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바마다 잊지 않음. 싸띠 기억하고 있음이라는 부처님의 최고의 가르침 그 가르침대로 아침 새벽에 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팔정도로 노력하고 있는 수행자들이 아주 고귀한 삶, 아름다운 삶. 윤회에 우리가 셀 수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런 팔정도로 열심히 사는 삶이 많지않은 삶. 그 삶을 살고 있다.
기뻐하고 그 기회의 소중함을 마음에서 깊이 느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의 기본적인 견해를 갖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고마워하고 그 가르침대로 마음에 수행의 지침서로 새기고, 삶의 지침서로 새기면서 수행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지요.
그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원리중의 원리. 짧고 간단하지만 아주 강력하고 아주 원리적. 우리가 벗어나면 안되는 원리 그런 것을 외우고 마음에 자꾸 새기고 삶의 지침서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갈수록 편해지고, 행복해지고 단순해지고 우리의 지혜계발 심리변화 심리, 마음의 변화와 인간으로서 성장해 가는 길에 도움이 됩니다
. 그래서 오늘도 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들이 똑같은 것이 있어요. 우리가 말하던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석가모니부처님과 배까스까부처님, 그전에도 꼬나가마나, 까고상다, 부처님들이 세분 더 계세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만 석가모니부처님까지 네분 오셧어요.
까꾸산다, 꼬나 가마나, 까싸빠, 고오타마, 고타마석가모니부처님까지 네 번째예요. 지금 또 아르히 미띠아라는 한국말로 미륵부처님이라고 또 계실거예요. 앞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계가 바다거북이란 말이예요. 부처님 네분 해봐요
. 까꾸산다 (까꾸산다), 꼬오나 가마나(꼬오나 가마나), 까싸빠(깟싸빠), 고따마(고따마), 아르히 미띠아(아르히 미띠아). 부처님 다섯분 중에서 네분이 오셨다가 가셨어요
. 우리의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아름답게 오셨다가 해탈니빠나의 아름다이 가셨다. 또 부처님의 공덕하나. 그래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똑같은 것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만났던 부처님들이 또 많이 계세요. 스물 여덟분. 그 스물 여덟분 전의 부처님도 많이 계세요. 강가강의 모래알보다 부처님의 수가 많다고 해요. 동시에 계시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그분들이 동시에 안계세요. 한때에 한분만 계세요.이부처님 두분은 사실은 세상에 그렇게 필요가 없어요. 한 분만 계셔도 충분해요.
그때 당시 중생들 위해서 할 일을 다해. 할수 있어요. 그런데 모든 부처님들이 가르치는 것은 사성제, 팔정도로 똑같아요. 사성제 팔정도 외에 다른 법이 없어요. 그런데 그 가르치는 말들까지 완전히 정확하게 똑같은게 있어요.
모든 부처님이 똑같이 가르치는 것, 특히 비구, 비구니 계율을 가르치는거예요. 비구계율이 227개, 제목만 227개. 그것이 스님들이 너무 많아지고 깨달은 스님보다 깨닫지 못한 스님이 많아질 때 그렇게 계율이 만들어지게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다 깨달은 자예요. 부처님 가르침에 처음 들어오는 자는 아라한이고, 아란한은 다 깨달은 자니까 계율이 필요 없는 거예요. 우리 일반적으로 이사람은 진짜 착해. 이 사람은 진짜 올바른 사람이야. 이 사람은 법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요. 진짜 처음에 부처님 제자들은 다 법이 필요 없는 자들이에요. 다 깨달은 자들이에요.
그래서 따로 부처님이 계율을 가르치지 않아요. 가르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의 삶이 그 수행자들의 그 출가자들의 삶이 아주 청정하기 때문에 계율이라는 것이 따로 필요가 없었어요. 다 깨달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 출가자들이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깨닫기 위해 수행하고 있는 자들이, 그 중에 실수들이 많아지게ㅐ 되면서 그 실수에 따라 가르치는 것이 계율이에요. 계율이라는 것이 가르치기 전에는 부처님께서 15일마다 한 보름날마다 그믐날마다 스님들을 모아서 부처님들이 항상 가르치는 것이 있어요.
해봐요.
