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두괄식인가 미괄식인가
남 대 희
얼마 전 친한 고교동창 녀석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드름 숭숭한 얼굴로 만나 중년을 훨씬 넘길 때까지 친구로 지냈으니 오랜 친구이며 친한 친구였다.
폐암 진단을 받고 딱 2년 만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제천 산골에서 약초를 직접 채취한다는 분에게 폐암에 좋다고 하는 ‘겨우살이’를 구매해서 택배로 보내주며 제발 병을 이겨내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러나 그는 2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의 장례식장에 문상객으로 모인 옛 친구들은 모두 중년을 지나 초로에 접어든 모습이었다. 꿈 많고 팔팔하던 모습들은 간곳없고 주름과 백발이 그동안의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다. 소주잔 들고 침을 튀기며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느꼈다.
얼콰하게 취한 한 친구가 나를 불렀다.
“야, 남 시인 니는 우째 생각하노? 인생이 두괄식이냐? 미괄식이냐?”
고3 때 옆자리에 앉아서 내가 시답잖은 시를 쓰면 그림을 그려 주곤 했던 친구였다. 미대에 진학하여 화가로 대학 강단에서 재직하다 얼마 전에 퇴임한 친구다.
“니는 시인이니까 두괄식 미괄식 뭐 이런 거 잘 알제? 말해봐라 우리 인생 이란게 뭐꼬?”
뚱딴지같은 질문에 눈만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자 옆에 앉은 친구가 대신 답을 했다.
“야 아직 그것도 모르나? 인생은 두괄식인기라,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 흙수저 물고 태어난 놈, 보면 모르나?”
우리 젊은이들이 절망스러워하는 흙수저 금수저론이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가장 큰 폐단으로 지적되는 경제적 불균형 나아가 신신분사회의 도래까지도 우려하게 하는 현실에 대한 몇몇 친구들의 성토가 있었고 그래도 우리 인생이란 출생과 죽음까지로 볼 때 죽음도 인생의 일부분이므로 가장 잘 죽는 것이 가장 성공한 인생이며 따라서 인생은 미괄식이라는 한 친구의 주장과 함께 장례식장의 인생론은 술잔과 함께 뜨거웠다. 그러나 인생을 두괄식이니 미괄식이니 하는 형식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 순간순간이 모두 주제 연이고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우리는 이미 행복한 존재이며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순간임을 아는 것이 득도의 순간이며 깨달음의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혼자서 해보았다.
그 친구가 듣고자 했던 것이 인생이 미괄식인지 두괄식인지를 알고 싶은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꿈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지금 여기서 살펴보니 아직도 주제는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고 잡다한 수식어들만 난무한 잡문 같은 것이 내 인생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산 친구들이 지나온 삶과 남아 있는 삶에 대하여 비틀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지난여름도 가을에 자리를 내어 준다. 자연의 질서는 우리를 지극히 겸손하게 한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면 자연을 노래하듯 우리의 삶과 죽음도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어야겠다. 시인들이야말로 이런 노래의 주체가 되어 사람들의 삶이 좀 더 가볍고, 따뜻하고, 즐거워서 굳이 주제 연을 찾지 않더라도 순간순간이 행복할 수 있게 목청껏 노래함이 옳을 것이다.
첫댓글 어제 올렸었는데 오늘 보니까 없어졌어요~~~ㅠ
나 시인님과 임 시인님의 댓글이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삭제한것은 아닌데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글이 숨박꼭질했나 봅니다.
오늘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올해도 끝에 왔나 봅니다....
네, 가을인가 했더니 어느새 겨울의 문턱입니다.
나 시인님 등단소식을 듣고 멀리서 혼자 반가워만 하고 축하의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늦게나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문운을 빕니다.
건강에도 더욱 유의 하시고요~~~^^
@美村 남시인 님 반가워 하셨다니 감사합니다.
부족함 투성이니 인도 부탁드립니다.^^
수식어들만 난무한 잡문!
가만히 멈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
책에서 읽었는데 또 다시 읽으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봄바다님~~~^^
뵌지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카페 쪽지에 몇 말씀 올렸습니다.
확인하시고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