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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갑자
1908년 장로교의 프린스턴대학 이승만 박사.석사수여.
4월 1일 - 대한제국 표준시를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 동경 127도 30분 자오선에 준해 변경하여 시행.
7월 23일 - 오스만 투르크 제국, 청년 투르크 당 혁명 일어남.
8월 26일 - 일본, 조선 수탈위한 동양척식주식회사법 공포.
60년전 미국이 동아시아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의 여러 주들을 강제 합병하면서 태평양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60년전 2월혁명으로 봉건제 완전종식
1548년 조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은 1548년 이황이 풍기 군수로 재직하며 국가에서 공인해 줄것을 상소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야망을 시작한다.
이이는1548년(명종 3) 진사시에 13세의 나이로 합격한다. 제자인 김장생도 태어남
60년전 권근의 외손 서거정사망
50년전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다.
40년전 포르투갈과 이슬람 함대 간의 디우 해전이 벌어졌고, 포르투갈이 승리하여 인도 무역권을 확립하였다.
30년전 보나 스포르차가 폴란드의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 런던 조약이 맺어져 서유럽에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10년후 카를5세 사망.
칼레는 1558년 메리 1세 때 잃음으로서 결국 영국은 프랑스 내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만다
20년후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발발하였다.
30년후 모로코 vs 포르투갈의 크사르 엘케바르 전투에서 두 지휘관 군주들이 사망하였다
40년후 프랜시스 드레이크, 해적당을 이끌고 카리브 연안의 스페인 상선 / 도시들을 습격하였고, 파나마 지협을 통과하는 금,은 수송대를 약탈하였으며 마젤란 햐협을 거쳐 산티아고까지 습격하였다.
칼레 해전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이끄는 잉글랜드 (영국) 함대가 이베리아 연합 (스페인) 아르마다를 화공으로 격파하였다
50년후 - 제2차 울산성 전투가 일어났다.
- 사천성 전투가 일어났다.
-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임진왜란이 끝났다.
60년후 선조사망.
59년후 송시열탄생,이에야스는 1607년 슨푸 성으로 들어가 명목 상으로는 은거
1188년 주희는 황제의 인품이 국가 안녕의 기반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도덕적인 정부를 강조한 책인〈대학 大學〉에서는 황제가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면 된다고 주석,다음해 중용 식으로 사서주석.
60년전 풍수지리 묘청 대화궁완성.서경천도 시도
1128년 금(金)나라가 침입하자 송은 수도를 임안(臨安, 지금의 항저우)으로 옮긴다. 이때 황제를 따라 내려온 공단우는 취저우를 식읍(食邑)으로 받는다. 공단우의 남하는 양쯔강 이남에 유학 붐을 일으키며 대학자 주자(朱子)를 낳음
포르투갈이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다.
대월 리왕조의 신종이 즉위하였다.
50년전 독일의 왕 콘라트 3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헝가리 왕국이 보스니아를 정복하였다.
금나라와 남송 당국이 일단 화의에 합의하였다.
40년전 잉글랜드 - 플랑드르의 십자군이 알제리의 오랑을 함락하였다.
무와히드 왕조가 세비야를 점령하였다.
30년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제 2차 론칼리아 제국 의회를 열어 북 이탈리아의 자치 도시 (코뮌) 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 회수를 주장하였다.
프랑스 공주 마가렛이 출생 후 바로 잉글랜드에서 3살인 헨리 왕자와 약혼하였다. 벡셍 지방이 지참금으로 와서 앙주 - 플랜태저넷 왕조의 강역이 확대된다
20년전 잉글랜드의 왕자 리처드가 아키텐 공작이 되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 수즈달 공국이 독립하였다.
로마 코뮌이 이웃 도시 알바노를 점령하였다.
10년전 니케포루스 3세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멜리히슈타트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왕 루돌프를 패배시켰다.
- 키에티가 노르만족에게 점령당하였다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런던탑 건설이 시작되었다.
10년후 브런즈윅의 오토가 웰프 가문에 의하여 독일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독일 십자군 대부분이 레반트를 떠났다.
만적의 난이 발발하였다
20년후 서하 북부지방을 유린한 몽골제국군이 철수하였다.
칭기즈칸이 금나라 황제의 조서를 거부하였다.
오이라트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다.
수부타이의 몽골 제국군이 메르키트 부족의 잔당을 평정하였다.
사미원이 금과의 화의를 이끈 공으로 남송의 재상으로 승진하였다.
30년후 무칼리의 몽골군이 태원과 평양을 함락하였다.
