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4-09
멘 토(mentor)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내가 그 예전의 일들을 돌이키며 마음속에 다시 떠올려 볼 때에, 많은 시간들을 교회와 학교생활들로 지내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에 학교의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기억되어진다. 그리고 교회는, 내가 지금 살고있는 마을에서 안쪽에 있으면서, 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교회를 어린 유년의 때부터 신학교를 거의 마치기까지 다녔다. 그 교회에서 나에게 알게 모르게 가르침을 준 목회자와 선생님들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가운데에서도 고등학교와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의 마음에 많은 것을 가져다주신 전도사님이 계셨다. 경제적인 것 그 이상으로 마음이 공허할 때에 큰 위안이 되어주셨다. 그 분은 내가 즐거워하고 웃을 때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기도할 때에 더욱 함께 해 주셔서 많은 위안을 가져다 주셨다(로마서 12:15).
언젠가 스치고 지나갔던 멘토(mentor)와 멘토링(mentoring)이라는 말이 생각되어진다. 이야기를 하자면 멘토라는 말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다.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왕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며, 자신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보살펴 달라며, 그의 아들을 한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다. 그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 그 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 또는 스승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곳에서 파생된 말이 멘토링이다. 그것은 현장 실습 훈련을 통한 인재 육성 활동으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사람을 전담하여 그 사람을 돌보아 주면서 실력과 잠재력을 개발, 성장시키는 활동이다. 최근에 기업에서는 후견인제도(後見人制度)라는 것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멘토링의 전형적인 예이다. 이 제도 역시 신입 사원들의 업무에 대한 신속한 적응을 유도하고, 성장 잠재력을 개발시킨다는 면에서 볼 때, 그 기본 사상은 인재 육성에 있다고 하겠다. 교회에서는 일대일 제자양육 모임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주교회에는 신도들 각각에게 대부(代父) 혹은 대모(代母)라는 분이 있다고 한다. 교회에 처음 들어온 예비자가 얼마 후에 세례를 받으면서 나의 신앙생활을 이끌어줄 분으로 남자는 아버지와 같은 분을, 여자는 어머니와 같은 분을 정하게되는데 그것이 대부 또는 대모란다.
나는 얼굴에 미소(微笑)를 띤 목사(牧師) 또는 목부(牧夫)요, 젊은 사부(師父)요, 나이 어린 스승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은 위의 말들과 제자(弟子)라는 말을 쓰기를 매우 어색하게 여긴다. 나의 습성대로 강직(剛直)함보다는 유순(柔順)함으로 함께 하는 이들을 더욱더 두루두루 포괄(包括)하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얽히고 섥히면서 살아가는 재미들을 느꼈으면 한다. 어느 때에는 신부(神父)님들처럼 입는 로만칼라의 옷차림도 매무시를 갖춘 모습이라서 경건함이 베어있어 좋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단장하는 편이 못되어서 그런지 막입기를 보통 일로 알고 나다니기를 좋아한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경건함을 예사 일로 알고 사는 나 자신이라면 좋겠다. 바울은 사람을 가르치는 자로 세움을 받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준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디모데전서 4:12-13)
공동체 이야기
무 슨 말 을 하 지 않 아 도
눈이 어두워 책 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나로서는, 세상살이에 정보를 얻는다고 할까나? 사람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하고 싶어, 박 선생님 방에서 테레비 정보센타 라는 프로그램 보기를 즐겨했었다. 요사이 한동안 보지 않았다가 오늘도 그 얘기를 조금 때늦은 시간에 보는데, 앞에서 그런 얘기가 방송되었던 것 같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에서 스님들이 국악과 양악기로 악단을 조직하여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산사(山寺) 음악회를 가졌는데, 비가 오는 중에도 많은 이들이 그 음악회를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음악회는 맨 처음에는 4년 전에 경북 봉화의 청량사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지금은 여러 사찰에서 열린다는 이야기였다. 방송을 진행하던 여자 분이 가을날에 비가 내리는 중에 음악회가 열려서 더 좋게 보였다는 말도 뒷받침으로 빼놓지 않고 했다. 그 순서를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진행을 하던 남자 분이 “방송 끝나면서 그 사찰에서처럼 방송국에 모인 방청객들 앞에서 내가 노래나 한 곡할까요?” 같이 있던 여자 분이 “담배나 끊으시지요” 여자 분을 가운데 세우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듯한 건너편의 다른 남자 진행자가 하는 재미있는 말 “입에 냄새나 안 나게 하고 노래를 하던지?” 물론 담배로 인하여서 생기는 냄새이겠지만, 나는 번 듯 그런 엉뚱한 생각이 스쳐갔다.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말을 많이 하면 입에 냄새가 날만큼 되었겠는가(?)
일반적이지는 않겠으나, 장애인들은 몸놀림이 둔하고, 행동반경이 좁기 때문에 입으로 표현하다보니 그렇겠지만, 때로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습성이 자신도 모르게 입에 베어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때때로 몸에 익숙해져서 무의식이다시피 다른 이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지내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말은 참으로 오묘하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太初)에 말 한마디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해갔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사람들이 잘 보듬어 안 듯이 다독거리며 그 안에서 평화로이 노닐 듯 살아야겠다. 그런 뜻에서 받쳐주어야만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사소한 것이라도 많은 말로써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자발적(自發的)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가을이 깊어가며 때가 되어 국화꽃이 만발(滿發)하게 핀다는 말과 같이 몸놀림이 쉬운 사람들이 꽃이 살며시 펼쳐지듯이 스스로 움츠리고있던 것을 내뻗어 손을 펴고 잡아줄 수 있는 모습이라면 좋겠다.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라라는 말처럼 말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 선생님이 계신다. 때로는 그 선생님의 인사가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고, 귀찮다고 여겨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선생님의 다정스러움이 왠지 좋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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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라홍채
강재홍
최성재
최영애
지명수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희망의 언덕에서는(회장:유상현) 금산밀알의집, 새터공동체 그리고 이웃 장애인 분들과 함께 갖는 목요일 모임을 8월 19일에는 제원주유소에서, 8월 26일은 군북교회가 함께 해주셔서 무주 반딧불축제와 양수발전소에서, 9월 2일은 유 선생님 댁에서, 9일에도 유 선생님 댁에서 각각 모임을 가졌습니다. 군북교회(한성국 목사님. 박형순 전도사님)에서 새터공동체 식구들을 위하여 매주 차량운행으로 같이하여주셨습니다.
* 9월 10일에 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의 도움으로 새터공동체 식구들이 금산인삼축제를 관람하였습니다.
* 04년 9월 20일에 금산읍교회 김철우 목사님의 도움으로 금산에서 새터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목욕을 하고, 함께 목욕을 하신 마을의 할머니께서 점심식사를 대접해주셨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주식회사EG(이광형).김기홍.정무래.최영애.강재홍.라홍채.대전제일교회.지명수김남완.세광교회.향림원(2인).채윤기(박현실).진명구.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8인).기물리교회.박종만.대전노회.대덕교회.찬미교회.김철우.곽길동(강동철)대산식품(박우학).대전노회사회부(양승백.김형택).동춘교회4남선교회.사랑방교회여전도회(6인).만나교회(전남홍외9인)동산베이커리.옥천동부교회.분평청북교회.라영균외3인.대덕교회(이중삼외1인)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3인).신건태.추부제일교회.향림원(2인).김철우.성남교회.최선희.향림원(2인).금영훈.남상륜(김성숙).대한민국H.I.D설악동지회(김종명외1인).김철우.이정애.이원교회.통계청(임명선외3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