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드는 나라에서 요즘 유통시장의 가장 큰 흐름 가운데 하나는 그로서리 분야에 대한 진출이 눈부시다는 것이다. 미국도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거대기업까지 가세해 너도나도 그로서리 시장에 뛰어드는 건 무엇보다 영업의 안정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 가운데 “먹는 장사는 손해 볼 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쉬지 않고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소비가 꾸준할 수 밖에 없다. 가구나 가전제품, 집, 자동차 등 먹을 거리를 제외한 다른 상품들은 재화로써 내구성이 상당하다. 나아가 이들 상품은 생존에 그다지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단 며칠만 굶어도 목숨을 위협 받는다. 자본주의 경제 특성상 경기 호황과 불황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데, 경기 흐름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으며 꾸준히 소비가 이뤄지는 게 바로 그로서리이다. 게다가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건강한 먹을 거리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게 되는데 이런 이유들로 인해 그로서리 스토어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그로서리 스토어 분야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에 먹을 거리가 풍성하고 식탁이 풍요로운 것은 그로서리 스토어가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그로서리 스토어들은 분명하게 제 나름의 타겟 고객이 있고, 영업 전략이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뜻이다. 수많은 그로서리 스토어들의 특징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면 이는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건강에 좋고 또 풍요로운 식탁을 꾸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로서리 스토어(Grocery Store)는 우리 식으로 치면 슈퍼마켓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에 걸쳐 혹은 특정 지역이나 몇 몇 주에 걸쳐 판매망을 가진 슈퍼마켓들이 여럿 있는데, 생필품과 함께 음식 재료를 판다.
랄프스(Ralphs), 앨버츤(Albertsons), 세이프웨이(Safeway) 등이 대표적인데, 서부, 남서부, 중서부, 동부 등 지역에 따라 나름 강세를 보이는 그로서리 체인점들이 있다. 물건 값은 편의점에 비하면 싸고, 코스트코와 같은 양판점에 비하면 비싼 편인데, 회원 가입비를 보통은 받지 않는 회원제를 하는 곳이 많다. 회원 카드를 가진 쇼핑객이 쿠폰을 이용해서 장을 본다면, 상당한 정도로 쇼핑 금액을 줄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그로서리 스토어의 추세와 관련해 최근 눈여겨볼 대상은 월마트와 타겟이다. 월마트와 타겟은 원래 식품을 제외한 다른 상품에서 강점을 보여온 초대형 유통기업이었다. 그러나 최근 눈에 띌 정도로 식품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월마트 가운데서도 월마트 슈퍼센터(Walmart Supercenter)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매장을 방문해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로서리 부문의 매장 면적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그로서리 스토어보다 더 클 정도이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유통업체 타겟도 월마트 슈퍼센터에 뒤질세라 슈퍼 타겟(SuperTarget)이라는 매장을 속속 열고 있다. 일반 타겟 매장에 비해 슈퍼 타겟이 가장 크게 다른 점 또한 그로서리 코너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다.
월마트와 타겟의 그로서리 분야 확대로 가장 큰 위기를 느끼고 있는 그로서리 스토어는 슈퍼마켓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전통 그로서리 스토어들이다. 미국 서부를 기준으로 한다면, 랄프스나 앨버츤 세이프웨이 등이 이에 속한다. 미국은 지리적으로 워낙 광대하다 보니 지역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그로서리 중심의 슈퍼마켓들이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전국 체인망을 더욱 촘촘하게 갖춰나가고 있는 월마트와 타겟 등의 그로서리 시장 진출로 영업에 고전을 하고 있다.
