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된장국 / 이 정 우
이렇게 저렇게 만나고 다니는 사람의 수가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면 식사 때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음식을 접하게 된다.
한 동네에도 식당의 종류가 하도 여러 가지여서 동서양의 음식을 막론하고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이쯤 되면 음식만큼은 자연스럽게 국제화가 되었어야함에도, 사람이 나고 자란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늘 구미가 당기는 음식이 있다.
동네 입구 한 켠에 농번기를 피해 장사를 나온 아주머니들이 돈거리를 싸들고 제법 시장 모양을 벌려 놓는다. 그 중에는 더러 장삿속을 보이는 물건도 섞여 있지만 유난히 눈에 드는 것이 있으니 비닐봉투에 아구리를 벌려놓고 있는 냉이다.
냉이는 뿌리에서 향이 나기 때문에 뿌리가 잘 붙어 있어야한다. 또 색이 거무스름하고 뿌리가 굵어야 실해 보인다.
손님이 없을 때에는 부지런히 냉이를 다듬어 작은 소쿠리에 올려놓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은 손놀림을 하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곱은 손끝의 실금은 물이 들었는지, 아니면 터진 것인지, 까맣기만 한데, 뉘 집 저녁상에 오를 냉이를 저렇게 열심히 다듬고 계신지 묻고 싶어진다.
겨울 냉이는 유난히 색이 짙고 향이 깊어 입맛을 돌게 한다. 가끔 집사람이 냉이 된장국을 끓일라치면 냉이를 한 번 데쳐내서 진한 맛을 덜어내고 맑게 끓이는 방법도 있다며 자신만의 비법으로 국을 끓여 놓지만, 냉이 국은 역시 냉이 냄새가 풀풀 나야 제 맛이 아니겠는가.
겨울, 감기 몸살 끝에는 냉이 된장국이 먹고 싶으면 털고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된장을 풀고 슴슴하게 끓인 냉이 국은 언제 먹어도 구수한 것이 생각만으로도 마른 목에 침이 넘어간다. 여기에 마른 멸치 몇 마리 넣어보자. 왜 냉이 된장국에는 마른 멸치를 넣고 끓여야 제 맛이 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간혹 음식점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난 뒤에 냉이 된장국이 나오는 집이 있다. 고기를 양껏 먹고도 냉이 된장국에 밥을 두어 공기 말아먹는 나를 보고 주위에서는 촌스럽다고들 한다. 촌스러우면 어떤가. 나고 자란 곳의 입맛을 어찌 속일 수 있단 말인가. 하여 신토불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내가 사는 곳의 하릿벌이란 지명이 말하듯 예전에 그 곳은 주로 밭이었다. 쪽파를 많이 심었는데, 파 작업을 끝내고 난 밭에는 유난히 냉이가 잘 자라 때만 되면 냉이 캐는 동네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 집에도 겨울이면 물리도록 밥상에 오르곤 했던 국이기도 했다. 하여 지겨울 법도 한데 나이들 수록 제 맛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니...
그러니 몇 십 년이 지난다고 해서 몸에 맞는 것을 거부하고, 아무리 좋다한들 억지로야 먹어지겠는가 말이다.
우리 땅에서 난 것으로 우리 몸을 채운다면 그보다 더 좋을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다. 촌스럽다고 비웃은들 어떠랴. 맛있게 먹는 것이 살로 간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리. 우스운 얘기지만 의식주의 개념이 무엇인가. 먹기 위해 산다면 펄쩍 뛰는 이도 있겠지만 또한,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도 정해진 이치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