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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2구간(백봉령-삽당령)
1.산행코스 : 백봉령 ←(2.1km)→ 철탑(46번) ←(2.0km)→ 768봉 ←(1.1km)→ 생계령(산계령) ←(1.0km)→ 829봉 ←(2.7km)→ 900.2봉 ←(0.71km)→ 고병이재 ←(2.5km)→ 석병산 ←(1.7km)→ 두리봉 ←(2.9km)→ 866.4봉(삼각점) ←(1.6km)→ 삽당령
2.산행거리 : 45구간 거리 18.3 km, 08:30분 휴식시간 포함
3.산행 안내 : 백봉령펜션 숙박(승용차 써비스)-백봉령 출발, 삽당령 도착- 강릉-임계버스,
임계모텔 숙박, 임계택시:010-9058-2400, 임계-삽당령택시 10,000원
주의▶ 987.2봉에서 백봉령 사이 오른쪽에 지도상에 “백복령”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무시하고 42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백두대간 종주 등산로는 자병산 아래가 된다.
백봉령-생계령(640m)-829봉-안부 좌표-922-931봉-900봉(삼각점)-고병이재-헬기장(908m)-백두대간수목원 갈림봉-상황지미골 갈림길 이정표-좌표목 있는 헬기장-석병산 삼거리-석병산 삼각점 봉우리-석병산-석병산 삼거리-헬기장(백두 대간수목원 방향 안내목)-남봉(글씨가 지워진 이정목)-안부(석Q2-2 지점표지목)-두리봉(1033m)-이정목(삽당령2.2Km/두리봉2.4Km)-866봉(삼각점)-좌표목 있는 헬기장-이정목(삽당령0.3Km)-비포장 임도-삽당령-주차장
백봉령-삽당령
백봉령 펜션에서 아침을 먹고 백봉령까지 주인장이 차를 써비스해서 한 결 쉽게 올라왔다. 처음 계획은 생계령으로 오르려고 했으나 주인장이 특급써비스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대간 마룻금은 백복령 표석이 있는 곳에서 직진하여 자병산(872m)을 지나 생계령으로 이어지지만 시멘트 원료인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탓에 라파즈한라시멘트(주)에서 1978년부터 석회암 채석을 위해 깎아내려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통행 자체가 불가하다.
그래서 대간 마룻금은 백복령에서 42번 국도와 나란히 임계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8분 정도 능선길을 가니 자병산 돌채취하는 도로가 나온다.
자병산은 석병산과 쌍벽을 이룬 아름다운 산이지만 지금은 한라석회에서 석회암 채취로 그 모습을 잃었다.
(잘려나가는 대간길인 자병산)라파즈한라시멘트 채석장 진출입로로 내려선 다음 한참을 더 가서야 원 마룻금 산등성이와 다시 만나게 된다.
저녁이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빛나 더욱 신령스러웠다는 자병산(紫屛山),
이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안타까움을 마음속에 담은 채 산등성이 허리를 따라 우회하는 산길을 쫓아 라파즈한라시멘트 채석장 진출입로에 내려선다.
나무계단을 따라 고도를 내리면서 약 7분을 내려서면 우측으로 이어가는 산길은 '카르스트 지형' 설명이 있는 안내판을 만난다.
카르스트 지형
고생대의 조선계 지층에 분포하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빗물과 지하수(이산화탄소를 함유한 물)의 작용으로 화확적 변화를 일으켜 물에 용해됨(용식)에 따라 암석이나 지층이 침식되는 일종의 화학적 풍화작용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하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며, 때때로 대규모의 석회암동굴(예 : 종유동)과 표면에 돌리네라고 불리는 원형의 와지(움푹패여 웅덩이가 된 땅)가 형성 된다는 것이다. 강원도의 삼척, 저언, 영월과 충북 단양 등지에 발달되어 있다.
능선 구릉에서 뒤 돌아 보면 처참하게 잘려나간 자병산의 모습이 아침 햇살에 안개에 가려 흐릿하게 보인다. 자병산의 높이는 지형도에서만 원래의 높이인 872m를 가리키고 있을 뿐 현실에 존재하는 자병산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 자 병 산(紫屛山)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사이에 있는 산이다(고도:810m).
태백산지의 산줄기 중 북쪽의 두리봉(1,033m) · 석병산(1,055m) · 생계령 · 자병산 · 백봉령으로 이어진다.
