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과 어울림
고향은 소멸되고 있지만 잊을 수는 없다. 태어남과 자람의 마당은 단순한 어느 장소의 의미가 아니다. 뿌리이자 대궁이며 잎이요 꽃이며 열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웠던 또는 슬펐던 그런 단순한 감정의 편린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어쩌면 살아온 삶의 여정 그 전부다. 고향에 갈 때마다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을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거주 인구가 줄어들면서 소멸되는 고향은 더욱 그렇다. 삶이 윤택해지면서 변화가 일어나 없어진 것도 있지만 거주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사라진 것도 많다.
흙먼지 풀풀 날리던 신작로가 사라지고 맑은 가을 하늘 밑으로 쉽게 다가오던 민둥산이 없어졌다. 예전보다 나무들이 울창해지고 산들은 건강해졌지만 그곳을 터전으로 살던 산토끼나 꿩 같은 짐승은 보기가 쉽지 않다. 새들 또한 마찬가지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집에 둥지를 튼다. 참새 또한 마찬가지다. 마을의 집들이 대부분 초가집이던 옛날에는 참새가 참으로 많았다.
봄이 오면 쌀겨 흩어진 방앗간 마당가에는 참새들이 부산스러웠고 가을로 접어들면 신작로를 따라 걸쳐있던 전깃줄에 제비가 열을 지어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봄이 와도 옛날처럼 제비들이 오지 않는다. 초가집이 사라지면서 참새들도 시골을 떠났다. 대체로 사람으로 인해 자연이 망가지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사람과 어울려야 풍성해지는 자연도 있다. 까치나 까마귀, 직박구리는 여전히 시골에서 둥지를 틀고 사는 것처럼 보이나 개체 수가 예전 같지는 않은 느낌이다. 그들은 인간이 만들고 남기는 음식 부산물에서 먹이를 취하고 있나 보다.
가을은 유난히 참새 활동이 많은 계절이다. 마치 바람이 한껏 든 고무공이 콩콩 튀듯 걷는 참새를 보면 앙증맞기도 하지만 왠지 살아 있는 생명의 기운마저 느끼게 된다.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에 눈을 뜨고 달빛이 내리기 전 둥지를 찾아드는 참새 날갯짓에 맞추어 방으로 들어가던 그런 아늑한 느낌의 시골은 이제 추억 속에서만 남아 있다.
고향에 제비가 사라지더니 참새도 사라졌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 자신이 없는 나이 많은 사람들만 오롯이 남았다. 그들마저 세상을 떠나면 고향 시골에는 무엇이 남기나 할까. 그래도 그들의 삶은 편안하다. 도심의 아파트 단지 공터의 빈 의자에서 멀거니 하늘바라기만 하는 갈 곳 없는 노인들보다 훨씬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다.
참새는 고통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난의 새이자 연민의 새다. 한겨울 초가지붕 깊숙이 둥지를 틀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공포의 손길 앞에 휘둥그레 눈을 뜨고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그 참새를 기억한다. 채 여물지 않은 나락 논에 앉아 몇 알의 벼를 먹기 위해 쫓기고 내몰리던 참새, 총이나 독극물로 잔인하게 사냥 당하던 참새, 며칠째 눈이 내리고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한 알의 낟 곡을 찾아 헛간이며 마당 가를 헤집던 참새, 사람은 물론 강아지며 고양이가 오가던 방앗간 근처를 수런거리며 날아들던 참새, 포식동물과 인간의 먹이가 되었던 참새, 그 많고 많던 참새들이 사라져 가는 아픈 오늘을 생각한다.
가난 앞에서 자연으로 두어야 할 많은 것들을 먹거리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산토끼며 꿩에 산비둘기까지 산짐승 들짐승을 인간의 먹이 중 하나로 생각했었다. 결핍과 굶주림은 모든 삶의 질서를 거침없이 망가뜨린다. 배고픔이란 괴물은 자연의 질서도 인간의 도리도 무력화 시킨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 선인들의 말은 진리다. 선함과 관대함은 정신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높은 차원의 도덕적 언어지만 물질의 풍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은 위선이나 허상의 한계를 지닌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의 이면에는 물질적 탐욕과 부족함이 그 원인이다.
가난했던 시절, 굶주림 탓에 약으로 덫으로 이런 자연의 생명들을 파괴했다. 이 땅에 생명으로 와서 어울려 살며 눈으로든 소리로든 서로를 느끼고 기쁨과 환희를 누려야 할 이웃끼리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되었던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자연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라고 만들어진 것이지 지배하고 통제하라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가을이 오고 벼꽃이 떨어지면서 여물이 들기 시작하면 날아드는 참새를 쫓았다. 그까짓 벼 몇 가마니가 무엇이라고. 쌀 한 바가지에 목숨이 달렸던 농부나 그 가난했던 사람들이 들으면 참으로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세상 물정 어두운 어리보기라고 욕하겠지만. 당시 학교에서는 하루에 몇 마리의 벌레를 잡아먹는 제비는 익조이고 연간 몇 되의 곡식을 사람으로부터 훔쳐 가는 참새는 해조라며 이 땅에서 퇴치되고 사라져야 할 짐승을 구분했었다. 자연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임에도 사람의 생존이 전부인 마냥 가르쳤다.
