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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는 성경을 이미지로 해설합니다.
성경에 두루 나오는 주제 가운데 빛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빛으로 시작합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셨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은 어두움 가운데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행동은 마치 하나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과 유사합니다.
그렇게 요한복음에서 사람에게 빛을 주신 예수님의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됩니다.
그렇게 그 빛은 창세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흑암과 빛을 구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을 비추는
하나님의 빛이 되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드러나신 모습은
변화산에서 두드러집니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변화산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전체에 걸쳐
예수님이 빛으로 표현되신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들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은 본래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톰 라이트는 빛에 대하여 등대의 비유로 말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등대의 빛은
창문을 통해 세상을 비추어야 하는데
만약에 그 창문에 거울을 붙인다면
그 등대는 잠깐동안 더욱 빛나겠지만
잠시 후에는 사그라들고 말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소명에 대하여 말할 때
이사야 49장을 인용하여
이방의 빛이 되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몇번 나오는데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빛이라는 주제는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두루 나오는 하나의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은 거룩한 성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그 성에 있는 빛은 하나님 자신과 어린 양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렇기에 그 성에는 해와 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과 함께 거하시는
영원한 빛 가운데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영상에서 톰 라이트는
성경을 관통하는 주제 빛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 빛은 하나님 자신이며, 이스라엘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백성들도 세싱에 그 빛을 비출 때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빛이라는 주제로
더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소명은 마침내 빛으로 충만한 세계에서 완성됩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우리의 존재 목적이며 사명이며 희망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빛에 대한 설명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낼 수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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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와 함께 성경에서 이미지를 읽어내기
성경의 이미지 08
빛 – 소명의 구체화
주요 내용: 성경 이야기에 두로 나오는 빛의 이미지는 다양합니다. 톰 라이트는 하나님의 빛과 성도들의 소명에 대한 관련성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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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많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어떤 주제를 성경 이야기 전체에 걸쳐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각각의 이미지를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이미지가 우리를 성경 전체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 지어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미지를 읽어내야 합니다.
태초의 말씀과 태초의 빛
요한복음의 서문은 널리 알려진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은 말씀에서 그치지 않고 빛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처럼 빛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는 중심 주제가 되어 요한복음의 나머지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물론 요한복음의 서문에 나오는 다른 주제와 같이 요한이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동일한 개념으로 다른 장들에서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한이 이 서문에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복음에서 중요한 순간을 우리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은 예수께서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시는 때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요한복음의 서문은 설명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요한복음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리고 4절에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매 어두움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더라. 여기에는 이미 일종의 역설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 모습은 두루 비치는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두움도 있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어두움이 빛을 이기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보여주는 싸움은 빛과 어두움 사이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어떤 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은 계속 이어갑니다. 그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온 것은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며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려고 온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반복적으로 들려줍니다. 8절과 9절을 보면, 참 빛이 각 사람에게 비추는데 그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창조와 빛
이후에 요한은 주제를 벗어나 다른 개념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요한이 강조해서 말하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어떤 점에서 중요한 분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빛이시기 때문에 중요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으로 덮인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시지요. 물론 요한복음의 서문에 나오는 거의 모든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 빛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창세기 1장과 관련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빛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최초로 일어난 일입니다. 창조의 시작 부분에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한이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첫번째로 소개해 드리고 싶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서의 첫머리에서 말입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빛에 대한 모든 예언과 빛에 대한 상징들이 구약성경에서 언급되는데 그것들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고 새로운 일을 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야기에 대하여 요한이 들려줍니다.
구약성경에서 빛의 이미지
출애굽기에서 거대한 어두움이 이집트의 모든 백성을 덮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집트에 내린 재앙의 절정이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지역은 어두움에 덮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아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10장의 이야기입니다.
이 빛이라는 주제는 구약성경을 관통하며 이어집니다.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구절을 잘 아는 이유는 그것이 제가 다닌 대학의 모토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장의 용마루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천장이 있는 방에서 우리는 시험을 치르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위를 쳐다보았는데 거기에는 ‘도미누스 일루미나치오 메아(Dominus illuminatio mea!)’ ‘주님은 나의 빛이십니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좋은 구절인데 시편 27편에서 온 것입니다. 빛에 대하여 정말 많은 구절들이 구약성경에 나옵니다.
