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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22:1-25) 와이어 액션과 고장 난 복지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말씀으로 드리는 오늘의 번제 함께 합니다.
이사야 22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5-14절을 읽겠습니다.
5. 환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이르는 소란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쳐 부르짖는 소리로다
6. 엘람 사람은 화살통을 메었고 병거 탄 자와 마병이 함께 하였고 기르 사람은 방패를 드러냈으니
7. 병거는 네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9.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랫못의 물도 모으며
10.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하게도 하며
11.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와이어 액션과 고장 난 복지> 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와이어 액션과 고장 난 복지’
제목이 좀 이상하지요? '복지가 고장 났다'는 이야기부터 오늘의 번제 말씀을 한 번 시작해 볼까 합니다. 복지가 고장이 난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복이 고장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에서 그런 소리 자주 들었습니다.
‘고장 난- 시계나- 라디오- 삽니다. 양은 냄비- 삽니다.’라고 가락을 붙여서 판소리처럼 하고 다니시는 고물 장수 아저씨들이 계셨잖아요?
복이 고장 난다는 거예요. 복이 고장 났다는 것을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느냐? 증상이 있습니다. 복이 고장 났다는 증상이 있어요. 이 복이 고장 났느냐? 고장 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느냐를 알 수 있는 기준이 오장육부를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장육부가 의식 속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위가 있다. 심장이 있다. 허파가 있다면 이런 사실을 언제 알게 되지요? 고장 났을 때 알게 됩니다. 위가 고장 나지 않고 심장이 고장 나지 않고 약화되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을 때는 오장육부가 우리 의식의 전면에 나타나지를 않아요. 우리 의식의 저편에 있는 줄도 모를 때, 그 때가 오장육부가 가장 건강하게 평안한 상태로 잘 기능하고 있을 때인데 ‘내 뱃속에 위가 있었고 심장이 있었고 허파가 있었구나.’라고 의식 속에 나타나게 되고 우리가 깨닫게 되고 있는 줄 알게 되면 그건 뭔가 고장이 났다는 겁니다. 숨을 몰아 쉴 수가 없으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숨을 들이 쉴 때다 가슴이 아프면 허파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을 비유로 생각해보면서 복이 고장 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찾고 복을 쫓아가면 지금 복이 고장 난 상태입니다. 복이 주어져서 잘 기능하고 있고 복 받은 사람이 되려면, 오장육부가 건강할 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은 의식하지 못해야 정상입니다. 찬송가 중에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라는 하는데 복을 세어보면 의식하는 것으로 왜 이런 찬송가가 나왔느냐고 물으실 텐데, 하도 복을 찾으니 그 복을 찾는 고장 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붕대 감아 주는 그런 찬송입니다.
너무 복, 복 하지 말고 받은 복을 세어서 ‘아, 내가 이렇게 복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하고 복을 이제 잊어버리라는 겁니다. 복을 추구하고 복이 없다고 불평하고 복 달라고 아옹다옹하는 것을 벗어나라는 겁니다. 고장 난 복의 상태를 벗어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겁니다.
열방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이방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금 남 왕국 유다의 멸망에 관한 예언이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이 있는 가운데 유다 나라 멸망은 또 좀 바라보는 측면이 다른 거예요.
다시 말하면 멸망당하는 이방 나라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했기 때문인데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이방 나라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 일맥상통하는 면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면 나라에 대한 멸망을 예언해 나가다가, 갑자기 15절부터 개인에 대한 멸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셉나'라고 하는 자예요. 셉나가 누구냐? 남 왕국 유다에서 이사야가 예언 활동을 하던 그 당시에 국고를 맡고 왕궁의 살림을 맡던 궁내대신으로 아람 사람이고 애굽 예찬자입니다. 쉽게 말하면 애굽 통이에요.