남송 군대가 수주를 공격해 온 금나라 군대를 격퇴하고, 반격을 가하여 사주를 점령하였다.
몽골의 장수 카치운이 몽골군 1만과 동진군 2만명을 이끌고 고려로 진군, 강동성 포위전에 참가하였다.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이 호라즘 왕조의 무함마드 샤에게 사신을 보내 무역과 복종을 요구하였다.
4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 콘라트 4세가 예루살렘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끄는 6차 십자군이 브린디시 항을 출발하였다.
50년후 시트 강 전투에서 몽골 제국군이 블라디미르-수즈달 군대를 격파하였다.
몽골군이 야로슬라블을 함락시켰다.
몽골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소실되었다
60년후 몽고장수 수부타이 사망,주희 제자가 근사록주해..잉글랜드의 수사 로저 베이컨이 화약을 제조하였다.
흥덕왕 828년 장보고로 하여금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였다
60년전 프랑크는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와 카를로만 2세즉위하여 통일전쟁
50년전 코르도바 토후국을 공격하기 위한 원정에서 돌아오던 프랑크 왕국군이 바스크족의 기습에 당하였고 이 전쟁 도중 군사지도자 롤랑이 전사하였다. (론소보 전투, 후에 롤랑의 노래의 배경이 됨)
40년전 이드리스 이븐 압달라가 이드리스 1세로 즉위하며 모로코 일대에 이드리시 왕조를 세웠다.
독서삼품과가 시행되었다.
아바르족이 바이에른의 공작 타실로 3세와 동맹을 맺고 동프랑크 지역을 공격하였다.
30년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 알폰소 2세가 프랑크 왕국의 지원을 받아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던 리스본을 일시적으로 정복하였다.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 샤를 2세가 이끄는 프랑크군이 코르시카과 사르데냐를 점령하였다.
20년전 프랑크 왕국 군대가 카탈루냐의 토르토사를 공격하나 후우마이야 왕조 수비대의 항전으로 실패하였다.
이드리시 왕조의 이드리스 2세가 장성하여 볼루빌리스를 떠나 페스에 입성, 친정을 시작하였다
20년후 바이킹 습격자들이 아키텐의 수도인 보르도를 점령하였다.
사라센족이 라구사를 점령하였다.
50년후 에딩턴에서 웨식스의 왕 알프레드 대왕이 이끄는 앵글로 색슨군이 데인족 바이킹군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다. 이후 식량 부족으로 항복을 선언한 데인족의 왕과 알프레드 대왕 사이에 웨드모어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영국의 땅 일부를 바이킹에 할애하게 되었다
60년후 진성여왕이 위홍에게 향기집삼대목을 편찬케함
자비마립간 468년 봄, 고구려와 말갈이 실직을 습격하였다. 이해 음력 9월 하슬라 주민중 15세 이상 되는 자들을 징집해 이하에 성을 쌓았다. 마립간은 이후 방위체계 확립에 주력
서로마 제국의 황제 안테미우스가 군대를 보내 사르데냐를 탈환하고 시칠리아에서 반달족을 축출하였다.
튀니지의 캡본에서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 군대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반달족의 함대가 로마에 상륙, 도시를 약탈하였다
90년전 고트족의 본격전투는 아드리안노플에서
로마 발렌스황제 진압군15,000명 격퇴
60년전 408년 음력 2월 왜인들이 대마도에 군영을 설치한다는 소식에 선공계획을 취소 실성 마립간이 서불한의 말을 좇았다. 이가 곧 신라의 대왜 방위전력이 되었다.
50년전 테오도리크 1세가 서고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가이세리크가 반달족의 족장이 되었다.
아르메니아의 아르사케스 왕조가 끝나고 아르메니아가 사산조 페르시아에 병합되었다.
30년전 야즈데게르드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사산 제국이 유목 민족에 맞서 캅카스 동부 고갯길인 데르벤트에 거대한 요새를 세웠다.
20년전
20년후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이탈리아의 왕을 자칭한 오도아케르를 공격하라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제노의 명을 받고 동고트군을 이끌고 북부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카바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30년후 소보권이 남제 6대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 왕국의 수도를 파리로 정하고 가톨릭교를 국교로 삼았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동고트 왕국군을 보내어 프로방스 지역의 프랑크족을 축출하고 서고트인들의 영토였던 셉티마니아를 탈환하였다
50년후 유스티누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법흥왕은 이차돈의 순교(527년)를 거쳐 불교를 국교로 정한(528년)이후 불교정신에 의한 통치를 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삼국통일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108년 신라가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을 병합하다.