세상의 빛, 예수님
이제 요한복음을 좀 더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역설적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지 않으며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여러분은 빛 가운데 살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너는 너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므로 너의 증거는 정당하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과 논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증거하신다.’
그리고 다음 장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께서는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하나의 위대한 상징이라고 여겼습니다. 바로 그 상징에 대하여 복음이 말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주변에는 죄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뿐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창조의 행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선 진흙을 만드셨습니다. 주님은 침과 흙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소경의 눈에 발라 주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기를,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제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에게 이 사람은 새로운 창조를 의미하는 또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의 나머지는 온통 빛과 어두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요한이 이 사건을 예루살렘의 초막절 시기에 배치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다른 절기 가운데서 그 절기는 빛의 절기였으니까요. 다른 절기들도 이와 같은 유대인들의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빛을 복음과 관련하여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하나의 이야기에 이 모든 것이 집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신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의 변화되신 이야기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영광의 모습으로 변모되신 것은 요한복음의 두루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빛이라는 주제,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빛을 보여주신다는 것은 요한복음 전체에 가득 차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이 변모되신 것은 짧은 순간에 된 것이지만 제자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이 진정 누구시며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설명하실 때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풀어 주셨던 것처럼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세상의 빛, 성도들
특별히 성경이 가리키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시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을 빛으로 소개하는 모든 이야기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소명을 부여합니다. 그 소명은 그들도 빛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은 산상수훈의 도입부분으로서 중요한 본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그러므로 빛을 말 아래에 가두지 말라. 그렇게 되면 빛이 비추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예수님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즉 유대와 갈릴리로부터 와서 자기를 따르는 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제 부름을 받은 이유는 세상을 위하여 어떤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세상을 위하여 되어야 하는 바로 그런 존재다. 그것은 세상에 빛을 비추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빛을 간직하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잠깐 동안은 밝게 빛날 수 있겠지만 그 빛은 곧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는 등대입니다. 제가 자란 곳은 영국의 북동부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등대는 수마일 밖에서도 보일 만큼 밝았습니다. 그 등대에 가보면 등대 주위로 창문이 있습니다. 그 창을 통하여 빛이 비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경고하신 것은 그 빛 주위로 거울을 설치하는 위험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우쭐거리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빛의 사람들입니다. 이곳은 전체가 밝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빛을 바깥세상으로 비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라고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맞지만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빛을 바깥세상으로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라고 부르신 것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개인의 삶을 살아야 하며 특별히 공동체로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곧 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을 통하여 빛이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방의 빛, 사도 바울
사도 바울도 이 주제에 대하여 특별히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말할 때 빛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바울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본문은 이사야 49장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는 것은 너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다. 그렇게 하여 나는 이스라엘 지파를 회복할 것이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영광은 땅끝까지 이를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본문을 자신의 글에서 네 다섯 번 언급했습니다. 그것이 이사야 49 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공적인 삶의 이력을 요약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을 재판하기 위하여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로마의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2세에게 바울이 말한 것은, 바울 자신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어떻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예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세상 나라들에게 보낼 것이다. 너는 그들의 눈을 열어주고 그들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사도행전 16장 13절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빛을 비추는 사람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제 그 빛은 예수께 집중되었습니다. 바울이 맡은 사명은 그 빛의 대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에게 마지막으로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모세와 예언자들이 일어나리라’고 말한 그 일입니다. 그것은 메시아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가장 먼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26장 23절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세상 나라들에게 빛을 전하실 것입니다. 그 빛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빛을 희미하게 바라봅니다. 그리고 어두움은 그 빛을 이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복음의 빛은 그 빛을 발하여 어두움이 있는 그 자리를 비춥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 빛을 보고 돌이켜 그 빛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빛의 사람들이 됩니다. 이 주제가 창세기에 두루 펼쳐져 있으며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펼쳐집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빛이 그 성에 있는데, 그 성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 되는 곳입니다. 그곳의 빛은 하나님 자신과 어린양이십니다. 그곳에서 마침내 해와 달이 필요치 않는 이유는 빛이 와서 그들 가운데서 영원토록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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