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정만리
- 작/김명곤
- 연출:조항용 조연출:고동업, 김인선
- 출연:최종원,이호성(김명곤),하덕성,방은미,고동업,권태원,방은진,송영탁,김진희,김필국,
- 이은숙,양윤정,김기천,권호웅,고규미,오연실,손영호,유승우
- 스탭:음악-이성재 기획-권태원 조명-구근회 음향-손정희,구혜경 소품-안찬모,솟대공방
- 진행-김윤경,김선정 안무-강승희 분장-박선지 배경막그림-김홍일 사진-이용남
- * ( )안은 재공연시 교체된 배우
- 등장인물
- 박철 [장한몽]:이수일, 심순애
- 이월선 [아리랑]:변사,영진,영희,오기호
- [아리랑 고개]:길룡,길룡부
- 홍종민 분이,분이모,
- 김해송 마을여인
- 진경숙 [검찰관]:호레스따꼬프,안나,
- 심영복 마리아 안또노브나
- 송진섭 [호신술]:삼룡,춘보,사람A,사람B
- 바이올린 연주자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 여가수 :홍도,철수
- 해설자 [서울갔든 아버지]:여공들,옥분,
- 신천진단원 1,2 최씨
- 홍선화 [무쇠의 군악]:주창자,여성노동자
- 호스테스 합창단
- 선전단원
- 노승철
- 정봉순
- 북극성단장
- 선배단원
- 학생
- 사진사
- 김갑득
- 순경
- 하녀
- 독립군 1,2,3
- 여성독립군
- 방첩대장
-
- <서장>
- 배우들무대뒷편에반원을그리며선다. 어둠속에서징소리가울린다.
- 해설자에게조명이비쳐진다.
- 해설1 : 이년 전 가을에 중국 희극가 협회 연변 분회의 원로 연출가이신 박철 선생님께서
- 한국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박 선생님의 안내를 맡았었죠.
- (늙은박철, 지팡이를짚고나온다)
- 박 선생님은 바쁜 일정 중에서도 이월선이라는 원로 여배우의 소식을 무척 애타게
- 수소문 하셨지요. 그러다가, 3주일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박선생님과 저는 경기도에
- 있는 어느 양로원에서 이월선 여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 늙은이월선, 다리를절뚝거리며나온다. 1989년이라는팻말이보여진다.
- 배우들은 1장이진행되는동안제자리에앉아서장면을지켜본다.
- <제1장>
- 박철과이월선, 마주보고선다.
- 이월선 : 누구...신가요?
- 박 철 : 이월선씨가 맞습니까?
- 이월선 : 그런데요?
- 박 철 : 나, 박 철이요.
- 이월선 : 박..철....? (놀라서다시자세히보더니) 아이구, 정말 박선배님이시우?
- 너무도 변해서 못 알아봤어요.
- 박 철 : 허허, 월선이도 많이 변했구만.
- 이월선 : 오십년만에 보는 얼굴이니 그럴만도 하지요.
- 박 철 : 그래, 벌써 오십년이 됐구만.
- 이월선 : 만주에서 사신다더니....?
- 박 철 : 죽기 전에 고향 선산도 둘러보고, 또 친구들 보고 싶어서 벼르고 별렀다가
- 이제야 온거야.
- 이월선 : (손수건을꺼내눈물을닦으며) 안 죽고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만요.
- 박 철 : 그러게 말이야. 월선이!
- 이월선 : 예?
- 박 철 : 딸이 하나 있었지?
- 이월선 : 있었지요.
- 박 철 : 이름이 뭐였더라?
- 이월선 : 선화예요.
- 박 철 : 작년 설날에 평양 가무단이 연변에 왔었는데 말이야, 공연이 끝나고
- 연회석상에서 한 부인을 만났는데... 이름이 홍선화래.
- 이월선 : 아니, 뭐요?
- 박 철 : 그래, 어머님 성함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이월선이라지 않아.
- 이월선 : 아니 세상에!
- 선화가...살아있다고?....아이구. 세상에 이런일이....
- 박 철 : 그래 내가, 예전에 당신 부모님과 형님 아우 하면서 지냈던 사람이라고
- 옛날 얘길 조금 해주었더니 마구 울면서 어머니 보고 싶다고 그러지 않아?
- 이월선 : ....안에 들어가서 자세히 좀 얘기해요.
- 이월선과박철퇴장한다.
