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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마을(삼천지) ▷ 감천1교 ▷ 진막골 ▷ 무량사 ▷ 영양전통시장
구간거리 : 6.5km
오일도 시인의 생가가 있는 감천마을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다음 마을을 빠져나와 완만한 경사의 이중산 자락의 산길을 오르내리면 오늘 네 번째 반변천을 이어주는 감천1교가 나온다
감천1교를 지나 31번 국도를 버리고 좌측 반변천 제방길로 들어서 진막골까지 약 1.3km 구간은 감입곡류(嵌入谷流)로 흐르는 멋진 하안단애(河岸段崖)와 수직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반변천이 만든
외씨버선길 5코스(오일도시인의길)에서의 최고의 진경(珍景)을 보면서 유유자적 한가롭게 걷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제방을 따라 걷다 보면 최근에 놓인 것으로 보이는 다리(원주평교)가 나오고 다리 옆에는 과거에 진막골로 들어가는 진입로 역할을 했던 '세월교'라고 지도상에 표시된 시멘트 길이 있으나
물속에 잠겨 있어 부득이 새로 놓인 다리를 건너 진막골로 들어서면 마을 입구에 외씨버선길 인증 촬영장소인 표지목이 서 있다
골짜기에 논밭이 많다는 뜻으로 이름 붙혀졌다는 '진막골' 마을길을 지나 다시 표대산 자락의 산길로 올라 성황당에 이르는 길은 이곳 주민참여 사업으로 복원한 옛길이라고 하는데
제법 경사가 있는데다 길이 좁고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질척이어 여기에 땅 마지기나 마련할 생각이 없다면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성황당을 지나 무량사까지는 널찍하게 포장된 콘크리트 길이라 편하게 걸을 수 있지만, 무량사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버선길은 다시 산길로 들어가야 되는데 자칫 진입로를 지나칠 수 있다
약간 미끄럽기는 하지만 길지 않은 완만한 산길을 지나면 영양읍 시가지가 나오면서 외씨버선길 5코스 탐방을 마치게 된다
- 영양 감천마을 -
반변천이 동구(洞口) 밖으로 활처럼 휘어 흐르는 감천마을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즈넉한 산촌마을로 수 백년 이어져 내려오는 낙안(樂安) 오(吳)씨 집성촌이다.
과거에는 큰 내가 마을 앞을 흐르기 때문에 감들내 혹은 감내, 감천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일제강점기 애국지사이자 항일 시인인 일도 오희병(1901~1946) 선생의 생가와 문학테마공원, 오일도시비공원 등의 볼거리가 있어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마을앞 삼거리에서 토석담장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니 효자각이 서 있다
낙안오씨(樂安吳氏) 오희집(吳熙緝)의 효자각(孝子閣)
관향은 낙안이요 자(字)는 치학(致學)이니, 오시준 칠원 현감의 후손이며, 오용휴(吳龍休)선생의 아들로서 1808년(純祖 戊辰) 영양면 감천동에서 태어났다.
용모가 단아(端雅)하고 재질이 비범하며 효성이 극진하였다. 장성(長成)한 후 아버지가 지독한 학질에 걸려 3년이나 고통을 겪는 동안,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백약이 무효라 크게 걱정하던 차에, 인육(人肉)이 특효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곧 남모르게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드리니, 이것을 받아먹는 어버이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였으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아들의 살코기가 특효 하여 고질(痼疾)인 학질이 완쾌되어 20여년이나 수명을 연장하였다.
또한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危重)했을 때에도, 손가락을 짤라 피를 마시게 함으로서, 5년의 목숨을 연명하게 하였다.
그 천출(天出)의 효성을 기린 도내(道內)의 유림(儒林)에서는 효자인 그의 이름을 발천(發薦)하였다.
1887년(高宗 丁亥) 나라에서 효자 오 희집 정려각(孝子 吳 熙緝 旌閭閣)을 세우고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通訓大夫 司憲府 監察)을 증직(贈職)하였다.
향년 50세에 별세하였다.