오아다(오아다) 빠띤모카(빠띤모카)
오아다 빠찐모카라는 것이 빠띰모카가 비구들의 계를
빠 아띤 모카 아주 특별나서, 아주 수승한 계율로 그 가르침을 무조건
목카 목카가 자유. 벗어남,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나 무조건 줄 수 있는 계율이다. 이 계율만 지키면 무조건 악처에 떨어지지 않는다. 고통스럽지 않다. 진짜 행복하다. 마지막에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로 갈 수 있는 길이다. 해탈이라는 자애를 줄 수 있는 자애다. 지계다. 그것이 빠띤모카의 의미다.
빠띤모카 아주 수승하다는 것음 부처님이 오셔야 그 계율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 마다 그 계율을 받아서 빅쿠가 되기 때문에 그 부처님께 수계 받았던 스님들이 계속 뒤에서 만들어 가는 범. 아주 수승한 법, 계율. 그 계율을 지키면 무조건 사악처에서 벗어나고 세상에서 벗어나 해탈을 할 수 있다. 계율이 있다. 그런 의미로 빠띤 모카를 말하는데 그것이 핵심조끼 가르침이 있고 그 핵심을 갖고 계율을 만들어지는 가르침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아다 빠띤모카가 있고, 빅쿠 빠띤모카가 있고 빅쿠니 빠띤모카가 있어요. 오아다 빠띤모카는 핵심이에요. 그 핵심에서 벗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계율을 만드는 것, 계율을 만드는 것 그것이 율장이 되는 거지요.
핵심적인 가르침은 모든 중생들에게
똑같이 가르치는 거예요. 그 핵심적인 가르침대로만 살면은 여러분들도 출가 머리 안깎아도 출가자가 돼요. 그래서 이 가르침을 우리가 배워봐요.
법은 어디에 있나면 부처님의 가르침 경전의 3번 오부니까야 중에 마하가니니 디가 니까야. 디가니까야가 제일 큰 경전들을 모아놓은 거. 디가 니까야에 3권 있는데 두 번째 권이예요.
마와가빠니의 42페이지에 있어요. 91단락. 그리고 코드고 니까야, 담마야 니까야, 담마와빠니 41페이지에 있어요.
칸띠 바라마 고띠티
와단디 보다.
나야지 바바다 보라지
디 호얀또
부처님의 가르침 세단락이 있는데 게송이 세가지 있는데 첫째 게송이
칸디 빠라마따 오띠디카 네바 빠난 바라마 와단디 보다
나히 빠빠지 도빠라마 가디 나 사마디 나하 마다미 데안도
칸띠 인내, 인욕이
빠라마 수행 중에, 실천 수행 중에 최고수행이다.
이떽카. 참는 것 인내하는 것. 칸띠. 최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던 모든 부처님들이. 이 말씀을 하신 거예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하셨고, 석가모니 부처님 앞의 까싸빠 부처님이 하셨고, 고전에 꼬나 가마나 부처님이 하셨고, 까꾸산다 부처님이 하셨고, 그 전에 부처님도 다 똑같이 하신 말이예요.
칸띠 빠라마타 오띠디카
띠티까 .인내하는 것, 참는거. 띠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내하는 거예요. 띠띠카 칸띠 그 인내와 빠라마 또 빠라마 따빠. 따빠라는 것이 대단한 수행이지요. 그 수행중에서 최고의 수행이다. 인내가 최고의 수행이다.
여러분들이 출가자라는 머리 깍고 수계 받고 출가는 못했지만 출가자처럼 살고 싶다면 첫째 인내. 모든 것을 인내 해야돼. 인내 없는 선업은 없대요. 인내 없는 선업은 없어, 모든 선업이 인내를 지나간다. 인내를 거쳐야 선업이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불보자 할 때 자고 싶으면 자는 것 인내해서 오는 거예요. 모든 일을 할 때 우리가 인내를 해야 일이 돼요. 인내 없이 되는 선업이 없어요. 자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우리가 인내해서 되는 것이예요. 선업이라는 것이 인내를 거쳐야 된다.
사베비 꾸사마 칸나 빠다나
바베삐 모든 꾸사나다마 선업들이 칸띠 바다나 칸띠라는 인내가 바다나 핵심적인 원인이다.
빠다나 까나나 원인이 여러 가지 있어요. 그 중에 핵심적인 주 원인은 칸띠 인내다. 여러분들이 인내에 대해 많이 연구해 봐요. 모든 것이 인내, 인내라는 것이 성냄의 반대예요. 성냄이 도사, 인내가 아도사, 화나지 않는 것 도 아도사 자애도 아도사 인내도 아도사. 그래서 성냄의 반대지만 얼굴이 세 가지가 있어요.
