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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12권
36. 본행품(本行品)
[보살의 지위와 성불]
그때에 어떤 천자(天子)가 있었으니, 이름이 중수영락(衆首瓔珞)이었다.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서 옷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였다.
앞선 부처님 세상이래로 항상 범행(梵行)을 닦아서 세 곳[三處]이 벌써 다하고 과원(果願)이 이미 이루어졌는데,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옵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살고 있는 방계(方界)는 여기서 극히 머나이다. 원컨대 질문하고자 하옵나니, 만일 허락하신다면 감히 여쭙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중수영락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무리를 인도하는 우두머리[衆首]가 되어서 몽매한 이들의 눈을 뜨게 해 주고 법의 큰 깃대를 세워서 지혜의 광명을 펴는구나.
의심이 맺힌 바 있으면 지금 바로 풀어라. 여래가 마땅히 낱낱이 분별해 주리니, 물음에 따라 답해서 열어주고 이해시켜 주겠노라.”
그때에 중수영락보살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자못 어떤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이 다시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나아가 닦지 않고서도 성불할 수 있나이까, 없나이까?
자못 1주(住)에서 근기와 공덕의 힘[根德力]을 세운 보살 대사(大士)로부터 8지(地)보살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시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나아가 닦지 않고, (성불할 수 있나이까, 없나이까?)
자못 여러 하늘이 온갖 행을 갖추고 불퇴전에 서서 여러 근(根)을 갖추고 다시는 사람의 몸을 얻지 않는다면 성불할 수 있나이까, 없나이까?
바라옵나이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방편으로 발견(發遣)하여 주십시오.”
그때에 세존께서 중수영락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능히 여래의 앞에서 사자후를 일으키는구나.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부처를 이루기까지 보살이 행하는 온갖 법은 같지 않느니라.
혹 어떤 보살마하살은 손가락 튀기는 사이에 보살의 마음을 얻어서 즉시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루는 데 하루가 걸리지 않으며,
혹 어떤 보살은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큰 서원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 6주(住)에 이르기까지 불도를 구하지만, 문득 퇴전(退轉)이 있어서 성취하지 못하고,
혹 어떤 보살은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7주에 이르기까지 성불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8주(住)의 경지를 거치지 않느니라.”
그때에 중수영락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보살의 마음을 발하여 즉시 불도(佛道)를 이루는 데 하루가 걸리지 않는 것이며,
어떤 것이 보살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6지에 이르기까지 퇴전함이 있어서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보살이 7주에 이르기까지 성불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8주의 경지를 겪지 않는 것이옵나이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중수영락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보살의 도를 구하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아서 부처를 이룬다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온갖 근(根)이 갖추어져서 일찍이 생사(生死)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
혹은 어떤 회상[會]으로부터 일단 하늘[天]을 닦아 이 사이[間]에 와서 태어나고,
혹은 무노부처님[無怒佛] 국토로부터 이 사이에 와서 태어나고,
혹은 무량불(無量佛:아미타불) 국토로부터 여래께서 설한 본말(本末)의 공(空)과 생멸이 없는 도를 한 번 듣고서 문득 더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루니라.
혹은 어떤 보살마하살은 여러 가지 행을 갖추어서 여래의 명혜법관(明慧法觀)을 얻고,
다시 여래를 닦으면서 부처님을 생각[念]하고 법을 생각하고 비구승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수식관[安般]을 생각하고 죽는 것을 생각하며,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성도(聖道)를 생각해 닦고,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婬怒痴]에 크게 힘쓰지 않아서 선의 근본[善本]을 더 늘리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갖추게 하지만,
비록 6지(地)에 있더라도 마음에 우물쭈물하는 생각을 내면서
‘아, 나는 장차 7주(住) 보살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하고,
혹은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분명히 의심하지 않는다’ 하고,
다시 거짓 변화한 보살이 이 보살을 망치려고 말하기를
‘너는 지금 이미 본말을 꿰뚫는 공의 지혜[本末空慧]를 얻었느니라’하면,
이 보살은 듣고 나서 뛸 듯이 기뻐하면서
‘내가 이제 신령하고 덕 있는 보살이 보인 증명을 들었으니, 이제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얻을 것이라’라고 하면,
이런 자는 오래지 않아 문득 6주(住)에서 퇴전하여 성문 벽지불의 도에 떨어지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중수영락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6지(地)에서 보살의 행을 갖추고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분명히 8주지(住地)에 있으면서 오래지 않아 반드시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룰 것이다’ 하고,
친근한 선지식이 방편으로 8주의 행하는 법을 설하기를,
‘선남자야, 아는가 모르는가?
너는 지금 이미 8주지에 있으니, 스스로 잘난 체하면서 나머지 보살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이와 같이 하면 그대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룰 것이니라’라고 하면,
보살이 이를 듣고 기뻐 날뜀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문득 선남자의 가르침을 따라 한가롭고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한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니,
저 보살은 곧 8주(住)의 행 속에 있으면서 불퇴전을 세우고 불사(佛事)를 베풀므로 겁수를 지나서 오래지 않아 부처를 이루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중수영락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보살의 도를 행하면서 다시 다른 보살에게 권면(勸勉)을 받기를,
‘너는 이제 오래지 않아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하리라’하면,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 행이 없거늘 어떻게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룰 수 있겠는가?
이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구경(究竟)을 이루지 못하게 함이 아닌가’ 하고는
마음을 견고히 잡고 문득 앞으로 나아가서 7주지에 있으면서 불퇴전을 얻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6주 가운데 있으면서 퇴전과 불퇴전이 있다고 이르느니라.”
그때에 중수영락보살이 물어 여쭈었다.
