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
(슥 7:1-14)
가장 위대한 것 그러나 본연의 의미를 잃는다면 가장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 믿는 것이 그렇습니다. 가장 위대한 것이면서도 바로 믿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그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금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금식의 의미대로 바르게 한다면 우리 영적 생활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영적 생활만이 아닙니다. 병을 치료하는데도 바르게만 한다면 돈 들지 않는 방법으로는 금식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동물들도 아프면 일체 먹지 않는 단식해서 치료합니다. 일체 식사하지 않고 저녁에만 물 마시는 단식을 하거나, 하루 한 끼나 두 끼의 소식을 하면서 저녁에만 물을 마시는 부분 단식 즉 소식을 하게 되면 공복 시간에 우리 몸은 위산의 불로 인해 체내의 모든 노폐물이나 불필요한 지방질이 타지면서 깨끗이 정화된다고 합니다. 이 태우는 힘이 얼마나 강하든지 몸 안의 암세포까지도 없애버립니다.
제가 간혹 들리는 동호회의 어느 두 회원은 3개월 소식을 하고 불치의 병이라는 에이즈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짜 좋은 약은 우리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안에 있다는 것이지요. 소식을 하면 장수하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금식은 바르게만 한다면 영육 간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5월이면 언제나 금식을 했습니다. 왜 5월에 금식했을까요? 5월이 언제입니까? 5월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달입니다. 정확히 B.C.586년 5월 7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때의 슬픔을 생각하며 5월 한 달 동안 바벨론 포로 중에서는 물론 귀환한 후에도 5월 한 달을 금식의 달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때의 상처도 어느 정도 지워졌고 성전재건도 한창이므로 마냥 슬퍼해야만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벧엘 사람들에 의해 제기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그 답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금식과 위선과 불순종을 책망하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변질된 금식은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6절에 나와 있는 대로 그들의 금식은 회개와 각성을 위한 금식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는 금식일 뿐이었습니다. 즉 그날의 고통을 잊지 말자는 통분의 금식일 뿐이었습니다. 진정 금식의 의미대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나아가 고통당하는 자들의 고통을 체휼하면서 사랑하는 금식이었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 주셨을까요?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참된 금식을 한다면 그 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이사야 58장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사58:8-12절입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어둠이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영육 간의 질고가 치료 되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성령의 열매가 맺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영광의 축복입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응답의 축복)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대화의 축복입니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한 마디로 은혜와 천국의 축복입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복입니다.)” 이 얼마나 영육 간에 놀라운 복입니까?
그러므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능력 받기 위해서 금식하는 것 아닙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 금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금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기도하면 금식해도 실패합니다. 금식의 첫째 의미가 회개인데 회개하면서 무슨 조건이 그렇게 많고 큽니까? 여기 회개에는 죄에 대한 회개 뿐 아니라 약해짐을 통해 자기 부족을 인식하는 겸손도 포함 됩니다. 이런 점을 인식한다면 금식은 실패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금식하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 고통을 체험하면서 돌아보지 못함을 회개하고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하면서 절약된 금식미나 반찬값 등은 구제에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금식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회개와 사랑이 금식의 의미입니다. 진정 이런 정신으로 바로만 금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않아도 능력도 주실 것이고 부흥도 주실 것이고 건강도 주실 것이고 문제 해결도 주실 것입니다.
독일내과병원장으로 있는 전인치유교회 박관목사는 “금식기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며, 질병의 심근경색증처럼 영적인 관계가 막히는 ‘경색증’은 오직 금식기도를 통해서만이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폐암에 걸린 분이 강남금식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로 고침 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분은 박** 집사라는 여자 분인데 폐암에 걸려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전신이 아프기 시작했고 팔과 다리는 하루 종일 저리고 먹은 것은 모두 토했습니다. 다섯 달을 이렇게 치료했으나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죽더라도 기도하다가 죽기로 다짐하고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기 시작했습니다. 7일간 약속하고 금식하면서 둘째 날부터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시간 시간마다 눈물로 회개하는데 회개할 때마다 신기한 것은 속이 후련하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5일째 화장실에 갔는데 물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기에 보았더니 온통 검붉은 핏덩이인데 이상한 것은 그 때부터 손 발저림이 사라지고 목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까지 그는 자기와 자녀와 남편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이 간증에서도 보듯이 금식해서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금식하며 회개할 때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7-1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하면서도 선지자들의 외친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관원들은 재판을 뇌물 받고 해서 사회정의가 실현 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권하는 말씀이 싫어서 등을 돌리고 귀를 막으며 마음을 금강석 같이 하였습니다. 말씀 따로 생활 따로였다는 말입니다. 이런 믿음은 아무리 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물론 남방 사막과 서편 대해의 저지대까지도 백성이 거했는데 황무하게 폐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서 돌아와 금식마저도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금식 따로 생활 따로, 신앙이 의미를 잃고 의식화 되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변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 즉 근채마저도 열심히 십일조를 드렸지만 십일조의 진정한 의미인 의와 믿음과 사랑은 버렸습니다.
왜 십일조가 의와 인과 신입니까? 악한 일로 번 돈은 하나님께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드리려면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또 십일조의 정신은 인인데 즉 왜 사랑입니까? 그것은 제사장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드릴 수 없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왜 신 즉 믿음입니까? 내 기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충성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정신이란 고도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정신 가지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복 주시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나 십일조 따로 삶 따로가 아닙니다.
이처럼 회개와 겸손과 사랑을 위해 금식할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금식하면서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합니다. 도리어 금식하다가 더 시험에 휘말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금식에 대한 답변 대신 계속하여 회개와 말씀에 대한 청종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금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공적이든 아니든 금식해 보셨습니까? 금식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몸부림이기에 하나님께서 크게 받으십니다. 우리 모두 회개와 겸손과 사랑이 있는 진정한 금식을 드려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해 주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