어떤 때는 화가 없는 것, 화가 없으면 아도사라고 말할 수 있어요. 화안내는 것 뿐이지. 그런데 그것이 또 좋은 것은 또 수준 높고 또 상태에 따라서 다른 얼굴로 역할을 하는 것이 인내예요. 또 화 없는 것뿐만 아니라 자애가 일어날 때도 그것이 아도사예요.
그래서 성냄이라는 도사의 반대를 말하지만 그것의 기능이 세 가지가 있어요. 화나지 않는 상태. 지금 화나지 않는다 그러면 여러분이 아도사가 있다. 지금 화가 안 났잖아요. 그렇지만 자애는 없잖아요. 그래서 화나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아도사예요. 그 기본 상태에서 어느 정도 실력, 능력 나가도 늘려가는 것이 자애로 나타나야 돼.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누구누구가 행복하기를. 어떤 사람, 어떤 중생이 잘 되는 것을 바라고 그런 마음이 일어나야 돼. 그럼 마음은 아도사, 아도사 중에서도 기능이 좋은 아도사예요. 우리가 기계를 볼 때 엠피3라면 엠피쓰리 일만을 하는 기계가 있고 녹음까지 하는 기계가 있고 두 개가 다르지, 똑같은 기계인데 기능들이 좋아진 거지. 성냄 없음도 그냥 성냄 없음이 있고 자애까지 가는 것이 있고 또 인내까지 가는 게 있고
칸띠 빠라마따 뽀 띠떼카 따라해봐요.
칸띠 인내는 최고의 수행이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수행 중에 최고의 실천이다. 그래서 계속 아침부터 일어날 때부터 칸띠 빠라마따 뽀 띠떼까 오늘 나는 인내하겠다. 모든 것이 인내다. 마음이 결정하기 시작해 버렸어요.
그러면 화날 일들이 생겨도 화나 화내는 게 대기 쉽워요. 다 자만덩어리기 때문에 내 욕심하고 안맞은면 화나요. 또 보기 싫으면 화나고, 듣기 싫으면 화내요. 내 자만과 부딪히면 화나고 질투시기하면 화나요. 후회하면 화나고 화내기가 대개 쉬워요.
그런데 내가 아침부터 화낼 일이 많은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화나게 하는 사람, 화나게 하는 일, 화날 수 있는 상황은 아침에 깰 때부터 밤에 잘 때까지 끊임없이 일어날 거야. 그 화에서 휩쓸려 가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 나는 화를 조심스럽게 인내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면은 인내가 좋아질 수 있어요.
그리고 한번 내가 인내 했을 때마다 아주 뿌듯한 희열이 올라와요. 아, 내가 미리 조심하고 있으니까 그러제같으면 어저께 같으면 화났을 텐데 오늘은 화 안 나네, 이렇듯 뿌듯함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또 인내가 좋아지고요
이런데 인내할 수 있고 어떻든 더 인내할 수 있고, 이렇게 인내할 수 있으니까 내 마음이 상하지가 않아요. 상하지 않으니까 선업 되는 일들이 많아지는 거지요. 또 종일간 마음의 힘이 서로남아요.
그러나 마음의 힘이 없는 사람들은 마음이 벗어나 버리니까 진짜 신경써야하는 일에 대해서는 마음의 힘이 없어져요. 그래서 화많은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지쳐있어요. 화가 많으니
칸띠 빠라마따 뽀 띠떼카
닙바나 빠라마 와단디 보다
닙바나 해탈은 빠라마 최고이다. 라고 와단디 말씀하다. 보다 부처님이
모든 부처님이 해탈은 최고 이다고 말한다. 인내가
실천 수행 중에 칸띠가 최고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실천 수행 하는 따빠야라는 것이 태우는 의미가 있어요. 따빠 태우다. 태우다 뭘 태우냐면 번뇌를 태우다. 번뇌를 태우려면 가 최고다., 이렇게 말해요.
해탈은 무주건 최고야. 뭐뭐뭐 중에 따빤 주에 칸띠가 최고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해탈은 무조건 최고다.