자병산은 온통 바위로 덮여 있다. 이들 바위는 석회암인데, 고생대에 열대 바다에서 형성된 해성퇴적암으로 풍화에 비교적 강한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노두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자병산이라는 이름은 이들 암석의 색깔이 불그스레하여 주위가 늘 붉게 보이는 데서 유래하였다.
암석의 붉은 색조는 산체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이미 석회암이 형성될 때 착색된 석회암의 색깔 때문이다. 이 산지 일대는 석회암 기반의 카르스트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석회동굴과 석굴 · 돌리네가 산재하고 있다.
최근 자병산은 토석채취로 인해 훼손이 아주 심해 대간구간을 진행할때도 자병산은 갈수가 없어 자병산을 건너 뛰어 곧바로 생계령으로 이어진다
곳곳에 철쭉들이 화려한 축제를 열고 있다.
지난 겨울의 혹독하고 뼈를 깍는 추위를 이겨냈었기에 이런 화려함으로 산객들의 마음을 뺏는 것은 아닌지.추으면 추을수록 그들은 더욱 강인한 몸으로 단련되어 봄이 되면 더욱 진하고 예쁜 꽃을 피운다.
사랑의 기다림, 사랑의 기쁨이라는 꽃말처럼 난 오늘 대부분의 등로를 따라가며 그들의 위로를 받으며 산행을 하고 있다.
생계령(산계령)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와 정선군 임계면 임계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옛날에 주막이 있었다고 전해짐 도로는 없음
[생계령(生溪嶺)]
생계령은 주위에 도토리 나무가 많아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도토리 열매를 채취하던 곳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옥계면 산계리 사람들이 정선 임계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던 고개로 산계령이라고도 한다. 산계리와 임계면을 잇는 길로, 왼쪽 길은 정선군 임계면 방향의 큰피원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오른쪽 희미한 소로는 강릉시 옥계면 성황뎅이로 가는 길이다.
예전에는 고개 정상에 주막집이 있었다고 한다.
강릉서대굴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 있는 석회동굴로 길이는 1,600m이다./강원도 기념물 제36호.
복합형의 수직동굴로 곳곳에 발달되고 있는 종유석, 석순, 종유관을 비롯한 동굴 퇴적물이 많이 발달해 있다.
비교적 넓은 공간을 지니는 수직통로와 곳곳에 발달되고 있는 종유석·석순·종유관을 비롯한 동굴퇴적물이 많이 발달하고 있으며, 사방으로 뻗고 있는 지굴(支窟)도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입구의 크기는 4m이고 이곳에서 60。 경사지면으로 통로가 시작된다. 입구에서 200m 들어간 곳의 지굴에는 곡석(曲石) 퇴적물이 즐비하고, 벽면에는 종유폭포를 이루는 수직조흔이 발달되고 있다.
그 밖에 동굴진주를 비롯한 동굴산호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동굴전체가 급경사이나 수직의 통로로 연결되고 있는 경사굴도 있다. 동굴 내부의 온도는 14℃ (9월), 습도는 90%로 수직에 가까운 동굴이므로 생물은 희귀하다. 다만, 박쥐·백노래기·백여치 등 10여 종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1980년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다.시간이 나서 찾아보려고 했더니 어딘지 도통 모르겠다.
역시 자병산.
자병산의 자연 환경이 1978년부터 한라시멘트에서 석회석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보라색 병풍을 두르고 있던 산은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채 지나는 이들에게 흡사 양수揚水발전소의 상부上部발전소 제방 같은 흉측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 하며...
실제 인근 주민들은 자병산 석회암 개발로 인해 나오는 먼지 등은 고사하고 남양리 사람들은 비가 오면 흘러나오는 오염된 물로 인하여 골머리를 앓아 한라시멘트 측에 항의를 하니 그 물줄기를 건너편으로 옮겼고 그런 졸속 조치의 결과물 몫은 고스란히 산계리 사람들이 감당을 해야만 하게 되어 주민들이 항의를 하니 작은 댐을 만들고 그 댐을 만드니 물이 고여 수질 악화의 원인이 되고......
922m 높이의 암봉이 숲 사이로 빼꼼하게 모습을 보이네요.
