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로는 천왕산의 줄기가 남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와 무안면에 이른다. 이 산줄기를 등지고 있으며, 이 산줄기에 있는 큰등이 동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와 목곡에 이른다. 이 산 능선을 경계로 하여 두곡리와 경계를 이룬다. 또 열왕산이 동으로 뻗어 내려 개벽산, 등광산으로 해서 날끝에 이른다. 그 사이에 구기천이 흐르며 산간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 덜마, 음지동, 양지동, 구축골, 중촌, 목곡 등이 있다. 열왕산을 등지고, 그 아래쪽에 근기리, 내촌, 고장골, 양지호음동 등이 있다. 이 마을 앞 평지에 당숲동, 오산마, 상신기 등이 있다. 동쪽으로 열려 있는 마을이다.
1912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당숲동과 밀양군 하서면 근기리와 병합하여 구기리라는 법정리를 이루었다. 1965년에는 구기, 당숲, 근기 등으로 행정리가 나누어졌다. 덜마, 음지, 양지동, 중촌, 구축골, 목곡, 당숲, 오산마, 상신기, 근기, 고장골, 내촌, 양지호음 등 13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기리는 1912년에 경북 청도군에서 떨어져 나와 밀양군 청도면이 되면서, 청도면의 면소재지로서 면사무소, 시장, 농협 등이 설치되어 청도면의 행정 중심지를 이루었다. 지금은 이 마을 앞에 24번 국도가 동서로 달리고 있다. 동쪽으로 인산리, 남쪽으로 조천리, 북쪽으로는 큰등에서 내려온 산 능선을 경계로 두곡리와 인접해 있다. 서쪽으로는 청간재의 능선을 경계로 하여 창녕군 고암면과 경계를 이룬다. 유적으로는 근기리 고분군과 여래사지 등이 있다.
(1) 구기리(九奇里, 九佐洞, 구절)
구기리는 본래 덜마, 양지동, 음지동, 구축골, 중촌 등을 합친 마을이라고 하며, 구기리의 본동이다. 1912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밀양군 하서면 근기리와 병합하여 구좌리(九佐里)의 '九'자와 근기리(近奇里)의 '奇'자를 따라 구기리(九奇里)가 되었다고 한다. 또 구좌동(九佐洞)이라는 지명도 있는데, 이 마을에 옛날부터 9개의 절이 있었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다. 일명 구절이라고 한다.
300여년 전에 의흥 예씨(義興芮氏) 일파가 구축골에 입촌한 후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으며, 재사로는 예수오(芮秀五)를 추모기 위한 재숙소(齋宿所)로서 이필재(二必齋)가 보존되고 있다. 또 청도 김씨 일파가 덜마에 입촌한 후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순조 때 단양 우씨(丹陽禹氏) 일파가 중촌(中村)에 들어와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오늘날은 여러 성씨가 함께 살고 있다.
■ 덜마(德村)
양지동(陽地洞)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열왕산(烈旺山) 중턱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이 마치 높이 덜려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일명 덕촌(德村)이라고 한다.
■ 양지동(陽地洞, 양지편)
구축골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양지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양지편이라고 한다.
■ 음지동(陰地洞, 음달마)
양지동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음지쪽에 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음달마라고 한다. 지금도 이 마을의 뒷산 기슭에서는 사기그릇, 기와 등이 많이 나오고 있다.
■ 구축골(狗睡谷, 玉洞)
중촌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주위에 있는 산세의 모습이 마치 개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구수골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변해서 구축골이 되었다. 일명 옥동(玉洞)이라고 한다.
■ 중촌(中村)
당숲동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목곡과 구축골의 중간에 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 열왕산(烈旺山)
구기리의 뒷산이다. 이 산은 천왕산(天王山)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있다. 높이는 662.5m이다. 이 산의 능선을 경계로 하여 창녕군과 군계를 이룬다.
■ 매봉재(鷹峰)
열왕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산세가 마치 매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약물샘
매봉재의 아래쪽 30m 지점에 있는 샘이다. 이 샘물은 나병환자에게 효력이 있어서 나병환자들이 이곳에 많이 들끓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 폐가 많아서 마을사람들이 샘물에 개머리를 집어넣었다고 한다. 그러자 샘의 약효가 없어졌다고 한다.