닙바나 빠라마 와단디 보다
칸띠 빠라마 따뽀 띠떼카
닙바나 빠라마 와단디 보다
두가지, 따빠 중에 칸디가 최고이고 해탈은 최고이다. 라고 모든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최고로 좋다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목표는 해탈이 되어야해요. 우리는 사실 제일 좋은 거 좋아해요. 몰라서 그렇지. 옷하나 사도 제일 좋은 것 사고 싶어도 돈이 없거나 뭐 어떻게 되거나 해서 못사는 것뿐이지 제일 좋은 것 좋아해요. 먹는 것도 제일 좋은 것 먹고 싶고 보는 것도 제일 좋은 것 보고 싶고, 우리는 아는 것은 제일 좋은 것 갖고 싶어 해요. 해탈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해탈이 최고라고 알고 있어요. 틀릴 수 없는 진리 이 세상에 최고라는 제일 지혜 높은 자들이 부처님들이 하시는 말이 해탈이 최고이다. 해탈은 최고 이다 라고 하니 우리는 해탈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알아야 우리도 가지고 싶지. 우리의 목표가 해탈이 될 때 나머지는 별것 아닌 게 되어요. 해탈을 목표로 두면은 다른 것은 해탈의 목표로 가는 길에 다 가질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것을 목표로 두면은 해탈을 놓칠 수가 있어요. 제일 높은 것, 제일 좋은 것을 목표로 두고 가는 사람들은 다른 것을 다 가질 수 있어요.
나히 빠베지도 빠루빠 가디
빠루빠가디는 다른 사람에게 너 이렇게 했지 나쁜 짓 했다. 뭐했다라고 지적하고,
한국말로 너는 살인자다 어는 도둑이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요. 어떤 일을 했다라고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있는 거예요. 나쁜 일을 했다고 진짜 했을 수도 있고 안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했다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했더라도 무시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으로 하면은 안 좋다. 찰하게 대하고 가르치는 것은 괜찮은데 그리고 살생했던 사람을 살생했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데 당연하지 않아요. 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했던 것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하나도 없어요.
했더라도 내가 자애로 연민심으로 그 사람을 뭔가 아 조일이 되겠군, 잘못해도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욕하면 안돼요. 욕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착하게 만들라고, 어떻게 용서하려고 어떻게 좋은 길로 가라고 인도하려고 의미 외에는 나쁜 사람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욕 나쁜 사람을 내가 나쁘다고 말하면 좋아질까 내가 말하면 뭐가 달라질까 나쁜 사람을 나쁘다고 말하면 내가 같이 나빠지는 거예요. 그것이 성냄이고 무시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빠빠지따 출가자는 빠빠지따. 빠빠지따는 출가자를 번역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예요. 모든 번죄를 버리려고 애쓰고 있는 자가 빠바지따에요. 번뇌를 버리는 자 해탈로 가려는 자는 남을 욕하지 마라 남을 욕하는 자는 빠빠지가 아니다. 출가자가 아니다 이말이예요. 하는 사람은 남을 지적하는 일을 아주 잘해요. 신참은 어리지만 지적하는 것 잘해요. 욕하는 것 잘해요.
그래서 그 마음을 항상 조심하자 이말 이예요.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서도 잘못하면 하고 싶은 말이 대개 많아요. 사람이 그자체가 심리적으로 안좋은 거예요. 그래서 모든 부처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세 번째
나히 빠베지도 빠루빠 가디
남을 욕하지 마라, 남을 지적하지 마라 왜냐하면 나부터가 남을 욕하면은 사실 할 만한 욕이 대개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다른 사람은 내가 욕하는 것 자체가 내가 다른 사람의 위에 있다고 착각. 대부분 따져보면 내가 욕하는 사람보다 내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을 쉽게 욕 안하는 사람이 내가 자애가 많고 연민심이 많고 그런 사람은 욕 잘 안 해요. 다른 사람이 일 잘못했다고 욕사는 사람의 대부분이 자신을 스스로 욕하는 사람인거예요. 자기 스스로 용서 못해요. 자기스스로 용서 못하고 화나고 자시 스스로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적 잘해요. 심리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어요. 현대 심리학도 그래요
부처님 심리학을 봐도 그래요. 스스로 지적 안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쉽게 지적하지 않아요. 내 스스로 용서 못하는 죄들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욕하고 화나고 있고 하면 다른 사람들 다 지적해요. 나는 어떤 사람하고 다른 사람 지적하고 따지고 있고 그 뭔가 자기 마음속에 화풀이하고 있어요. 자신 스스로 용서 못하고 욕하고 있는 사람이 대개 많아요. 수행하다가 심리가 편할 때 내가 나를 용서할 때 다른 사람 용서하기가 쉬워요.
나히 바바야지도 부루하 가야하 바띠
아주 원리적인 가르침들이예요. 이런 것을 통해서 계율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나히 바바야지도 부루하 가야하 바띠
부르하가디 나를 욕하고 지적하지 마라.