힘든 오름길을 올라야 한다. 우와 억시기 덥다. 금년 대간을 너무 늦게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병이재
백복령에서 서진하던 백두대간이 "민둥산 삼거리"에서 북진하여 1시간 거리에 있는 재로서 역시 동쪽으로는 "물방아골"을 경유해 옥계면 산계리로 내려사며 석회동굴, 회양목군락지, 산계리석탑등이 있음. 북쪽으로는 임계면 임계3리 금방마을의 "게르마골"로 이어짐.
두리봉 동남쪽을 시작으로 산 전체가 돌로 쌓여 있어 바위가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다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백두대간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겸비된 산으로 산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절골, 황지미골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석병산에는 바위 한 가운데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日月門)과 온 산을 불붙인 것 같은 철쭉꽃 군락지가 있다.
석 병 산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과 강릉시 옥계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1,055m).
태백산맥 줄기인 해안산맥에 딸린 산으로 주위에 만덕봉 · 대화실산 · 노추산 등이 솟아 있다. 동쪽과 북쪽 급사면에서는 주수천(珠樹川)의 지류가 발원한다.
서쪽으로는 임계천의 지류가 발원한다. 남동쪽 비탈면에는 옥계석화동굴이 있고 생계령 기슭에는 임계 카르스트 지형이 있다.
서쪽으로는 강을~태백 국도가, 남쪽 기슭으로는 정선~동해 국도가 각각 지난다. 산의 아래에는 깊은 갈마늪이 있는데 그 중 지형이 제일 넓은 곳을 큰골이라고 부른다. 석병산에서는 시원한 계곡물이 절벽에서 폭포수가 되어 흐르며 소(沼)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여 울소골(鳴沼洞)이라 부르는 마을도 있다.
일월문
석병산을 올라 일월문은 꼭 구경하고 가야된다. 석병산 아래 5미터쯤 내려서면 희안하게 생긴 문과 마주하게 된다.
일월문을 보고 마치 거울을 보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고 한다. 일월문을 보고 절을 네번반 한뒤 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
부처님이 쌍홍문을 통과했다는 전설처럼,
일월문도 거대한 문으로 일월성신이 넘나들며 거울처럼 맑은 기운이 넘쳐나는듯 했다.
오늘 함께한 대간가족 여러분들 넘쳐나는 기운을 듬뿍 받아오셨기를 바랍니다.
석병산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와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1,055m이다. 두리봉 동남쪽을 시작으로 산 전체가 돌로 쌓여 있어 바위가 마치 병풍을 두른것 같다.
석병산(石屛山)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백두대간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겸비된 산으로 산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절골, 황지미골을 만날수가 있다 특히, 석병산에는 바위 한 가운데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日月門)과 온 산을 불붙인것 같은 철쭉 군락지가 있다.
[삽당령(揷唐嶺)]
삽당령은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의 분수령으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 고개는 강희 54년(숙종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府) 서쪽 60리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기록되어 있다. 삽당령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삽 답 령
삽당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강릉부의 서쪽 60리에 있는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하였고,
『증보문헌비고』에는 삽당령(揷當嶺)이라 썼는데 현재에 쓰고 있는 삽당령(揷唐嶺)이란 한자는 언제부터 쓴지 확실하지 않다.
삽당령의 오른쪽에 있는 가지는 화심형(花心形)으로 생긴 대화실산 밑을 돌아 대기리 벌말로 이어지고, 가운데 있는 가지는 송현을 지나 정선으로 이어지고, 왼쪽에 있는 가지는 동쪽으로 뻗어 이어지면서 두리봉, 석병산으로 가는 줄기가 된다.
삽당령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줄기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대화실산 옆 석두봉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가면 두리봉, 석병산으로 이어진다.
백복령 표석이 있는 곳에서 셀카로 인증을 하고 임계 방향으로 조금 내려간 지점에서 생계령으로 가는 들머리로 들어간다.
방금 왔던 42번 국도를 보며 10여 분을 산행하면 라파즈한라시멘트 채석장 진출입로로 내려선다. 바로 대간상의 자병산의 아픔을 만나게 되는 현장이다.
원래 대간은 자병산(872m)을 지나 생계령으로 이어지지만 시멘트 원료인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탓에 라파즈한라시멘트(주)에서 1978년부터 석회암 채석을 위해 깎아내려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통행 자체가 불가하다.