그 후 정려각도 헐려 없어졌으나, 선생의 놀라운 효덕(孝德)은 효도가 점점 쇠퇴해 가는 세상에 모든 자녀 된 이들의 도의심(道義心)을 일깨우는 사표(師表)의 편달(鞭撻)이 될 것이다.
< 영양군지 >
효자각에서 다시 마을 앞 삼거리로 돌아와 마을 안길로 직진하여 들어서는데 왼쪽 담장 너머에 범상찮은 노거수 한 그루가 보여 들어가 보니 영양군 보호수인 '회화나무'란다
감천리 회화나무(보호수)
조선 영조때 가선대부중추부사 오덕근이 하사받았다는 수령이 약 350년 된 나무라고 하는데 그 후손들이 선조인 오덕근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사(齋舍)인 교봉재(橋蜂齋) 앞마당에 서 있다
마을 한 가운데에 '삼천지'라는 조그만 연못이 있어 이채롭다. 그 뜻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연못 제방에 노송들이 멋스럽게 서 있어 날씨가 더워지면 이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겠다
삼천지
연못에는 정자와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연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한가로이 거닐며 구경할만 하겠다
연못을 끼고 오른쪽 마을길로 돌아서면 낙안오씨 종택인 '감호헌 (鑑湖軒) '과 사당인 '충효사 (忠孝祠) '가 있다
낙안오씨종택(樂安吳氏宗宅) 감호헌(鑑湖軒)
충효사(忠孝祠)
충효사는 종택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오수눌(吳受訥) 내외를 모신 사당이다
충효사를 지나 삼거리에서 오른쪽 31번 국도변에 위치한 '문학테마공원'은 포기하고 왼쪽 길로 내려서니 '오일도 시비공원'이 나온다
오일도 시비공원
시간 관계상 시비에 적혀 있는 오일도 선생의 시 하나하나를 현장에서 읽어 보지는 못하겠고 사진으로만 담아 와 집에서 사진을 보면서 평소 가까이 하지 않던 시를 읊조려 보는 기회를 가져 본다
지하실의 달
깊은 의자에
허리가 빠졌다
담배연기 따라 저 천정 끝으로
가늘어 지는 내 시선
한 손으로
늙은 종려수를 휘잡노니
종려수!
너도 고향이 그리울게다
하늘과 달과 구름은
밖에 두고
음휘의 지하실 한구석에 앉아
또 쓴잔을 손에 듦은
아~
내 영혼과 내 모자는
막고리에 걸렸나니
새아씨여!
갈때에 부디 벗겨주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따스한 바람이!
잎 피는 바람입니다
비가 옵니다. 은실의 봄비!
봉오리 터지는 봄비입니다
님이여 어서 오소서
서울 하늘 백공작(白孔雀)나래 햇발 아래에
......꽃은 피리다
......꽃은 피리다
코스모스꽃
가을볕 엷게 나리는 울타리 가에
쓸쓸히 웃는 코스모스꽃이여!
너는 전원(田園)이 기른
청초(淸楚)한 여시인(女詩人)
남달리 심벽(深碧)한 곳, 늦 피는 성격(性格)으ㅡㄹ 가졌으매
세상의 영예(榮譽)는 저 구름밖에 멀었나니
높은 상념(想念)의나라는 쉽사리 닿을길 없고
차디찬 가슴에 남모를 애수(哀愁)가 짙었도다
멀지않ㄹ아 서릿바람 높고 하늘이 차면
호젓한 네 혼(魂)을 어느 강산(江山)에 붙이리!
제비의 엷은 나래도 이미 향수(鄕愁)에 지쳐
나란히 전선(電線)위에 모여앉아 강남행(江南行)을 꾀하나니
마음에 영락(零落)의 만가(輓歌)가 떠돌고
한야(寒夜)의 기러기 엷은 꿈을 깨워 주기 전
해말쑥한 너 입술위에
나는 키스를 남기고 가노라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저 황막(荒漠)한 벌판을 희게 덮어 다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杯)에 입술 터지고
무자비(無慈悲)한 바람 때 없이 지나는 잔 칼질 길에
피투성이 낙엽(落葉)이 가득 쌓인
대지大地의 젖가슴 포오트랩 빛의 상처(傷處)를.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저~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 다오.
