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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텍스트: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2권 9~10장, 제3권 7~10장, 25장 (Of the Want of All Comfort / Of Gratitude for the Grace of God / Of the Concealing of Grace under the Guard of Humility / Of a Pure and Entire Resignation of Ourselves for the Obtaining Freedom of Heart)
중심 말씀: 욥기 1장 21~22절, 고린도후서 12장 9~10절, 하박국 3장 17~18절
핵심 질문: “당신은 눈물의 은혜와 감정적 황홀경이라는 영적 사탕(Spiritual Sweets)을 주실 때만 주님을 찬양하는 젖먹이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모든 위로를 거두시고 칠흑 같은 메마름(Aridity) 속에 던져두실 때에도 십자가의 주님만을 순결하게 예배하는 장성한 군사인가?”
[강의 서론] 영적 사탕에 중독된 미성숙한 신앙의 민낯
토마스 아 켐피스는 제3권으로 접어들며, 하나님을 깊이 따르고자 하는 모든 성도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가장 혹독한 영적 시험대를 정조준합니다. 바로 ‘내적 위로의 철회(Withdrawal of Inward Consolation)’와 ‘영적 메마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흐르고 영혼에 거룩한 기쁨이 쏟아질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등에 업혀 달리는 자에게 그 어떤 짐이 무겁겠는가?
그러나 주께서 당신의 감정적 위로를 거두시고, 영혼이 마치 물기 없는 광야처럼 바짝 메말라버릴 때,
하늘이 놋처럼 닫히고 단 한 줄기의 감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올 때,
당신은 여전히 주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할 수 있는가?
수많은 자들이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시는 위로와 감정’만을 사랑한다.
영적 젖먹이들은 단맛이 사라지면 즉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투정을 부린다.
그러나 참된 제자는 썰물이 빠져나가 바닥의 진흙탕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겟세마네의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주권 앞에 무릎을 꿇고 변함없이 찬양의 제사를 드린다.”
많은 청년들이 집회에서 눈물을 쏟고 뜨거운 감정을 경험할 때는 자신이 대단한 성자가 된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의 불꽃이 사그라들고 일상의 건조함이 찾아오면 즉시 침체에 빠져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라며 요동칩니다.
켐피스는 일갈합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영적 위로를 거두시는 이유는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위로, 은혜의 감정)’을 ‘하나님 본인’보다 더 사랑하는 영적 간음(Spiritual Adultery)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믿음을 순금처럼 정련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 강해 & 관주 연구: The Biblical Cross-References]1. 욥의 절대 예배: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모든 자녀와 재산, 건강과 평판을 단 하루 만에 잃어버리고 재투성이 바닥에 앉아 기와 조각으로 살을 긁어내리던 욥의 고백을 보십시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 욥기 1:21~22
‘알몸으로 나왔사온즉(Naked came I)’: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설 때의 절대적인 무(無, Nothingness)의 상태를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누렸던 모든 것—물질, 건강, 심지어 영적인 감정적 위로와 은혜의 고양감까지도—내 소유가 아닌 창조주의 전권적 선물이었음을 선언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욥은 사탄을 보지 않았고, 갈대아 강도를 탓하지 않았으며, 환경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축복을 주실 때뿐만 아니라, 모든 위로와 방패를 거두어가실 때조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예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가장 순전한 믿음의 극치입니다.
2. 성경 관주로 파고드는 ‘영혼의 어둔 밤과 자족의 영성’
관주 1: 고린도후서 12:8~10 — 육체의 가시와 약함의 영광“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사탄의 사자요 육체의 가시(극심한 질병 혹은 고통)를 거두어달라고 세 번이나 사생결단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찬란하게 폭발하는 자리는 감정적 풍요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자원과 위로가 바닥난 ‘절대적 약함의 무덤’입니다.
관주 2: 하박국 3:17~18 —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는 자리에서의 기쁨“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섯 가지 ‘없음’의 연속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생존의 전면적 파산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의 기쁨은 ‘손에 쥐어진 소출’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눈에 보이는 위로와 공급이 멸절된 자리에서도, 오직 ‘구원의 하나님 그분 자체(In the Lord)’만으로 영혼의 기쁨을 길어 올렸습니다.