그런 연유로 대간 마룻금은 한라시멘트 채석장 진출입로를 건너 한참을 더 가서야 원 마룻금 산등성이와 다시 만나게 된다. 저녁이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빛나 더욱 신령스러웠다는 자병산(紫屛山), 이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백두대간을 북진(北進)하는 대간꾼들이 이 대간을 진행하면서 두 번을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두 번째야 진부령에서 향로봉을 바라보며 통일된 그날에 대한 아쉬움의 눈물이겠고, 그 첫 번째 눈물을 흘린다는 곳이 싹뚝 잘려나간 이 자병산에 대한 아픔의 눈물이라고 할 정도이니 경제 논리에 의해 자병산은 그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추풍령의 금산은 그래도 반만 잘려 나갔는데.......
오늘은 산행을 시작하며 기온이 높아 땀이 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바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등로는 평지와 같아서 산행 속도를 저절로 빠르게 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오늘은 삽당령에서 임계로 가는 16:35분 동진버스를 타야 되기 때문에 산행시간이 8시간이 넘어도 되니 시간은 넘치고 넘친다.
주위를 살피며 여유 있는 산행을 하며 생계령으로 간다. 42번 철탑을 지나 완만한 오름길에 44번 송전철탑을 지나고 능선 구릉을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드는데 45번 송전철탑도 지난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나무계단이 끝나면서 자연스레 우측으로 이어가는 산길은 '카르스트 지형' 설명이 있는 안내판을 만난다. 예전 정선의 민둥산을 오를 때도 ‘돌리네’라고 본 기억이 나지만.......전문적인 식견이 모자라 읽고만 지나친다.
무명봉 몇 개를 지나며 보이는 황폐한 자병산을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자연이 펼치고 있는 조화로움으로 인해 이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 준 다.
동토를 연상케 했던 나무에서는 푸른 잎이 돋아나고 억센 땅에서는 제비꽃을 비롯한 각종 야생화들이 나의 발걸음을 잡는다. 또한 곳곳에 철쭉들이 화려한 축제를 열고 있다.
지난 겨울의 혹독하고 뼈를 깍는 추위를 이겨냈었기에 이런 화려함으로 산객들의 마음을 뺏는 것은 아닌지. 추으면 추을수록 그들은 더욱 강인한 몸으로 단련되어 봄이 되면 더욱 진하고 예쁜 철쭉이라는 꽃을 피운다.
사랑의 기다림, 사랑의 기쁨이라는 꽃말처럼 난 오늘 대부분의 등로를 따라가며 철쭉들의 위로를 받으며 산행을 하고 있다. 철쭉들의 끝없는 향연이 등로옆으로 펼치고 있다.
꽃이 지고 나면 잡목으로 치급 받을 그들의 운명이 서럽구나. 나라도 이제부터는 그들의 화려한 날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몸짓을 기억해야 겠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고도를 서서히 낮추면서 내려가면 넓은 초지의 안부에 '대한민국 백두대간'이라 쓰인 커다란 안내판과 거리가 표기된 이정표[↑헬기장(908고지) 5.5km ↓백복령 5.4km]와 방향만 표시된 두 개의 이정표가 서 있는 생계령에 도착했다,
옥계면 산계리 사람들이 정선 임계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던 고개로 산계령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고개 정상에 주막집이 있었다고 해서인지 아직도 이정표에는 향토음식점을 표기하고 있었다.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 않고 계속 왔기 때문에 시원한 얼음물과 과일로 한참동안 다리쉼을 한다.
휴식을 끝내고 다시 석병산을 향해 생계령의 안부에서 오름길을 오르다 보면 산양이 산다는 현수막이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지만 산에 현수막까지 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 오름길이나 쉴 만 한 곳에는 통나무를 잘라 만든 나무의자가 곳곳에 설치해 두고 있어 산행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주고 있어 고맙지만 난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어 쉬지 않고 느리게 산행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에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데 강원도 기념물 제36호인 '강릉 서대굴'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어디인지 찾아볼 생각으로 두리번거렸으나 있을 곳이 아니다. 그냥 홍보용인가?
잡목으로 사방이 막힌 829봉을 벗어나 고도를 한동안 내렸다가 등로는 다시금 거친 된비알로 바뀌어 숨쉬기 힘들만큼 힘들게 한다.
바람은 없고 지열은 스멀스멀 올라오니 참나무에 기대어 한 숨을 돌린 다음에야 전망이 압권인 922m 암봉에 오른다.