아람 사람이 어떻게 왕궁 안에 들어왔을까? 남 왕국 유다의 왕궁이라는 곳은 어떤 장소입니까?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적용되는 곳이 왕궁이었습니다. 왕이 그 말을 받아서 온 백성들에게 실현해 나가는 피라미드 구조의 최첨단 끝으로 가장 높은 곳이에요. 바로 그곳에 이방인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는 거예요. 물론 이방인 중에서도 여호와 신앙으로 바꾼 사람이 있었겠지요.
셉나가 어떤 사람이었냐 하면 열 왕의 무덤이 있잖아요.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이 죽으면 묻히는 무덤에 자기의 무덤을 만들려는 생각을 했던 사람입니다. 이게 어떻다는 이야기입니까? 셉나라는 사람이 왕의 측근으로서 왕의 마음과 국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던 전횡을 휘두르던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의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유다 나라의 심장부에 이방인이 들어있었다는 것이고 자기의 무덤을 열 왕의 무덤 가운데에 두려고 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의 상태가 바로 남 왕국 유다의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러면 남 왕국 유다의 상태가 어떻다는 겁니까? 이 셉나가 지금 하는 일이 뭐에요? 왕들의 무덤에 자기의 무덤을 세울 수 없는 것은, 이 남 왕국 유다의 왕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가문에서 나오는 거예요. 백성들이 뽑거나 어느 조상 중에 힘이 센 사람이 있어서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있어야 그 자리에 묻힐 수가 있어요. 정치를 잘한 왕이건 못한 왕이건 간에.
그런데 이 사람이 남 왕국 유다 선민의 나라의 왕궁에서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냐?
왕궁 중심부에 있고 심장부에 있는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못 보는 겁니다.
11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8절부터 11절 전반 절까지는 앗수르의 침입으로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있을 때에 유다 사람들이 행한 거예요. 뭘 행했느냐? 수풀 곳간, 솔로몬이 지어놓았던 무기창고를 열어서 무기를 점검했고, 그 다음에 예루살렘 성 안의 가옥들의 수를 계수해서 여유가 있는 가옥을 헐어서 그 재료를 가지고 예루살렘 성 허물어진 곳들을 다 보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식수난을 위해서 식수를 확보한 거예요. 전쟁을 대비하는 사람들로서는 완벽하게 움직인 겁니다. 무기를 봤고, 성을 수축했고, 무너진 부분을 보완했고 식수를 확보했습니다. 얼마나 잘한 겁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발대발하십니다.
11절 하반 절에 보면 “너희가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방인들처럼 아예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고 안중에도 없었다는 겁니다. 이걸 바로 '와이어 액션'이라고 표현을 한 거예요.
복이 고장 납니다. 복지가 고장 납니다. 와이어 액션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와이어 액션이 뭐예요? 와이어 액션은 중국 무협 영화 보면 말입니다. 무사들이 하늘을 날아다니잖아요. 그리고 물 위를 탁탁탁탁 하면서 뛰어갑니다. 이게 와이어 액션이라는 거예요.
큰 형님이 중학생 때,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동네 극장에서 중국 무협영화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무협영화가 제 마음에 꽂혀버린 거예요. 제 마음에 꽂힌 이유가 바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물 위를 걸어 다니고 웬만한 담장을 싹- 넘어가고, 지붕과 지붕에서 저쪽 지붕으로 쫙- 하고 날아가는 이런 모습에 제가 완전히 돌아버렸어요. 너무 멋있어서. 그 환상이 깨진 게 언제가 하면 너무너무 늦은, 서른 살이 되어서 전도사하고 있을 때 봉사하던 교회에 연예인들과 방송계통 PD나 이런 분들이 많이 오시던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처음 들은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날아다니는 것을 찍느냐면 피아노 줄로 묶어서 기중기 같은 것으로 움직이면서 찍고, 마지막에 1초에 20커트의 필름이 돌아가거든요. 날아가는 장면이 15초면 300개의 필름 커트를 해서 그 피아노 줄을 다 지운다는 거예요. 컴퓨터 같은 것을 이용해서. 또 다른 방법들로 피아노 줄이 안보이게 해서 그렇게 멋지게 한다는 겁니다. 그 뒤로 중국 영화를 보게 되면, 검사(劍士)들이 날아다니면 와이어가 마음에 보이는 거예요. 눈에는 보이지 않지먄 마음에는 와이어가 보이는 겁니다. 그래도 그냥 그런대로 봅니다. 그러려니 하고. 그러나 언제나 마음은 와이어를 보는 거예요.
