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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24 (다니엘의 개인예배)
성경본문 : 다니엘 9: 20-24
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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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피영민목사
서론
다니엘은 선지자 가운데서도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용기 있고 담대하며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능력이 많으면 교만하고, 겸손하면 무능해서 두 가지를 함께 갖추기가 어려운데 다니엘은 능력도 많고 겸손했습니다. 흠을 잡으려고 해도 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상적인 하나님의 종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선지자 가운데 다니엘을 가장 닮고 싶습니다. 그는 영적인 생활, 공적인 생활, 개인적인 생활 모든 면에서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이처럼 모든 면에 성공한 비결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왕을 모시는 사람이었습니다. 메대 바사가 나라를 120도로 나누어 총리 셋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다니엘 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바뀌어도 계속해서 쓰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한 왕을 섬기면 그 왕 앞에 죽도록 충성을 하는데 다음 왕이 오면 보통 다시 쓰임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정권이 바뀌든지 나라가 바뀌든지 왕이 바뀌든지 관계없이 계속해서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얼마나 훌륭하고 탁월한 사람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왕을 섬겨도 왕에게 아첨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한 정권하에서 아첨하는 사람은 다음정권에서는 쓰임 받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정권하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지조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다음 정권하에서도 그 사람을 인정하고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바쁜 사람이었고 그가 수행해야 될 사명은 대단히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용한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총명을 얻어 총리로서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고 선지자 가운데서도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일을 했고 메대 바사에서 일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는 느브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과 다리오 왕 등 여러 왕을 섬겼지만 그의 마음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 한 왕만 섬겼습니다. 그는 이방의 도성을 위해 일을 했습니다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늘의 도성에 있었던 것입니다.다니엘은 공적인 인물이었고 공적인 삶에서 그의 원수들이 흠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무릎 꿇고 기도한다는 것 이외에는 그에게서 흠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감히 도전이 불가능한 인물이었다는 말입니다.그가 공적인 생활에서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그의 사적인 예배가 훌륭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으면 영혼에 공허감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영혼에 공허감이 오는 이유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내적으로 공허하면 그 사람은 가정생활도 공허하고 공적인 생활도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다니엘로부터 개인예배에 대해서 배우기를 원하는데 우리는 다니엘로부터 근본적이고 분명한 개인예배의 삼대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다니엘은 규칙적인 개인예배의 “훈련된 습관(disciplined habit)”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습관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6장에 보면 어리석은 왕 다리오는 신하들이 다니엘을 모함하려는 꼬임에 빠져 악한 조서에 어인을 찍었습니다. 그 조서는 앞으로 30일 동안에는 왕 이외에 어떤 존재에게라도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악한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조서에 어인이 찍히든 말든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라는 말에서 다니엘의 습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광풍이 올 때는 피해 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처럼 다니엘은 타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행하던 대로 창문 열고 사람들이 보든지 말든지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과시하기 위해서 과잉반응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 창문을 열고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조서를 발표하기 전이나 발표한 후나 아무차이가 없이 그는 행하던 습관대로 행하였을 뿐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런 좋은 습관을 형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고통이 올 것을 걱정하셔서 그렇게 갑자기 올라가서 기도하셨나보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으로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니 늘 기도할 때가 되면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날 밤도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습관을 좇아가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날 비로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늘 하시던 평소 습관대로 기도하러 올라가셨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몸에 배면 그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습관은 결국 그 사람의 운명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그러므로 좋은 습관을 형성해야 됩니다. 우리가 운전을 할 때 좌회전하려면 왼손이 방향지시등을 내리고 우회전하려면 올려서 깜빡이를 넣게됩니다. 깜빡 졸면서 운전을 해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그것은 운전하기 전에 읽은 운전법을 천천히 생각하며 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 되어 몸에 밴 습관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평소에 철저한 경건생활의 훈련을 해야 어려운 상황이 와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총명을 얻고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훈련된 경건의 습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 찾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루에 10분이라도 성경 읽고 기도하는 사람은 일생동안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경건의 습관 없이는 아무도 영적인 거성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님도 성경 읽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고 영권있는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다니엘이 구체적으로 성경공부를 어떻게 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지만 우리는 두 가지로 미루어볼 때 다니엘의 성경연구가 철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니엘 9장 2절의 기록입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구입해서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5장 11절로 12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운행 계획을 알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운행 계획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분명히 계시되었습니다. “유다백성들은 언약을 어긴 결과로 포로되어 끌려갈 것이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끌고 갈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의 포로생활은 영원히 될 것이 아니라 70년으로 마치게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70년 후에는 아무리 강한 바벨론이라 할지라도 죄악으로 인해 망해버릴 것이다. 