관주 3: 욥기 23:8~10 —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순금의 연단“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영적 메마름의 극치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고 단절된 절망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욥은 감각의 부재 속에서도 언약의 신실하심을 붙들었습니다: “그가 나를 아신다!”
감각적 은혜를 거두시는 시간은 영혼의 불순물을 태워 ‘순금(Pure gold)’으로 빚어내시는 거룩한 도가니입니다.
관주 4: 시편 22:1~3 — 버림받음의 탄식과 거룩의 송축“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토해내신 버림받음의 절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완전한 유기와 단절의 흑암 속에서도, 시편 기자는 3절에서 즉시 선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드리는 순종이야말로 지옥의 빗장을 박살 내는 가장 순결한 예배입니다.
3. 켐피스의 처방: 영적 메마름을 통과하는 거룩한 기술
토마스 아 켐피스는 위로가 사라졌을 때 성도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영적 태도를 훈계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거든 감사함으로 받으라. 그러나 그것이 네 공로로 얻어진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
그것은 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일 뿐이다.
그리고 위로가 떠나가거든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라.
영혼의 메마름이 찾아올 때, 너 자신을 가장 깊은 겸손의 먼지 속에 파묻으라.
‘오 주여, 나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무익한 벌레요 죄인입니다. 주께서 내게 단 한 톨의 위로를 주지 않으셔도 주님은 여전히 지극히 의로우십니다.’
위로를 좇는 자가 되지 말고, 위로를 주시는 주님을 좇는 자가 되라.
영적 겨울의 삭풍을 인내로 견뎌내는 나무만이, 봄날에 거룩한 성령의 찬란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위로가 넘칠 때 교만해지지 않고, 위로가 말라붙을 때 원망하지 않는 사람,
오직 십자가의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영혼을 사탄은 결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말씀 선포: 감정의 신기루를 깨고 광야에서 십자가를 붙들라!]
사랑하는 다음 세대 킹덤 러너 여러분!
언제까지 감정의 사탕발림에 취해 오르락내리락하는 영적 롤러코스터 신앙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찬양이 뜨겁고 눈물이 날 때만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 같고,
마음이 건조하고 고통이 찾아오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불평하는
그 비참하고 얕은 영적 유아기적 신앙을 이 시간 배설물로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분을 맞춰주는 감정의 자판기가 아닙니다!
그분은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며, 여러분의 영혼을 순금으로 빚어내시는 거룩한 토기장이십니다!
위로의 썰물이 빠져나간 광야로 걸어 들어가십시오!
하늘이 침묵하고 온 세상이 나를 찌르는 것 같은 영혼의 어둔 밤 한가운데서
욥처럼 두 무릎을 꿇고 선포하십시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여러분이 감각과 기분을 초월하여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만을 묵묵히 바라보며 순종할 때,
사탄의 참소는 침묵하게 될 것이며,
세상이 감히 알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부활의 신령한 능력이
여러분의 영혼 밑바닥에서 영원한 생수로 터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관주 성경공부 실천 워크숍]
내 신앙의 ‘감정 의존도’ 진단 (욥 1:21 묵상)
최근 기도 응답이 늦어지거나, 예배 중 아무런 감정적 감동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내가 보였던 반응(짜증, 불평, 기도 중단, 영적 방황 등)을 솔직하게 기록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의 선물’만을 탐하고, 영적 메마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연단의 손길’을 거부했던 미성숙함을 회개하십시오.
‘광야의 순전한 예배자’ 결단 기도문 작성
하박국 3장 17~18절과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을 붙들고 선포하십시오:“만유의 절대 주권자이신 주 하나님, 감정적 위로와 은혜의 단물만을 탐닉하며 작은 메마름 앞에서도 원망을 쏟아냈던 내 얕은 신앙을 눈물로 자복합니다.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칠흑 같은 영혼의 어둔 밤 속에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는 성숙한 예배자로 서겠습니다. 모든 영적 위로가 끊어지는 그 순간에도 묵묵히 십자가의 주님만을 바라보오니, 나를 순금 같은 믿음의 군사로 단련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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