바로 이 이야기를 11절이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남 왕국 유다 주변으로 외적이 침입해 들어와서 나라가 풍전등화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남 왕국 유다의 그릇됨을 보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앗수르가 쳐들어 왔다고 하는 액션 위에 놓여 있는 와이어를 볼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을.
하늘로부터 이 줄이 매여져 있다는 사실을 봤어야 했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옷을 찢고 머리를 뜯으며 회개했다고 하면 깨끗하게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을 그 와이어를 보지 못한 겁니다.
어제 이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와이어를 이용한 촬영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나 찾아 보니 영화 장면들이 나타나요. 영화 장면을 잘라서 보여주는 곳이 있더라고요. 보고 있는데 아이가 그린 그림을 저에게 보여 주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같이 봤는데 애는 와이어를 모르니까 "아빠!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날아요. 나는 어떻게 하면 저렇게 날 수 있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이의 환상과 꿈을 깨기 싫어서 "너도 무술을 잘 배우면 저렇게 날 수도 있지"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아이 눈에는 그게 안 보이는 겁니다.
우리 가정에 일이 생기잖아요. 그게 와이어 액션입니다. 그 일을 보기 전에 그 일이 지금 와이어에 매여 있다. 하나님의 뜻에 매어있다는 걸 봐야하는 겁니다. 그걸 보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제 내 가정의 복이 고장 나게 됩니다. 복지로서의 내 가정 스위트 홈으로서의 내 가정이 고장 나기 시작하면서 복을 추구하게 되고 복을 찾게 되고 형통을 찾게 됩니다.
이 세상의 형통이라든지, 이 세상의 복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오장육부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거나 찾으면 안 되는 거예요. 경제적인 복이든 건강의 복이든 어떤 복이든지 간에. 우리가 봐야할 것은 와이어 액션에서 피아노 줄을 봐야 합니다.
관객들은 피아노 줄을 볼 필요가 없지요. 누가 봅니까?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 피아노 줄을 봅니다. 선민이란 어떤 사람들이에요? 이 세상의 주체측이라는 거예요. 이 세상의 사건과 일들을 제작해 나가시는 하나님과 같은 편에 서는 사람들이 제작진이요, 선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감독이요, 제작진 아니십니까? 그 분과 같이 주체측에 서는 자들이 선민이에요.
그래서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 산상수훈 중에 이방인과 선민을 엄격하게 구분하십니다. 이방인은 복이 고장 난 자들입니다. 복이 고장 난 것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찾는 거예요. 그걸 걱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선민들, 주체측에 선 선민들의 특징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서는 아예 보지 않습니다. 의식을 하지 않아요. 그건 오장육부와 같은 거예요. 의식하지 않으면 다 하나님께서 필요한대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뭐냐?
“너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라고 하시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피아노 줄이 보이지 않는데 제작진에게는 그게 보입니다. 선민은 그걸 보라는 거예요.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을 보라는 겁니다.
11절에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눈에 보이는 피아노 줄은 못 보고 드러난 액션, 영화 장면만을 보고 거기에 대응해서 행동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복이 고장 나고 복지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가령, 우리 아이의 일이 있다. 우리 아이가 복 받고 살면 좋잖아요? 그런데 그 우리 아이를 보는 엄마와 아빠의 마음 상태에서부터 그 아이의 복이 결정됩니다.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 아이라고 하는 한 사건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봐야 됩니다. 그 아이를 보면 안 돼요. 아이가 복이 되려면 또 아이가 복 받고 살게 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아이의 복과 그 아이에 대한 염려, 아이의 복 된 삶에 대한 내 염려가 마음에서 사라져버려야 됩니다. 그냥 오장육부가 든든하면 이 뱃속에서 내 의식 저편에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데 잘 기능하고 있는 것처럼, 복을 받으면 복을 받는 대로 그냥 잊어버려야 한다는 거예요. 보이는 복을 잊어버리고 보이는 복에 마음을 두지 않으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봐야 된다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마음을 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있으면 그 다음에 이 세상은 복으로, 복으로 채워 가신다는 거예요.