- <제2장>
- 해설2 : 그후로 기묘한 편지 왕래가 시작되었지요. 이월선 여사가 저를 통해서
- 연변에 있는 박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면 박선생님은 그것을 평양에 있는
- 홍선화 여사에게 보내고, 홍선화 여사가 박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면,
- 박선생님은 다시 그것을 이여사에게 보냈습니다.
- 그간 오고간 편지들과 그분들과의 대담을 통해서 저는 일제 암흑기와 분단시대를
- 살아온 몇몇 연극인들의 묻혀진 삶을 알게 되었고, 그 삶은 저에게 충격과 감동을
- 안겨 주었습니다.
- 꽹가리, 징, 장고, 북이울린다.
- <제3장>
- 징소리와함께무대뒤의배우들, 꽹가리, 징, 장고, 북을치며무대앞으로
- 돌아나온다.
- <朝鮮新派元祖北極星一行>, <長恨夢>, <團長林生出>등등의깃발을들기도하고
- 바이얼린을연주하기도하고선전지를돌리기도하고시골의가설무대분위기를낸다.
- 선전단원은두꺼운종이를말아서입에대고외친다.
- 선전단원 : 안녕하십니까? oo읍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 오늘밤 본 북극성 일행이 불후의 명작 장한몽을 가지고 여러분 앞에 당당히 상연의
- 막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장안에 남녀노소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한몽!
- 눈물없이는 볼 수 없고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없는 애정비극 장한몽!
-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하고 두고두고 여러분의 심금을 울려줄 장한몽을
- 상연하겠사오니 가족동반하시와 많이많이 관람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단원들무대위로올라가한바탕논다. 악기소리그치면선전단원, 관객에게
- 인사한다)
- 에, 그러면 여러분이 기대하고 고대하던 본 예제를 상연하기에 앞서
- 시대의 명배우이시자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신사이시며 또한 본 단을 이끌어가고 계신
- 임생출 단장님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 박수소리. 화려한의상을입은단장이나온다.
- 단 장 : 감사합니다. 오늘밤 만좌의 재림 하에 본 단이 개막을 하게 되어 본 단의 단장인
- 임생출,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림과 동시에 본 북극성과 함께 신연극의 새 문화를
-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박수받으며퇴장)
- 선전단원 : 이어지는 순서! 본 극단이 자랑하는 미모의 여가수.
- 나혜란양이 드리는 황성옛터!
- 서투른바이올린연주자가 "황성옛터"의전주곡을연주하고여가수가나와서
- 노래를한다.
- 여가수 : < 황 성 옛 터 >{왕 평 작사} {전수린 작곡} {이애리수 노래}
-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 아-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 박수를받으며퇴장하는여가수. 배경막이쳐진다.
- 달, 숲, 강등이서투른솜씨로그려져있다.
- 서사자박철이나온다. 서사를읊는동안구슬픈바이올린소리가나온다.
- 세찬바람때문에가설무대의포장이이따금씩흔들거린다.
- 박 철 : (서사조로) 여기는 평양의 대동강, 서산에 월색은 몽롱하고 대동강 잠들어 잠잠한데
- 때때로 부는 바람 모질게 불어오는 삼월 열 나흗날 밤이었다.
- 을밀대를 등지고 그 사이로 나려오는 두사람의 그림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과연
- 누구였던가?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이다.
- 이수일역의단장과심순애역의이월선이나온다.
- 이월선은이제막피어나는 20대의처녀이다.
- 이수일 : 순애씨 나는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서 아무 할말이 없소.
- 심순애 : 수일씨, 용서해 주세요.
- 이수일 : 용서가 다 무엇이요? 대체 이번일이 아버님과 어머님이 시키신 일인지
- 아니면 순애씨도 깨닫고 한 일인지 나는 그것만 들으면 고만이요.
- (바람이분다)
- 아무리 할 소리가 없기로서니 이 청만 들어주면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준다고?
- 아, 아무리 이수일이가 무의무탁한 거지라 할 망정 약혼녀를 판 돈으로는
- 외국 유학을 아니가!
- 박 철 : 수일이는 돌아서며 소매로 얼굴을 가리우고 눈물을 흘리운다.
- 주저하던 순애도 인제는 참다 못해 그의 곁으로 덤비어 들었다.
- 심순애 : 수일씨, 지가 모든것을 잘못했습니다요. 지가 잘못했어요.
