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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는 상대방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거래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경산에 있을 때 공장을 확장하려고 물색하던중 한 곳이 장소가 있다고 해서 가 보았습니다.
공장을 하다가 수해를 당하여 망하여 구만하려고 한다면서 전세 천만원이라 하면서 계약을 하려면 100만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가진 현금이 10만원 뿐이라고 하니까 그럼 10만원을 더 만들어 20만원을 달라고 해서 현금 20만원을 만들어 주고는 천만원을 들고 약속한 날 가보니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그 사람 망하여서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제가 확인하지 않고 계약을 하여서 20만원 손해를 보았습니다.
100만원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면서 돌아 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상대방을 모르고 계약을 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 살아가면서 최고의 계약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들 하십니까?
집을 얻기 위한 전세 계약입니까?
좀 더 나아가서 집을 사기 위한 매매 계약입니까?
사람마다 저마다 다를 수가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영혼의 계약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슨 계약요? 영혼의 계약.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가수 그룹은 사탄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파는 계약을 하였다고 합니다.
사탄은 그들에게 영예와 인기를 주고요.
그들은 일생 사탄을 찬양하는 노래로 보답을 하겠다는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을 하였을 때도 그런 어떤 계약과 같은 것이라고 느껴집니까?
우리가 믿을 때 계약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이라는 말이죠,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들은 어떤 계약을 하셨나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침례를 받을 때 저는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겠습니다 라는 약속을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하시던가요?
성경에 약속한 모든것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특히 영광의 나라가 시작될 때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그 약속 믿으시나요?
믿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성경에 기록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게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영혼을 걸고 계약하신 분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까?
저희 돈 20만원 떼먹고 도망간 사람처럼 사기꾼은 아닙니까?
오늘 그런 내용 들을 말씀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예수님의 하루의 생활은 언제나 바쁘셨습니다.
그날도 갈릴리 해변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호수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신 예수께서 저쪽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시자 마시자 곤하게 주무셨습니다.
그날도 갈릴리 해변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호수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신 예수께서 저쪽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시자마시자 곤하게 주무셨습니다.
하나님을 비우시고 사람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 수 많은 사람을 만나시는 일들에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예수님의 모습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태운 배가 육지에서 좀 멀어지자 심한 파도가 일어납니다.
누가복음에는 광풍이 호수로 내리 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뼈가 굵은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 많았지만 자기들의 실력으로는 그 광풍을 이길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그 배 안에 예수께서 함께 하신 것을 깨닫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근데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다고요?
마가복음에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물이 어느 쪽을 가지고 고물이라고 합니까?
배의 앞쪽은 이물이라고 하고요 뒤쪽은 고물이라고 한답니다.
이마 부분은 이물 꼬리 부분은 고물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주무시는 예수님을 발견한 제자들이 무엇이라 합니까?
눅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다음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그 광경을 본 제자들이 무슨 말을 합니까?
눅 8:25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 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제자들이 놀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여서 놀라지 않았죠? 만약 우리 눈 앞에 폭풍우가 맹렬하게 몰아 칠 때 어떤 분이 나타나서 바람과 폭우야 잔잔하고 그쳐라 라는 말에 금방 푹우가 그치는 것을 본다면 우리도 놀랄까요?
그런데 기록된 말씀을 보고는 놀라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까?
오늘 제자들이 두려워 하고 놀랍게 여기기 전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눅 8:25절 우리가 읽은 성경 그 전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들의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우리의 믿음이 말씀에 있다면 그렇게 정말로 믿는다면 천지가 개벽하는 일들이 나의 삶을 통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함께 오늘 말씀을 통해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고 우리의 삶이 정말로 변화의 업그레이드로 향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그분은 누구신가요?
먼저는 창조주이십니다.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하신 분들은 이 말씀을 보면 혼돈이 됩니다.
왜냐하면 두 분의 하나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아직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지 않으시나요?
우리가 읽은 말씀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하고요 이 말씀이 누구와 함께 계셨다고 합니까?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이 함께 하셨던 하나님 한분 나옵니까?
그리고 읽어 보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몇분의 하나님이 나옵니까? 두 분의 하나님이 나옵니다.
우리가 보통 알기로 하나님은 몇분이라고 알고 있습니까? 한 분 성경도 그렇게 말합니까? 예 성경도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엡 4:4-6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하나님 몇 분이라고 합니까? 한 분이시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보니까 몇 분처럼 보입니까? 두 분처럼 보입니다.
제가 특별한 언급이 없이 에베소서에 있는 말씀을 소개 하였습니다만 이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 믿음과 관련있는 세분이 나옵니다.
찾으셨습니까? 먼저 성령도 한분이시니 라는 말씀이 있고요, 그리고요, 주도 한 분이시오, 라는 말씀이 있지요? 그리고 하나님도 한분이시다.