사해(死骸)의 한지(寒枝)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錦繡)의 옷과 청춘(靑春)의 육체(肉體)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구리는 검은 얼굴을.
눈이녀! 퍽퍽 내려 다오
태양(太陽)이 또 그 위에 빛나리다.
가슴 아픈 옛 기억을 묻어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정토(淨土)위에
내 영(靈)을 쉬이려는 (希願)이오니.
내 연인(戀人)이여! 가까이 오렴
내 연인(戀人)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애수(哀愁)의 가을. 가을도 이미 깊었나니
음흑(陰黑)의 밤 무너진 옛 성(城) 너머로
우수수 북성(北城) 바람이 우리를 덮어온다
나비 날개처럼 앙상한 네 적삼
얼마나 차냐? 왜 떠느냐? 오오 애무서워라
내 연인 (戀人)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조락(凋落)의 가을, 때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나니
한여름 영화(榮華)를 자랑하던 나뭇잎도
어느듯 낙엽(落葉)이 되어 저 성(城) 둑 밑에 훌쩍거린다
잎사귀 같은 우리 인생(人生) 한번 바람에 흩어가면
어느 강산(江山) 또 언제 만나리오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한 발자취 그대를 옆에 두고도 내 마음 먼 듯해 미치겠노라
전신(全身)의 파란 피 열화(熱火)같이 가슴에 올라
오오 이 밤 새기전 나는 타고야 말리니
까-만 네 눈이 무엇을 생각느냐?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오늘 밤엔 이상하게도 마을 개 하나 짖들 않는다
어두운 이 성(城)둑 길을 행여나 누가 걸어오랴
성(城) 위에 한없이 짙어 가는 밤 - 이 한밤은 오직 우리의 전유(專有)이오니
네 팔에 내 목을 안아라
우리는 두 청춘(靑春), 청춘(靑春)아! 제발 길어다오
벽서(壁書)
낡은 초집벽(璧)에
피로 쓴 글씨
그동안 많지 않은 세월에도
벌써 곰팡이 피어 잘 보이지 않나니
인생(人生)의 길은 약속(約束)도 없고
허다(許多)히 지나는 비바람에
이 벽(壁)마저 무너지면
외나무다리 걸어온 내집 역사(歷史)를
어디에서 또 더듬으리오
두손에 촛불 들고
깊은밤 낙엽(落葉)에 꿇어 앉아서
삼가이 내 다시 글을 읽을 제
할아버지 허-연 수염이 바람에 날리다
봄비
한강에 살포시 눈뜨는 버들
버들 타고 봄비는 비가 나려요
천실만실 고요히 나리는 정은
끝도 없는 청춘(靑春)의 눈물이라오
보슬보슬 온종일 울며 나려도
십릿벌 모래밭을 못 적시거든
강남천리(江南千里) 먼 먼길 물길 터지어
님 타신 배 순순히 언제 오시랴!