맑은 날에는 가야 할 방향으로 선자령의 풍력발전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곤신봉 및 황병산의 모습도 시원스레 트이는 조망지라고 하지만 중국 발 황사 때문인지 시계는 멀지 않고 다만 앞쪽의 시원스러운 대간마루금과 931봉 그리고 석병산 만을 볼 수 있음이다.
밋밋한 능선은 잡목이 무성한 931봉으로 이어지다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면서 삼각점이 있는 900.2봉에 닿는다.
산림청에서 제작한 백두대간 안내문을 보고는 마지막으로 자주 빛 울타리라는 자병산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발걸음을 옮긴다. 삼각점봉에서 내려가자마자 산길은 우측 사면으로 내려가야 한다. 무심결에 통나무를 잘라 만든 나무의자가 있는 곳으로 직진하면 알바가 된다.
능선 구릉을 넘어 완만하게 올라서면 이정표[↑일월봉/소요시간:1시간 15분 ↓고뱅이재/소요시간:10분]가 있는 908봉의 헬기장을 지나 약간 가파른 내리막길이 짧게 이어지다가 이내 완만한 평지 길로 바뀌는 대간 마루금은 통나무를 잘라 만든 나무의자가 있는 쉼터를 지난다.
조릿대 밭을 지나 완만한 오름길로 이어지고 석병산이 0.6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능선마루에 올라서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면 일월봉(석병산정상, 소요시간 15분)을 나타내는 또 다른 이정표가 있는 쉼터를 만난다.
조금 더 진행하면 폐 헬기장을 지나 일월봉(5분)이라는 이정표에는 석병산에 갔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와 두리봉으로 가야하기에 배낭을 벗어놓고는 석병산으로 향한다.
곧 이어 암봉을 오르니 삼각점만 있고, 정작 석병산 정상은 바로 뒤에 있는 암봉이다.
두리봉 동남쪽을 시작으로 산 전체가 돌로 쌓여 있어 바위가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다고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석병산 정상에서 두리봉으로 향하는 능선미가 참으로 예쁘다. 특히, 석병산에는 바위 한 가운데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日月門)이 있어 신기함을 더한다. 일월문을 보고 절을 네 번 반 한 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
일월문의 신기함에 빠져 이리저리 사진에 담다가 다시 석병산 분기점으로 되돌아가서 배낭을 매고 두리봉으로 향한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산길은 야트막한 안부를 거쳐 서서히 오르다가 백두대간 수목원 갈림길인 폐헬기장에 도착하니 햇빛에 변색되고 훼손된 이정표[←석병산 0.7km →백두대간 수목원 7km]에 어느 산객이 쓴 삽당령 5.3km라는 글이 희미하게 보인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평지를 따라 편안하게 조금 가다보면 식탁과 평상이 겸비된 제법 너른 쉼터인 두리봉에 닿았다. 과일과 물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대체적인 시간 계산을 하니 15시 30분이 삽당령에 도착할 것 같다.
그럼 삽당령에서 임계로 가는 버스를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별로 쉴 것도 없고 편안한 내림이라 하산하여 삽당령에서 쉬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두리봉에서 삽당령으로 가는 길은 편안한 내림길이고 유난스럽게 조릿대가 무성하다는 것과 고도가 낮아지면서 다시 철쭉들의 밝은 모습이 나의 발걸음을 위로 해 준다.
삼각점이 있는 866봉과 폐 헬기장을 지나 삽당령으로 연결되는 임도에 내려선다. 좌측으로 십여 미터 내려가서 다시 우측 편 산길로 내려가니 35번국도 상의 삽당령이다.
한 시간의 시간이 남아 포장마차에 시원한 캔 맥주 하나 하려했더니 맥주와 음료수는 없고, 단지 동동주와 차만 팔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부탁하여 옥수수 막걸리와 전병으로 안주삼아 어따! 시원한 거. 오늘은 구간 길이도 짧고 난이도도 쉬운 곳이고 시간도 충분하여 크게 어렵지 않게 산행을 해서 피로도가 거의 없다. 버스시간이 촉박하여 급히 먹고 임계 버스를 타고 터미널 근처 모텔에 숙박을 하였다.
숙박때마다 가장 큰 문제가 친구는 세탁을 하는데 주인장과 실랑이를 하면서도 깔끔하고 부지런한 친구는 자주 세탁을 하여 밤사이에 마르는 것이 어려워 난방을 요구할 적에 가장 난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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