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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지 목사
지난 주간에 각급 학교가 졸업식을 했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각급 학교가 입학식을 갖습니다.
이런 때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전도서 끝 부분에 있는 말씀은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것입니다.
전도서는 지혜문학 가운데 하나인데,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1~2)라는 말로 시작되고 끝 장인 12장에서,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전12:8~10)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라’는 결론적인 교훈을 내리는 것으로 끝납니다.
전도서는 일반적으로 솔로몬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 가운데 「현대인의 성경」은 전도서의 제목을 「솔로몬의 인생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자신을 ‘나 솔로몬은’ 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이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란 히브리어 ‘코헬레트“를 번역한 것인데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말하거나 전달하는 사람‘ 이런 뜻입니다. ’설교자‘ ’전파자‘ ’성직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나 솔로몬은’ 하면 그 말이 더 권위 있게 들릴 것입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요즘 쓰는 말로 알기 쉽게 말하면 대단한 브랜드입니다.
‘나 이스라엘 왕 솔로몬은’ 하면 더욱 권위 있게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왜 ‘나 솔로몬은’ 이런 말을 쓰지 않고 ‘전도자’라는 말을 썼을까?
‘나는 왕으로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많은 체험을 한 사람으로 이 말을 합니다’
하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지하게, 진솔하게 말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마지못해 자기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마음을 열고 듣도록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직장에서 나이가 위인 상급자가 ‘아무개 씨, 이것은 내가 직장의 상급자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 하는 말입니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귀기울여 듣고, 마음에 담아두려고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고, 다양한 체험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솔로몬이 젊은이들에게 진심으로 주고 싶어하는 교훈입니다.
이 말을 읽으면서 젊은이들은 ‘나는 나의 젊음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젊음이 지난 세대, 어른들은 ‘나는 또 어떻게 해야 하고, 젊은 세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젊음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9절 앞부분을 보세요.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며 네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이는 대로 행하라”
청년들은 청년의 때를 즐겁게 보내야합니다.
청년의 때는 참 아름답습니다. 전도자는 전도서 3장 11절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라고 했는데 청년의 때는 가장 아름다운 때입니다.
젊음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청년들, 청년의 때를 즐겁게, 아름답게,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힘쓰며, 도전하고 시도하기에 힘쓰며 보내시기 바랍니다.
푸른 꿈을 안고 사시기 바랍니다.
공연히 위축되고, 걱정하고, 억눌려서 보내는 것은 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알면서 즐겨야합니다.
솔로몬은 9절 뒷부분에서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방종한 생활을 심판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면서 책임도 철저하게 물으시는 분입니다.
젊은이들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12장 1절을 다시 보세요.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무엇을 기억하라’는 말은 ‘그냥 머리에 담아두어라’는 의미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큰 어려움을 당한다’는 경고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마사다를 기억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사다는 사해 부근에 있는 요새입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함락되었을 때 끝까지 저항하던 유대인 960명이 여기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최후 항전을 했습니다.
로마군대가 토담 경사로를 만들고 공격해 들어와서 더 이상 방어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은 모두 자결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청년들이 군대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을 때 최종 코스가 마사다에 오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사다에 올라 ‘마사다 네버 어게인!(Masads Never Again!)’이라고 외치는 것으로 훈련을 끝낸다고 합니다.
‘마사다의 비극은 다시 없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마사다를 기억하라’ 이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유와 독립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다!’ 이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진주만은 미국 태평양함대가 있는 곳인데 일본 해군기동부대가 1941년 12월 7일, 이곳을 기습공격 하여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말에는 그 일을 기억하면서 늘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그런 일, 또는 그보다 큰 일을 겪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삼일절이 돌아오면 ‘제암리(堤巖里)를 기억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제암리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에 있는 마을인데 기독교가 일찍 들어가서 주민들이 깨어 있었고 민족의식이 강했습니다.
삼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자 제암리교회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향남면 일대에서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일본 군대가 이것을 보복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와서 남자 신도들을 교회에 모아놓고 출입문을 잠그고 집중사격을 해서 스물세 명이 죽었습니다.
제암리를 기억하라는 말은 선조들의 희생과 일본의 만행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짧으면서도 많은 교훈을 함축하고 있는 아주 강한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에는 성경에 기록된 청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청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청년은 주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편 119편 9절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성경은 청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청년의 때에 멍에를 메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 3장 27절과 28절입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멍에를 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을 겪는다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은 어려움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많은 청년들이 취업난이라는 멍에를 메고 있습니다.