■ 개백산(介栢山, 開栢山)
음지동(陰地洞 : 음달마)의 뒷산이다. 열왕산(烈旺山)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와 있다. 이곳에 개백달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큰등
천왕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두곡리(杜谷里)와 구기리(九奇里)의 경계 지점에 있다. 등이 크게 내려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딘까풀막등
구절곡 위쪽 넙덕등의 동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 넙덕등
딘까풀막등 위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등이 넙적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도둑골
청간재와 감골재의 중간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는 소 도둑이 많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듬실고개(두곡현 : 杜谷峴)
구축골에서 듬실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杜谷里에서는 '구절곡'이라고 한다.
■ 턱걸방우(떡걸바위)
열왕산(烈旺山)의 무지개등에 있는 바위이다. 옛날에는 이 바위 위에 암자가 있었는데, 절의 중들이 이 바위에서 턱걸이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바위 부근을 옴자골(암자골)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 바위 위에 주춧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띠밭등
청간재와 큰등 사이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곳에 띠가 많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무지개골
덜마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무지개등과 상곳등 사이에 있다.
■ 무지개등(홍두등)
턱걸방우 옆에 있는 산등성이로서 굴밭등 위에 있다. 일명 홍두등이라고 한다. 이 등의 약 500m 정도되는 곳에도 절터가 남아 있다.
■ 굴밭등
덜마 마을 뒤에 있는 산등성이로서 무지개등의 아래쪽에 있다.
■ 분줏골재
덜마 마을에서 청간재로 가는 길목에서 왼쪽에 있는 고개이다. 창녕군 고암면 청간리로 간다.
■ 상곳등
덜마 마을 뒤산에 있는 산등성이로서, 무지개등의 아래쪽에 있다.
■ 얼음덤바위
얼음덤만리의 아래쪽에 있는 바위이다. 이곳에는 늦게까지 얼음이 남아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얼음덤만리
청간재와 매봉재 사이에 있는 높은 봉우리이다. 이곳에는 얼음덤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열왕골(여남골)
열왕산의 농바위 옆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일명 여남골이라고 한다. 이것은 열왕골이 여남골로 변음된 것이다.
■ 용소골(龍沼谷)
구기저수지에서 청간재로 가는 길목에서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구기저수지 부근에는 늘 물이 나오는 깊은 늪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일명 용소굴, 용숫골이라고 한다.
■ 청간재(청간령-淸間嶺, 청간이재)
당숲동에서 시작되며, 창녕군 고암면 청간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일명 청간이재라고 한다. 옛날에는 행인의 왕래가 빈번하였던 대로였다고 한다.
■ 홍두깨등
딘까풀막등과 넙덕등 사이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산등이 마치 홍두깨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오얏등(五也嶝, 와등-瓦嶝)
열왕골로 가는 길목에서 오른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일명 와등(瓦嶝)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또 이 등의 약 500m 정도되는 곳에 절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주춧돌이 남아 있다.
■ 개골재(개곡현-開谷峴, 명경현-明慶峴, 명경현-明鏡峴)
양지동에서 청간재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길을 가리킨다. 이곳은 옛날에는 대로였다고 하며, 지금도 넓이가 5m 이상이나 되는 길이 남아 있다. 또 명경재(明慶峴, 明鏡峴)라고 한 것은 옛날 신라 시대 때에는 이 길로 해서 경주로 갔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특히 창녕, 의령, 합천 사람들이 이 길로 해서 경주로 갔다고 한다.
■ 원터(원지-院址, 잿마, 흰들빼기, 수무솔배기)
덜마에서 청간재로 가는 길목에서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이곳에는 옛날에 원(院)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또 잿마라고 한 것은 눈, 비를 피할 수 있는 재막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또 흰들빼기라고도 한다. 수무솔배기라고 한 것은 소나무 스무 그루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 농바우(籠岩)
개백산(介栢山)의 중턱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 모양이 마치 장농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올라가면 밀양, 청도, 창녕, 현풍 비슬산 등 4개 고을이 보인다고 한다.
■ 복룡굴(伏龍窟)
열왕골의 아래쪽 약 4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는 굴이다. 이 굴 속에서 옛날 복룡(伏龍)이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도 큰 바위 밑에 큰 굴이 있다. 그 굴의 폭이 약 3.5m, 길이가 약 4m 정도가 된다.
■ 채전밭등
오얏등에 있는 절터에서 약 150m 오른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이곳은 지세가 평평하고, 주인이 없는 분묘가 많이 있다.
■ 구기저수지
양지동의 위쪽 용소골에 있는 저수지이다. 1937년에 축조되었다. 이 저수지의 아래쪽에 있는 논에 기와굴이 남아 있다. 1989년 밭을 논으로 작답(作畓)하다가 발견되었다. 그 일부분은 파손되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부분을 살펴보면 폭은 약 2m, 길이가 3m 이상이나 된다.
