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에…(If…, 1968) : 기존 체제 거부하는 학생들의 반란
린제이 앤더슨(Lindsay Anderson) 감독
<언제나 마음은 태양>에서 <위험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문제학생들에게는 ‘좋은’ 선생이 있었고, 그 덕분에 학생들은 곧 평정을 찾았다. 하지만 ‘혁명의 해’인 1968년에 만들어진 <만약에…>는 이런 화해를 거부한다.
이 도전적인 영화는 제목이 같은 키플링의 시와 장 비고의 <품행 제로>, 데이비드 셔윈과 존 홀리트의 <십자군들>이라는 대본에 힘입은 린제이 앤더슨의 특별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힘은 무엇보다도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찾아야 한다. 1950년대 중반에 일어난 영국의 변화, 다시 말해서 신좌파의 등장과 프리시네마의 탄생, 브레히트의 재발견과 존 오스본 같은 연극계의 ‘성난 젊은이’들의 활약뿐만 아니라 린제이 앤더슨을 주축으로 <사이트 앤 사운드>를 통해 펼쳐진 비평활동이 두드러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다큐멘터리 리얼리즘’(존 오스본), 놀랄 만큼 초현실주의적인 사건들(프리시네마), 권위를 전복하고자 하는 충동들(신좌파), 그리고 자기 성찰 장치를 사용한(브레히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영화란 감독 개인의 다기 진술의 장이고, 그것이 동시대 사회에 대한 주석으로 기능해야 하며, 영화감독이 도전하고자 하는 기본 가치에 대한 견해가 반영돼야 한다는 앤더슨의 견해는 여기서 참여가 결여된 자유주의의 허약함에 대한 주석으로 바뀐다.
영화는 영국의 한 공립학교를 배경으로 권위주의적인 제도 안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변화를 추구하려는 학생들의 작고 큰 반란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물리적 환경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그것은 권위에 의한 개인의 억압을 보여주기 위한 사회의 축도다. 동시에 지성과 상상력이 분리돼 있는 체제에 대한 은유다. 공립학교의 환경은 개인의 창조적인 발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의 분열과 파편화를 초래할 뿐이라는 게 앤더슨의 생각이다.
<만약에…>는 고전적 극영화에 전형적인 일종의 리얼리즘의 경계 안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브레히트적 장치와 초현실주의적 영상의 방해를 받는다. 브레히트적 장치는 여덟 개의 시퀀스를 대표하는 여덟 개의 소제목과 함께 컬러 장면 안에 흑백 장면을 집어넣은 것과 관련된다. 연대기적으로 배치된 ‘학교 기숙사ㅡ신학기’, ‘학교ㅡ한 번 다시 모이다’, ‘십자군’이라는 자막은 색채와 흑백 장면이 교차하는 편집과 더불어 관객이 영화매체에 대해 깨닫게 하는 '거리 두기' 장치로 기능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환상일 수도 있는 일들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환상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앤더슨은 언젠가 “그것 모두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서 알 수 있듯 환상 장면(총 맞은 교목이 서랍 안에서 부활하는 장면, 주인공들이 카페에서 나체가 되어 뒹구는 장면, 복도에서 교장 부인이 벌거벗고 달려가는 모습, 학생들이 학부모와 교사들과 전투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은 사실과 환상을 구별하기보다는 그것이 섞이고 침투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힘은 무엇보다도 체제(?)에서 해방된 믹(말콤 맥도웰)이 기존 질서의 파괴라는 최종적 행동에 돌입해 행동의 주체이자 창조자가 된 데 있다. <만약에…>의 미덕은 결국 기존 체제에 순응하고만 다른 대중적 장르 영화들을 초월했다는 사실이다.
ㅡ변재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