지금 심방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년축복대심방으로 출발했는데 이번 주일부터는 ‘신년’은 빼고 ‘축복대심방’이라는 이름으로 심방할 것입니다.
심방을 받는 가정들 가운데 여러 가정에서 자녀들의 취업 문제 때문에 걱정하면서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좋은 직장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으면서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지나치게 걱정하면 나중에 취업이 되었을 때 멋 적어집니다.
지금 취업을 위해 힘쓰는 것도 나중에 유익한 체험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청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청년들은 신중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청년은 혈기에 사로잡혀 서두르기 쉽습니다. 그러면 실수가 뒤따릅니다.
바울 서신의 하나인 디도서에는 교회를 이끌어나가는데 필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디도서 2장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여 함이라”
청년들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청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본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과 13절입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는 바울 사도가 청년 디모데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이 말씀 바로 앞에서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인 것을 명하고 가르치라고 말하고 13절에서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있습니다.
청년부 회원들 가운데 교회학교 교사로 수고하고 있는 이들은 바울 사도의 이 권면을 잘 순종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아, 가르치는 일이 참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저의 경우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34년 활동하고 있는데 처음에 고등학교 교사를 4년 반하고 이십여 년을 방송분야에서 일했습니다. 방송생활한 기간 대 교사생활한 기간의 비율이 6:1입니다. 그러면 이야기할 때 방송분야에서 일하던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가르치는 생활을 할 때 이야기를 더 많이 합니다. 자신의 체험을 설교 예화로 사용할 때도 그렇습니다.
여기 교사들, 가르치는 일에 힘쓰세요. 중요한 일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입니다.
‘목사님 주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 신중해야 한다, 본을 보여야 한다,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너무 많아요. 기억하기 힘들어요’ 하는 청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두 단어를 집중적으로 기억하세요. ‘하나님’이라는 말과 ‘경건’이라는 말입니다.
조금 전에 전도서 3장 11절 앞부분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는 말씀을 소개하면서 청년의 때는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하였습니다.
3장 11절의 그 뒤에는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크게 해야할 때입니다. 극대화해야 할 때입니다.
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바로 경건입니다.
젊을 때는 인생을 즐기다가, 세상을 사모하며 살다가 나이가 많아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하늘나라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손해보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청년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전도서 4장 13절에서 16절까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여기 나오는 젊은이는 요셉입니다. 16절의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는 말씀은 요셉이 죽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요셉을 모르는 애굽의 왕들이 히브리인들을 박해한 것을 말합니다.
요셉은 젊은 시절을 경건하게 보낸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형들의 핍박, 억울한 종살이와 감옥살이의 멍에를 메면서도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경건, 이 두 말을 기억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젊음은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젊음은 더 아름답습니다.
아니 하나님 안에 있어야 그 젊음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젊음과 하나님 안에 있지 않은 젊음은 다릅니다.
졸업도 하나님 안에서의 졸업, 크리스천 청년들의 졸업과 하나님 밖의 졸업은 다릅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로마법과대학에 다니는 한 청년이 학비가 부족해서 넬리라는 부자 노인에게 학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넬리 노인은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그런데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물었습니다.
청년은 ‘우선 대학을 졸업해야지요’ 라고 대답했고 넬리 노인은 ‘그 다음에는?’ 묻고 청년은 변호사가 되겠다고 하고 노인은 다시 ‘그 다음은?’ 하고 청년은 돈을 벌고, 결혼하고 마차를 사서 여행을 하며 즐겁게 살고 대답하다가, ‘나이가 많아 늘어지고 그 다음에는?’ 하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넬리 노인은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예수님 안에서는 영원한 천국, 예수님 밖에서는 영원한 지옥!’ 이렇게 말했고 이 말에 자극을 받은 청년은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밖에서의 졸업은 이 청년이 회심하기 전에 생각하고 있던 수준의 졸업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졸업은 영원한 생명과 연결된 졸업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졸업생들은 하나님 안에서 졸업하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청년들의 때가 지난 세대, 저와 같은 세대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우선 ‘나도 청년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50대는 60대에 비하면 청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대는 70대에 비하면 청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에 ‘상대적 청년’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청년의 기준은 일차적으로 나이입니다. 나이로는 청년의 기준을 넘었어도 의욕을 가지고 있으면 청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에 ‘상징적 청년’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우리 청년 아닌 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상징적인 청년이 되어야 합니다.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어제 「국민일보」에 자세하게 보도되었는데 안요한 목사님이 이끌고 있는 새빛시각장애인선교회에서 중증장애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짓기로 하고 지난 목요일에 착공예배를 드렸습니다.