60년전 허황옥이 배를 타고 금관가야로 와서 왕비가 되다. 모본왕 즉위
40년전 로마 황제 네로가 자살하고 갈바가 로마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 갈사국의 도두가 나라를 들어 고구려에 투항해 멸망하였다.
30년전 로마의 아그리콜라 장군이 웨일스 북쪽에 살던 오르도비치 족을 토벌하였다.
파코루스 2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개루왕이 백제 4대 국왕이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이 완공되었다
30년후 -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후계자로 지목하였다
40년후 고구려의 차대왕이 태조왕의 맏아들 막근을 살해하였다
50년후 158년에 여름 5월 29일에 일식이 일어나 태사령 진수가 소황문 서황을 통해 일식이 일어난 변고의 허물이 양기에게 있다고 하자 양기는 낙양 현령에게 지시해 진수를 잡아다가 고문해 옥에서 죽게 만들었으며, 이 일로 환제가 양기에게 화를 냈다.
황제는 외척을 물리치기위해 환관을 키우니 십상시가 된다
60년후 168년에 후한(後漢)의 현도태수가 침공해 들어와 고구려 피해.
59년후 길선의 반란으로 백제와 62년평화가 깨짐.
bc253년 팔레르모 大會戰 로마군의 육해군의 공세에 밀려 별로 성과가 좋지 못했다. BC253년 카르타고의 팔레르모를 로마가 어렵게 함락한다. 1천명은 풀리고 13,000명이 노예가된다
BC 613년에는 초(楚)나라 목왕이 죽었고. 이듬해 노(魯)나라 문공과 제(齊)나라에서 소공이 죽는다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제 3대왕(BC 973년 경~932년)으로 등극하여 그 이름을 세계에 날렸다
상원갑자
1728년에 경종의 죽음으로 정치적인 기반을 위협받게 된 이인좌, 이유익 등이 소현세자의 증손자인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임금으로 추대하여 무력으로 영조와 노론을 몰아 내려 하였다.청주성에서 일어난 반란군은 즉시 경상도와 전라도로 확대되었고,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전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군을 투입해 난을 진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상도 안동과 대구의 유생들이 자발적으로 창의군을 조직하여 이인좌의 난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난군 세력이 영남에서 가장 발호했다는 이유로 반란 진압 후 남인들의 협조설까지 확산되면서 경상도를 반역향으로 규정하여 과거를 정거하고 금고령을 내린 뒤, 대구감영에는 평영남비를 세우게 된다. 이후 과거와 출사를 금지당한 영남의 남인계 유생들은 정조 때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영남 의병의 행적과 선비들의 연명부를 적은 영남만인소를 두 차례에 걸쳐 올리게 된다
60년후 정조는 사도세자의 10월 묘를 이장하고 현륭원(顯隆園)이라함. 노론을 최대한 누른 결과.
60년전 현종은 1668년 교서관(校書館)에서 활자를 주조케함.
1728년 영국 의 "헤리슨" 에 의해 기계식크로미터 발명,시게로 발전
1368년 주원장,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漢族)의 왕조 명나라를 건국.토곤 테무르, 북원 건국
고려는 심양을 잃는다.
1368년(공민왕 17) 명나라가 건국
310년만에 청에 멸망
권근이 17세 성균시 합격. 조선개창에 협력
70년전 충선왕 재위에 오르다.
60년전 충선왕 심양왕이 되다.
곤기라트 등 몽골귀족들은 몽골고원의 방위를 담당하던 테무르의 조카 카이산을 황제로 맞이했다.
카이산은 킵차크 한국, 아수드, 캉글리 인사를 영입하였고 곤기라트 족에 대해서는 논공행상이 없었다.
.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가 프랑스의 왕녀 이사벨과 결혼하였다
독일의 왕 하인리히 7세가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선출되었다.
헝가리 왕국의 앙주 -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다.
50년전 파우가르트 전투에서 노르만 - 잉글랜드군대가 에드워드 브루스를 전사시키며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군을 격파하였다.
고려에서 불법점유한 토지, 노비를 원 주인에게 환원시키기 위한 관청인 찰리변위도감이 설치되었다
40년전 천순제(원)를 지지하는 다울라트 샤의 상도파와 톡 테무르를 지지하는 엘 테무르의 킵차크 군단이 주축이 된 대도파 간의 양도 전쟁이 일어났다.
- 톡 테무르가 원문종으로 즉위하였다.