그러면 유다백성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것을 다니엘은 성경을 공부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도 피상적으로 읽지 말고 철저히 읽으십시오. 다니엘은 성경을 철저히 읽었기 때문에 이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다니엘의 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 내용은 구구절절이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다니엘의 기도에 대해서 “그의 모든 기도언어는 성경의 언어로 푹 잠겨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잡지나 신문에서 본 언어(language)가 아니라 성경의 언어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오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시라” 이런 것이 성경의 언어입니다. 하늘에 상달되는 느낌을 갖는 기도는 성경의 언어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모든 내용이 구구절절이 성경구절로 다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몇 일 동안 성경을 읽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머리에 두고 기억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안 읽어도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니엘입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칼빈(John Calvin)은 다니엘에 대해서 “다니엘은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는 기록된 성경을 무시할 만큼 교만하지 아니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의 신앙은 환상에 근거한 신앙이 아니라 책의 신앙(religion of book)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책의 신앙입니다. 성경책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책을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읽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세기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운동이 소위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입니다. 그런데 이 운동의 약점 가운데 하나는 환상, 계시, 음성, 예언 등 주관적인 은사에 치중하다가 문서계시를 무시했다는 점입니다. 문서계시인 기록된 성경을 무시하는 운동은 아무리 기상천외한 예언과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도 결국 혼란을 초래할 뿐인 것입니다. 불건전한 신비주의 운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입니다. 물론 우리가 책을 읽고 기도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신비한 역사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환상과 예언과 꿈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좇아가면 안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책의 신앙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의 신앙의 중심에는 기록된 성경이 있었고 문서계시는 그의 신앙의 규범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사랑하고 읽으십시오. 성경을 집에다 놓고 예배드리러 올 때만 갖고 오는 교인으로 살지 마십시오.
스펄젼 목사님의 전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펄젼 목사님의 할아버지도 목사님이고 아버지도 목사님이셨는데 스펄젼의 아버지가 자녀도 많고 바빠 스펄젼이 한살부터 여섯 살 때까지 할아버지께서 그를 키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스펄젼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친구 목사님들이 모여 하는 목회얘기를 듣고 목회감각을 길렀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우리교회 한 집사님이 속을 썩여 괴롭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 집사님은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심지어는 예배드릴 때도 술냄새를 풍기면서 예배시간 내내 졸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섯 살의 스펄젼이 그 집사님이 있는 술집에 가더니 그 집사님에게 “너 엘리야여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고? 교회집사가 여기서 대낮부터 술이나 마시고 할아버지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 내가 당신 같으면 그렇게 안하겠다.” 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고 나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집사님은 분노가 치밀어 술이 확 깨 혼내주려고 좇아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어린 스펄젼 말이 옳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이 그 다음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고 읽어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면 마귀가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셔서 우리 삶은 축복과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영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가끔 읽는 사람이 안읽는 사람보단 낫습니다. 밥을 안먹으면 금방 죽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이라도 먹으면 몇 년이라도 목숨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먹어 가지고는 건강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잘 먹어야 됩니다. 아침, 점심, 저녁, 밥 세끼를 잘 먹는 사람은 보약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영혼이 기쁘고 공허감이 없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느낌을 가지고 살고 싶다는 사람은 성경을 읽으십시오. 오늘 성경퀴즈대회가 있는데 올해 못나온 사람은 내년도에는 꼭 출전하시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성경을 읽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에 꿀을 발라놓고 꿀 먹는 재미로 성경을 읽다가 눈에 자꾸 성경이 들어오니 나중에는 내 입의 꿀보다 성경이 더 달다며 꿀은 치우고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만 잘 읽어도 우리의 신앙이 비뚤어 가거나 우리의 가정에 악한 사단이 역사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3. 다니엘은 진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 2장에 느브갓네살 왕이 꿈이 뭔지도 모르는데 꿈 내용과 함께 해석까지 알려 달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합니다. 그리고 알려주지 못하면 바벨론의 모든 박사와 술객을 다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니엘이 세 친구와 함께 다니엘 2장 18절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고 말합니다. 자기도 기도하고 친구도 기도시켜서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고 다니엘에게 느브갓네살 왕이 꾼 신상의 꿈과 그 해석도 알게 해 자기도 살고 박사들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 9장의 기도는 가장 모범적인 기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도는 기독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신자와 무당들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에는 거짓된 기도와 참된 기도,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악령에게 기도하는 것은 거짓된 기도입니다. 기도를 하기는 해도 대상과 목적과 내용이 잘못된 것은 거짓된 기도입니다. 