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85)
제7권 영웅의 후예들
제11장 결초보은(結草報恩) (4)
- 진(晉)나라가 구원군을 보내온다!
해양(解揚)의 이 한마디는 다섯 달 동안 성안에 포위당한 채 농성하고 있는 송나라 군사들에게 큰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송나라 재상 화원(華元) 역시 항복을 고려하던 중 해양의 외침 소리를 듣고 모든 성안의 수비를 재정비했다.
군사들은 성벽을 높이고 화살을 만들었으며, 백성들은 돌멩이를 모으고 커다란 솥에 물을 끓여 성벽을 기어오르는 초군을 향해 들이부었다.
초군(楚軍)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끈질기게 성을 공격했다. 초군 대장 공자 측(側)은 성밖에다 망루를 쌓았다.
망루의 높이는 상구성만큼이나 높아서 그곳에 오르면 상구성 안의 일거일동을 환하게 굽어볼 수 있었다.
- 상구성을 함락시킬 때까지 이곳에서 거처하리라!
공자 측(側)은 입술을 깨물며 각오했다.
성안의 움직임이 낱낱이 초군에 의해 간파당하자 이번에는 송(宋)나라 재상 화원(華元)이 머리를 썼다.
초군이 쌓아놓은 망루와 마주 보이는 곳에 그와 똑같은 높이의 망루를 쌓아올린 것이었다.
시야를 가려 성안의 움직임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계책이었다.
그렇게 다시 석 달이 지나갔다.
BC 594년 5월(초장왕 20년)이 되었다.
초군이 상구성을 포위한 것이 지난해 9월의 일이었으니, 8개월이 지나간 셈이었다.
송나라 도성은 양식과 마초(馬草)가 바닥이 났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때의 상황을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안에 양식이 떨어져 사람들이 서로 아이들을 바꾸어 먹고, 죽은 사람의 뼈로 땔나무를 삼았다.
이를 어찌 참상(慘狀)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도 송문공(宋文公)과 화원(華元)은 항복의 뜻을 비치지 않았다.
진나라가 구원군을 보내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매하리만큼 굳은 송나라의 이런 결의와 고집에 질려버린 것은 오히려 초장왕이었다.
하루는 병참을 담당한 군리(軍吏)가 들어와 보고했다.
"군중(軍中)에 7일치 양식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초장왕(楚莊王)은 대답 대신 친히 병차에 올라타 상구성 밖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성을 지키는 송군의 수비는 물샐틈이 없었다.
그는 군막으로 돌아와 병차에서 내리며 탄식했다.
"송나라를 굴복시키기가 이렇듯 어려울 줄은 몰랐도다!“
그러고는 공자 측(側)을 불러 회군할 것을 의논했다.
-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런 소문이 삽시간에 초군 진영에 퍼졌다.
지칠 대로 지친 장수와 군사들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일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신주의 아들 신서(申犀)만은 얼굴색을 달리했다.
그는 회군 소식을 듣자마자 초장왕의 군막으로 달려와 닭똥 같은 눈물을 쏟으며 통곡했다.
"신의 아비는 왕명으로 죽었습니다. 왕께선 신의 아비에게 신(信)을 잃으시렵니까?“
초장왕(楚莊王)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마침 그 자리에 부장 신숙시가 배석해 있었다.
신숙시(申叔時)는 수수께끼 같은 일화로서 두 번씩이나 초장왕을 일깨워준 모신(謨臣)이었다.
"신에게 송나라의 항복을 받아낼 묘안이 있습니다.“
"당장 우리에게는 7일치 식량밖에 없는데, 무슨 수로 저들의 항복을 받아낼 수있단 말인가?"
"송(宋)나라가 항복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식량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둔전(屯田)할 뜻을 비치면 저들은 항전할 의욕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둔전이란 군사들이 한곳에 머물러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외방에 나가 오랫동안 싸움을 벌일 때 군량을 자급자족하기 위한 방편이다.
신숙시의 말을 들은 초장왕은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지는 듯했다.
"그렇구나. 우리가 둔전하는 척하면 송나라 사람이 아무리 고집스럽다 하더라도 질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초장왕(楚莊王)은 공자 측(側)을 불러 지시했다.
- 지금부터 송성(宋城) 주변에다 각기 살림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라.
우리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군사들을 열 명 단위로 반(班)을 조직하라.
그리하여 각 반마다 다섯 명은 나가 성을 공격하고, 나머지 다섯 명은 집을 짓고 밭을 일구도록 하라.
다음날부터 초군(楚軍)은 영채 주변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초군이 둔전한다는 소식은 상구성 안에 전해졌다.
아니나다를까. 송나라 재상 화원(華元)은 기절초풍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그는 밤새 고심하다가 한 가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날이 밝자마자 충혈된 눈으로 송문공을 찾아갔다.
"초왕은 돌아갈 뜻이 없고, 구원군은 당도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신은 지난날의 조말(曹沫)이 되어 단신으로 초군의 진영을 찾아가 초군 대장 측(側)을 위협함으로써 화평을 교섭해볼까 합니다."
제환공 시절의 일이었다.
어느 해인가 제환공(齊桓公)은 노나라를 침공하여 수(遂) 땅을 점령한 후 노장공과 회맹을 가졌다.
그때 노나라 장수 조말(曹沫)이 노장공을 수행하여 제단 위로 오르는 도중 제환공의 목에 칼을 들이댄 후 빼앗긴 땅을 돌려달라고 위협한 적이 있었다.
제환공은 다급한 김에 조말의 요구를 승낙했다.