■ 구기2호 저수지(갈마구지, 가마구지)
양지동의 마을 앞에 있는 저수지이다. 1943년에 축조되었다. 일명 갈마구지, 혹은 가마구지라고 한다.
■ 대밭들
양지동 마을 뒤에 있는 들이다. 이곳에 대밭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돌다리들
구축골 마을 앞에 있는 들이다. 이 마을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는 개울가에 큰 돌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 이 돌다리는 구기리 마을 앞에 입석(立石)으로 세워져 있다.
■ 망덕걸
음지동(陰地洞)에서 구축골로 가는 길목에 있는 들이다. 이 일대에 약 300m 이상이나 되는 돌덤불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1991년 경지정리로 인하여 지금은 없어졌다.
■ 중밭들
중촌동(中村洞) 마을 앞에 있는 들이다.
■ 불당마
음지동과 구축골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옛날 불당(佛堂)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 구불등
음지동 2호 저수지 밑에서 미륵당걸까지 걸쳐 있는 들 속에 산등이 내려와 있었다고 한다. 1991년 경지정리를 할 때 산등이 내려온 지점은 검은 돌과 황토가 섞여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다 들이 되어 있다.
■ 검은덤
양지동에서 청간재로 가는 오른쪽 중간 지점에 있다. 이곳에는 검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또 이곳에는 범굴이 있는데, 104년 전에 이 마을에 살았던 예동순(芮東舜)이라는 사람이 총을 쏘아 범을 잡았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2) 당숲(당림동-堂林洞, 당수동-堂藪洞)
구기리에서 가장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당숲과 오산마, 목곡, 상신기 등을 합친 마을로서 당숲동의 본동이다. 이 마을은 느티나무 숲이 울창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일명 당림동(堂林洞)이라고 한다. 일찌기 청도 김씨(淸道金氏)가 두곡리에서 이주해 와서 세거하다가, 후에 고법리와 소태리로 옮겨 살았다고 한다.
■ 미륵당걸
당숲동 마을 뒤에 있는 넓은 들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미륵을 모신 미륵당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 일대에 있는 들이 옛 여래사지(如來寺址)로 추정된다.
■ 오목보
당숲동 마을 뒤에서 오산동(鰲山洞)으로 나가는 곳에 있는 보이다. 오산들에 물을 댄다.
■ 구기시장(九奇市場)
구기리 청도면사무소 앞에 있다. 원래 이 시장은 인산리 평지동 앞에 있었으며, 음력 8월 14일과 섣달 그믐날에 시장이 열렸다고 한다. 이 장터가 60여년 전에 구기교회 앞으로 왔다가, 그후에 다시 면사무소 앞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 여래사지(如來寺址)
구기리 당숲동에 있는 당집에 대형석불이 하나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마을 주민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홍수 때 떠내려온 것을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 불상은 불두(佛頭)가 떨어져 나가고, 하단을 상실한 채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의 제조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밀주승람(密州勝覽)에는 "구기리에 여래사(如來寺) 고적이 있다"고 하고, 또 청도군읍지(淸道郡邑誌: 경상도읍지 소수, 1832년)에는 "여래방암(如來坊庵)이 있다"고 한다. 이 절은 여래방암, 혹은 여래사로 불리었던 것 같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위의 불상도 여래사 유적의 일부로 추정된다. 이 절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위의 불상 유적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또 폐사 연대는 알 수가 없지만, 위의 청도군읍지에서 그 이름이 나온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까지 존속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구기리에는 절터가 여러 곳에 있는데, 어느 곳이 여래사지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대체로 구기리 당숲동의 뒤쪽에 있는 들 주위에 미륵당걸, 불당마 등의 지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로 추정된다.
(3) 오산동(오산마, 鰲山洞)
당숲동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뒤에 오산등이 있는데, 이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일명 오산마라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옛날에 군현의 명칭이 바뀔 때마다 특정한 한 곳에다가 그 군현의 옛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청도군의 옛 이름인 오산을 따서 불렀다는 설도 전한다.
이 마을에는 일찌기 영월 엄씨(寧越嚴氏) 일파가 입촌한 후,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오늘날은 여러 성씨가 모여 함께 살고 있다.
■ 오산들
오산동 마을 앞에 있는 들로서 고래들에 속해 있다.오목보에서 물을 댄다.
(4) 목곡(牧谷)
구기리 당숲동 옆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뒤의 산세가 잘록하게 내려와서 목이란 뜻에서 붙은 지명이다.
(5) 상신기(上新基, 상사태)
오산마의 아래쪽 상신교 부근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일부는 인산리에 속하고, 나머지는 구기리에 속한다. 일명 상사태라고 한다.