- 박 철 : 수일이의 손을 잡고 수일이의 가슴에다 그 얼굴을 묻으면서 순애는 흐득이며
- 울음을 못 참는다. 월색은 고요하야 산과 들에 비쳤는데 대동강 부벽루에
- 서로 잡은 두 그림자 먹을 갈아 부은듯이 땅 우에 비치인다.
- 바람이세차게불어포장막이날아가고무대기둥이무너진다. 불이꺼진다.
- 연극이중단된다.
- 소란소리. 잠시후에불이들어오고당황한선배단원이등장한다.
- 선배단원 : 야, 무대부원들 다 모여봐! 빨리 나와, 이자식들아!
- 홍종민, 심영복, 송진섭이달려와선다.
- 다른단원들도웅성거리며몰려온다.
- 단 장 : 이놈들이 나 망하는 꼴 볼랴고 환장한 놈들이구만.
- 선배단원 : 이자식들아, 팔모가지가 부러졌냐? 일들을 어떻게 하는거야?
- 홍종민 : 포장막이 너무 낡아서 찢어진 겁니다.
- 단 장 : 낡았으면 튼튼하게 기웠어야지 무슨 변명이야, 변명이!
- 심영복 : 몇군데 기워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 단 장 : 시끄러, 오늘밤을 새워서라도 포장막을 다 기워놔.
- 다 기우기 전엔 밥먹을 생각들 하지도 마.
- 송진섭 : 단장님, 밥을 굶고 어떻게 일을 해요?
- 선전단원 : 야 임마, 오늘 적자가 얼마나 난줄 알아? 자그마치 삼백원이야, 삼백원!
- 박 철 : 그게 얘네들 탓만은 아니잖아요!
- 전부터 포장막을 새것으로 갈아야 한다고 다들 얘길했었는데.
- 단 장 : 야 임마! 포장막 새것이 얼마인지나 알아? 난 어디서 돈 싸짊어지고
- 이짓 하는 줄 알아? 아무튼 밥먹을 생각 하지도 마, 알았어?
- 홍종민 : 아무리 그렇기로 일당 밀린 것도 얼만데 밥까지 굶기십니까?
- 선배단원 : (뺨을때리며) 이 자식이, 어따대고 함부로 대드는거야!
- 이월선 : 어머, 선배님 너무하세요.
- 선전단원 : 넌 뭔데 나서고 지랄이야?
- 이월선 : 코피가 나잖아요.
- 홍종민, 코를감싸쥔다.
- 여가수 : (말리며) 언니!
- 바이올린 : (여가수에게) 야, 넌 나서지 말고 조용히 있어.
- 심영복 : 아무리 선배라지만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때려도 되는 겁니까?
- 선배단원 : (심영복도때리며) 이 자식들이 어디서 겁없이 까불어!
- 진경숙 : 말로 하지 왜 때리고 야단이세요?
- 선전단원 : 아니, 이년들이 왜 덩달아 야단이야?
- 박 철 : 선배님, 거 너무 하십니다.
- 단 장 :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그동안 먹여주고 보살펴준 은혜를 모르고 편을 짜서 대들어?
- 어서 일하든가 아니면 당장에 그만 두든가 알아서들 해.
- 선배단원 : 알아서 해 이자식들아!
- 단장퇴장. 선배단원따라서퇴장한다.
- 홍종민 : 나는 저렇게 독단적이고 돈만 아는 장사꾼 밑에서 내 청춘을 썩힐 수가 없어요!
- 이월선 : 저도 그만 두겠어요.
- 여가수 : 어머 언니!
- 바이올린 : (여가수에게) 조용히 못 해?
- 이월선 : 제가 연극하러 뛰어들었을 때는 이렇게 눈물짜는 연극이나 하면서 유랑하며 시골을
- 떠돌자는게 아니었어요.
- 심영복 : 그래요. 이 시대는 우리에게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연극을 요청하고 있어요.
- 진경숙 : 맞아요. 우리는 젊어요. 우리의 앞길을 새롭게 개척할 수 있어요.
- 바이올린 : 야, 대단한 용기들이야. 나도 사실 수입분배 자기 마음대로 하고 허구헌날
- 여배우들이나 찝적대는 저런 단장밑에 있으려니 죽을 맛이지만, 그렇다구 당장
- 그만두면 (여가수를가리키며) 얘하고 나하구는 어떻게 살아가나.
- 어이구,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그래, 다들 잘 해보라구. 야, 가자.
- 여가수 : (월선에게) 언니! 정말 그만 두는 거야?
- 이월선 : 혜란아, 잘 있어.
- 바이올린 : 어서 가자니까.