그냥 오장육부가 내 안에서 건강하게 80평생, 90평생, 100살까지 사는 동안에 고장 한 번도 안 났다면 그 사람은 100년 동안 오장육부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사는 겁니다. 복이라는 게 그런 거라는 거예요. 오장육부가 100년 동안 고장 나지 않았다면 100살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고장 안 나는 동안에 그 사람이 오장육부를 의식한다는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맨 날 배를 움켜잡고 삽니다. 배가 차가우면 장염이 생기고 조금만 신경 쓰면 위경련이 일어나서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돼서 그저 움켜쥐고 살아요. 이게 고장 난 것이거든요. 그저 경제적인 복을 원합니다.
왜냐하면 고장 났기 때문에. 고장 났는데 계속 보고 있어요. 점점 더 고장 나요. 증상이 더 악화되고 있는 겁니다.
자식이 복이 되려면 마음에서 자식을 잊으세요. 어떻게 자식을 잊습니까? 말이 됩니까? 말이 되지요. 어떻게 말이 됩니까? 그 자식이라는 액션은 그 자식을 있게 한 액션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 일을 있게 한 여호와를 앙망하지 않았다.’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므로 자식을 보지 않고 자식을 있게 한 와이어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주체측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 주체측이 되어야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주십니다.
‘너 자식에게 이 말 한 마디 해라.’라고 하실 때 자식에게 먹혀들어가는 거예요. 주체측에 서야.
주체측에 서려면 와이어를 봐야 주체측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요? 사업도 마찬가지예요. 이 사업을 있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계획하셨습니다. 그 사업이라고 하는 액션을 있게 한 와이어를 봐야 주체측에 서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체적인 감독으로서 사업에 대한 뜻을 알려주실 때, 그대로 행해서 진행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관객의 입장에 서서 영화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거예요. 와이어를 보지 못하면 관객의 입장에 서는 거죠. 내 자식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고 있는 입장에서 관객의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와이어를 못 보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못 보고 있으니까. 그 와이어를 못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자식의 일이 잘 되기를 바라고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니 잘 되겠습니까? 더 찢어지죠. 뭐가 찢어져요? 영화 장면이 찢어지는 거예요. 거기다대고 힘을 쓰니까. 그러니 자식의 일에 더 상처가 나고 사업이 더 안 되는 것이지요. 주체측에 서야 됩니다.
어떻게 주체측에 섭니까? 주체이신 하나님을 봐야 주체측에 서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이 셉나를 폐하고 대신에 엘리야김이라는 유다 사람을 세웁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로 초래됩니까? 25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지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나옵니다.
그렇게 엘리야김 하나가 형통해서 궁내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척과 후손들 모든 자들이 엘리야김에게 삶의 행복을 거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엘리야김 집안도 망하고 만다는 거예요. 뭐하나 주면 그게 오장육부처럼 뱃속에 들어 앉아서 편하게 기능하면 될 텐데, 그걸 의식해서 끄집어내서 그것에 인생을 걸고, 집안에 뭐하나 잘 된 사람이 있으면 온 집안사람이 달려들어서 그 사람에게 손 내밀고 있잖아요.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보면 되는데. 이 믿는 사람들이 꼭 뭐하나 잘 되면 그 잘 되는 액션을 봐 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망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방인이 뭡니까? 이방인은 복이 고장 난 자들 이예요. 복을 찾으니까.