그 뒤 제환공이 이를 번복하려 할 때 관중(管仲)이,
-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한 약속도 약속입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노(魯)나라는 빼앗긴 땅을 되찾은 적이 있었다.
화원(華元)이 조말이 되겠다는 것은 곧 초군 대장을 찾아가 담판을 짓겠다는 각오를 말함이었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송문공(宋文公)은 화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직이 망하느냐 존속하느냐는 오로지 그대의 이번 걸음에 달려 있구려. 조심하고 또 조심하오.“
화원(華元)은 초군 대장 측(側)이 망루 안에 기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사전에 망루의 구조를 세밀히 염탐해냈다.
그날 밤이었다.
화원(華元)은 초장왕의 알자(謁者)로 변장한 후 상구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알자란 왕이나 제후의 말을 전하는 임무를 맡은 시종이다.
그는 공자 측(側)이 기거하는 망루 앞으로 갔다.
순찰병이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냐?“
화원(華元)은 대답 대신 오히려 고자세로 되물었다.
"장군은 위에 계시는가?“
"계시오만..... 누구시오?“
"나는 왕의 알자노라. 위로 올라가 장군을 만나뵈야겠다."
초장왕(楚莊王)의 시종이라는 말에 순찰병은 태도가 공손해졌다.
"장군께서는 아까 왕께서 하사하신 술을 마시고 이미 잠자리에 드셨소.
아무래도 깨우기가 어려울 것 같소.“
"왕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장군이 취하여 자고 있을지 모른다며 말 한마디를 전하고 오라 하셨다.“
순찰병은 화원의 말을 곧이듣고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화원(華元)은 망루 위로 올라가 공자 측(側)이 거처하는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엔 아직 등불이 밝혀져 있었고, 공자 측은 침상에 누워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일어나시오.“
화원은 공자 측(側)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공자 측(側)이 눈을 뜨며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화원은 재빨리 날카로운 비수를 그의 목에 갖다대었다.
"누구냐?“
공자 측의 황급해 하는 물음에 화원(華元)이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장군은 놀라지 마십시오. 나는 송나라 재상 화원(華元)이라는 사람이외다.
우리 주공의 명을 받고 초나라와 화평을 청하러 왔소.
장군이 내 말을 따른다면 모르거니와, 만일 우리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난 이 자리에서 당신과 함께 죽겠소.“
화원의 오른손에 들려져 있는 비수가 등불에 반사되어 번쩍 빛났다.
그러나 공자 측(側)은 확실히 한 나라의 대장군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화원의 얼굴과 손에 쥐어져 있는 비수를 번갈아 보더니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초나라와 송나라 간의 화평은 작은 일이 아니오.
이 같은 행동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외다.
그대가 진정 송나라 재상이라면 피차 경솔히 행동하지 맙시다."
이 같은 공자 측(側)의 태도에 화원은 직감적으로 말이 통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얼른 비수를 거두고 사과했다.
"나의 지나친 행동을 나무라지는 마시오. 사세가 너무 급박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소."
공자 측(側) 또한 화원의 선선한 행동에 감탄했다.
두 사람은 곧 자세를 바로 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공자 측이 먼저 물었다.
"성안의 형편은 어떠하오?“
화원(華元)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백성들은 자식을 서로 바꿔먹고, 해골을 주워다 불을 때는 판이지요.
이 같은 참상은 유사 이래 처음일 것이오.“
"송(宋)나라 처지가 그 지경까지 이르렀을 줄은 몰랐소. 참으로 미안한 일이오.“
"장군이 이번 일을 해결해주시오.“
"한 가지 의문이 있소.“
"말씀해보시오."
"내가 알기로 군사(軍事)란 속이 허하면 겉으로 충실한 체해야 하고, 속이 충실하면 겉으로 허안 체하는 법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적인 나에게 성안의 어려운 실정을 사실대로 말해주는 것이오?"
"그 이유는 간단하오.
무릇 군자(君子)는 남이 위기에 처해 있으면 동정하고, 소인(小人)은 남의 불행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오.
내가 알기로 장군은 군자이오. 그것을 아는데 내 무엇을 감추겠소?“
"그럼 왜 항복하지 않소?"
"나라는 피폐해졌지만 사람들의 뜻은 조금도 피폐해지질 않는구려.
군주와 백성이 다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성을 지키려는데, 어찌 항복할 수 있겠소?
장군은 우리의 뜻을 십분 이해하시고 항복 대신 화평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는 것이 어떻소?"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일단 포위를 풀어 30리를 물러나 주시오.
그러면 우리 주공은 귀국과 화친을 맺고 영원토록 초(楚)나라를 섬길 것이외다.“
"좋소. 그대가 사실대로 말하니 나도 그대를 속이지 않겠소.
지금 우리 군중엔 엿새치 먹을 양식밖에 없소. 앞으로 6일이 지나면 우리는 본국으로 돌아갈 작정이었소.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나는 우리 왕께 아뢰어 1사(一舍)를 물러나겠소.
그러니 그대의 임금과 신하들도 부디 신(信)을 잃지 않기 바라오."
"하늘에 대고 맹세하겠소.
초군이 30리만 물러간다면 우리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반드시 귀국과 화친하겠소.
화친이 성립되면 나는 그대 나라로 가 인질이 되겠소.“
화원(華元)과 공자 측(側)은 서로 마음이 통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용솟음쳐 올라왔다.
공자 측(側)이 화원(華元)의 손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우리 오늘 밤 의형제를 맺는 것이 어떻소?“
"바라는 바이오.“
두 사람은 결의형제를 맺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