일본에서 안도 씨의 난이 끝났다
필리프 6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며 발루아 왕조의 시작되었다. (백년전쟁의 단초)
30년전 최초로 함포가 사용된 해전이었다고 기록된 아르네무이덴 해전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함대가 격돌하였다.
고묘 덴노가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쇼군 칭호를 내려 무로마치 막부가 설립되었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가 아키텐 (기엔) 과 잉글랜드의 포츠머스를 공격하였다.
20년전 세르비아 제국의 스테판 두샨이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여 그리스의 테살리아, 에피로스 지방을 점령했다.
백년 전쟁을 치르던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흑사병의 여파로 사실상 휴전하였다. (~1355년)
볼로토보 조약으로 프스코프 공화국이 노브고로드 공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0년전 프랑스의 소작농들이 자크리의 난을 일으켰고 에티엔 마르켈의 파리 포위군과 동맹하였다.
- 라구사 공화국이 설립되었다
10년후 독일 카를4세 사망.벤체슬라스 등극
20년후 위화도 회군이 벌어졌다.
명나라 장수 남옥이 이끄는 15만 대군이 부이르 호수에서 원평종을 습격하였다. 이후 평종은 카라코룸으로 탈출하다 투울 강 근처에서 이수데르 조리그투에게 살해당하며 쿠빌라이 계열의 원 황실은 단절된다.
1388년에서야 샤를 6세는 친정에 나섬
30년후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조선의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의 기능을 한양으로 이전하였다
40년후 - 지기스문트가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을 이끌고 보스니아를 공격하였고, 도보스 전투에서 보스니아의 왕 트브르트코 2세가 지기스문트에게 대패를 당하였다.
50년후 음력 8월 10일에 세종대왕이 왕위에 즉위하였다.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 지휘 하에 항해 연구소가 사그라스 곳 궁전에 설립되었다
60년후 서달사건으로 파면된 황희 복직하나 다시 탄핵됨.
이츠코아틀이 아즈텍 제국의 초대 황제에 즉위하여 테노치티틀란 건설을 시작하였다
278년만에 스페인에 멸망.
1008년 목종은 경주를 낙랑군이라 별칭.
낙랑의 위치는 미스테리지만 그 부속민은 이동한것.
1년후 목종은 강조에 의해 왕위에서 폐위되어 양국공(讓國公)으로 강등된 후 경기도 파주 접선 해안가에서 강조가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
59년후 대각국사 의천 출가
60년전 강감찬 탄생.
50년전 고려 전기의 학자 쌍기의 건의에 따라 최초의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40년전 고려의 대표적인 불상 중 하나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완성되었다.
실리스트라에서 키예프 대공국군이 제1차 불가리아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전 애설레드 2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 오월이 패망하였다.
20년전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 정교를 도입했다.
알 만수르가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이끌고 자모라를 점령하고 기독교 수도원들을 파괴하였다. 이어서 그는 레온을 점령, 쑥대밭으로 만든다
20년후
크누트 대왕이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나바라 왕국의 산초 대왕이 카스티야를 정복하며, 레콘키스타 세력은 갈리시아 왕국과 나바라 왕국으로 양분된다.
베트남 리태조가 죽고 리왕조의 태종이 즉위하였다
30년후 서하 (미냑)의 이원호가 스스로 황제국임을 칭했다.
사라고사 토후국을 통치하던 투지비 가문이 쫓겨나고 후드 왕조가 세워졌다
40년후 동 아나톨리아 고원에서의 카페트로우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조지아 왕국의 연합군이 셀주크 제국군에게 패하였다.
잉글랜드를 침략한 바이킹 군대가 격퇴당하였고, 생존자들은 플랑드르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 대한 최후의 바이킹 침공)
잉글랜드 국왕 참회왕 에드워드가 켄트 지역의 샌드위치 기반의 함대로 도버 해협을 봉쇄하며 플랑드르 백작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50년후 - 니콜라스 2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황제/외부의 간섭 없이 독자 선출된 첫 사례)
이탈리아의 파르마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볼레스와프 2세가 폴란드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648년(진덕여왕 2)에는 김춘추(金春秋)를 당나라에 보냈다. 이로써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는 청병외교(請兵外交)와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숙위외교(宿衛外交)를 전개하였다.나당전쟁때 끊겼다 71년후 숙위외교가 재개됨.
60년전 588년 10월, 수나라 양견은 진숙보의 부패와 무능을 보고 51만 8천명이라는 대군을 진왕 양광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이끌게 하여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50년전 고구려-수 전쟁 : 영양왕이 고구려군을 이끌고 수나라의 요서 지방을 공격하여 고구려-수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수문제가 수나라군 30만명을 동원하여 수륙양면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전염병과 장마, 태풍에 의한 피해 등에 의하여 고구려군에 대패한 뒤 퇴각하였다.
