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서 목차
머리말
제1부
정홍수 세상의 고통과 대면하는 소설의 자리
이강진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장성규 대중의 심성구조 변화와 전복적 미학의 가능성
김문주 비등하는 역사, 결빙의 현실
오창은 분자도시와 불화의 상상력
제2부
고봉준 ‘문학과 정치’에서 ‘문학의 정치’로
─ ‘시의 정치성’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를 중심으로
조정환 상상의 두 체제와 상상력의 전환
─ 우리 시대 문학이 요구하는 상상력에 대하여
이 석 희미한 시적 힘
남승원 ‘동일성의 시론’으로 본 균열의 미학
제3부
소영현 서발턴을 위한 문학은 없다
이경재 21세기를 담아내는 세 가지 방식
― 김사과의 ‘분노의 정념 3부작’(『미나』, 『풀이 눕는다』, 테러의 시』)
을 중심으로 」
정주아 ‘계모 찾기’, 버림받은 세대와 냉혹한 모성의 세계
― 최진영론
강지희 경험 없는 세대와 파토스의 영도(零度)
─ 김성중과 박솔뫼의 소설 읽기
2. 엮은이 소개
오창은
1970년 해남에서 태어나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저서로 평론집 『비평의 모험』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가 있다. 현재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로 있다.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론 및 평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로 있다.
3. 도서의 내용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전방위적 비평의 한 형태를 띠고 있는 주제 비평문들로 묶었다. 제2부는 우리 시대 시의 변화를 이론적으로 탐색하는 글들의 다발이고, 제3부는 소설가들의 문학세계를 재구성하려는 평론들이 오순도순 모여 있다. 여기에 실은 글들이 우리 시대 비평의 최고봉(最高峰)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시대와 문학을 바라보는 돋보이는 문제의식이 번뜩이는 글들이라고는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제1부에는 정홍수․이강진․장성규․김문주․오창은의 평문을 실었다. 정홍수는 사회 시스템 아래 배제된 자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수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문학적 포즈로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 그리고 공선옥의 『꽃 같은 시절』을 분석했다.
신예의 등장은 항상 비평계를 긴장시킨다. 젊은 평론가 이강진의 글도 도발적이다. 그는 인간을 거부하는 인간, 안드로이드 세대의 시 쓰기라는 화두를 던지며, 황인찬․박준․최정진․박성준의 시를 주목했다. 이강진은 이미 구축된 세계를 거부하려는 시인의 고투가 ‘안드로이드 세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이강진이 세대론적 감각을 제기했다면, 장성규는 대중의 심성구조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장성규는 세 가지 방식의 문학적 의미화를 밀어 붙였다. 첫 번째로는 대중문화의 문법을 공세적으로 변용해 현실 문제를 환기작가로 손아람․김선우․서효인을, 두 번째로는 분노의 파토스를 텍스트의 균열로 연결하는 작가로 김사과․최진영을, 세 번째로 판타지의 형식으로 억압된 분노의 무의식을 표출하는 작가로 윤이형․윤고은․염승숙을 주목했다.
김문주는 시인의 시적 감각이 기원한 역사적 맥락을 추적한다. 그는 1980년대의 해방적 열정이 현실의 변화에 대응해 다양한 갈래들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최영미의 시세계는 연성(軟性)의 감수성을 지닌 성찰적 여성성을 향했고, 나희덕의 시는 경험과 기억을 껴안고 나아가는 이해와 소통의 몸짓이며, 허수경의 시는 시간의 지층들에 대한 서사적 탐색이라고 했다. 또한 조용미․박정대․이홍섭․맹문재․정끝별․이정록․이희중의 시 또한 ‘시와 윤리의 힘겨루기’를 감당하고 있다고 평했다.
오창은은 그린 포비아(Green phobia)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한국 소설에 나타난 도시적 감성에 집중해, 김경욱․염승숙․하재영․표명희․편혜영의 소설을 주목했다. 이들 작가들은 도시의 불안, 자연에 대한 불화의 상상력을 끌어안고 고투하고 있다. 이들의 감각은 시대의 징후이고, 현대인의 공통감각이라고 보았다. 오창은은 불안과 불화의 시대에 대응해, 앞으로 자연과 도시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한국 소설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예측했다.
