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은 방언과 예언을 다룬다.
바울은 물론 방언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을 받아 대속과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몰두하였기에 공공 예배에서 방언을 사용할 틈이 없었다.
바울이 세운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방언을 좋아 했다.
방언이 무엇인지 견해가 나뉠 수 있고 다의적 개념 같기도 하다.
바울은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은 아니라고 본 것 같다.
그러나 오순절에 받은 방언은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주어진 것 같다.
지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인 방언도 있다.
공공예배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자신은 무슨 내용으로 기도해야 할지 몰라 방언으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고.
방언을 강조하는 목사들은 자기 신도들이 우월한 영적 능력을 받았다고 내세우기 위해 방언기도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자 공공 예배에서 방언기도 시간을 갖는다.
고린도 교인들은 왜 방언을 좋아했을까.
바울은 이유 불문하고 공공 예배에서 통역없는 방언을 금한다.
방언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도 한다.
예언을 하라는데 말씀 풀이, 즉 설교를 의미하는 것 같다.
초대교회나 퀘이커교도들은 회중 가운데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일어나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목회제도가 굳어진 지금 평신도가 나서서 설교를 하겠다는 것은 방언기도하는 것보다 더 어이없게 여길 것이다.
카톨릭에 항거한 프로테스탄트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하며 개인의 성경 학습과 해석을 권장하고 허용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이단들이 득세한다.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렇지 못한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사이비 교주에게서 주입받은 궤변과 요설을 가지고 자칭 추수꾼이라 들러붙는 것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