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자락의 일기
사람은 자기 입장에 따라 모든 사물이 달라 보이고 좋아했던 것도 두려움이 대상이 되고 만다는 것을 올 겨울을 보내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 비를 참 좋아했다. 햇살 가득한 날보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산행이 더 좋았고 청량감 더한 바람보다 비오는 날의 그 바람이 내 감성을 더 충만하게 했다. 조금 여유를 부릴 때 비라도 온다면 음악을 듣거나 한줄 시를 읽는 이 호사는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그러나 금년 겨울의 비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필자가 운영하는 RV리조트 사업장의 하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마음고생은 이루다 말 할 수 없었다. 이곳 빅토리아는 겨울이면 눈 대신 비가 내린다. 이른바 몬순기간이다. 비가 올 때는 하수시스템 공사를 할 수 없어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우산을 받지 않아도 좋은 가랑비가 내리던 예년과 달리 올 겨울은 유독 빗줄기가 세찼다. 배수에 문제가 생긴 사업장은 물이 고였고 마음을 잠시도 내려놓지 못하게 하였다. 1월 중순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빗줄기가 가늘어졌고 일주일에 절반은 햇살이 비쳐 한시름 놓게 되었다.
주말이면 밀린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틈나면 혼자 산행을 하거나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내가 휴일을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다. 돌아보면 난 보편적인 삶을 살지 못한 것 같고 늘 닦이지 않은 길을 혼자 걸어온 것 같다. 내 문학과 실용적 글에서의 경계는 투자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통적인 질문에 답하기보다 늘 독창적인 궁금증에 대한 의문으로 늘 인내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함에도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남아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아들 집까지 걸어서 가 봐야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차에 길을 나섰다. 차로는 10분 거리지만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2시간30분이 걸렸다. 그 집에도 차실이 있어 차 생각이 날 때면 불쑥 가보고 싶은 생각이 날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1 년에 서너 번 가는 게 고작이다. 뒷마당 잔디도 궁금했고 그냥 그 집을 한 번 둘러보고 싶었다. 새 동네는 전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한 폭의 그림이다. 샘 집이 가까워지자 샘이 이층 서재에서 나를 발견하고 불러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심스러운 마음도 숨 길수 없었다. 마음조이며 집을 둘러보고 서둘러 떠났다. 토요일 쉬는 날에 나타나 신경쓰이게 할까봐 싫었다. 아들이 결혼을 한다면 더욱더 조심되어 방문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없이 다녀간 것을 알게 되면 또 잔소리를 들을 것이고 많이 섭섭해 할 것을 알지만 그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사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된 후론 어떤 이유로도 그들의 방을 허락 없이 들어가거나 그들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아들이 대학을 앞두고 방황하고 있을 때 난 자퇴하고 해외배낭여행을 권유했었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면 미래가 보일 것이라고 나는 믿었고 그도 동의했었다. 며칠 후 그는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배낭하나 메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공항에서 그를 배웅하고 돌아설 때 그 맑고 조금은 허전했던 그 하늘. 오늘 그 친구의 집을 떠나올 때 올려다 본 하늘도 그때의 허공이었다.
이젠 그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처음 새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 이 집을 어찌 관리할까 생각했는데 참 정갈하게 관리를 잘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저 자리를 채워 함께 살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표현을 하기엔 무척 조심스럽다. 나보다 훨씬 더 생각이 깊고 자신의 미래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낮이 많이 길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엔 금시 연한 빛의 달이 떠 있었다. 적당한 차가운 기운은 그만큼 맑아서 좋다. 참 오랜만에 저 달을 보는 듯하다. 늘 내 마음의 언덕에 떠 있는 달빛을 보다 마음 끝에 멈춘 곳에 또 하나의 달이 떠 있다는 것을 오늘 본 것이다. 늘 가까이 있는 것이 새롭게 보이고 소중하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나는 나를 보는 것이다.