그런데 다니엘 9장에는 참된 기도의 네 가지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첫째, 참된 기도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기도였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다니엘 9장 2절에 “나 다니엘이 깨달았나니” 그러므로 3절에 “내가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했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참된 기도이지 자기 욕심으로 생각해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이 참된 기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죄를 자백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내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성경에도 모든 믿는 자는 부자가 된다는 약속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욕심에서 나오는 것을 가지고 붙들고 기도하는 것은 참된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참된 기도인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참된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가득한 기도였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함부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9장 4절에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라고 기록되었고, 9절에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라고 기록되었으며, 14절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죄를 사하십니다. 인자하십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할 하나님이십니다.”라며 하나님을 향해 기도 중에 계속해서 경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마치 위대하고 사랑 많은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충신의 탄원과도 같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과 가깝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버릇없는 표현을 가지고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이시고 내가 예수 믿어 예수의 의로 의롭게 된 것이다. 그 의로운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법적으로 칭해주셔서 된 것이지 내가 실질적으로 의로운 것은 아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죄인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죄인이고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간격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말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요 구원자요 산성이요 피난처요”라며 성경에 있는 용어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계속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참된 기도는 죄에 대한 구체적인 고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9장 5절로 14절 까지에 반복되어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자신과 유다백성들이 범죄했고 패역했고 행악했으므로 우리에게 수욕이 돌아왔도다(Shame on us)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니엘은 반복해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울러 하나님은 긍휼하시고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오니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목사 안수 받은지 23년째가 됩니다. 그런데 이제야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죄를 자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부끄럽습니다. 내 생각에도 손에도 눈에도 입에도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이렇게 죄를 자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 마음의 죄악과 행동의 부패를 구체적으로 털어놔야 됩니다.
판사가 재판하며 죄가 있냐고 물을 때 죄가 있지만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누가 있냐는 식으로 말하면 괘씸해서 형벌을 더 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냐고 물을 때 “저는 죄가 있습니다. 저는 몇 월 몇 일 몇 시에 담을 넘어서 남의 집에 들어가 다이아몬드와 시계를 훔쳐가지고 나와 어느 집에 팔고 돈 얼마를 받았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면 판사가 형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자백은 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언제나 자기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 앞에 허물되는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자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양심에 평화를 얻고 예수의 피는 우리 영혼을 씻어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다니엘은 유다백성의 죄를 흐르는 눈물과 타는 가슴으로 자백하고 있습니다. 참된 기도는 죄의 자백이 포함됩니다.
넷째, 참된 기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살려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17절에 봐도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19절에 봐도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하려는 동기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저를 축복하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 제게는 예수의 이름이 있습니다. 내가 잘되지 않으면 예수님도 망신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저를 통해 예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이 높아지려면 저도 좀 같이 높아져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를 높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가족구원을 위해서 기도해도 “하나님 제 가족을 다 구원해서 천국가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보단 “하나님 제 가족을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십시오.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할 때도 “하나님 제 병을 고쳐서 제가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맛있게 먹고 잘 놀 것 아닙니까?”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세계만방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다니엘은 이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은 다니엘처럼 기도하고 계십니까?
다니엘처럼 기도하면 우리는 다니엘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처럼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니엘 같은 능력있는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처럼 기도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결론
다니엘은 이렇게 개인예배에 성공했기 때문에 받은 칭호가 있습니다.
9장 23절에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기록되었고, 10장 11절에도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라고 기록되었으며, 10장 19절에도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니엘의 별명은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크게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기도와 진지한 성경연구로 경건생활을 습관화하는 데서 내공이 쌓이고 영권이 쌓여서 결국 하나님은 다니엘을 크게 은총을 받은 사람이 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성공원인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생활이 흩어진 사람은 다시한번 경건의 습관을 형성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인 롱펠로우(Longfellow)는 “어느 분야에서든지 두각을 나타내고 유명해진 사람은 갑자기 도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이 잠잘 때에 그들은 피땀 흘리며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장사든 학문이든 정치든 목회든 어느 분야에서든지 두각을 나타내고 높아진 사람은 하루아침에 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노력해서 됐다는 말입니다.
남들은 TV보고 술 마시며 놀 때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향한 개인예배에 힘쓴 사람은 언젠가는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하나님이 그를 어느 순간 두각이 나타나는 인물이 되게 하시고 정상에 올려놓으실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