네 번째
나히 사마노 허디 빠라하 위히 디안또
사마노 사마라는 것이 평화로운 자 똑깥이 아까 말할 때 빠삐짜 빠야디 빠삐짜로 말해도 출가자 사마노라고 말해도 출가자예요. 그런데 바삐자로 말할 때는 어떤 측면을 말하냐면 번뇌를 버리고 있는 측면에서 번뇌를 계속 이렇게 우리가 먼지가 있으면 후후하고 털어내듯이 손으로 가서 털어내듯이 계속 번뇌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 빠삐자. 그것은 출가자의 한 모습 이예요. 싸띠 싸띠 싸띠 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번뇌가 하게 하는 것 그것을 빠빠짜라고 말해요.
사마나는 평화로운 모습 그렇게 번뇌가 없기 때문에 평온한 모습 행동할 때도 평화롭고, 볼때도 평화롭고 말할 때도 평화롭고 그런 평화로운 사람을 사마나라고 말해요. 하나는 현실인 것과 같고 하나는 결과와 같고 번뇌를 없애려고 하는 모습은 번뇌가 없는 모습이고 그 두가지가 출가자의 의미 출가자라고 하면 머리 깎고 가사 입은 것만 이해하는데 굳이 그런 것만 아니에요. 번뇌를 없애려고 하고 번뇌 없는 자의 삶을 빠삐자 사마라하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나사마나디 사마나가 아니다. 평화로운 자가 아니다. 출가자가 아니다. 모호함이 아니다. 빠라하 위히 디안또 남을 고문하고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있는 사람이 사마나가 아니다. 그럼 사마나히라면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남을 고문하지 않는다. 남을 상처주지 않는다. 남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그 계율이에요. 핵심적인 계율이에요. 그래서 스님이라면 남을 괴롭히고 있고 힘들게 하고 있고 상처주고 있으면 스님이 아니다. 그런 의미예요.
그러니까 항상 조심해야지. 나 때문에 누가 힘들까 나 때문에 누가 괴로울까 내말 때문에 내 행동 때문에 내 가르침 때문에 항상 조심해서 남을 상대를 괴롭히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사마나다. 남을 괴롭히지 않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거지. 그래서 내 삶이 평화로울 수밖에 없지. 이번 생에 내가 남을 괴롭히지 앟기 때문에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안 만나는 거지. 못 만나는 거지, 아주 간단한 원리예요.
나히 사마노 허디 빠라하 위히 디안또
총 네가지를 말햇어요. 첫재 단락에, 둘 때 셋째단락에 또 있어요. 오늘 이 첫째단락에서 마칠게요.
칸띠 빠라마 따뽀 띠떼카
닙바나 빠라마 와단디 보다
나히 빠베지도 빠루빠 가디
나히 사마노 허디 빠라하 위히 디안또
그래서 이 네 가지를 우리가 알면서 하루하루를 이 게송을 독송하면서 시작해 보세요. 인내로 살자 인내로 살자 인내는 최고의 훈련법이다. 인내를 계속 훈련하면서 지내야 돼. 최고의 수행을 내가 하는 거다. 인내를 해보자 진짜 려는 보살은 목숨까지 버리면서 인내를 계속 하셨다. 나는 지금 목숨까지 걸어야하는 인내는 없다. 내가 못할 일이 어디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간띠와디라는 은자한테 죽어서 부처님이 설하신 그 죽이는 은 디와닷따 앞으로 디와닷따
죽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여자에 대한 질투심 자기가 왕인데 왕비들이 그 출가자하고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가 난거예요. 질투하면서 그 스님한테 일부러 고문하려고 일부러 말거는 거지요. 스님 무슨 일을 하나? 무슨 수행을 하나? 나는 인내 수행을 한다. 인내 수행을 합니까? 얼마나 인내할 수 있나요?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다.
그래서 욕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까? 인내할 수 있다. 때리고 인내할 수 있습니까? 인내할 수 있다. 그러면 손을 자르고 인내할 수 있습니까? 죽을 때까지 인내할 수 있다. 마음이 하나도 안상했어요. 자기를 계속 괴롭히고 있는 왕에게 한 번도 화나지 않다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화가 안 난다는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는 이 왕은 진짜 인내할 수 있어? 할수 있다면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이 장래하게 또 고문의 강도가 높아지지만 그 수행자는 인내의 마음이 굉장히 같이 되는 거지요. 인내의 마음이 하나도 사라지지 않아요.