월마트 슈퍼센터와 슈퍼 타겟의 그로서리 매장은 랄프스나 타겟 같은 기존 슈퍼마켓에 비해 가격도 싼 편이며, 특히 간편하게 조리해 먹거나 이미 조리된 음식 분야 등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거의 쉬지 않고 이뤄지는 세일 행사 등을 통해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미국의 그로서리 시장의 확대는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양판 매장인 코스트코(Costco Wholesale)의 성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코스트코는 일찍이 매장을 식품(Foods), 비식품(Non-Foods) 부문으로 나눠 운영을 해왔고, 이런 영업 전략이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코스트코나 월마트 계열사로 역시 회원제인 샘스클럽(Sam's Club) 등은 신선한 농수산물을 큰 포장으로 팔아 이윤을 남기고 있다. 신선하고 싼 게 특징이지만 양이 많다는 점이 소비자들로서는 부담이다. 이러다 보니, 코스트코나 샘스 클럽을 이용하기에는 양 때문에 부담스럽고, 랄프스나 앨버츤 같은 전통 그로서리 스토어에 대해서는 가격에 불만인 사람들이 적지 않게 생겨나게 됐다. 이 틈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그로서리 스토어들이 있으니, 미국 서부를 기준으로 할 경우 ‘Food 4 Less’와 ‘Smart & Final’이 바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
대형 체인 형태를 띈 미국의 그로서리 스토어는 요약하자면 랄프스나 앨버츤 같은 전통적인 슈퍼마켓 그로서리 코너, 코스트코와 샘스 클럽 같은 양판 업체, 그리고 월마트 슈퍼센터와 슈퍼 타겟 같은 3가지 종류가 각축하는 양상이다.
그런가 하면 가격보다는 상대적으로 질이나 특색있는 상품에 더 중점을 두고 영업을 하는 그로서리 스토어들도 있다. 캘리포니아를 필두로 한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꼽아 보면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 스프라우츠 파머스 마켓(Sprouts Farmers Market), 호울 푸즈 마켓(Whole Foods Market), 브리스톨 팜즈(Bristol Farms)등이 그런 스토어들이다.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는 유기농산물 등을 그리 비싸지 않게 팔면서 포장 단위가 적은 게 눈에 띈다. 또 세계 각 나라의 유명 음식 재료 혹은 음식을 구하기도 쉽다. 예를 들어 한국의 갈비를 파는 트레이더 조스도 있다. 트레이더 조스는 냉동 제품만 해도 한 두명이 먹기에 적당한 분량으로 포장해 팔고, 집에 들고와 바로 먹거나 간단하게 조리만 하면 곧바로 먹게 해 놓은 식품들도 적지 않다. 또 한 병에 2~3달러짜리지만 질이 그런대로 괜찮은 와인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프라우츠 파머스 마켓(Sprouts Farmers Market)은 ‘싹’이라는 의미를 가진 스프라우츠라는 상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가공식품보다는 신선식품에 집중하는 그로서리 스토어이다. 생선, 소시지, 육류 등은 신선하면서도 몸에 이롭다는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된 게 많고 특히 농산물이 신선하면서도 매우 저렴하다.
호울 푸즈 마켓(Whole Foods Market)은 몸에 좋다는 유기농 먹을 거리 등을 일찍이 선보여 온 이 분야의 강자인데, 상품은 대체로 믿을만 하지만 가격이 좀 센 편이라는 게 흠이다.
브리스톨 팜즈(Bristol Farms)는 고급스러우면서도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든 특색있는 식품들이 많은 스토어로 알려져 있다.
이들 그로서리 스토어 외에도 소수인종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지에는 라틴계열의 그로서리 스토어가 드물지 않고, 엘에이, 뉴욕, 애틀란타, 워싱턴, 시카고 등지에는 많게는 수십 개까지 한국 교포들이 운영하는 그로서리 스토어들이 있다.
한인 슈퍼마켓 또한 가격 측면 등에서는 주류 그로서리 스토어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한인 이외에도 다른 인종들의 쇼핑이 활발한 게 이를 증명한다. 한국 교포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들 그로서리 스토어는 규모 면에서 미국 주류 그로서리 스토어와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인들이 주로 구매하는 채소와 생선 등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한국 교포들이 몰려 살지 않는 곳에서도 일반 그로서리 스토어의 아시안 식료품 코너에 가면 간장 등 웬만한 아시아 식료품을 구할 수 있다.
이 밖에 99센트 스토어와 소규모 편의점 같은 곳에서도 그로서리 판매를 늘려가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