이러한 것을 교회에서 교리상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신학 용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중 성경용어가 있고 신학용어가 있다고 말씀드린 일이 있죠.
성경에 나오는 용어를 성경용어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사용하는 용어를 신학용어 이렇게 부릅니다.
성경에 분명 세분 이신데 한 분이라고 하니까 어떤 용어가 좋겠는가 하고 많은 고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용어가 삼위 일체입니다.
이 용어를 정립한 사람이 카토릭 신학자 “아타나시우스”입니다.
그는 서기 298년에서 375년까지 살았던 알렉 산드리아의 대 주교였습니다.
비록 카토릭이 만들었지만 성경에서 무리가 없는 것은 받아 드려야 하죠.
용어자체가 좀 무리가 있지만 그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그래나 삼위 일체를 가지고 삼위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에서는 놀립니다.
글 자체가 머리가 셋이고 몸이 하나라는 의미의 용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교리를 비난하려고 이런 그림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중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러한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말씀 드릴 기회들이 있길 소망합니다.
성경은 온 우주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 83:18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무슨 이름이 나옵니까? 여호와라는 이름하신 주만이라 하죠.
우주에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가 얼마나 될까요?
지금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의 수는 약 81억명입니다. 많습니까?
우주에는 얼마나 될까요?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지만 지구 인구에 약 1000배 정도 될까요?
제가 우주에 대하여 혹 한번씩 말씀을 드린일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 지구 또는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라고 하는 은하계입니다.
이 우리 은하의 크기가 얼마 만하다고 들으셨습니까? 이쪽에서 저쪽 까지의 길이가 얼마라고요?
우주의 길이를 말할 때는 광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광년은 무슨 말입니까? 빛의 속도라는 말입니다.
빛이 빠릅니까? 일초에 얼마를 간다고요?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돈다. 지구둘래는 얼마나 될까요? 지구의 둘레를 가장 먼저 측정한 사람은 주전 300대에 살았던 그리스의 천문학자 “에라토스테스” 라고 합니다.
그가 막대기 하나로 지구 둘래를 측정했다고 합니다. 거의 정확하게 측정했다고 합니다. 알려진 지구 둘레는 약 4만 킬로입니다,
빛이 일초에 지구 둘레를 일곱바퀴 반을 돈다니 4만 곱하기 7.5하면 길이가 나옵니까? 폰 가지신 분들 빨리 곱하기를 해 보시죠? 하면 약 30만이 나옵니다.
빛이 딱 하는 순간 얼마를 간다고요? 30만 킬로 메타를 간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가 광년이라는 속도입니다.
그 속도를 가지고요 은하계 이끝에서 저끝까지 가는데 약 얼마나 걸릴까요?
과학자들의 견해를 보여 드립니다.
얼마라고요? 예 10만 광년입니다, 머리가 돌아갑니까? 우리 은하 넓습니까? 아 엄청납니다.
그 우리 은하안에 태양과 같은 항성이 약 2000억개가 있다고 합니다. 대단합니까?
그런데 그러한 우리 은하도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예측을 합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가 없고요.
과학자들의 예측으로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우주에 일척억 이상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우주에 사람이 얼마나 살고 있을까요? 항성의 숫자 만큼 살까요?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는 얼마나 될까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성경은 천천 만만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천사를 수를 천곱하기 천, 그리고 더하기 만 곱하기 만이라고 계산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한 계산은 성경이 가르쳐 준 계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는 몇 명이라고요? 세 분이시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삼위 일체보다는 삼위 일명이라는 용어가 더 나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분이 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저도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그 세분 하나님 여호와 그분들이 우주를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라는 태초는 아무것도 없을 때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이 묻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나타난 것도 제대로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타나지 않은 하나님의 그 존재하심을 사람이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다음 우리의 머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원래의 머리로 돌아가는 그날 저 천국에서 저는 그 하나님의 오묘에 대하여 더 깊이 알아보려 합니다.
저와 같이 그날 함께 그 하나님을 연구 하는 그 모임에 우리 성도님들 다 초청 합니다.
그 여호와 께서 무엇을 창조하셨다고요? 우주를 창조하셨다.
신약기자도 이렇게 말을 합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많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이 많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죠? 눈에 보이는 것은 사물의 일부분입니다.
그 모든 것을 누가 만드셨다고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길 만 합니까? 모든 것을 던져서 믿어도 될 만 합니까?
그래서 전 40년 전에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댓가 없이 교회를 섬겼습니다.
저의 속에 있는 저의 모습의 결함들이 들어나서 우리 성도님들을 실망시켜 드린 일이 있지만 저는 그 하나님께 올인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우릴 데리러 오실 때가 다 되어 간다고 시대의 징조들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 우릴 창조하신 분께 우리 성도님들도 다 올인하시어 믿음의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다음으로는 구원자요 구속자 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창조주 시라는 말씀을 지금까지 드렸습니다.