“어떠하나이까? 8주의 보살이 곧 성불하는 데 포태(胞胎)를 거치지 않을 수 있나이까, 없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느니라. 8주의 보살은 온갖 법은 공과 같고 허깨비 같아서 공적하여 형상이 없다고 관하며, 행하는 법칙도 또한 다시 공과 같다고 관한다.
또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면서도 중생이란 상념이 없으며,
시방 여러 부처님 세계에 나아가서 한량없는 법의 가르침을 들어서 받고,
일체 모든 부처님이 본래 신상(身相)이 없어서 또한 마땅히 안팎의 형상 없음을 분별하고,
여러 부처님에게 두루 물어서 일체 모든 법에 싫증을 내지 않고,
다시 마땅히 온갖 중생에게 가르쳐 주고,
이것을 버리고 이것에 나아가서 선정(禪定)에 깊이 들어가고,
앉을 데 앉을 줄 알고 누울 데 누울 줄 알고,
중생을 교화함에 때를 잃지 않고,
깊은 법을 설하여서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다 해탈을 얻게 하나니,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행을 갖추면 문득 부처님의 삼매를 얻어서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하느니라.
이미 국토를 깨끗하게 하면 문득 보살의 정요(正要)에 들어가며,
이미 정요에 들어가면 문득 온갖 총지 법문을 능히 일으켜 갖추며,
이미 법문을 갖추면 곧 능히 변재의 걸림 없음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미래ㆍ과거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연설하신 법의 가르침을 모두 다 갖추고,
변화가 자유로운 일체 모든 법을 성취해도 저마다 어긋나거나 어지러움이 없으며,
온갖 중생의 마음 때[心垢]를 능히 깨끗이 하여 문득 해탈의 걸림 없는 법의 지혜[解脫無碍法慧]를 얻으리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와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을 옹호해서 온갖 법을 성취하고 10력(力)을 갖추어 무서운 바가 없으며,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이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바를 분별하여 낱낱이 선택하여 끝내 버리지 않으며,
온갖 사람을 세워서 본말 공혜(本末空慧)를 얻게 하고,
한량없고 제한 없는 시방세계에 갖가지 방면에 모두 이별이 있고, 시방세계에 모두 합침이 있다는 도의 가르침을 안처(安處)시킨다.
그리고 다시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온갖 지혜로 영락하여 앞에 나타나 있으며,
다시 한량없는 찰토에서 낱낱의 모든 부처님의 명호(名號)과 성자(姓字)를 모두 다 한 방면(方面)처럼 분별하며,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 세계에서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의 성자(姓字)를 분별하며, 시방 경계의 모든 부처님의 성자도 또한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다시 시방 한량없는 세계로 하여금 펼치게 하기도 하고 축소시키기도 하는데,
시방세계의 이미 펼치고 이미 축소한 것이 다시 한량없고 제한 없는 항하 모래 수효의 찰토로 하여금 지혜의 힘으로 펼치게 하기도 하고 축소시키기도 한다.
낱낱의 명호(名號)가 다시 한량없고 제한 없이 여래의 얼굴을 보는데서 다시 지혜의 힘으로 펼치게 하기도 하고 축소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한량없고 제한 없는 항하 모래 수효의 온갖 부처님 찰토의 여러 부처님의 명호를 분별해서 모두 다 이와 같은 시방 여러 부처님의 법계를 분별하고 명호를 분별하지만,
그러나 모든 부처님 세존이 다 와서 이 보살을 옹호하여 성취함을 얻게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 대승의 뜻을 얻어 본말의 공정[本末空定]에 들어가 보살의 위의와 법칙을 잃지 않고서 두루 중생의 근본을 능히 관찰하고 다시 여러 부처님이 심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능히 안다.
그 보살은 마땅히 보살이라고 말할 수 없고 당연히 여래라고 칭해야 한다.
왜냐하면 온갖 법을 알아서 일체 행을 초월하고,
온갖 법에서 의심을 품지 않고,
행이 여래와 같아서 온갖 여래의 정법을 얻고,
혹은 하나의 생(生)을 알고 백천 생을 알고 아승기를 알며,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받아 지니고 외우며,
불도를 성취하여 잊지 않고,
일체지(一切智)에 들어가 나[吾我]를 보지 않으며,
온갖 부처님 법의 총지를 깨달아 알아서 강력히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그 보살이 온갖 법을 관하여 광명을 나타내고,
지혜의 광명으로 어리석음의 어둠을 비추어서 지혜가 퇴전하지 않느니라.
그 보살마하살은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데 걸림이 없으며,
그 보살은 이미 한량없는 법을 얻어서 이근(耳根)이 청정하여 다함없는 법을 듣고 자연히 화(化)에 응하지만 믿으면서도 쫓지 않으며,
그 보살마하살은 한량없고 제한 없이 중생의 몸을 변화하여 하나가 아니게 하며,
혹은 무앙수의 색(色)을 도로 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을 나타내고,
다시 무색(無色)으로부터 수없는 색에 이르기까지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신해(信解)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장광설(長廣舌)을 내밀어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덮었다가 다시 도로 하나로 만드니,
이처럼 무앙수의 무리를 교화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중수영락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시방세계의 허공 변제(邊際)까지 이 온갖 행을 다 능히 요달해 알면, 곧 그 이름을 보살로서 여래를 돕는 곳[菩薩補如來處]이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다시 중수영락보살에게 게송을 말씀해 주시었다.
시방에서 법계를 듣고서
중생의 길 나타내 보이고
모든 불사(佛事)를 닦아 행함은
사람 중의 보살 존자일세.
대중에 있으면서 도를 성취하여
보살의 행을 두루 아니
일체의 행을 초월하는
10력(力) 걸림이 없네.
온갖 부처님이 늘 옹호해서
얼굴을 보듯 앞에 계시며
그 공덕을 칭송하여
법에 위가 없음을 찬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