용인시의 동남쪽에 있는 원삼면의 한 마을에 기증 받은 땅에다 짓는데 착공예배 설교를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요즘 심방 때문에 다른 일들은 거의 하지 못하는데 그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안요한 목사님은 1939년 생이니까 나이가 그 분 표현대로 하면 6학년 6반입니다. 이제 쉬고 싶은 때입니다. 중도실명장애인으로 남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또 자기 혼자만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의 많은 식구들을 돌보아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왔기 때문에 더 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일에 도전합니다. 몇 해 전에 방배동에 새빛맹인교회 건물을 짓느라고 어려움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을 텐데 그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건물을 지으려고 합니다.
저는 마음이 숙연해 지는 것을 느끼며 응낙을 했습니다.
그런데 5분만 설교하라고 합니다. 주민들이 반대해서 2년 동안 착공을 못하다가 이제 착공하게 되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예배를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 새벽기도회에서 기도를 부탁하고 두 집 심방하고 착공현장에 가서 설교하고 급히 돌아와서 여덟 집을 더 심방했습니다.
‘새빛 양로원 건축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 여기 저기 붙어 있는 가운데 예배를 드렸는데 저희 교회가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더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긴장된 분위기였는데 별일은 없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곳 주민들은 강남 어디 주민들 보다 그래도 선량하다’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 때의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목양의 성도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1남선교회, 1여선교회 회원들부터 모두 꿈과 의욕을 가진 상징적 청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목양교회는 청년교회가 될 것입니다.
어른들의 세대는 또 자신의 체험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젊은 때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솔로몬의 후회’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솔로몬이 나이가 많아져서 자기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젊은 때를 경건하게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11장 뒷부분과 12장 앞부분을 기록했음이 틀림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많은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그 여인들이 자기 나라에서 가지고 온 우상들을 숭배하는 것이 전국에 퍼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백성의 불만이 커지는 것을 들었고 분열의 조짐을 보았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소홀히 한 것을 후회하면서, 왕이 되었을 때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간구하던 그 믿음을 유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오늘의 이 본문을 적었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젊을 때의 그 왕성한 체력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2절 이하는 노년기에 신체가 점점 쇠약해져 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3절의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요”라는 말은 신체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손과 팔의 힘이 약해질 것 의미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요”라는 것은 다리의 근육과 뼈가 약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요”
맷돌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입니다. 이가 빠져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시력이 약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길거리의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길거리의 문들은 귀입니다. 귀가 어두워지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는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5절의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는 머리털이 희게 될 것을 말합니다.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는 가벼운 것도 들기 힘들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6절의 “은 줄이 풀리고”는 척추신경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끼지고”에서 금 그릇은 두개골, 항아리와 바퀴는 순환기 계통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이런 것들의 기능이 약해지기 전에, 요약해 말해서 젊을 때 육신을 잘 써야 하는데 육신을 가장 잘 쓰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직접 간접으로 다양한 희로애락을 체험한 인물입니다.
또한 모순적인 현실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진지하게 지혜를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그가 누리고 체험하고 추구했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모두 무상한 것임을 여러 차례 고백하고 있습니다.
히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다가오는 늙음과 죽음 앞에서 더욱 그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독자에게, 특히 가장 활동적으로 여러 가지를 추구하는 청년들에게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사람은 죽은 후에 그분께로 돌아가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삶은 허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깊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을 전도서의 마지막 부분에 놓았습니다.
젊은이들이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전도서에서도 핵심이고 클라이맥스입니다.
솔로몬은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을 끝내고 전도서를 얼른 끝내고 있습니다. 희곡이나 드라마를 쓸 때 클라이맥스까지 올라갔으면 빨리 끝내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인기가 높아지면 클라이맥스가 지난 다음에도 질질 끌다가 실패하는 일이 많은데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들은 솔로몬의 이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가?
이미 헛된 것으로 드러난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느라고 젊음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창조주 하나님을 잊고 목적 없는 삶을 살지는 않는가?
이런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젊은이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선물인 젊음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일에 힘쓰기 바랍니다.
나이 많은 분들은 젊음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젊을 때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젊음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일에 힘쓰라고 알려주기 바랍니다.
모두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일에 힘쓰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