창조시 우주의 막내둥이로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지구를 창조할 때 우주에서는 사탄이 타락하여서 쫓겨난 상태였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실까요?
저 사탄이 지구의 거민을 미혹하여서 타락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면 창조를 하셔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제가 이런 비유를 자주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임신을 한 임산부가 어느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합니다.
검사를 하니까 병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가 기형입니다.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일생 다리 불구자로 살아야 됩니다. 가능하다면 낙태 수술을 하시고 다시 아기를 가지시길 권해 드립니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기를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모정입니까?
태어나지 않은 태중의 아기도 그런 사랑이 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태어난 아기를 엄마는 평생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티비를 통하여 많이 보지 않습니까?
하늘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구 창조는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는데 그들이 사탄의 미혹에 빠져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겠는가?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몇분이 계시다고 했습니까? 세분 여호와 그분들이 의논을 하였습니다.
스갸라는 그 의논을 가지고 평화의 의논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의 회에서 한분 여호와께서 이런 제안을 내어 놓았습니다.
내가 사람되어 지구로 가서 사람을 위하여 죽겠다고요.
그리고 사람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사람이 범죄 하자 마자 사람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우리가 잘 나는 구속의 경륜이라고 하는 창세기 3:15절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첨 들으시는 분들은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남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한 사람이 태어나서 너희들 미혹한 사탄을 죽이고 죄에 빠진 너희들을 구원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약속을 하시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4000년이 지난 어느날 여호와께서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의 자궁속에 생명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의 탄생과 관련하여 천사는 이런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마 1:20-21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 당시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을 한 상태입니다.
정혼하고 합방도 한 일이 없는데 마리아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처녀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돌에 맞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런 것을 알고도 가만히 끊으려고 하였는데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멸망중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에게 잉태된 것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신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여호와께서 마리아를 통해 태어 나시어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33년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의 죄를 당신 한 몸에 받으셔야 하셨습니다.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시러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시대의 소망에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엇인가 그분의 어깨를 누르는 것처럼 그분의 걸음은 비틀거렸고 제자들이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넘어질 뻔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안으로 들어가시어 함께한 세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하시고는 돌 던질만큼의 거리로 가시어서 그곳에서 기도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하실 때 무엇이 떨어졌습니까? 땀이 떨어지는데 제자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습니까? 핏방울처럼 보였다. 보름달에 비취는 땀 받울을 선명하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극도의 고민에 의하여 예수님의 모세 혈관이 터져서 예수님의 피가 땀에 배여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고민이 그리 컸을까요? 인류를 위한 죽음이 그렇게 고민이 되는 죽음이었습니까?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부르짖음은 더 당혹감을 줍니다.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어떻게 인류를 위하여 죽는 그 큰 의미가 있는 죽음에 이런 부르짖음을 할 수가 있었을까? 대의를 위한 죽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후에 그분의 뒤를 따랐던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는 그런 부르짖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죽음과 철학자 소크라 테서의 죽음을 비교해서 말씀을 드린 일이 있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받고서 이제는 이 거추장 스러운 몸을 벗고 진정 자유의 세계로 가노라 하는 말을 하고 웃으면서 독배를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몸부림을 치면서 죽으셨습니다. 누가 의인처럼 보이고 대인처럼 보입니까? 그들 죽음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오해를 한 죽음이었다는 것이죠, 소크라테스가 후일 심판의 부활에 일어나서 자신의 죄를 따라 받을 심판을 알았다면 어떻게 웃으면서 독배를 받을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도 죽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주에서 사람으로서는 한분 예수님만이 죽음이 무엇인지 아주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온 인류가 받을 죄를 당신 한 몸에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위 일체 삼위 일명이신 여호와와 영원히 분리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영원한 죽음을 느끼신 예수님의 입에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미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몸부림을 치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신 예수님의 눈에 죄로 인한 멸망외에는 아무것도 들어나신 것이 없이 다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도 오직 아버지를 믿는 믿음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었던 그분이 누구신가 하신분이 누구시라고요?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여호와 하니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초림의 약속은 정말로 지키기 힘든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약속은 정말로 지키기 쉬운 약속입니다.
초림은 사지로 들어가는 길이었지만 재림은 당신이 보혈로 구원한 영혼들을 데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그렇게 원하셨던 그 일을 하시기 위하여 백성들을 하늘로 데려 가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 하나님 믿는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지키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릴 데리러 오시는 그 영광의 날에 한분도 빠짐이 없이 다 주님을 영접하게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음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에 빠졌을 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이제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는 약속까지 주시어 감사합니다.
우리 그 약속 잊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그날을 준비하게 하옷소서
그래서 주님 오시는 그날 영광중에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려 영접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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