시비공원을 둘러보고 오일도 시인의 생가를 보기 위해 마을길로 올라서는데 같이 온 일행들은 벌써 다 둘러보고 마을 밖으로 이동중이다. 오늘도 후미는 내차지~
아무리 바빠도 '오일도시인의길'을 걸으면서 '오일도 생가'를 둘러 보지 않고 간다는 건 예의가 아니제~
오일도 시인의 생가로 가는 마을안 토석담장
오일도(吳一島) 시인의 생가(生家)
트럭 한 대가 솟을대문 안에 턱~하니 서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서 정면을 보면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채 오른쪽에 자리잡은 사랑채에는 '국운헌(菊雲軒)' 이라는 당호와 '한묵청록(翰墨淸綠)'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선조(先祖) 오수눌의 호 '국헌'에 구름 '운'자를 더해 '국운헌'이라는 당호를 지었다 하고,
한묵청록(翰墨淸綠)이라는 의미는 '글을 짓거나 쓰는 일은 맑고 탐욕이 없다'는 뜻이니 바른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한 듯 하다
생가는 고종 원년인 1864년에 오일도 시인의 조부인 오시동(吳時東)이 건립했다고 한다
오일도 생가는 44칸 한옥이라고 하는데, 44칸 한옥이면 으리으리하게 클 줄 알았더만 칸들이 조막만 해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담하고 검소하다
전체는 'ㅁ'자형으로 경북 북부의 추위를 막기 좋은 구조로 지어졌으며, 지금도 사람이 사는 집이라 일상의 자취가 보이고 집안에서 두런두런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오일도(吳一島)시인의 본명은 희병(熙秉)이며 천석 거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넉넉한 가풍 속에서 자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01년에 태어나 14세까지 마을의 사숙에서 한문 공부를 했으며, 이후 영양보통학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일본 도쿄의 리쿄대학 철학부에서 공부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시를 썼고 1925년 '조선문단' 4호에 시 '한가람백사장에서'로 등단했고
서정적인 시작(詩作)과 함께 시 전문 잡지 시원(詩苑)을 발행하며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나 일제 말기 이곳으로 낙향해 통음(痛飮)으로 울분을 삭이다 일찍 요절하였다 전한다
마을 길에서 본 오일도 생가(측면)
오일도 생가를 둘러 본 후 서둘러 일행을 뒤따른다
감천경로당
감천리 화수재(甘川里 花樹齋)
화수재는 낙안오씨 감천 입향시조(入鄕始祖)인 오원로(吳元老)를 기리기 위해 1687년에 건립한 재실이다
감천마을 뒷 산인 '이중산' 자락
마을길을 벗어나 다시 산길로 올라선다
산길로 올라서며 뒤돌아 본 감천마을 풍경
외씨버선길 이정목이 서 있는 지점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올라선다
묘목이 심어진 개활지에서 계속 오르지 않고 우측 산길로 다시 들어서야 한다(알바 주의)
감천마을과 '무이산'
버선길 이정목과 리본을 벗삼아 걷다 조그마한 계곡을 이어주는 나무다리를 건너 우측의 31번 국도를 보면서 비탈진 산길을 조금 더 걷다 도로로 내려선다
비탈진 산길은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 미끄럽다
산길에서 내려와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이동하여 감천1교를 지나 왼쪽 제방길로 들어선다
31번 국도(영양군 영양읍 방향)
감천1교
31번 국도(영양군 입암면 방향)
다리를 건너면서 보는 반변천(하류쪽)
다리를 건너면서 보는 반변천(상류쪽)
감천1교가 끝나는 지점에서 31번 국도를 벗어나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막골'까지 그늘 없는 반변천 제방길 따라 걸어야 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그늘없는 제방길을 걷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깎아지른 수직 석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반변천을 벗삼아 유유자적 걷다 보면 마냥 힘들지만은 않겠다
여름철 같으면 내려가 물놀이라도 하고 갔으면 좋겠다
오랜 세월 하천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웅장한 단애와 반변천의 맑은 물이 장관을 이뤄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북적이겠다
감입곡류(嵌入谷流)로 흐르는 반변천의 멋진 하안단구애(河岸段丘崖) 보며 걸을 수 있는 감천1교에서 진막골까지 1.3km 구간은
오늘 걷는 외씨버선길 5코스(오일도시인의길)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진경(珍景)이라 할 수 있겠다
하천 아래쪽에 사람이 있어 우리 일행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수석하는 사람들인 듯하다
좌측엔 반변천, 우측엔 사과밭. 그야말로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고 아무도 안보이는 버선길을 혼자 걷는 여유로움. 이 순간은 내가 갑이다