사산 제국이 예멘의 히미야르 왕국울 정복하였다
40년전 비잔티움 제국령 카르타고의 총독 헤라클리우스와 그의 아들이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포카스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호스로 2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진출하였다.
30년전 이연이 황제로 즉위하며 당나라가 건국되었다
9년후 657년 당고종이 소정방, 임아상, 소사업 등을 시켜 보낸 원정군에 서돌궐의 수도 수야브가 함락당하고 마지막 왕 사발라가한은 생포당해 장안으로 압송당해 멸망했다.
20년후 평양성 전투(668년)가 시작되었다.
- 나당연합군이 평양성을 점령하면서 고구려가 28대 705년 만에 멸망하고 여당전쟁이 마무리되었다.
콘스탄티누스 4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신라의 승려 의상이 범어사. 운암사.한천사를 창건하였다
40년후 카롤루스 마르텔 : 프랑크 왕국의 군사지도자 탄생
50년후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유민과 말갈족들이 이해고가 이끄는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이 전사하였다. 전투 이후 발해를 건국할 기반을 닦게 된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60년후 성덕왕705~707년 대흉년
288년 가르다 호에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지휘하는 3만 5천명의 로마 제국군이 게르만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나이수스에서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가 암살당하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로마 황제가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288년 나이시스에서 출생하였다
고구려 서천왕 288년의 순행은 3월에서 11월에 걸친 장기간의 순행이었다.
1년전 왜인들이 침략하여 천명을 데려갔다
60년전엔 위촉오의 삼국전중 사마의 표기장군으로 나섬.이후는 대장군.
50년전 연왕 공손연이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가 이를 토벌하고 공손연을 처형하였다
40년전 중천왕이 고구려 제12대 왕이 되었다
30년전 오나라의 권신 손침이 오의 황제 손량을 폐위시키고 손휴를 오나라 4대 황제로 옹립시켰다.
- 손침이 역모를 꾀한다는 보고를 들은 손휴가 좌장군 장포, 정봉 등과 모의해 손침을 척살하고 그 일족을 멸했다.
10년후 백제가 미추왕의 신라를 공격하였다.
277년에 양호는 거평후에서 남성군후로 책봉되자 이를 사양했으며, 그 후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자 임종의 자리에서 사마염에게 두예를 천거하고 병사했다
20년후 유연이 전조의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영봉으로 개원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 갈레리우스는 전,현직 황제들을 소집한 후, 그의 주도로 막센티우스의 무단 쿠데타와 발레리우스 세베루스에 대한 임의적 처형을 단죄, 그 아버지 전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재퇴임, 리키니우스의 서방 정제 취임 등을 결정하여 공포했다. 그 결과로 11월 11일 리키니우스가 취임했다
30년후 전조 제 3대 황제인 유총이 사망하고 유찬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가 외척인 근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유요가 전조 제 5대 황제가 된다. 유요는 석륵을 조공으로 임명하여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패배한 뒤 얼마 안 가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하였다.
40년후 석호가 후조군을 이끌고 전조를 공격하였고, 전조 제5대 황제 유요가 이에 반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요는 이 여세를 몰라 낙양을 포위하였으나 곧 석륵의 군대에 반격을 당해 크게 패배하여 포로가 된 뒤 처형당하였다. 이후 유희가 전조 6대 황제가 된다
50년후 성한의 대장군 이수가 성도를 점령한 뒤 이기를 폐위시켰다. 이기는 공도현공으로 강봉당하고 별궁에 유폐되었으며, 얼마 뒤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 이기가 죽은 뒤 이수는 직접 성한의 제 4대 왕으로 즉위했고, 스스로 황제임을 자처하며 국호를 성(成)에서 한(漢)으로 바꾸었다.
60년후엔 모용준이 348년 모용황의 뒤를 이어 즉위.
기원전 74년 소제 사망
59년후 백제 온조왕 낙랑과 동맹
BC73년부터 BC71년에 걸쳐 이탈리아 카푸아의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70여 명의 동료 노예와 함께 양성소를 탈출
윤달은 BC 600년경인 중국의 춘추시대에 발견되었고, 서양에서는 메톤주기라고 하여 BC 433년에 그리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느헤미야가 BC. 433년경, 다시 귀환하여 성전을 정결케 하고, 안식일 준수와 율법을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