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제이콥슨"(Anna P. Jacobson)선교사(1866~1897)는 북 장로교 최초로 파송된 간호사로서
"제중원"(濟衆院)에서 사역하다가 이질에 걸려 2년 만에 순직하여 양화진에 안장된 선교사이다.
"안나 제이콥슨"은 1866년 4월 노르웨이 "노태로" 섬에서 태어났다.
경건한 루터교 부모의 신앙 속에서 성장하면서 12세에 영적 체험을 하고 해외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
15세에 장로교로 이적하고 또 부모가 정해준 정혼자와 약혼을 파기하여,
집에서 쫓겨나서 가사도우미 등 굳은 일을 하면서 살아갔다.
23세 되던 해 1889년 간호사의 꿈을 품고 미국 포틀랜드로 이주했다.
그녀는 미국 땅에서도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메인 종합병원 간호사 양성학교를 졸업하여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포틀랜드 장로교회 담임 목사의 추전을 받아 선교사로 지원하였고,
당시 한국에서 사역하던 "에비슨" 선교사가 "제중원"(濟衆院)에서 근무할
여의사와 간호사를 미국 선교부에 요청한 상태이기에 1894년 6월 한국 파송을 임명받았다.
그러나 당시 청일전쟁으로 조선의 정세가 혼란하여 출발이 지연되었다.
1895년 4월 정국이 안정된 후 그녀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여의사인 "조지아나 화이팅"(Georgiana Whiting)과 함께 내한했다.
그녀는 서울에 도착하여 "에비슨" 박사를 도와 "제중원"(濟衆院)에서 간호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 병원의 청결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녀는 병원을 청결하게 유지하도록 힘을 쏟았다.
또 "붕대법 및 마사지 응급조치법"을 가르치며 한국인 간호 인력을 양성토록 시도했다.
그녀는 한국인을 사랑하여 청결과 위생을 강조하고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았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환자를 돌보다가 자신도 이질에 걸려
한국에 온 지 2년도 되지 않은 1897년 1월, 29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1897년 1월 21자 "독립신문"은 "제이콥슨" 선교사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이 여인의 죽음은 조선에 있는 것에 비하면 낙원에 있는 것이지만, 조선인에게는 크게 손해"라고 보도했다.
그녀의 간호사 양성 희망은 후임에게 이어져서
"에스터 쉴즈"선교사가 이어받아 훗날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녀의 장례 예배는 "언더우드" 선교사 자택에서 거행되었으며, 양화진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