- 바이올린, 여가수를데리고퇴장한다.
- 진경숙 : 진섭씨 생각은 어때요?
- 송진섭 : 나?....나도..다른 사람처럼...그렇게 하겠어.
- 단원들 : 와!
- 심영복 : (박철에게) 선배님 생각은 어떠세요. (모두들조용해진다)
- 박 철 : 우리 단체는 창단할 때의 이상을 잃어버리고 저속하고 타락한 흥행으로 연명해 오고
- 있는데다가 안으로는 여러가지 비리가 쌓여서 곪을대로 곪아있다.
- 나 역시도 너희들과 함께 뜻을 같이 하겠다.
- 단원들 : 와!
- 박 철 : 자, 북극성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가 있나?
- (서사조로) 밥을 굶더라도 술이나 한잔씩 하러 가자.
- 모두들박철을둘러싸고나간다.
- 이때, 마지막에남은월선이종민에게로다가가며
- 이월선 : 어머, 코피가 계속 나요. (손수건을주며) 이걸로 닦으세요.
- 홍종민 : 고마와. (손수건으로닦으려다너무깨끗해서망설인다)
- 이월선 : 괜찮아요. 닦으세요.
- 홍종민, 망설이다가닦는다.
- 이월선 : (하늘을보며) 어머, 저 별 좀 보아요. 아름답지요?
- 홍종민 : 응.
- 이월선 : 저는 밤마다 저 별처럼 빛나는 배우가 되는 꿈을 키워요.
- 홍종민 : 나도 그런 꿈을 꾸지.
- 이월선 : 어머, 그래요?
- 홍종민 : 하지만 내 꿈은 물거품이 될 게고 월선의 꿈은 이루어지고 말 게야.
- 이월선 : 아니, 왜요?
- 홍종민 : 나는 재능도 용모도 모두가 부족한데 월선이는 모두를 갖추고 있으니 말이야.
- 이월선 : 그렇지 않아요.
- 홍종민 : 월선이!
- 가까이다가가려할때숨어서지켜보던송진섭이놀린다.
- 송진섭 : 야, 경치 좋은데. (두사람얼굴이빨개진다) 빨리 와!
- 홍종민과이월선퇴장한다.
- <제4장>
- 그해 5월. 야외. 햇빛이밝다.
- 하얀천으로덮인식탁에라일락꽃이한묶음꽂혀있고술병과과일등이놓여있다.
- 박철, 심영복, 진경숙, 송진섭이식탁주위에서준비를한다.
- 진경숙 : 아유, 고 새침떼기. 손수건 꺼내 줄 때부터 알아 봤다니까.
- 송진섭 : 어째 난 코피도 안 터지나? 경숙씨, 나한테 줄 손수건 없습니까?
- 진경숙 ; 냉수 먹고 속 차리세요.
- 심영복 : (시가적힌쪽지를들고왔다갔다하며) 봄이 오면 세상 사람들이 봄빛을 따랐고
- 그리고 봄빛은 세상 사람들을 끌어내어서 젊음을 찾았었다.
- 그러하였다. 우리가 공장에서 젊은 피를 말리울때
- 우리가 탄광속에서 바다위에서, 산과 들에서....
- 박 철 : 야, 영복이 뭐하는 게냐!
- 심영복 : 축시 읽어주려고 연습하는 겁니다.
- 박 철 : 무슨 시인데?
- 심영복 : "5월의 훈기"라는 시예요.
- 진경숙 : 정말 멋진 시인 것 같아요.
- 송진섭 : 체! 젊은 피를 말리다니, 훈기는 커녕 으시시하기만 한데.
- 진경숙 : 진섭씨는 시에 대해서는 너무 문외한이예요.
- 박 철 : 잠깐! 오늘의 주인공들이 왔습니다.
- 이월선과홍종민, 정장차림으로나온다.
- 모두들박수친다.
- 진경숙 : 아유, 월선이 정말 날아갈 듯하구나.
- 심영복 : 종민아! 축하한다.
- 홍종민 : 모두들 고마워. (박철에게) 형님, 고맙습니다. 이런 자리 마련해 주셔서....
- 박 철 : 고맙긴 뭘, 신혼여행은 재미있었나?
- 홍종민 : 예, 재미있었습니다.
- 송진섭 : 너무 기운 써서 얼굴이 헬쓱해진 것 같은데?
- 이월선 : 아이, 농담도....
- 진경숙 : 월선인 더 예뻐진 것 같애.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어지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