선민이 누굽니까? 와이어 액션을 아는 자들이예요. 보이지 않는 와이어를 보는 자들입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내 생활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와이어에 묶여 있다는 걸 아는 거예요. 그런데 이방인들은 그걸 못 봅니다. 그러니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주체측에 서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잖아요. 그런데 복지가 고장 나 버립니다. 왜요? 와이어를 안 보니까.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오래전부터 이 일을 계획하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복지가 고장 나고 너희는 복지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이 오장육부가 되어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보이는 이 세상은 의식하지 말아야 이 세상이 복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십자가예요. 보이는 것이 보이잖아요? 그럼 얼른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기억해 내는 겁니다. 그러면 보이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죽어요. 기도 하세요. 제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셔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으로 기억해내면서, 자꾸 내 시선을 빼앗는 자식의 일, 직장의 일, 사업의 일, 내 건강의 일에 대해서 안 보고 죽는 거예요. 죽다 보면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죽으라는 거예요. 하나님에 대해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면 여러분이 주체측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항상 기도하고 사는 거예요. 항상 기도하려면 항상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끝없이 눈에 귀에 이 세상 장면들이 들어오니까. 그러면 그것들에 대해서 죽고 그것들을 안 보고 있는 동안에, 이 세상일들은 건강한 오장육부가 되어서 내 의식 저편에서 잘 돌아가고 있을 거예요. 자식 잘 클 것이고, 사업은 사업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잘 운영 될 것이고 다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될 거예요.
그런데 그걸 눈으로 보고 잘 이루려고 하잖아요? 벌써 고장 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럴 때 얼른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안 보는 겁니다. 그럼 뭘 보려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려고.
‘와이어 액션과 고장 난 복지’
왜 고장 난다고요? 복을 의식하고 복을 좇고 복을 받기 원할 때 이미 고장 난겁니다. 오장육부처럼. 그럼 오장육부가 건강한 상태인 것처럼, 내가 복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살려면 어떻게 합니까? 이 세상에 보이는 일들을 와이어처럼 하나님께서 쥐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고 하나님을 보는 겁니다.
주님은 백합화 하나를 봐도 뭘 봅니까? 백합화를 보지 않고 백합화를 매고 있고 쥐고 계시는 와이어를 보십니다. 하나님을 보십니다. 참새를 봐도 그래요. 심지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 누가 주체측이죠? 빌라도가 주체측 같아요. 그런데 빌라도라는 사람이 나를 재판하고 있다는 이 현상이 어디서부터 생긴 겁니까? 하늘로부터 내려온 와이어에 매어있는 겁니다. 그걸 보시는 거예요. ‘네가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고 물 위를 걷고 있지. 그러나 와이어에 매여 있기 때문에 그렇다. 네가 나를 재판하지. 와이어에 매여 있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아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어떤 뜻이 이루어집니까? 그 작으신 몸집에 유대 청년이셨던 예수님으로 인해 온 인류가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한 청년, 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와이어를 보고 주체측이 되시면서, 그 분의 생애의 자리가 인류가 구원 받는 역사, 생명수 샘물이 터져 나오는 샘이 되셨다는 얘기예요.
인생이 얼마나 쉬워요? 보이는 곳에 뭐 전쟁이 일어났다고 곳간의 무기를 점검하고, 예루살렘 성을 보완하고, 식수를 확보하고 하지 말고, 지금 내 눈 앞에 닥친 위기가 와이어에 매였다고 보고 그 와이어이신 하나님을 보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일은 어느덧 건강한 오장육부처럼, 내 의식 저편에서 잘 돌아갈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가 이 세상 보이는 현실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보이지 않는 와이어이신 하나님을 보게 해 주심으로 내 삶의 모든 고장 난 복을 다 고쳐주시는 역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오늘 하루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과 일에 대해 와이어이신 하나님을 보게 하셔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내 삶은 오장육부처럼 내 의식의 저편으로 물러가게 하시고 내 의식은 오직 하나님께만 가 머물러 있음으로써 또한 이 세상의 삶도 건강하게 복으로 가득 찬 삶이 되도록 모두가 다 회복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우리의 처소를 하늘로 정해주셨으니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배부를 수 있게 이제는 하늘체질이 되어 복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나를 나는 하나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