(6) 근기리(近奇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誌勝覽)에 나오는 근개부곡(近皆部曲)의 옛 마을이다. 부곡(部曲)이라는 말은 향(鄕). 소(所)와 함께 대체적으로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있었던 지방의 특수행정 구역이었다. 그러므로 근개부곡도 중세시대 이래 이곳에 있었던 밀양부의 특수한 행정구획의 하나였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지명으로 보아 현재 근기리를 중심으로 내촌, 고장골, 양지호음동 일대가 그 터전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곳은 등광산의 아래쪽에 있는 '날끝'을 경계로 하여 밀양부 하서면의 영역에 속하였다. 이 부곡은 이미 15세기 중엽에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편찬할 당시에는 이미 소멸되었고, 하나의 촌락이 되어 밀양군 하서면의 영역으로 한말까지 계속 내려 왔던 것이다. 1912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밀양군 청도면에 편입되었다. 이 마을은 구기리와 가까이 있다고 해서 가까울 '近'자를 써서 근기(近奇)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은 내촌, 고장골, 양지호음동 등과 함께 경북 청도군 외서면의 영역 내에 들어와 있다. 이 지방의 고노들의 전문에 의하면, 위와 같이 경계를 넘어온 이유는 밀양, 청도 사이에 정보 전달이나 상호 감시를 위해서 경계를 넘어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촌, 고장골, 양지호음동과 함께 근기리라는 행정리를 이루었다. 이 마을에는 조선 후기에 벽진이씨 일파가 입촌하여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오늘날은 여러 성씨가 모여 함께 살고 있다. 재사(齋舍)로는 탁암(拓菴) 이이상(李而相)의 왕적(往績)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재실로서 추보재(追報齋)가 보존되고 있다.
■ 등광산(嶝光山)
열왕산의 정상에서 동으로 뻗어 내려온 개백산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구기리와 근기리의 사이에 있다.
■ 날끝
등광산의 동쪽 끝부분에 잘록하게 나와 있는 산이다. 산세가 마치 연장 끝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곳에는 옛날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며, 그 흔적으로 지금도 기와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 고래들(고래평-古來坪)
근기리 마을 앞에서부터 오산동 앞까지 이르는 큰 들이다. 이곳은 늘 물이 많이 괴여 있는 1모작답이다. 그래서 붙여진 지명이다.
■ 동산미(洞山墓)
근기리 본땀 뒤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마을 공유의 산으로써 산 모습이 무덤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산에는 많은 고분들이 밀집되어 군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유적이 많이 도굴되어 파손상태에 있다. 주변에 있는 토기편을 수집해 보니, 두곡리, 소태리, 고법리 등의 고분군과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 웃달배기
근기리 본땀의 서쪽에 있는 산으로서 열왕산의 정상에서 뻗어 내려와 있다. 산이 윗쪽에 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이 산의 중턱에는 옛 절터가 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 아래달배기
웃달배기의 아래쪽에 있는 산이다. 산이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대바우(대바위)
아래달배기 위쪽에 있는 바위이다. 이 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바위에는 말 발자국과 사람 발자국의 흔적이 남아 있다.
■ 황소골보
근기리 본땀 앞에 있는 보이다. 건질미산(음달산-陰達山)의 황소골에서 근기리 마을 앞으로 흐르는 도랑이 있다. 이 보는 농업용수로로 사용된다. 황소골은 인산리에 속한다.
■ 산밭골
근기리 내동 마을 뒤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산사태가 많이 났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7) 고장골(고장동-古莊洞, 유장동-有長洞)
구기리 당숲동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동북쪽 주변에 있는 전답에 긴 굴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일명 고장동 혹은 유장동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도 근기리 본땀과 함께 벽진이씨 일파가 세거해오고 있다. 재사로는 군수(郡守) 김극유(金克裕)의 묘하재숙소인 청도김씨의 망수재(望修齋)가 보존되고 있다.
(8) 내촌동(內村洞, 안마)
근기리 본땀과 고장골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이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일명 안마라고 한다.
(9) 양지호음동(陽地好音洞, 홈실)
근기리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내에 있는 하천을 경계로 하여 양지쪽을 양지호음동, 음지쪽을 음지호음동이라고 한다. 양지호음동은 구기리에, 음지호음동은 조천리에 각각 예속되어 있다. 일명 홈실이라고 한다.
■ 개등
양지호음동의 오른쪽에 있는 산등성이로서 웃달배기에서 아래쪽으로 뻗어 내려와 있다. 산세가 마치 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