수행자 당신은 내가 이사람 마음과 똑같은 마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내가 괴롭히는 사람이지만 똑같다. 마음 하나도 변함이 없다. 양쪽 손이 절단되고 양쪽 다리가 절단되어도 그래도 코를 잘리고 귀를 잘리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죽었어요, 그것이 간띠와디라는 그 번뇌이름이에요. 그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는 것이고 그 보살 행할 때 다른 것 인내했던 것이 셀 수 없는 생에서 많이 했어요. 이런 인내 저런 인내 다 해 봤어요. 그런데 그 정도까지 인내해봤어요.
그 때는 사실은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런 인내를 해봤던 거지요. 빠라밀 행할 때 그 빠라밀행하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이런 말이 있었어요. 디와다타가 없었으면 부처님의 바라밀이 그렇게 최고까지는 다다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건 사실이에요. 그렇게 잔인하게 누가 하겠어요? 보살이 인내바라밀, 인욕바라밀을 그 정도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런 말이 있어요.
우리가 인내해야하는 일들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번뇌가 굳어지기 때문에 탐욕이 엄청나게 크고 어리석음이 엄청나게 크고, 성냄이 엄청나게 크고, 자만이 엄청나게 크고 질투시기가 엄청나게 크고 그래서 우리가 대개 어렵다. 못한다. 산사야나가 못된 놈이다.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은 별것 아닌데 조금만 내가 인내심을 갖고 있으면 지나가면 끝나는데 계속 꾸역꾸역 있는 것이 상대의 잘못뿐만 아니라 나도 원인제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해.
그래서 인내로 시작하자,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내가 인내로 수행하고 있으면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가 행고 잇는 것이다. 느리고 내가 빅쿠, 내가 빅쿠니가. 내가 빠삐짜 사마나할 수 있어.
두 번째 해탈에 목표를 둘 수 있으면 해탈이 최고다 닙빠나빠라밀 보다나 모든 부처님들이 해탈이 최고라고 말한다. 해탈이 뭔지 알려고 하고, 해탈을 목표로 두고 빠히따도 해탈을 향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면 우리는 최고의 삶을 살고 있어요.
세 번째 남을 욕하지 않는 거예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은 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예요. 그리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 고문하지 않는 것, 남을 상처주지 않는 것. 그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에요. 모든 계율이 여기와 관련도어 있어요. 이것이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마라 이것이 다른 사람을 99하니까 그런 말을 하지마라 이것이 해탈로 가는 길이니 이렇게 하라 이것이 인내의 길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라고 부처님의 계율에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핵심이 여기서 있어요.
따라해 보세요.
칸띠 빠라마 따뽀 띠떼카
닙바나 빠라마 와단디 보다
나히 빠베지도 빠루빠 가하디
나히 사마노 허디 빠라하 위히 디안또
사두 사두 사두.
부처님의 가르침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나오아 모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생로병사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닙바나 성취하기를 기원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
첫댓글 부처님께서는 출가자는 빠빠지따. 빠빠지따는 출가자를 번역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예요. 모든 번뇌를 버리려고 애쓰고 있는 자가 빠빠지따에요.
번뇌를 버리는 자 해탈로 가려는 자는 남을 욕하지 마라 남을 욕하는 자는 빠빠지따가 아니다. 출가자가 아니다 이말이예요.
하는 사람은 남을 지적하는 일을 아주 잘해요. 신참은 어리지만 지적하는 것 잘해요. 욕하는 것 잘해요.
그래서 그 마음을 항상 조심하자 이말 이예요.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서도 잘못하면 하고 싶은 말이 대개 많아요. 사람이 그자체가 심리적으로 안좋은 거예요
남을 욕하지 마라, 남을 지적하지 마라 왜냐하면 나부터가 남을 욕하면은 사실 할 만한 욕이 대개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다른 사람은 내가 욕하는 것 자체가 내가 다른 사람의 위에 있다고 착각. 대부분 따져보면 내가 욕하는 사람보다 내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을 쉽게 욕 안하는 사람이 내가 자애가 많고 연민심이 많고 그런 사람은 욕 잘 안 해요. 다른 사람이 일 잘못했다고 욕사는 사람의 대부분이 자신을 스스로 욕하는 사람인거예요. 자기 스스로 용서 못해요. 자기스스로 용서 못하고 화나고 자기 스스로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적 잘해요. 심리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어요. 현대심리학도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