사람과 어울려 사는 참새는 천적이 많다. 참새의 천적은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에 참새는 사람 곁에 살면서 먹이도 챙기고 안전도 얻는다. 게다가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나 창고, 헛간 등에 둥지를 틀어 번식할 수 있는 공간도 챙긴다. 사람이 없어지면 참새도 사라진다. 일본 나가노 현은 원래 참새가 많은 곳이었으나 사람이 줄어들면서 참새마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참새가 쌀 도둑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참새가 이런 해로운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새가 잡아먹는 해충도 많다.
중국의 역사적 사실 하나로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1958년 모택동이 그 해 쌀 수확량이 많이 줄어들자 인간에게 해로운 새인 참새가 벼 이삭을 쪼아 먹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면서 대대적인 참새 소탕작전이 벌어진다. 북경 근처의 모든 노동자 농민이 참여하여 참새 퇴치운동을 벌였고 이때 2억 마리에 가까운 참새가 죽었다고 한다.
참새가 사라진 후 도둑질 당하지 않은 쌀로 해서 인민의 삶이 그만큼 풍요해졌을까. 하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해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흉년에 대기근이 발생하면서 무려 4천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물론 굶어죽은 사람 전부가 참새 탓이진 않겠지만 자연과 나누지 못한 인간의 탐욕과 정책의 잘못을 미물인 참새에게 돌린 인간의 무지가 낳은 참담한 결과였음은 분명하다. 우주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자연은 없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불러오는 생태계의 교란은 오래도록 복구가 불가능한 재앙을 만든다.
우리나라도 참새 소탕 작전이 있었다. 어느 해 마을 집성 성씨의 재실 위에 약에 취해 기와지붕에서 굴러떨어지던 참새를 지금도 선연히 기억한다. 면사무소에서 나누어 준 참새 잡는 약을 물에 타고 그 물에 쌀을 담근 뒤 참새가 모여들만한 곳에 뿌렸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약이 독한 소주라고도 했고 무슨 극약이라고도 했다. 쌀을 먹은 참새들은 졸다가 픽픽 쓰러졌고 어른들은 약에 취한 참새를 잡아 구워 먹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몇 년은 아예 마을에 참새 씨가 말랐었다.
참새가 없어지니 가을이 와도 새 쫓기를 하지 않아 편하기는 했지만 재밌는 놀이이자 문화가 통째로 사라졌다. 눈 오는 날 마당가에 곡식을 뿌려두고 짚 소쿠리나 바지게를 틀로 삼아 참새 잡는 놀이도 즐길 수 없었다. 겨울이면 마을로 찾아들어 그물을 이용하여 참새를 잡던 떠돌이 사냥꾼이 없어지면서 이런저런 구수한 이야기도 화제도 사라졌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대밭에서 떠들썩하던 참새들의 부석거림도 사라지고 회중전등을 들고 산 아래 초가지붕을 뒤지던 참새 잡이도 자취를 감추었다. 마른 나뭇가지를 쌓아놓은 곳이나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나드는 참새를 보면 왠지 생동감이 느껴졌다. 추운 겨울날 털을 잔뜩 부풀린 채 호로록 소리를 내며 마당 가를 배회하는 참새는 친근하기도 했고 가엽기도 했다.
시골에서 사라진 참새는 오히려 도심에서 보기가 쉽다. 아라뱃길 산책로 근처 휴게소에 앉아 사람들이 떨어뜨린 과자나 빵조각을 노리고 잽싸게 날아드는 참새를 본다. 사람 따라 참새도 도시로 옮겨온 것이 분명하다. 제비가 사라지고 참새도 줄어들고 벌들도 급격히 감소한다고 한다. 생태계 균형이 파괴되면 종의 다양성도 사라질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어디 없이 시골 마을이 소멸되고 있다. 낭만과 추억이 깃들어 있던 고향이 사라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현상이다. 새 한 종이 없어지는 것이 무슨 대단한 문제일까만 인간이 자연을 해치면 자연도 인간을 해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웃이 사라지고 친구가 곁을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울려 사는데 진심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끝>
첫댓글 ㅎ
감상 잘했습니다 ^^♡
고맙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쇠하여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참새의 소멸을 통해 잘 알게해주셨네요.
다같이 실향민이 되는건 아닐까 걱정입니다
북녘에 참새는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겠지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흘러 들어 실향민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쪽 참새는 사람보다 먼저 탈북했지요. 먹을것도 ,의지할 삼림도 없으니까요. 농촌의 퇴화가 도시와 국가에로 전염되지 않기를 기도해야겠네요.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참새가 살지 못하는 곳은 당연히 사람도 살 수 없겠지요
우리의 자유대한민국은 참새도 자유롭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추운 겨울 감기 조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