진막골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인다
제방길에서 벗어나 다리(원주평교)를 건너 진막골로 들어선다
이 다리는 2020년에 놓였단다
새로 놓인 다리 옆에는 다리가 놓이기 전에 마을을 이어주던 지도상에 '세월교'로 표시된 다리(잠수교?)는 물에 잠겨 지나다닐 수 없다
잠겨있지 않았더라면 옛길인 세월교로 건너는게 더 의미가 있을텐데 아쉽다
진막골 입구
진막골 입구에 외씨버선길 인증 사진 촬영장소가 있다
진막골
진막골은 '골짜기에 논밭이 많다'는 뜻으로 오랜 옛날부터 형성된 산촌마을이다
이곳에는 과거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조성된 군부대 훈련장, 성황당, 영양산성, 고려장 유적지 등 역사적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번에 걷는 외씨버선길 중 진막골에서 영양읍내까지 약 2km 구간은 이곳 진막골 주민참여 사업으로 옛길이 복원되었다
마을앞 경로당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다 전방에 보이는 전봇대를 지나 우측 방향으로 진입하여 계단이 놓인 산길로 올라선다
산길로 오르다 뒤돌아 본 진막골
산길로 올라서면 제법 경사가 있는 까칠한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진막골에서 성황당까지의 구간 길은 비탈진 좁은 길에 미끄럽기까지 하여 오늘 걷는 '오일도시인의길' 중에서는 가장 힘들다고 할 수 있는 구간이다
지금 걷고 있는 산길은 진막골 주민참여 사업으로 복원한 옛길이라고 하는데 주민들 보다는 우리 같은 외씨버선길 탐방객들이 주로 걷는 길로 보면 되겠다
잠깐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멀리 눈 덮인 설봉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소백산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방향으로 봐서는 태백산일 듯 싶다
성황당에 가까워질 무렵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으나 이 자리에서는 조망이 그닥 시원치 않다
성황당(城隍堂)과 영양산성
옛날에 효자가 이 마을에 살았는데 할머니가 병이 나서 한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효자는 얼음에 언강을 오르내리며 하늘에 호소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령이 계시면 잉어를 주소서"라고 말을 마치자 마자 하늘에서 잉어가 날아와 할머니께 드리니 바로 병이 나았다고 한다
영양산성은 고려시대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했으며 지금도 토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봄기운이 가득한 산능선 너머에 하얗게 솟아있는 설봉을 보고 있노라니 나름 이국적인 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성황당을 지나서 부터는 콘크리트 포장길...
영양읍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종착지가 멀지 않았다
영양읍 시가지 외곽으로는 오늘 다섯 번이나 건너 다녔던 반변천이 흐르고 있다
(♧ 오늘 반변천을 이어주었던 다리 : 석문교, 감천교, 감천보, 감천1교, 원주평교)
시원하다. 시원해~
무량사
1958년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하는데 올라서려다 포기하고 그냥 통과한다
알바하기 쉬운 곳. 무량사를 지나 내려가다 외씨버선길 이정목이 서 있는 지점에서 좌측 산길로 올라서야 한다
산길은 완만하고 길지 않다
산길을 약 5분여 걸은 후 영양읍 시가지로 들어선다
오른쪽 방향으로 직진...
반딧불이가 밝혀주는 가로등.^^
영양군 수비면 수하계곡 기슭에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생태숲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영양전통시장은 문을 열고 장사하는 집이 드물고 한산하다. 아마도 상설시장이 아닌 5일장인 듯...
우리를 태워다 줄 버스가 서 있는 영양군청 앞에 도착함으로써 외씨버선길 5코스 오일도시인의길 탐방을 마친다
지도상 거리 : 11.2km
트랭글 거리 : 13.5km
첫댓글 작가님을 통해서 진정한 둘레길 탐방의 의미를 알게 되었네요... 길에서는 못보고 사진과 글을 통해서 오일도 시인의 시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곳을 보았어도 몇군데만 생각나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지나온 길이 영화처럼 그려 집니다..
오래도록 볼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녀왔어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건 저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여행사진을 정리할 때는 모니터에 지도를 띄워놓고 행적을 더듬어가며 기억을 되살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