2021,1,31(토요일)
첫댓글 아~~
잘생긴 샘 보고 싶어요^^
멋진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니...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청년이 되었을꺼같아요.
어서 코로나가 진정되어서 다들
뵙고 싶습니다
아드님 군대 보내고
조금은 허전하실듯
참 멋진 청년
누구보다 훌륭한 엄마. 아이들 미래를 벌써 준비하고 큰 성장을 이뤄가고 있으니.
자녀들 미래 준비가 결국
자신의 노후 준비니
큰 박수보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배려가 가득담긴 행복한 글입니다.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소통할 수 있어 기쁨니다.
비오는 일상이 참 곤혹스러우셨겠어요...
날씨마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요즘같은 일상에 뭐하나 좋을 게 없네요.
그러나 이또한 지나가리라!!
어찌어찌 지나 가고 노랫말처럼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올겁니다~^^
멋진 소연님
참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분
옆 짝도 어쩜
그리 좋으신지?
감사합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뭉클함이 느껴집니다.
이채 시인의 '아버지의 눈물'도 생각나고...
잠시 아버지를 그리며
눈물 한 수저 삼켜봅니다.
소중한 마음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어른이 되어가니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닙니다.
이젠
악동을 보호하려고 드니
아이들은 성장하고
어른들은 철이 줄어들고
저도 현재 강원도의 작은 해안가에서 살고 있는데, 매일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불과 몇 년 전 배낭만 챙겨 홀홀히 떠났던 그 시절이 무척이나 그립더군요. 비록 이제는 삶의 방향을 달리하겠노라 결심하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코로나로 국가 간 여행이 금지되기 전 다녀온 여행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새삼 깨닫곤 합니다. 한창 방황하던 시기에 그 방황 속에서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젊은 시절 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그 마음
이렇게 소통하며 동행하여 기쁨니다
연한 빛의 달이 떠 있더란
글을 읽으며 문득 달밤과
달맞이꽃을 떠올렸더랬습니다.
비 내리는 겨울도 끝나가고
맘고생도 끝나겠지요.
문학과 실용글과의 경계라는
말이 부쩍 실감나게 와닿는군요.
반갑습니다. 서정님
변함없이 잘 계시지요?
참 열심히 사시는 분
늘 응원합니다
자명님 글을 읽으며 저 나름의 관점에서 해석된 여러 이미지들이 영화처럼 머리속을 지나갑니다.
삶 속에서 경계를 지켜나가는 모습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소중한 글 너무나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늘 그 경계에서 고민을 했지요. 작가라는 그 타이틀에 대한 부담감과
또 투자세계에서의 위치
안부전합니다
아버지의마음!
그
깊은 마음을
어찌 헤아릴수있을까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된다면
자식된입장ㅡ샘.
에서는
죄송하기도 하고,
서운할수도 있을듯 하네요.
물론,
저희들도같은 마음이
들듯합니다.
오늘처럼
이곳 순천에서도
비가내립니다.
다실에서
자명님과 따끈한 발효차가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보고싶습니다.
그립습니다.
많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 지는 친구
시목
반가워요
그 마음 공감합니다. 안부전해요
아들을 배낭 여행떠나보내고 그때의 감정을 쓰신글을 읽은 때가 얼마되지 않은것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러갔네요.
자녀들은 부모님을 닮는다고 하니 ~~걱정 안하셔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갈것입니다.
모든것을 다 이루신 자명님은 어떤 소망이 또 있으실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요
저는 아직도 철이 들기는 커녕 반대로 가고 있어요
안부전합니다
자명님의 맛깔스런 글 감사드립니다. 배수시스템 문제로 자명님 많이 고생하시는 것 안타까웠는대. 글을 읽어보니 정말 큰 고생하셨내요. 건강하세요 자명님!
반갑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습니다.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위안이자
희망입니다.
자퇴, 여행.. 멋진 아버지시네요~~^^
멋진 흉내를 내보려고 노력중입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안부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