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碑
김 태 원
내가 산그늘 비탈에 서서
흰눈처럼 침묵하며 꽃을 피우는 것은
그대 향한 그리움 차마 떨쳐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꽃마음이
종일, 해를 입에 물고 온 산을 그러안은 산철쭉처럼
붉지 않고 희디흰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쓰지 않았던 백지 같은 순결한 사랑에
함부로 색을 입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가시가
장미꽃 담장 뒤에 숨겨진 그것보다 더 크고 단단한 것은
시대의 세찬 강물 헤치고 저어 노을처럼 스러진 그대의 곧은 뜻을
오롯이 새기고 벼리기 위함입니다
내 옅은 향기로
철없는 벌들만 어지럽게 불러모은다 하여도
꽃빛이 열흘도 견디지 못하고 백골처럼 쓰러져 누워도
눈 시린 오월의 하늘,
설운 무등의 골짜기 골짜기마다 백비白碑처럼 서늘히 서서
그대의 아름다웠던 얼굴을
끝내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첫댓글 와 아카시아 꽃 너무 잘쓰셨네요 감정의 절재와 은유가 더없이 수준높아 보이고 아름답습니다.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생각하며
그 무지막지한 권력과 그들의 총칼에 죽어간
의로운 넋들을 추모해본 졸시입니다
세월호 사건과 더불어 그날의 기억들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잔인한 계절이 저릿저릿 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