제2부에서는 시의 정치성과 시적 상상력, 그리고 시론을 둘러싼 담론의 각축이 벌어지고 있다. 고봉준은 2010년 이후 한국 시단의 화두였던 ‘문학과 정치’를 비평에 대한 비평, 즉 메타비평을 통해 검토하고 있다. 고봉준은 진은영․심보선․김종훈의 비평문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현실이 권력의 질서 속에서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환기시킨다. 그는 ‘문학’과 ‘정치’가 각각 실체로 분리하기보다는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조정환의 글은 현대사회가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 이행했다는 문제 설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는 현실의 변화에 조응해 문학적 상상력 또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조정환은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 들뢰즈의 운동-이미지, 베르그손의 지각-이미지, 스피노자의 인식으로서의 상상을 논했고, 이어 각론에서는 백무산과 송경동의 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론적 측면에서 ‘시론(詩論)’을 중심으로 한 논쟁은 한국 시단의 뜨거운 활화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석의 글과 남승원의 글은 ‘김준오 시론’에 대한 대립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석은 시가 자연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제작된다는 사실에 착목했다. 그는 김준오의 『시론』에서 이야기하는 ‘서정적 자아’를 통해서는 2000년대 한국시의 다양한 목소리를 해명해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분열된 자아, 파편화된 현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 이석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남승원은 김준오의 『시론』을 긍정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김준오의 『시론』을 ‘동적 개념으로서의 서정’으로 의미화하며,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역동적 얽힘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시의 유동성을 이 얽힘에 의한 새로운 서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남승원의 주장이다.
제3부는 소설가의 문학세계를 다룬 비평문들이 서로 어깨를 견주고 있다. 소영현은 김이설의 문학세계가 ‘여자의 몸’을 화두로 삼아, 사회의 동물화 경향을 묘파했다고 보았다. 소영현의 비평문을 잘 짜여진 작가론으로서 돋보일 정도로 뚜벅뚜벅 전진하는 글쓰기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경재가 김사과의 장편소설을 ‘정념의 3부작’으로 호명한 것도 인상적이다. 구조적 호흡을 형성한 비평이라는 측면에서, 형식과 내용의 교차를 활용했다는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김사과는 서사의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기존의 재현 체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 현실을 비판하려 했다는 것이 이경재의 논평이다.
정주아의 최진영론은 ‘모성의 배반을 사회의 배신’으로 확장시킨 글이다. 정주아는 이 글에서 강렬한 모성에 대한 갈망이 세계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서사적 흐름을 최진영의 소설이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최진영의 소설에는 ‘분노의 파토스’가 넘실대고, 작가로서의 존재론적 갈등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평론가 강지희는 같은 세대의 감각으로 김성중과 박솔뫼의 소설을 ‘경험이 부재한 세대의 글쓰기’로 호명했다. 강지희는 파괴된 경험이 남겨놓은 폐허를 응시하며, 상처가 없다는 사실을 상처로 인식하는 소설가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소설이 이야기에 기반한다고 했을 때, ‘경험 없는 이야기’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지희는 김성중과 박솔뫼야말로 ‘세상이 강요하는 질서에 대한 판단과 행동을 중지’함으로써 새로운 글쓰기 전략을 모색하는 작가라고 강조했다.
4. 추천의 말
이 책 속에 모인 비평가들은 사회적 고통에 귀 기울이고, 감수성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는가 하면, 분노를 직시하려 하고, 시대의 불안을 예민한 후각으로 감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다종다양한 비평문들을 분류하여 계열별로 묶거나 공통 감각을 추출하는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대신 ‘공감 능력의 위기 속에서 시와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경험 없는 세대의 글쓰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의 연대적 감수성이 파괴되고 있는 사회 현실을 어떻게 문학 언어로 포착할 것인가’ ‘과연 새로운 문학의 새움이 작가들의 감각 속에서 싹트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비평은 항상 진지했고, 그래서 여전히 진중하다. 비평이 묵직한 걸음걸이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별적 언어로 엉거주춤하기보다는 공통의 감각으로 한 걸음 내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창조의 언어를 담금질하고, 비평가들은 논리의 언어를 마름질한다. 그렇기에 비평은 낱낱의 언어가 흩어져 있는 것보다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의미의 사슬로 연결되기를 열망한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