘길 걸 결심 한다.
한편 Big Daddy가 거실로 올라오자, 큰아들 구바는 할머니와 유산 상속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Big Daddy는 분노하고, 그때 옆에 있던 마가렛이 할아버지 생일선물이라며 자신이 뱃속에 애기를 잉태했다고 발표한다. 그 소릴 큰며느리는 거짓이라고 언쟁을 벌인다. 이때 Big Daddy의 사랑을 확신한 브릿은 아내의 발언이 거짓임을 잘 알면서 아내를 옹호하고 두 사람은 2층 침실로 올라가 서로를 포옹한다.
이 영화는 초연 당시 800회 가까이 장기 상영되는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자본주의적 속물근성과 가정 갈등을 다룬 이 영화는 대사 하나하나가 무게 있고 신랄한 것이 쎅스피어의 함렛을 연상시킨다. 시나리오가 연극에도 적당해 우리나라에서도 연극으로 공연된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